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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무리뉴 독점: 10년이 지난 인테르의 트레블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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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5-23 18:31:25



By 제임스 혼캐슬


"인테르에서 보낸 2년에 관한 책을 쓴다면 1,000페이지도 넘어가게 쓸 수 있어요." 조세 무리뉴가 '디 애슬레틱'에게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보라고 하자, 그는 잠시 동안 멈춰서 생각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요, 숨겨진 이야기가 정말 많거든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무리뉴는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을 회상하며 토트넘 트레이닝 그라운드 근처를 배회했다. 오늘로 인테르가 역사를 만든 지 10년이 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유일한 팀이 바로 인테르다. 인테르는 이러한 트레블과 세리에 B로 강등된 적이 없다는 업적을 큰 자부심으로 가지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 트레이닝 세션 사이사이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런던의 여름 날씨는 그로 하여금 인테르에서 보냈던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무리뉴의 수석 코치였던 조세 모라이스는 "맞아 바비큐 파티가 있었어요"라고 말하며 바비큐에 대해 언급했다. 팀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주장인 하비에르 사네티를 중심으로 바베큐 파티를 진행하곤 했다. 무리뉴는 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바비큐를 만들곤 했다고 전했다. 캄비아소가 고기를 가져오고, '그릴 마스터'인 사무엘이 고기를 굽곤 했다. 데얀 스탄코비치는 "밀리토는 그냥 와서 먹는 일만 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음식이 정말 맛있었어요." 무리뉴가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바비큐 파티는 그들이 고기를 가져와서 구워 먹는 것 이상의 대단함이 있었죠. 그 이상이었어요." 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유대는 어떤 때보다 끈끈해져있다. 마테라치는 무리뉴를 포함한 선수들이 있는 '왓츠앱' 채팅방을 만들었다. 세자르는 "채팅방에서 가장 활발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농담하는 것은 무리뉴에요."라고 말했다.


엘리트 스포츠는 항상 승리와 연관성을 띤다. 무리뉴가 포르투에서 따낸 트로피가 없었다면 첼시에서 '스페셜 원'이라는 별명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특별한 것은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추억들이다. "누구도 생일은 까먹지 않죠. 날짜나 그 시절의 추억의 사진 같은 거 말이에요. 누구도 서로를 축하해 주는 것을 잊지 않죠.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가족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나의 직업으로 인해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가까이 있다고 느끼곤 해요. 경기에 들어서기 전에는 행운을 빌어주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피드백을 해주곤 하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말을 해주곤 하고요. 지금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채팅방에 많은 메시지가 와있을게 분명하거든요.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업적은 팀의 모든 선수들이 유대성을 지니고 같은 멘탈리티를 가졌다는 거에요. 축구는 이러한 유대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모든 것은 2008년 3월 11일 자정 무렵에 시작되었다. 리버풀과 페르난도 토레스는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인테르를 탈락 시켰다. 당시 인테르의 만치니 감독은 이후에 있었던 기자 회견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2012년까지 계약을 연장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을 추스른 이후에 순간 흥분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마음을 바꾸고 잔류를 위해 힘썼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리버풀전 패배로 만치니의 미래가 어두워졌다>

 


만치니는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팀의 스쿼드에서 이미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리그에서 11점 차의 리드를 가져가고 있었지만 상대들에게 추격을 당했고 결국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파르마를 상대로 즐라탄이 2골 득점하면서 우승 트로피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모라티가 무리뉴와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아마 만치니의 두려움이 제일 커진 것은 '일 코리에레 델레 세라'의 파비오 몬티가 48시간 안에 무리뉴 선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도했을 때일 것이다. 결국 5월 말에 파리에서 양측이 만남을 가지는 사진이 찍히면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무리뉴의 선임 소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영국 언론인들은 무리뉴가 프랭크 램파드를 인테르로 데려오고 싶어 한다는 루머가 사실인지 묻곤 했다. 무리뉴는 다른 팀 선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인터뷰에서 "Io non solo pirla"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는 밀라노 방언으로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코칭 스쿨인 '코베르치아노'는 그곳에 오는 사람이 이전에 어떠한 명성을 지녔는지 혹은 어떠한 업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스스로 다시 한번 증명을 해야 만하고 자신이 외부인이라면 더욱더 그래야만 한다. 만치니는 18년 만에 인테르에게 리그 타이틀을 가져다주었고 그의 리그 3연패 이후에 무리뉴는 인테르에 합류했다. 기준과 기대치 모두 높은 상황이었다. 당시 무리뉴의 업적은 대단했다. 트레블을 거둔 사나이었다. 하지만 첫 시즌에 10점 차이로 스쿠데토를 거두는 것은 그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챔피언스 리그 결과로만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즐라탄이 골대를 맞추고 스탄코비치가 득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놓치긴 했지만 인테르는 결국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모라티는 당시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모라티는 인테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이때에 가장 화가 많이 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무리뉴는 즐라탄이 그랬듯이 여름에 팀을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데려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모라티가 나에게 남아달라고 하더군요." 무리뉴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좋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구단주로써 당신의 꿈을 실현시켜주러 온 것이니까요.' 라고 그에게 말했죠."


