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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슈바인슈타이거,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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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5-23 23:49:15
현역선수 중 FC 바이에른 뮌헨의 대표 '성골'이라면 역시 토마스 뮐러를 꼽을 수가 있겠는데요.. 그리고 바로 직전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서는 단연 1983년생 필리프 람과 1984년생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콤비를 꼽을 수 있죠. 두 선수는 2000년대 중반, 20대 초반의 나이로 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해 10년 이상 팀에 헌신해왔고 또 2010년대 이후 구단 역사에 남을만한 영광의 시기를 보낼 당시 중심에 섰던 선수들이기도 한데요.. 이 글을 통해 두 선수에 대해 나란히 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두 선수를 6두품 식 출신성분으로 따졌을 때 람은 뮌헨 태생으로 그야말로 성골, 슈바인슈타이거 역시도 뮌헨 태생은 아니지만 뮌헨의 인접도시이자 같은 바이에른 주에 속한 로젠하임 출신으로 반성골에 가까운 선수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슈바인슈타이거가 고향의 지역팀인 TSV 1860 로젠하임 유소년 팀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팀으로 옮긴 것이 1993년도 9살의 나이로, 람의 경우에는 FTM 게른이라는 아마추어팀 산하 유소년 팀에 있다가 1995년도 12살의 나이로 바이언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그 인연이 시작됩니다. 굳이 이런 출신성분을 따지는 것이 불편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연고스포츠에서 로컬홈보이의 의미는 대단히 각별한 것이 사실이고 두 선수가 바이언의 팬들에게 더욱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이유였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죠.

두 선수는 유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기에 2001년 10대의 어린 나이에 당시 3부리그에 속해있던 바이에른 뮌헨의 2군팀에 나란히 승격하게 됩니다. 한 살 많은 람은 이 때부터 2군에서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는데 그러나 당시 유소년 팀의 측면수비자원 중 바이언에서 더 기대를 하던 선수는 람보다 한 살 적은 크리스티안 렐이라는 선수였다고 합니다. 원래 오른발잡이로 2군에서 우측면수비수로 활약하던 람이 렐의 2군승격 이후에는 좌측으로 밀려났을 정도였는데요.. 그런데 좌측면에서 뛰게 된 것.. 그 것이 상당한 전환점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3년 여름..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풀백라인에는 우측에 윌리 사뇰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1860 뮌헨에서 두각을 나타낸 안드레아스 괴를리츠까지 영입하게 됩니다. 좌측면에는 빅상트 리자라쥐가 불혹을 향하는 시점이었지만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두각을 나타낸 토비아스 라우를 영입했죠. 더구나 추가적으로 1군의 부름을 받은 것은 렐.. 그렇게 람은 마르쿠스 후슈테레어라는 동갑내기 센터백과 세트로 묶여 2년 간 VfB 슈투트가르트로 임대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두 선수의 운명이 완벽하게 갈리게 되죠.

이야기는 잠시 슈바인슈타이거로 넘어와서 이 선수는 일찍이 팀 내에서는 상당한 재능으로 평가받던 선수였습니다. 2002년 18살의 나이로 1군 무대에도 데뷔했고 2002/03시즌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총 16경기에 출전할 정도였죠. 뒤이어 2003/04시즌에는 미카엘 발락을 필두로 제 호베르투, 메메트 숄, 하산 살리하미지치, 오언 하그리브스 등 팀 내 쟁쟁한 미드필더 자원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었음에도 거의 주전급 선수 수준으로 출전기회를 받을 정도로 일찍이 입지를 다졌습니다. 또 여담으로 당시 샤방샤방한 나이에도 우락부락한 외모가 볼이 더 빵빵해진 에펜베르크 같다는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했었죠..

덕분에 스무살 젋은 나이에 유로 2004에 그 것도 등번호 7번으로 출전, 조별예선 첫 두 경기에는 교체로 출전했고 결전의 체코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미카엘 발락의 선제골을 만드는 프리킥을 얻어내는 등 활약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고 그대로 첫 메이저대회 경험을 마쳤죠.. 그러나 이 대회 이후 짧은 시련이 찾아옵니다. 새로이 부임한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슈바인슈타이거를 전력에서 배제한 것.. 때문에 시즌 초반 2군에서 경기를 소화해야했고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임대가 추진되다가 무산되기도 하였는데 결국 얼마되지않아 마가트 감독은 슈바인슈타이거를 1군으로 다시 불러들였고 이전처럼 양 측면 자원으로서 꾸준히 출전하며 이전과 같은 입지를 회복할 수 있었죠.

