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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스부르크 깜짝 마이스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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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3-21 09:30:51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의 본사와 주공장의 소재지로 유명한 독일 니더작센 주의 도시 볼프스부르크.. 많은 이들이 폭스바겐을 위시한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중 한 곳이기도 한데요.. 이 곳에는 무려 분데스리가에서 50+1 규정에 예외를 적용받는 축구팀이 있습니다. 바로 VfL 볼프스부르크인데 이 구단은 1930년대 후반 폭스바겐의 근로자들이 실업선수 개념으로 활약하는 축구팀으로 시작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 종전되었을 무렵 VfL 볼프스부르크라는 명칭으로 재창단되어 시작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창단배경 자체가 폭스바겐 산하에서 시작했고 또 구단의 주인이 폭스바겐이었기 때문에 50+1 규정이 재정된 이후에도 같은 배경의 바이엘 04 레버쿠젠과 함께 그 예외를 적용받고 있죠.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상위리그와는 거리가 먼 구단이었습니다. 2부리그와 3부리그를 전전하다 1997년에 들어서야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최초로 1부리그에 진입했지만 이후 몇 년 간은 성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분데스리가에서 딱히 특별한 점은 없는 구단이었죠. 물론 폭스바겐의 지원은 이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2001년에는 토탈 1,400만유로의 이적료를 투자해 선수를 보강하고, 또 이듬 해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노장미드필더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자유계약선수로 풀리자 영입해 '대어'를 낚는 등 가끔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다만 에펜베르크는 체중조절문제로 감독과 부딫히는 등 썩 성공적인 영입이 되지는 못했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카타르로 이적했었죠.

 

그러던 이 팀이 분데스리가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 사건으로 2003년 아르헨티나의 명문 리베르 플라테와 파트너쉽을 맺고 에이스였던 안드레아스 달레산드로를 당시 분데스리가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이적료였던 900만유로에 덜컥 영입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로 후안 세바스찬 베론, 후안 로만 리켈메, 파블로 아이마르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플레이메이커 뎁스를 대표하던 인물이기도 했죠. 여기에 빠른스피드와 묵직한 왼발로 유명했던 불가리아 출신의 윙어 마틴 페트로프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장신공격수 디에고 클리모비츠 등을 앞세운 공격력으로 2003/04시즌 초반에 잠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다만 수비력에 약점이 있었고 뎁스도 얇아 오래가지는 못했죠.

 

이후에도 기대했던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설상가상 달레산드로는 기후와 도시분위기 등에 적응하지 못해 그 것이 기량으로도 나타나던 상황.. 결국 볼프스부르크에 이적한 지 2년 반 만에 잉글랜드 포츠머스로 임대를 떠난 뒤로 짧은 인연이 끝났죠. 또 팀은 2005/06시즌과 2006/07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강등권 바로 위인 15위로 시즌을 끝마치며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특히 2006/07시즌의 경우 후반기 '소방수'로 영입된 마르셀리뉴가 맹활약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었죠. 그렇게 어중간하던 팀이 바뀐 것은 2007년의 일입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중도경질된 뒤 상황을 추스린 펠릭스 마가트를 대표이사 겸 단장 겸 감독이라는 아주 막강한 권한을 쥐어주며 모셔왔고 그와 동시에 무려 3,000만유로의 이적료를 투입해 그라피테, 에딘 제코 등의 많은 선수들을 영입해 팀을 개편하게 되는데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이 정도 이적료를 순투자할 수 있는 팀은 바이에른 뮌헨 밖에 없던 시절이었죠.

 

이 시기 볼프스부르크의 씀씀이가 커진 것은 당시 폭스바겐 그룹의 CEO로 취임했던 마틴 빈터코른의 의중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모기업 CEO의 든든한 지원 속에 바이에른 뮌헨 다음가는 분데스리가의 부자구단으로 등극해서 당시 분데스리가 기준으로 엄청난 이적료를 쏟아붙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마가트 감독의 지도력도 통하던 시절이었기에 2007/08시즌을 5위로 끝마친데 이어 2008년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수비수인 안드레아 바르찰리와 크리스티안 자카르도를 합계 2,100만유로의 이적료를 투자해 동시에 영입하면서 다시금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1년 전 세리에A 득점왕 루카 토니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온 것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죠. 또 1.FC 뉘른베르크에서 즈베즈단 미시모비치를 영입하는 등 다시금 선수를 착실히 보강해 시즌을 준비했고 큰 사고를 치게 됩니다.

