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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애슬레틱-JPB] 16년 전의 무리뉴 첼시1기와 2019년 현재 무리뉴의 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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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6:31:23

무리뉴가 16년 전 첼시를 처음 맡았을 때 그가 스쿼드에서 받았던 느낌을 어쩌면 지금 다시 받고 있지 않을까.


16년전 첼시, 그곳에 메이저 트로피들 들어 본 선수들은 손에 꼽았고 무리뉴는 이것을 선수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마케렐레와 제레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아르옌 로벤은 네덜란드에서 타이틀을 들어본 적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쿼드 멤버들은 당시 타이틀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체흐, 램파드, 존 테리, 드록바, 조콜, 구드욘슨, 데미언 더프, 갈라스, 웨인 브릿지, 글렌 존슨, 티아고 멘데스 - 그들에게 메이저 컵은 없었다.


무리뉴는 그들에게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려 왔다.


감독으로서 무리뉴의 핵심은 "자신감 트릭"이다. - "너희의 모든것을 나에게 걸어라. 그럼 난 너희에게 우승을 걸어주겠다."


그에겐 플레이의 원칙이 있었고, 훈련장에서의 루틴, 엄격한 분석, 그리고 수년간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은 저런 심리적 요소가 없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 끊임없는 퍼포먼스적인 카리스마들은 그런 이미지를 반영한다.
이러한 동력은 항상 불균형에서 찾아온다. 무리뉴는 승리자이고, 선수들은 그러지 못하다. 포르투, 첼시, 그리고 인터밀란에서 그의 동력은 선수들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가 맡는 팀들은 항상 우승에 굶주려있었다. 첼시는 리그 1955년 이후로 리그 타이틀이 없었고, 인테르는 유럽 무대에 이름을 날린지 50년이 지났다. 무리뉴는 그들이 원하는곳에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하며 들어왔다.

선수들은 그를 믿었고, 그를 따랐으며 승리했다. 믿음과 영광의 순간이 계속 반복되었다. 더 많이 믿을수록, 더 많이 이긴다. 그리고 일단 첫번째 기적을 완성하면, 두번째 기적에 대해서는 더 열광적이다.

 

어떤 감독도 영원히 정상에 앉아있을 순 없고, 축구는 빠르게 바뀐다. 하지만 무리뉴가 잉글랜드에서 4번째 감독직을 시작할때, 그가 다시한번 마법을 부릴수 있을거라고 기대하지 않는것은 불가능하다.


무리뉴가 2004년에 첼시를 맡았을때, 그의 가장 큰 걱정은 무적에 가까운 아스날을 파훼하는 것이었다.

맨유는 위협이 됐지만 과도기를 겪고있었고, 맨시티의 그 해 최고의 영입은 대니 밀스(그 밀스맞음)따위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토트넘과 그때의 첼시를 완전히 겹쳐놓는것은 불가능하다. 무리뉴는 가장 핫한 젊은 감독이었고, 로만은 새로운 스쿼드를 위해 수천만 파운드를 사용했으며, 당시 잉글랜드에서 꺾어야 했던 팀은 아스날 한팀 뿐이었다.

하지만 무리뉴의 첼시에서 첫주를 되돌아보면 지금과 비슷하다. 그가 무언가를 해내기 전에, 심리적인 통제력을 가져와야했다. 선수들에게 경기를 이기고 있지만 이긴게 아니라고, 그러면서 정신 깊은곳에 하나의 메세지를 쑤셔박았다.


'그들은 이기기에 충분한 선수들이라고, 감독을 따르기만 한다면 말이야'
무리뉴가 선임된 이후, 그는 맨체스터에 램파드, 존 테리, 콜, 브릿지를 만나러 갔다. 그들은 잉글랜드에서 유로 2004를 준비하고 있었다. 4명과의 첫 미팅이 끝날때, 무리뉴는 선수들에게 하나의 도전을 말했다.

"난 너희가 우승할 수 있다는걸 알아야겠어. 난 우승자고 너희도 그래야해. 우린 함께 이겨야해."


램파드의 책을 읽어보면, 무리뉴와의 첫인상은 26살의 프로 선수가 새로운 감독을 만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것 처럼 보인다.

"난 무리뉴를 만나자마자 그가 독특한 사람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성격, 야망, 믿음을 주는 능력은 그를 고무적으로 만들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드렝게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인상을 받은것은 램파드만이 아니다.

