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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가 전세계 범위였다면? (198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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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14:35:28

마지막으로 1983년부터 1994년 올려보겠습니다.

 

유럽의 플라티니가 등장하고 마라도나가 월드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위상을 높이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굴리트, 반 바스텐, 독일의 마테우스, 90년대 초반 세계 최고 선수들인 바지오, 호마리우 등의 전성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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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유벤투스로 이적한 플라티니가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습니다. 리그 준우승, 코파 우승, 챔스 준우승이었고, 리그 득점왕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남미 선수 중에서는 로마의 41년만의 스쿠데토와 UEFA컵 8강에 큰 기여를 한 파우캉과 지난해 월드컵에서는 아쉬운 결과를 남겼지만 여전히 남미 최고의 선수로 여겨지는 지쿠가 있었습니다. 지쿠는 플라멩구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30세였던 1983-1984 시즌 이탈리아 우디네세로 이적하여 첫 유럽 리그 경험을 시작했습니다.


위의 3명이 상당히 치열합니다. 3명 누가 수상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월드 사커 매거진: 지쿠 / 플라티니 / 파우캉

- 구에린 스포르티보: 파우캉 / 지쿠 / 플라티니

- 엘 그라피코: 플라티니 / 파우캉 / 지쿠

3개 언론사의 올해의 선수 선정에서 각각 한번씩 1, 2, 3위를 합니다.


1964, 1965, 1977과 더불어 가장 고민되는 연도 중 하나였습니다. 이 작업 통틀어 가장 고민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못고르겠는데 한명 고르기로 했기에 한 명 골라보겠습니다. 리그, 코파, 유럽대항전 종합해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고, 골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한 플라티니를 1위로 선택했습니다. 정통 공격수가 아님에도 리그 득점왕, 코파 득점 2위 챔스 득점 2위로 모든 대회에서 득점 최상위권이었고,  82-83 시즌 후반기인 1983년에 리그 16골 중 13골을 몰어넣어서 1983년 활약상이 특히 더 좋습니다. 83-84 시즌 전반기에도 리그 14경기 10골로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리그에서는 로마에 밀려 준우승했지만, 코파에서는 로마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파우캉의 로마의 스쿠데토는 전력 감안하면 대단했지만 UEFA컵에서는 8강 탈락이라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지쿠 3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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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설명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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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마라도나와 굴리트로 상당히 치열하게 의견이 갈리는 해입니다. 굴리트는 86-87 시즌 PSV에서 네덜란드 리그 우승을 하고, 87-88 시즌부터 밀란에서 뛰었는데, 시즌 전반기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마라도나는 86-87 시즌 나폴리에서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기록합니다. 나폴리 역사상 첫 스쿠데토였습니다. 그리고 코파 아메리카 4강을 기록합니다. 마라도나는 당시 풀핏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4경기 3골로 좋은 활약이었지만 4강에서 우승팀 우루과이에 0대1로 패했습니다. 홈에서 열린 대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월드 사커 매거진에서는 굴리트 1위, 마라도나 2위, 옹제 도르에서는 마라도나 1위, 굴리트 2위입니다. 당시 가제타에서 유명 감독 및 전직 선수 10명 (베아르조트, 베켄바우어, 크루이프, 마쫄라, 미헬스, 수네스, 카를로스 알베르투 등)에게 세계 최고 선수 10명씩 투표를 부탁했는데 10명 중 7명이 마라도나 1위, 2명이 굴리트 1위를 선택했습니다. 


고르기 까다로운 연도라고 생각하는데, 여러 평가들과 두 선수의 소속팀 전력을 고려한 리그 우승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마라도나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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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반 바스텐이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는데 사실상 유로 1988로 받은 것입니다. 밀란에서 리그 우승을 햇지만,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날렸습니다. 리그 통틀어 4경기 선발 출전이고, 1988년에는 0경기 선발입니다. 후반기에 부상 복귀해서 교체로 간간히 나왔습니다. 리그 3골 넣었습니다. 그 중 한골이 우승 경쟁하던 나폴리전 득점이긴 한데, 결승골도 아니고 시즌이 장기전이라는걸 생각하면 크게 의미 부여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로 1988에서 네덜란드의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메이저 우승에 1등 공신이 됩니다. 5경기 5골로 대회 득점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시작된 수페르코파에서 우승했습니다. 같은 소속팀의 굴리트는 밀란의 리그 우승 1등 공신이었고, 유로 1988에서 반 바스텐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로 1988 우승의 주역 중 한명이자 PSV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로날드 쿠만이 있습니다. 다만 PSV가 트레블을 하긴 했는데 챔스 8강부터 결승까지 5경기 연속 무승부입니다. 2무 원정골, 2무 원정골, 연장 후 승부차기로 챔스 우승한 것이라 챔스에서는 특정 개인이 주목받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리그에서는 수비수임에도 무려 21골이나 기록하였습니다.