 

해당 시즌의 라인업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

 

베날리오 - 리터(페카릭), 마드룽, 바르잘리, 쉐퍼 - 조수에 - 하세베(리터), 겐트너 - 미시모비치 - 그라피테, 제코

 

우선 이탈리안 듀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바르잘리는 1,400만유로라는 몸값에는 걸맞지 않아도 그냥저냥 주전으로 활약은 했는데 자카르도는 도저히 기용하기 힘든 수준이어서 결국 시즌 초반부터 주전경쟁에서 밀렸죠. 허리에서는 브라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조수에가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좌측면에는 크리스티안 겐트너가 보조 플레이메이커로서, 또 우측면에는 활동량이 많고 공수밸런스가 좋은 선수들이 엔진 역할을 담당해 밸런스가 좋았죠.

 

그러나 이 팀의 중심은 역시 플레이메이커 즈베즈단 미시모비치와 공격수 그라피테, 제코가 합을 이룬 삼각편대였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적으로 바이에른 뮌헨 유스 출신이기도 한 미시모비치는 바이언에서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하위팀 VfL 보훔에서 분데스리가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0년대 중반 테오파니스 게카스라는 침투능력이 아주 좋은 공격수와 상당히 위협적인 궁합을 이루며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던 선수입니다. 미시모비치가 대지를 가르는 스루패스를 찌르면 게카스가 귀신같이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침투해 단독찬스를 만든 뒤 정확하게 성공시키는 장면이 당시 분데스리가 하이라이트의 단골손님이었죠.

 

이후 뉘른베르크를 거쳐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해온 뒤 제대로 꽃을 피웠는데 공격수 그라피테와 제코와의 상호작용이 대단했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힘과 스피드를 동시에 갖추었으면서 자기득점을 보는 것은 물론 서로를 돕는 플레이에도 능했고 여기에 미시모비치가 뒤에서 받혀주기까지 하니 이 삼각편대의 위력은 분데스리가 내에서는 사기에 가까운 수준이었죠. 또 당시 그라피테와 제코는 헐리우드액션으로 패널티킥을 많이 얻어내던 것으로도 유명해 실제로 사기를 제법 치기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세 선수의 호흡은 특히 바이에른 뮌헨을 5:1로 완파하며 마이스터 경쟁에 종지부를 찍던 경기에서 극에 달했고 결국 볼프스부르크는 2008/09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사상 첫 마이스터를 들어올리게 되었죠.

 

시즌이 끝난 뒤 주축선수들을 모두 지켜내면서 또 빠른스피드로 유명했던 오바페미 마르틴스 등 준척급 선수들을 몇몇 영입해 뎁스까지 보강해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만.. 그러나 큰 전력유출이 있었습니다. 마가트가 떠나버린 것.. 볼프스부르크의 성공을 바라본 샬케 04에서 그 모델을 벤치마킹하고자 마가트에게 이사 겸 단장 겸 감독이라는 직책을 제시해 모셔가는데 성공한 것이었죠. VfL 볼프스부르크는 분명 그 재정력이 있어서는 매력적인 팀이었지만 연고배경 자체가 빅마켓이 될 수는 없는 팀입니다. 당장 니더작센 주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팀은 주도 하노버를 연고로 하는 하노버 96이고 VfL 볼프스부르크는 3만석 규모의 크지 않은 경기장조차 만원사례를 이루는 경우가 드물죠. 때문에 '거물'이 된 마가트는 분데스리가의 대표적인 인기팀이자 또 바이언, 도르트문트와 함께 대표적인 빅마켓으로 분류되는 샬케에서 더 큰 명예에 도전한 것이었죠.

 

대신 VfB 슈투트가르트의 2006/07시즌 마이스터를 이끌었던 아어민 페를 감독으로 선임해 차기시즌을 맞이했지만 팀은 마이스터 전력을 그대로 지켜낸 상황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어찌어찌 마지막 경기에서 차포를 다 떼고 박지성이 풀백으로 나오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에서 잡으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을 놓치며 조별예선에서 패퇴.. 결국 페 감독은 시즌 도중 물러났고 팀은 8위로 시즌을 끝마치는데 그쳤죠.