무리뉴가 말한 꿈은 1995년 모라티 일가가 인테르에 합류한 이후에 계속해서 꿈꿔왔던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아버지인 안젤로 모라티가 이루어낸 업적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960년대에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과 함께 유로피언 컵 2회 우승을 달성했다. 이로부터 45년이 지났지만 인테르는 그 이상의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최고의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과 혹은 뛰어넘는 결과를 달성해야만 했다.


 


<인테르의 안젤로 모라티 회장, 에레라 감독이 팬들과 함께 1965년 유로피언 컵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인테르 몇몇 선수들에게는 이 시기가 '라스트 댄스'와 유사했다. 사네티와 마테라치는 36살이었으며 코르도바는 33살, 스탄코비치는 31살, 캄비아소와 세자르는 30살이었다. 그들의 기회의 창이 점점 닫히는 중이었다.

"커리어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선수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게 돼요." 무리뉴가 말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자신의 계약에서 1-2년 정도 더 추가해서 머무르길 원하는 선수가 있죠. 그리고 이와는 다른 관점을 지니는 선수도 있어요.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을 보내게 해달라,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게 해달라 하는 선수들이 그런 선수들이죠.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팀의 주전 선수들도 대단했지만 팀의 주전이 아닌 선수들도 항상 팀을 위해, 어린 선수를 위해, 감독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었어요. 제가 이룬 것은 대단한 업적이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가 행복한 것이죠. 제가 정말로 즐기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고 이는 저로 인해 나오는 것이 아닌 그들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거든요. 저의 두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아닌 그들의 꿈이 현실 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했죠."

무리뉴의 첫 시즌 챔피언스 리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하면서 끝났지만 전체적으로 그룹 스테이지부터 돌아봤을 때 그는 팀에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되돌아보았을 때, 당시의 오프-시즌 이적 시장은 그가 보냈던 최고의 이적 시장 중 하나였다. 모라티와 브랑카 단장은 콰레스마, 만시니 같은 실패작도 있었지만 좋은 영입을 해오고 있었고 무리뉴와 이적 시장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인테르는 바르셀로나에서 뛰길 원하는 즐라탄의 바람대로 그를 바르셀로나로 보내주면서 사무엘 에투와 46m의 돈을 받아왔다. 아마 이는 지금까지 있었던 트레이드 중에서 가장 거대한 트레이드였을 것이다. 당시 에투는 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을 거두었는데 자신이 연이어서 트레블을 달성할 것이라고는 그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테라치와 무리뉴는 에투를 밀라노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를 유혹하곤 했다. 마테라치는 "너만 인테르로 오면 다 이길 수 있어"라고 문자를 보냈으며 무리뉴는 9번 유니폼 사진을 보내며 "너의 유니폼이야. 너 기다리는 중이라고"라고 보냈다. 어떻게 에투가 이들을 거절하겠는가?

"사무엘 에투와 같은 선수가 커리어 동안 발롱도르를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무리뉴가 말했다. 현재 아프리카 출신 선수 중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은 조지 웨아가 유일하다.

인테르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모든 포지션에서 보강을 하기 시작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루시우를 영입했고 이로 인해 수비진은 더 빠르면서 탄탄해졌다. 당시 브랑카 단장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트레이드했다. 제노아의 미드필더 티아고 모타와 스트라이커 디에고 밀리토 영입에 레오나르도 보누치를 포함시켰다. 마테라치는 밀리토에 대해 빅 경기에서 득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라며 빅 클럽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시간을 낭비했다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밀리토는 30살이 되어 즐라탄을 이을 인테르의 공격수로 팀에 합류했다. 이후에 트레블을 달성하고 했음에도 그는 발롱도르 후보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무리뉴는 이적 시장 마지막 날까지 휴대폰을 잡고 있었다. 그는 카카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영입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입지가 불안해진 웨슬리 스네이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스네이더는 인테르에 합류 한 이후 "무리뉴의 메시지가 나를 설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밀라노 더비가 열리기 며칠 전에 팀에 합류했으며, 선수들과 제대로 된 훈련도 해보지 못했지만 경기에 출전해 팀의 4-0 대승을 견인했다. 비록 득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경기에서의 활약상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다.