이야기는 다시 람으로 돌아갑니다. 2003/04시즌 처음 합류한 당시 슈투트가르트의 좌측면수비수로는 하이코 게르버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분데스리가 중위권 팀의 건실한 자원.. 그 정도 되는 선수였죠. 또 우측면에는 안드레아스 힌켈이 있었기에 람은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가트 감독이 람에게 좌측면수비수로서 기회를 주었고 상당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그 때부터 주전으로 올라섭니다. 상당히 에너지틱하면서도 젋은선수답지 않게 침착하고 영리했죠. 람이 좌측면에서 뛰던 시절 오버래핑을 할 때는 무조건 한 번 접어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곤 했었는데 그럼에도 워낙 민첩한데다 상대수비수를 속이는데도 능숙해 어지간해서는 실패하는 경우가 없었죠.

작은 체구에 앞니가 살짝 튀어나온 외모 덕에 데뷔 초에는 마이티마우스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그러나 기량만큼은 당시부터 이미 거인에 가까웠죠.. 더욱이 당시 슈투트가르트는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나서던 팀이라 세계적으로도 주목할만한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고, 또 유로 2004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반대편의 아르네 프리드리히와 함께 몰락한 독일대표팀의 유일한 희망으로 불리기도 했죠.

당시 바이언이 알렉산더 흘렙을 영입하는 조건으로 람의 소유권을 슈투트가르트로 완전히 넘겨준다는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바이언도 그 시기 즈음에는 람의 복귀에 안달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좌측면수비수로 기대하며 영입한 라우가 부상으로 신음하며 경기에 거의 나서질 못하며 살리하미지치 등이 그 공백을 대체하다가 결국 마르세유에서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과 불화로 퇴단한 리자라쥐가 6개월 만에 69번이라는 등번호를 부여받아 복귀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좌측수비수로 세계적인 재능이 된 람은 그 자리를 장기적으로 대체하기에 최적의 선수였죠.

그렇게 두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의 1군에서 재회한 것은 2005년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넘버 21 필리프 람.. 넘버 31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그 시기 둘은 독일의 희망으로 우뚝선 인물이 된 상황이었죠. 그러나 람이 뮌헨 복귀전이자 뮌헨 1군 데뷔전을 치르는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습니다. 장기부상으로 전반기를 거의 나서지 못한 것.. 2006년이 다 되어서야 복귀할 수가 있었고 드디어 두 선수가 팀의 주축전력으로서 합을 맞추기 시작했죠.

또 2006년 월드컵은 두 선수에게 아주 각별한 무대가 아닐 수 없겠는데요.. 람은 좌측면수비수로, 또 슈바인슈타이거는 좌측면미드필더로 호흡을 맞추어 멋진 활약을 펼쳤고 팀도 대회 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 직후에 찾아옵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발락과 제 호베르투가 이탈했음에도 전력보강에 소흘했고, 덕분에 팀이 크게 망가졌죠. 슈바이슈타이거는 제 호베르투가 이탈한 좌측면을 전문적으로 맡아주면서, 또 발락의 이탈로 중원에서의 공격을 이끌어야 되는 상황이 되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죠.

슈바인슈타이거는 2000년대를 측면미드필더로서 활약해왔지만 사실 이 선수 단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윙어치고 느리다는 것이고 하나는 개인돌파가 안된다는 것.. 발락이나 제 호베르투가 있던 시절에는 팀의 공격의 무게추가 중앙으로 쏠린 형태였고 슈바인슈타이거는 비교적 자유롭게 측면에서 자신의 강점인 날카로운 킥을 이용하거나 또는 중앙으로, 이선으로 침투해 직접적인 득점을 노릴 수가 있었죠. 이는 마찬가지로 발락이 중심이던 독일대표팀에서도 비슷한 환경이었습니다. 배치는 측면에 되었지만 중앙지향적인 면모가 당시부터 존재하던 선수였죠.

그런데 발락이 떠나고 그 자리를 마르크 반 보멜이 대체한데다 제 호베르투 같은 훌륭한 서브옵션도 사라진 상황에서는 중원에서의 공격력은 사라지다시피 했고 상기 언급한 단점으로 인해 슈바인슈타이거가 측면에서 개인공격능력으로 반전을 만들어낼 수도 없던 상황.. 더구나 람이 있던 수비진도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허리가 붕괴되자 3선이 수비진을 받혀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센터백 루시오와 다니엘 반 부이텐마저 서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시너지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던 상황.. 람과 사뇰은 여기저기 수비 빵꾸나는거 매꾸랴, 또 공격 안되는거 오버래핑으로 지원하랴 부담이 가중되었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죠. 결국 2006/07시즌을 최종적으로 4위로 끝마치며 팀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여파로 2007년 7,000만유로의 이적료를 투입해 선수를 대거 영입하고 나선 2007/08시즌도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우승이 거의 당연시되던 UEFA컵 4강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팀이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람은 이 시기 FC 바르셀로나의 오퍼를 받고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후일담으로는 실제 이적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갔다가 마음을 바꾸어 재계약을 선택했었다고 하는데요.. 또 동 시기 슈바인슈타이거도 EPL이나 세리에A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는데 당시 프랑크 리베리의 합류로 우측면으로 포지션을 변경해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시기라 내노라하는 강팀들과만 루머가 나오던 상황에 대해 팬들도 사실은 의아한 입장이었죠..