 

그러자 볼프스부르크의 투자는 더욱 과감해집니다. 미시모비치가 떠났지만 그 공백을 무려 유벤투스에서 디에고를 1,500만유로의 이적료에 영입해 대체했고 시몬 키예르와 마리오 만주키치 등을 영입하는데도 큰 이적료를 투자했죠. 또 감독으로서는 네덜란드 트벤테의 깜짝 리그우승을 이끈 잉글랜드 출신의 스티븐 맥클라렌을 선임해 마이스터 시즌의 영광을 재건하는데 나섭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욱 처참한 실패.. 전반기까지 팀은 강등권의 위협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맥클라렌은 물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선택은 놀랍게도 마가트의 컴백.. 대표이사 겸 단장 겸 감독이라는 떠나기 전 직책을 그대로 쥐어준 채 전권을 맡기게 됩니다.

 

당시 마가트는 샬케에서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지만 둘 째 시즌에 라울, 클라스 얀 훈텔라르 등의 거물들을 대거 영입하고도 분데스리가에서 강등권 근처까지 추락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선전을 거듭해 무려 4강까지 진출했지만 끝내 마가트의 경질을 막아서는 요소는 되지 못했죠. 그렇지만 볼프스부르크 팬들은 마가트의 복귀를 염원했었는데 그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코가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맨체스터 시티로 떠나기는 했지만 볼프스부르크는 어찌어찌 2부리그 강등은 면했고 시즌이 끝나고 또 다시 많은이적료를 투자해 많은선수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리카르도 로드리게스도 있었죠.

 

다만 이 즈음 마가트의 안목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볼프스부르크를 맡은 이후부터 마가트의 스카우팅 방식은 세계 각지에서 선수들을 긁어모아 그 중에서 몇몇을 터트리는 방식이었는데 그 중에서 제코와 같은 선수들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만.. 그 휴유증으로 볼프스부르크나 샬케나 마가트 재임 시절에는 1군 스쿼드 규모가 무려 3~40명에 달했고 그 중에서 반절은 잉여전력으로 전략했었죠. 때문에 마가트가 떠난 뒤에도 이 팀들은 마가트가 데려온 잉여전력들을 처리하느라 고생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마가트 2기는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2012년 10월, 약 1년 6개월 만에 물러나며 인연이 끝나게 되는데 당시 'BILD'의 보도로 마가트가 볼프스부르크로부터 받던 연봉이 웬만한 세계적인 스타선수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이후 디터 헤킹 감독을 선임해 팀을 추스리고 또 마가트가 불려놓은 차곡차곡 스쿼드를 정리하면서 또 소수의 고급선수에게 이적료를 집중투자하는 효율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그 결과 루이스 구스타보, 케빈 데 브라이너, 이반 페리시치 등 확실히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들이 영입되어 2014/15시즌에는 분데스리가 2위와 DFB-포칼 우승을 차지해 드디어 마이스터 시즌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성공했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5~6년 간 투입된 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헛돈이 되었죠.

 

이후 볼프스부르크는 데 브루이너, 페리시치를 비싼 값에 정리하면서 대신 율리안 드락슬러, 안드레 쉬얼레와 같은 빅네임을 또 보강했고, 이들이 기대만큼의 활약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름값 덕분에 비싸게 처분하는데 성공하는 등 당시 폭스바겐 그룹이 디젤게이트로 홍역을 겪고 구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던 빈터코른 CEO가 사임하는 와중에도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죠. 대신 주축선수들이 오랜 기간 잔류하지 않고 떠나다보니 전력유지는 되지 못했고 또 2017/18시즌과 2018/19시즌에는 연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루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다시금 잘 추스려 근래에는 또 중상위권의 성적을 이어가고 있죠. 여기에 폭스바겐 그룹의 지원규모도 여전히 무시못할 수준이라 더 이상 바이언, 도르트문트와 같은 구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서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볼프스부르크의 유일한 마이스터를 이끌었던 마가트의 근황은 어떨까.. 볼프스부르크에서 물러난 뒤 잉글랜드의 풀럼의 감독직을 맡아 성과가 좋지 못했고, 이후 중국에 진출했던 것까지는 축구팬들에게도 나름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2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가 올 초에 플라이어알람이라는 독일 소재의 인쇄물 전문기업에서 후원하는 두 곳의 축구팀을 관장하는 글로벌 스포츠 디렉터라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독일 3부리그의 뷔르츠부르거 키커스와 오스트리아 1부리그의 아드리마 바커라는 구단인데 역할은 양 구단에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또 추후 현장복귀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여지를 열어두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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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3-21 09:29:17