<무리뉴는 스네이더의 환상적인 데뷔전을 함께했다>

"정말로 놀라운 시즌이었어요." 무리뉴가 회상했다. "당시에 그는 트레블을 거둔 것에 이어서 월드컵 결승전에도 진출했죠." 스네이더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6개의 도움을 기록했으며, 월드컵에서는 5골로 골든 부츠를 수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테르에서 발롱도르를 받은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무리뉴조차도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2010년의 우리는 최고의 해를 보냈어요. 근데 누구도 포디움에 들지 못했죠. 그들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포지션별로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것뿐이었어요."

누구도 인테르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해낼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았다.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팀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바르셀로나 혹은 호날두가 합류한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룹 스테이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러한 예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인테르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고생하고 있었고 그룹 스테이지에서 4번째 경기까지 승리가 없었고 디나모 키예프를 만난 4번째 경기 역시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라이벌 팀인 AC 밀란의 레전드인 안드레이 쉐브첸코가 득점을 하면서 인테르를 어렵게 하고 있었다. 무리뉴는 "정말로 급박한 상황이었죠. 당시 하프-타임을 절대 잊지 못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사네티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당시 하프-타임에 있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훈련장에서 하듯이 상황을 분석하고는 침착하게 말하더군요. '얘들아 이러면 챔피언스 리그에서 떨어지고 말 거야. 우리는 경기를 잘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어. 변화를 줘야만 해. 후반전엔 사네티, 루시우 그리고 마이콘이 쓰리백으로 나설 거야. 사무엘은 미드필더로 나가고 옆에 티아고 모타가 함께 하도록 해. 캄비아소는 나오고 나랑 같이 벤치로 가자. 스네이더, 너는 침착하게 플레이하고 조금 더 전방으로 가도록 해. 슈팅도 많이 때리고. 밀리토, 나는 네가 스네이더의 그림자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 에투와 발로텔리는 와이드하게 플레이해줘. 알겠어? 와이드하게 플레이해달라고. 너희가 사이드로 빠지면 수비수들이 따라올거고 그럼 공간이 생길 거야. 이런 식으로 밀리토랑 스네이더에게 공간을 만들어줘.'"

그리고 그의 이런 계획은 먹혀들었다.

인테르는 계속해서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경기 종료 4분 전이 되어서야 경기에 변화가 생겼다. 스네이더의 패스를 받은 밀리토가 86분에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무리뉴가 투입한 문타리의 슈팅을 키예프의 골키퍼 보구쉬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밀리토의 슈팅 이후에 스네이더의 슈팅으로 인테르는 역전에 성공했다. 이 역전으로 모라티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꿈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키예프전 역전 이후 환호하는 발로텔리와 스네이더>

무리뉴는 이 순간이 유럽의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팀이 믿기 시작한 첫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은 준결승 혹은 결승전에 대해서 더 말하곤 하죠. 하지만 우리는 힘든 순간을 겪었어요. 그룹 스테이지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나서 정말로 어려웠죠. 바르셀로나는 16강에 진출할만한 팀이었고 그걸 증명해서 진출에 성공했어요. 우리 역시 열심히 싸웠고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 승리도 정말로 좋은 승리였어요. 루빈 카잔을 상대로 1-1로 비기는 등 러시아 날씨에 정말로 힘들어했죠. 절대 쉬운 그룹 스테이지가 아니었어요."

무리뉴 감독이 인테르를 맡으면서 팀의 발전에 기여한 점은 더 많은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비결이야." 그가 선수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생각하도록 훈련돼야만 해. 생각함으로써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 내가 내놓은 전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해. 축구를 하면서도 생각해야 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축구를 할 수 없어."

캄비아소는 코치 자격증을 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경기장 안에서는 코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포메이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팀 전체의 게임을 바라보는 눈이 향상되었다. 당시에 인테르에는 그러한 시스템이 없는 준비되지 않은 팀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기억이 남는 경기는 2010년 1월에 있었던 시에나와의 경기다. 무리뉴 감독은 득점을 위해 사무엘을 전방에 배치했고 92분에 터진 그의 득점으로 3-2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무리뉴는 사무엘을 전방으로 배치했고, 그는 득점에 성공했다>

무리뉴의 두 번째 시즌이 빠르게 흘러가면서 인테르는 유연해졌다. 사네티는 풀백뿐만 아니라 미드필더로 뛰곤 했다. 하지만 인테르 선수 중에서 사무엘 에투 보다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 선수는 없다. 에투는 사이드로 빠져서 소모적인 역할도 해냈다.

"리그에서 우리는 다이아몬드 4-4-2를 사용했고 밀리토와 에투를 공격수로 배치했죠." 무리뉴가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죠. 챔피언스 리그에는 공격적인 풀백을 지닌 팀이 많고 그런 팀들이 우리보다 좋은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많은 이탈리아 팀들이 하는 것처럼 수비적으로 경기를 하지 않거든요."