- 반 바스텐: 리그 우승 (11경기 4선발 3골), 수페르코파 우승, 유로 우승, 유로 득점왕

- 굴리트: 리그 우승, 유로 우승, 유로 결승전 결승골.

- 쿠만: 리그 우승, 컵 우승, 챔스 우승, 유로 우승, 수비수임에도 리그 21골


개인적으로 고르기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반 바스텐이 리그에서 좀 더 출전했으면 덜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우승은 네덜란드의 최초의 유로 우승이었다고 생각해서 그 대회 우승의 1등 공신이라는 점과 발롱도르를 비롯해, 월드 사커, 옹제도르 등에서도 모두 반 바스텐이 1위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기존의 결과를 존중하여 반 바스텐을 그대로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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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발롱도르는 프랑스 풋볼에서 수여하는 상인데, 1991년에서야 최초로 프랑스 리그 클럽 소속의 선수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파팽은 마르세유에서 리그 우승, 컵 준우승, 챔스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당대 최강팀이자 이전 두대회 연속 우승팀인 사키의 밀란을 8강에서 잡았던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결승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승부차기로 패한 것이 아쉬운 결과일 것입니다. 파팽은 1991년 한해동안 클럽과 대표팀 통틀어 51골을 기록했고, 특히 91-92 시즌 초반 리그 16경기 13골, 챔스 4경기 7골을 기록했습니다. 대표팀에서는 1991년 유로 1992 지역 예선 4경기 6골로 팀의 본선 진출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플라티니 이후 유로 1988, 1990 월드컵 두 대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한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1994 월드컵 역시 본선 진출 실패). 이런 와중에 지역예선 7경기 9골을 기록하며 팀을 본선으로 이끈 것은 굉장한 성과였다고 봅니다. 다만 1991년 최초로 수여된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인테르와 독일의 마테우스가 1위를 차지하고, 파팽은 2위였습니다. 마테우스는 미드필더 였지만 이 시즌 인테르 최다 득점자로 리그 준우승과 UEFA컵 우승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마테우스도 대단한 선수이지만 이 해는 파팽이 받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단 3표를 제외하고 모든 1위표가 파팽에게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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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반 바스텐이 3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한 해인데, 당시 2위 스토이치코프와 1위표는 1표차에 불과했습니다. 반 바스텐은 91-92 시즌 25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는 1965-1966 시즌 이후 Serie A 최다 득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92-93 시즌 챔스 예테보리와의 경기에서 1경기에 4골이나 넣었고, 유명한 바이시클 킥을 기록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발롱도르, 피파 올해의 선수상,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했습니다. 한편 유로 1992에서는 전반적인 활약도는 괜찮았으나, 4강 덴마크전 승부차기에서 유일한 실축을 하여 탈락 주 원인이 되었습니다. 스토이치코프는 바르셀로나에서 리그 우승과 더불어 팀 역사상 첫 챔스 우승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후 수페르코파와 슈퍼컵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2위를 기록했고, 옹제도르에서는 반 바스텐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팀 우승 타이틀은 스토이치코프가 더 좋았으나 돈 발롱의 라 리가 외국인 선수상은 라우드럽이 차지했다는 점, 개인 활약도나 여러 평가, 투표 결과들에서 반 바스텐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대로 반 바스텐을 선택했습니다. 여담으로 만약에 미카엘 라우드럽이 유로 1992 참가해서 덴마크가 그대로 우승했다면 라우드럽이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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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펠레 시절 이후 24년만에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입니다. 이하 설명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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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는 수상자의 국적이 유럽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도 실제 수상자와 제 생각이 다른 경우들도 있는데, 이 글의 본래 취지와도 맞지 않고, 최근이라 아시는 분들도 많고 각자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해서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만약 정리하더라도 개인 블로그에만 올릴 생각입니다.


 

 

다음번에는 마무리로 발롱도르가 전세계 범위였다면 펠레, 마라도나, 디 스테파노,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푸스카스 등등등 시대별 최고 레전들들이 발롱도르 몇회 수상이 예상되는지, TOP3은 몇회 예상되는지에 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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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5-22 14:47:11

    음 재밌게 잘 보고 있는데 기왕 쓰시는 거 조금만 더 써주시지..ㅎㅎ 잘 읽었습니다.

    OP
    2020-05-22 15:22:26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5-22 15:27:39

    세계 기준으로 넓혀도 3발롱인 반바스텐 플라티니 ㅎㄷㄷ

    OP
    Updated at 2020-05-22 15:53:19

    플라티니의 경우 84, 85는 확고하고 83은 역대급 3명의 경합같구요.

    반 바스텐은 3번다 확고한 1인자의 느낌은 아닌데, 당시 주요 경쟁자들도 대부분 유럽 선수들이라 최대한 원래 결과 존중했습니다. 

    굴리트는 좀 운이 없었다고 할까요.

    2020-05-25 16:41:10

    최신글 보고 복습하러 왔습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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