    마가트 2기 때 구자철도 있었던...

    2020-03-21 09:41:24

    추억을 소환하게 하는 쌈무님의 글

    2020-03-21 10:28:42

    조광래가 키운 그라피테

    2020-03-21 11:00:59

    분데스리가에서 멤버만 보면 왜저리 헤맬까 싶은 팀이 두팀있는데 그거슨 샬케04와 볼프스부르크......

    두 팀 다 선수단도 선수단이지만 감독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준경우가 아닐런지...

    OP
    2020-03-21 16:54:15

    샬케의 경우에는 2000년에 들어서 다 잡았던 우승도 막판뒤집기로 두 번이나 날리고 각 리그마다 하나씩 있는 전형적인 마가 낀 팀 느낌입니다..

    2020-03-21 11:30:47

    추억의 이름들 엄청나오네요 그라피테 제코 투톱 조수에 맥클라렌
    샬케도 저때 엄청못했는데 챔스4강 가고

    2020-03-21 12:39:58

    마가트 이후 선수 중에서 아놀트 처음 주목받을 때 관심있게 봤는데 결국 대성하진 못한 것 같더군요 매력있는 선수였는데

    2020-03-21 13:38:15

    독일의 램파드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는데 괜찮은 선수 이상으로 성장하진 못한...그래도 유스 출신인데다 프로데뷔 이후로 원클럽맨이라 VfL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볼 수 있죠. 국대급이 아닌 게 아쉽긴 합니다만 독일에서 국대 뽑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도 하구요.

    OP
    2020-03-21 16:56:28

    그래도 리그에서 중상급의 중앙미드필더로 성장하기는 했죠. 강력한 왼발이라는 나름의 개성도 있고..

    2020-03-21 12:57:43

    솔도와 마가트 유치원이라 불리던 슈투트가르트 글도 보고싶네요

    OP
    2020-03-21 16:56:45

    그 주제로도 조만간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0-03-21 19:51:26

    기대할게요

    Updated at 2020-03-21 13:21:26

     구자철 안나와서 마가렛트라고 욕했던 기억이 ㅋㅋㅋㅋㅋ

    2020-03-21 13:43:38

    맥클라렌은 잉글랜드 국대 실패 후 트벤테 우승이 유일한 결과물인가

    1
    Updated at 2020-03-21 13:44:30

    마가트의 경질은 사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라커룸 및 이사회에게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이유가 컸습니다. 리가에서 죽쑤던 와중에 의외로 챔스에서는 선전을 이어가면서 발렌시아를 꺾고 8강 진출을 이루어냈고 포칼에서도 계속 올라갈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리가 성적만 보고 경질할만한 상황은 아니었죠. 다만 이 시기에 선수들을 본인만의 특이한 방식으로 다루면서 몰아붙이다가 이미 내부에서 반발이 심해져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고 방만한 선수단 운영으로 부채 문제도 심각해지자 더 이상 이사회가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 챔스 8강 진출이라는 성과에도 과감하게 경질을 해버린 것이죠. 8강부터는 랄프 랑닉이 팀을 맡아 수습하면서 4강까지 진출하고 포칼에서는 우승도 차지했구요. 마가트 경질 이후로 언급하신대로 1군 선수단의 규모가 너무 커져 이걸 수습하느라 단장으로 헬트를 데려오는 등 고생이 꽤 심하기도...리스크가 대단히 큰 감독인데 감이 떨어지던 시점부터는 성적도 기대하지 못하고 위험부담만 있는 감독이 되어서 분데스리가에 복귀하기는 쉽지 않아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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