그런 두 선수에게 반전의 계기가 찾아온 것은 2009년 여름의 일입니다. 루이 반 할.. FC 바이에른 뮌헨의 현대사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요. 우선적으로 슈바인슈타이거의 포지션 전환.. 사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여름이적시장 마감을 10일 정도 앞두고 구단 측에서 현장의 의견과 상관없이 아르연 로벤을 영입해 리베리와 함께 운용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슈바인슈타이거를 마르크 반 보멜과 함께 중원에 배치하였는데 이 것이 선수의 단점 두 가지를 지워버리는 '신의 한 수'가 되었죠. 더 이상 돌파할 필요가 없어졌고 측면에서 단점이던 스피드는 중원에서는 장점으로 탈바꿈합니다.

또 체력과 패스능력, 수비능력 등 측면에서는 100% 발휘되지 못하던 강점들도 중앙에서 꽃을 피웠고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로서 소위 말하는 '육각형' 선수가 되었죠. 중원에서 조율도 하고 정확한 패스도 뿌리고 하다가 순간적으로 패널티박스까지 침투해 득점을 노리다가 또 쏜살같이 수비진영까지 와서 상대의 공격도 막아서고.. 요즘 말로 표현하면 선수의 가치가 그야말로 떡상했죠. 더구나 람을 우측면으로 돌린 것도 반 할의 선택입니다. 반 할은 구단에 당시 네덜란드 국가대표였던 에드손 브라파이드와 같은 좌측면수비수의 영입을 요청해 성사시켰고 또 이 선수가 실망스럽자 미드필더 다니옐 프라니치, 센터백 홀거 바트슈투버와 같은 선수들을 좌측면수비수로 돌려가며 람을 우측면에 고정시켰죠.

그 여파는 독일대표팀까지 미쳤고 요아힘 뢰브 감독은 때마침 대회를 앞두고 터진 발락의 부상으로 슈바인슈타이거와 자미 케디라로 중원을 개편하는가 하면 람도 이 시기부터 대표팀에서도 우측면에서 고정되어 뛰기 시작했죠.. 다만 람은 2011년 반 할의 경질 이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반 할을 비판하기도 했었는데요.. 성공에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하려해 수비에 결점이 생겼고 자신의 철학에 대한 고집이 워낙 완고해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들지 않는다는 것.. 또 이 내용을 '반 할 옹호파'인 아르연 로벤이 비판하고 나서는 등 한창 시끄러운 시기가 있었죠.

그러나 운 좋게도 후임감독으로 두 선수는 유프 하인케스 감독을 맞이하게 되고 반 할이 갈아엎어 기초공사를 마친 텃밭을 안정적으로 가꾸는데 성공하며 팀은 결국 2013년 트레블이라는 확실한 결과물을 수확할 수 있었고 두 선수는 이 트레블의 중심으로서 최고의 시기를 누렸죠. 뒤이어 2014년 월드컵 우승과정에 있어서도 두 선수가 핵심이 되며 이 시기는 두 선수에게 있어 가장 영광의 시기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2013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부임 이후 두 선수의 운명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람은 펩과의 만남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낳게 됩니다. 펩이 부임 초기 팀의 전술색깔을 바꾸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부진한 경기력을 보일 때 해답이 되었던 것이 바로 람의 볼란테 운영.. 당시의 상세한 스토리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된 '펩 컨피덴셜'이라는 책에 상세히 언급되는데요.. 저자가 2013/14시즌 펩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 부임 1년 차를 밀착취재하며 쓰여진 이 책은 당시의 바이언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리는 책입니다..

이후 팀이 안정되고 난 뒤로는 다시 우측면으로 복귀해 단순 측면수비수의 역할을 넘어 기초빌드업 과정에서도 사비 알론소 등을 도와 중요한 역할을 맡는 등 선수로서 또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죠. 덕분에 람은 펩 과르디올라의 임기 마지막 시즌 거취를 두고 한창 화제가 되었을 때 재계약을 적극 지지한 바 있고, 펩 역시도 자신의 전술을 완벽하게 이해한 몇 안되는 선수라며 람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죠.