"무리뉴는 시즌 시작하자마자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했어요. 만약 우리가 자신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그에게 헌신하면, 우린 우승할 수 있을거라고. 물론, 그런것들이 그를 오만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 아니고 분명한 '자신감'이다."

드록바가 자서전에 말했다.


모든 스쿼드는 그 순간 확신했다. 구드욘슨은 무리뉴와의 첫 시즌에서 '올해는 우승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 했어요. '아 됐다'"


결과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첼시는 그 해 리그컵과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했고, 기록적인 95점의 승점을 기록했다. 첼시가 승리할 때 마다, 선수들이 무리뉴를 보는 눈은 더 빛났고, 선수들은 더 그를 따랐다.

그들은 다음 해에도 우승을 차지했고, 절대 멈출것같지 않았다. "그는 모든 스쿼드의 뇌를 우승이란 단어로 가득 채웠다. 우린 우리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거라고 완전히 믿었다." 드록바가 말했다.


무리뉴는 또한 상대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맞춤 전술에도 기준을 세웠다. 그가 경기 전에 예측한 것들이 현실이 되는것을 보면서, 선수들은 마지 무리뉴를 풋볼 클레어보이언트로 보았다. 제대로된 선수경력없이 감독을 하고있는 40대의 남성이 이런 아우라 없이는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다.
2007년 5월, 첼시는 FA컵을 우승했고, 선수들이 웸블리에서 우승을 축하하고 있을때, 선수들은 그들을 우승하게 해준 사람이 그곳에 없는것을 알아챘다. 드록바는 드레싱 룸에서 와이프에게 전화하고 있는 무리뉴를 발견했다.

드록바는 무리뉴에게 "감독님 나오실때까지 컵을 들지 않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 '직접 나오실래요 아니면 제가 감독님 들고 나갈까요.'" 

첼시 성공의 중심엔 무리뉴가 있었고, 그가 없이 트로피를 드는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4달 뒤 무리뉴가 경질됐을때, 드록바는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무리뉴가 다음 직장으로 인테르를 선택했을때, 비슷한 동력을 그곳에서도 사용했다. 이 선수들은 첼시에서 만난 선수들보다 경험있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세리에 A에서는 잔뼈가 굵었다. 문제는 유럽이었다. 2004년 포르투에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무리뉴는 그들에게 완벽한 감독이었다.

무리뉴는 인테르에서 딱 2시즌 있었다. 하지만 09-10시즌의 트레블은 그의 감독직을 통틀아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고, 가장 강력한 팀이었다.


안첼로티의 첼시, 과르디올라의 바르샤, 반할의 뮌헨을 모두 쳐부수고 올라간 여정은 무리뉴 코칭의 모든 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은 선수들이 무리뉴를 믿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인테르의 넘버 10 웨슬리 스네이더는"그는 아무도 우리에게 주지 못했던 정보들을 줬어요. 그게 무리뉴의 힘이죠." 라고 말했다.


그당시 무리뉴는 어느때보다도 강력했다. 그는 3개의 다른 국가에서 3개의 다른 클럽을 맡으며 모두 성공을 이뤄냈다. '내 말만 들으면 약속한 곳에 데려다 주겠다' 무리뉴의 약속은 3번 모두 성공했다.

그의 권력욕이나 자만 신격화를 비판할 순 없었다. 그가 말하는것이 모두 현실이 되었기 떄문에.


모든 성공의 열쇠는 '힘의 불균형의 유지'였다. 무리뉴가 선수들보다 구단보다 커야했고, 자신이 그들에게 구세주가 될것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도착했을때, 무리뉴는 그보다 큰 클럽을 맞닥뜨렸고, 이미 어떻게 이기는지 알고있는 선수들을 컨트롤하는것은 쉽지 않았다.


그 3년간의 기록은 디에고 토레스의 책 - The Special One - 에 기록되어있다.

그는 무리뉴와 레알 선수들간의 관계가 의심과 두려움, 치명적이었고 험악했다고 말했다.

무리뉴가 첼시와 인테르를 거치며 형성했던 존경과 신뢰의 심리적 유대감은 아예 형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베이스가 없이 무리뉴는 서있을 수 없었다.


무리뉴는 그 책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그 책을 쓴 사람은 그런 책을 쓰면 안돼. 상상력을 발휘해서 애들 책이나 쓰던가." 라고 말하면서
무리뉴는 선수들이 필요로하는 감독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마드리드에선 그러지 못했다. 이 스쿼드는 연속으로 라리가를 우승하고 있었고, 2010년 월드컵을 우승한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것들이 그들의 명성을 무리뉴보다 높게 만들었고, 그들이 대우받는, 플레이하고 싶은 스타일이 분명했다. 당시 카시야스는, "우린 'no'라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라고 말했다.


