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롱도르가 전세계 범위였다면? (1971~1982)
지난번에 이어서 1971년부터 1982년 올려보겠습니다.
크루이프, 베켄바우어의 라이벌리에 이어 남미에는 마라도나, 지쿠가 등장합니다. 유럽은 키건에 이어 루메니게가 있었구요.
역시나 원래 수상자와 달랐던 경우들은 간단히 설명을 포함해 보았습니다.
특히 1977, 1979, 1980은 고르기 어려웠습니다.
-----------------------------------------
[1972] 트레블에 챔스 3연패 기간 중 유일하게 참가한 인터콘티넨탈컵 우승까지 차지한 크루이프와 유로 우승을 차지한 서독 선수들간의 접전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클럽 레벨에서 최정점에 오른 크루이프가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
[1974] 베켄바우어는 리그, 챔스 우승에 이어 월드컵까지 우승하였지만, 이번 발롱도르는 월드컵 MVP인 크루이프가 차지했습니다. 발롱도르 결과는 초접전이었습니다. 저도 고민했는데, 우승 커리어 차이가 크기에 이번에는 1972년과 반대로 베켄바우어를 선택했습니다.
-----------------------------------------
[1977] 시몬센이 발롱도르를 수상했지만, 1위표는 키건이 더 많이 받았습니다 (키건 11표, 시몬센 7표). 상당한 접전이었습니다. 자국 잉글랜드 기자가 키건에게 아예 투표를 안했는데, 3위 이상으로만 투표했어도 발롱도르는 키건의 차지였습니다. 시몬센은 분데스리가 우승을 했지만, 챔스 결승에서 리버풀에게 패배했습니다. 키건은 리버풀에서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을 기록했고, FA컵 준우승으로 아쉽게 트레블을 놓쳤습니다. 1977-1978 시즌 함부르크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발롱도르에서 시몬센이 키건을 이긴 것은 1977-1978 시즌 초반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키건이 이적 후 적응기를 갖는 사이 시몬센은 여전히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지쿠가 있었습니다. 지쿠는 팀 타이틀은 없지만 브라질 리그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차지했고,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브라질을 이끌고 엄청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특히 볼리비아와의 최종 예선 (1차예선을 뚫은 상위 3팀간 조별리그)에서 4골이나 넣으며 8-0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1965년 이후로 가장 고민이 되었던 연도였습니다. 3명 모두 누가 수상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골라보자면, 지쿠는 팀 우승 커리어가 없고 (브라질 리그 9위) 리그 최고 평점 선수도 아니었다는 점, 시몬센은 챔스 결승에서 키건에게 판정패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키건을 골랐습니다. 키건 다음은 지쿠입니다.
-----------------------------------------
[1978] 키건이 분데스리가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으로 보이지만, 잉글랜드는 월드컵 본선에도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우승을 기록한 켐페스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1979] 적응을 마친 키건이 함부르크에게 첫 분데스리가 우승 타이틀을 안기며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발롱도르를 수상했었습니다. 한편 남미에 3명의 뛰어난 선수들이 있었는데, 브라질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리그 최고 평점을 받은 파우캉, 무려 65골이나 넣으며 브라질 리그 최다 득점자를 차지한 지쿠, 그리고 아직 19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준 천재 소년 마라도나였습니다. 마라도나는 쟁쟁한 남미 선수들을 제치고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합니다 (이 때 마라도나 이야기하면서 1979 월드 유스 챔피언십 (현 U-20 월드컵) 이야기도 많이 되긴 하는데, 시대상 감안하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U-20 대회는 성인 대회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고민되는 연도였습니다. 당시 구에린 스포르티보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였는데 유럽의 키건을 누르고 남미의 마라도나가 선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정황과 여러 평가들을 종합하여 과감히 19세의 마라도나를 고르겠습니다.
-----------------------------------------
[1980] 루메니게가 1위표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1위표를 받으며 압도적인 격차로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고, 유로 1980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남미에서는 여전히 마라도나와 지쿠가 최고의 선수로 여겨지고 있던 시절입니다. 남미 올해의 선수상은 마라도나 1위, 지쿠 2위였습니다. 20세의 마라도나는 리그 득점왕 (45경기 43골)을 기록하며 맹활약 했었고, 지쿠도 리그 득점왕이자 첫 브라질 리그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이 3명의 선수를 놓고 고민을 하였는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세계 최고의 선수에서는 루메니게가 이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점과 국가 대항전 우승이라는 점을 종합하여 루메니게를 골랐습니다.
-----------------------------------------
[1981] 유럽에서는 지난 시즌에 이어 2연속 리그 우승에 득점왕을 차지한 루메니게가 또다시 발롱도르를 차지했습니다. 그렇지만 지쿠는 198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차지하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챔스 우승팀인 리버풀 상대로 3대0 완승을 거둡니다. 지쿠는 이 두 대회에서 모두 MVP입니다. 그리고 올해의 남미 선수상도 수상합니다. 마라도나는 이 해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하였고,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이며 지쿠에 이어 남미 올해의 선수상 2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다른 기관에서 선정한 남미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지쿠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구에린 스포르티보 세계 최고의 선수에서 위의 3명이 동점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해의 주인공은 남미 챔피언에 오르고 유럽 챔피언을 완파한 플라멩구의 에이스 지쿠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1977, 1979, 1980에 비해 고민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
글쓰기 |
키건이 두번이나 받았었군요
마라도나는 19세에 발롱도르 가능성이 있었다니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