반면에 슈바인슈타이거에게는 썩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실 슈바인슈타이거는 펩이 의도적으로 배제한 선수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티아고, 뮐러, 마리오 괴체가 당시 펩이 생각한 중원의 핵심전력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한다면 루이스 구스타보, 마리오 만주키치와 같은 선수들에게 해당되겠죠. 그런데 이 즈음부터 슈바인슈타이거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무릎에 이상징후가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부상이 여러차례 이어지다보니 서서히 피지컬적으로 문제가 찾아오기 시작했죠.

슈바인슈타이거가 중원에서 성공한 주요비결로는 왕성한 활동력과 우수한 기동력을 꼽을 수가 있는데 이 부분에서 하락세가 심각하게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한 번 올라가면 수비진영으로 복귀하기가 힘들어지고 또 중원에서 민첩하게, 기민하게 움직이기가 힘들어지니 점점 힘을 쓰지 못하기 시작했죠. 야구용어 중에 '에이징 커브'가 급격히 찾아오기 시작한 것인데 사실은 구단에서 201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빠르게 매각한 이유가 명분으로는 선수본인의 도전의중을 존중하겠다는 것이었겠지만 그 내면에는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고 하는 것이고 실제 맨유에서도 EPL에서 중요한 기동성에서 문제를 나타내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죠..

그래도 람이 2014년 월드컵 결승전을 마지막 무대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반면 슈바인슈타이거는 유로 2016까지 나서게 되었는데 다만 부상을 달고 발탁되어 8강전이 되어서야 선발출전이 가능한 몸상태가 되었고 아무래도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는 못했죠. 이후 맨유에서도 2017년 시즌 중 퇴단하여 미국 MLS 무대에 진출, 2019년도 시즌을 마지막으로 커리어를 마감했죠.

그리고 람은 2016/17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30줄을 넘어서면서 마찬가지로 피지컬의 하락세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람과 같이 작은 체구의 풀백자원에게 피지컬 하락세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람은 대신 기술과 브레인이 그야말로 도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모습으로 그러한 피지컬하락세를 거의 완벽히 극복하며 은퇴시즌까지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었죠. 다만 그런 람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요.. 30대에 접어든 이후 람의 정수리는 점점..

아무튼 최종적으로 두 선수 나란히 8회의 도이치 마이스터와 한 차례 씩의 독일 올해의 선수상 수상, 또 트레블과 월드컵 우승을 한 차례씩 합작했을 뿐만 아니라 센추리클럽에도 나란히 가입하는 등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어오며 상당한 업적을 쌓아올림으로서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축구의 전설로서 영원히 기억될 인물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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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20-05-22 16:26:42

    잘봤습니다~ 06WC 개막전 람의 골, 3-4위전에서 터진 슈바이니의 골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Updated at 2020-05-22 16:43:02

    추천하지 않을수 없는 글이네요

    2020-05-22 16:47:56

    유로 2008 슈슈 유니폼 보유중입니다 후후 핵간지.

    2020-05-22 17:15:24

    잘 읽어내려오다 막판에 탈모당ㅋㅋ

    2020-05-22 17:26:56

    펩 컨피덴셜 읽어봤는데 펩이 진짜 람을 엄청 좋아하고 고평가하더군요. 정말 영리한 선수라고.. 선수에 대한 믿음이 정말 대단해보였습니다.

    2020-05-22 19:44:55

    람도 탈모였군요 ㄷㄷ

    2020-05-22 21:12:56

    제 기억엔 펩이 슈바이니를 배제하기는 커녕 되려 부상 복귀할 때마다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했던 것 같네요. 기본기나 킥력이 매우 훌륭한 선수였고 축구지능도 훌륭한 선수였죠. 바이언 선수들 대체로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슈바인슈타이거는 엄청 좋아라했던 기억이 나네요...

    2020-05-22 22:19:32

    슈바이니는 유베와 유독 많이 연결됐던 기억이 있네요. 당시 바이언팬들 사이에서 워낙 입지가 좁을 때라 사기쳐서 팔렸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았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반 할이 괴짜이긴 해도 바이언에서만큼은 기여한 바가 큰 감독이긴 한...  

    2020-05-22 22:43:49

    마이티마우스... 추억의 별명이네요.

    2020-05-22 23:17:15

    그래서 슈슈 포변 사례 보고 생각난 건데 페리시치나 베르나르데스키 중미 포변 어떤가요? 둘 다 킥력이 강하고 (특히 페리시치는 양발 ㄷㄷ) 수비 가담 정말 잘하고 키도 크고

    Updated at 2020-05-22 23:50:53

    두 선수들 유망주 시절부터가 딱 제가 축구 열심히 보고 시작하던때라 이렇게 그들 선수인생을 정리해보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네요...

    2020-05-23 01:01:45

    독일, 뮌헨 팬으로서는 정말 보고싶은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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