무리뉴가 이런 선수들을 안전하고 반사적인 축구를 하도록 유도했을때, 그들은 거절했다. 레알이 2010년 무리뉴의 첫번째 엘클라시코를 맞이했을때, 무리뉴는 선수들에게 라인을 내리라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바르셀로나의 패스를 끊어내기 위해 상대를 압박했고, 결과는 5-0 패배로 이어졌다.
지난 10년간을 선수들보다 위에 강림했던 무리뉴는, 선수들이 자신을 깔보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무리뉴는 언론에서 선수들과 싸우기 시작했고, 카시야스를 안토니오 아단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축구에선 항상 선수를 바꾸는것보다 감독을 바꾸는것이 쉬우며 페레즈 회장은 선수들과 면담하면서 선수들이 감독을 내보냈으면 좋겠다는것을 분명히 했다. 선수단 핵심은 감독을 싫어했으며, 결국 그들이 승리했다.


무리뉴의 레알에서의 3년을 되돌아보면서, 그의 변명은 선수들이 그에게 충분히 복종하고 헌신하지 않았다는것이다.

"클럽과 팬들을 신경쓰지 않는 이기적인 선수들이 큰 문제였습니다. 가끔 어떤 규율을 받아들이지 않는 선수들을 만나면,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는것이죠."


무리뉴는 그 이후로 그의 옛 카리스마를 되찾지 못했다.
그가 다시 첼시로 돌아왔을 때, 그는 팀을 14-15시즌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그들은 생각했던것보다 빠르게 그에게 등을 돌렸고, 엄청난 몰락과 함게 경질당했다. 맨유에서도 그는 절대 행복해 보이지 않았으며, 우승 경쟁조차 하지 못했다. 로이킨이 무리뉴에게 맨유감독직은 너무 과분하다고 이야기 했을때, 그는 마드리드에서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것이다.


무리뉴가 현대 축구에서 뒤쳐졌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게임의 트렌드는 그의 전공 밖인 소유와 프레싱으로 이어졌다. 탑 매니저들은 이젠 무리뉴가 경험 해본적 없는 복잡한 공격 패턴을 구사한다. 무리뉴가 어린 선수들과 교감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토트넘에서의 감독직이 레알 마드리드와 맨유에 가까운지, 첼시와 포르투에 가까운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것인가?

무리뉴는 그가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으면서, "자신감 트릭"을 구사할때에는 최고에 있었다.
그는 최고의 클럽들에서는 빈털털이와 같은 감독이었지만, 지금 그가 있는곳은 마지막 트로피가 2008년 리그컵인 클럽이다.


무리뉴는 분명 토트넘보다 크다.

토트넘보다 많은 우승컵을 가지고 있고, 그가 선수들에게 '내가 우승하는법을 가르쳐줄게' 라고 말한다면, 선수들은 그 어느때보다 열정적으로 그를 따를것이다.

 2004년에 그가 첼시에서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https://theathletic.co.uk/1435190/2019/12/06/mourinho-is-bigger-than-tottenham-which-means-his-key-strength-as-a-manager-is-finally-back-in-play/

 

출처 - 펨코의 무사뎀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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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2-10 17:05:03

드록바가 드레싱룸으로 무리뉴 찾으러 갔다는 저 부분이 너무 맘에 드네여

2019-12-10 17:12:58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에는 "날 믿고 따라오면 트로피 들게해줄께"방식 안했을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ㅎㅎ

OP
2019-12-10 18:03:37

실제로 부임후 몇번 하긴했죠 인터뷰로...

 난 니들의신뢰가 필요하다 그걸주면 빅이어를 들게해주겠다고 하긴 함 ㅋㅋ

2019-12-10 18:51:38

아 그래요? 그냥 선수단 미팅에서 그랬다더라 상상속 기사만 난줄알았는데 인터뷰에서 얘기했나보군요 ㅋㅋ

Updated at 2019-12-10 17:20:42

첼시 1기 시절 무리뉴는 센세이셔널했죠 ㄷㄷ

2019-12-10 18:11:02

흥민이가 잘 따를 것 같은데 과연

2019-12-10 18:54:42

근데 무링요가 레알 가기전에 레알은 챔스 16강에서 맨날 리옹한테 털리 빌빌 거렸는데 무링요오고 그나마 혈 뚫은거 아니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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