"첼시나 바르셀로나처럼 이러한 부분에서 뛰어난 클럽을 상대하기 위해선 다른 대처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2명의 미드필더를 수비진 앞에 세우고 윙어들에게 공을 만질 수 있는 공간을 더 부여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공격수를 희생 시키거나 다른 역할에 적응하도록 해야만 했죠. 우리에겐 밀리토, 판데프 그리고 에투라는 세 명의 공격수가 있었어요. 하지만 밀리토는 센터 포워드였고 에투는 왼쪽, 판데프는 오른쪽 포워드였죠."

"그들은 많은 기회를 만들어냈고 모두 득점에도 성공하면서 팀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었죠. 미드필더에는 2명의 선수가 있었고 그 전방에 판데프, 스네이더, 밀리토 그리고 에투라는 4명의 공격하는 선수가 있었지만, 그들도 필요할 때에는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 해줬어요."

이런 인테르를 16강에서 기다리고 있는 팀은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였다.

"첼시는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죠. 그들이 매우 매우 좋은 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내가 있었던 팀이기도 했고 그들은 아넬카와 같은 새로운 선수들도 보유하고 있었죠. 경험 많고 큰 무대에서 강한 선수들이 많은 정말로 좋은 팀이었어요. 선수들의 나이도 전성기의 나이였죠. 최고의 팀이었어요."

지난주, 사무엘 에투는 '가제타'와의 인터뷰에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1-0 승리를 거두었던 경기에 대해서 회상하면서 무리뉴의 대화의 기술에 대해 언급했다. "내가 맡은 팀은 나를 이길 수 없어" 당시의 무리뉴가 말했다고 에투가 전했다. "이후에 우리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경기장에 나섰죠. 우리만을 위해서 아니라 무리뉴를 위해서 뛰자는 마음으로요."

당시에 대해서 무리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때 우리가 같이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이 우리가 끝까지 갈 수 있겠구나 믿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4일 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쫓아오고 있는 삼프도리아와의 리그 경기에서 7분 간격으로 사무엘과 코르도바가 퇴장당한 일은 팀을 더 단합하게 만들었다. 무리뉴는 해당 경기의 판정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수갑 제스처를 취했고 9명의 선수가 뛰었지만 인테르는 실점하지 않았다. 수적으로 불리하더라도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이 경기를 통해 나타났으며 이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에서도 그랬다.


 

<무리뉴는 삼프도리아전에 수갑 제스처를 취했다>

인테르는 1차전에서 스네이더, 마이콘, 밀리토의 득점으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것이 잘 기억되지 못하는 것은 당시 바르셀로나가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해서 유럽 전역을 가로질러서 불편하게 이동해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테르가 원정에서도 비슷한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은 부스케츠의 까꿍 사건으로 모타가 퇴장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60분을 버티는 것이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뛰고 있는 팀을 막는 것이었다. 사네티는 당시 경기에서 메시를 막기 위해 사무엘 에투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내가 에투에게 '이리로 와 사무! 얼마 안 남았어!'라고 말했어요." 두 선수는 점수판을 쳐다봤고 37분이 남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리뉴가 말했듯이 이 경기에서 인테르는 공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신에 공간을 컨트롤하길 원했으며 바르셀로나가 86.4%라는 점유율을 얻도록 놔두었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총합 3-2 승리를 거둔 것은 무리뉴가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성격을 증명하는 자리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바르셀로나에서 10명의 선수로 한 시간 이상을 버텼죠.."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것은 전술이나 수비 조직력 그 이상과 관련이 있어요. 그보다는 심오한 부분과 관련이 있죠. 축구 이상의 인간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어요."

그가 인테르 서포터를 향해 뛰어가자 갑자기 경기장에 있는 스프링클러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수석 코치였던 조세 모라이스는 이를 "내가 한 것 중에 최고의 샤워"라고 묘사하기까지 했다.

<결승 진출을 축하하는 무리뉴>



"당시에는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무리뉴가 말했다. "경기가 끝났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죠. 우는 사람도 있었고요.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계단에서 완전히 지쳐서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죠. 경기장에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 역시 서포터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의 나름대로 축하하고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이죠. 솔직히 말하면 제가 한때 행복하게 일했고 최고의 클럽인 그들이 보인 행동은 좋은 행동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실망을 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곤 하죠. 전혀 문제가 되진 않아요. 제겐 여전히 좋은 기억이거든요."

당시의 인테르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도 진출한 상태였으며 리그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4월 초에는 1위 자리를 뺏기곤 했는데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세자르의 실수로 2-2 무승부가 된 것이 그것의 시작이었다. 무리뉴의 헤어드라이기가 발동된 것이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마테라치는 카타니아에게 패배 한 이후에도 무리뉴의 헤어드라이기가 발동되었다고 회상했으며 "우리를 찢어버리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코르도바는 피오렌티나전 이후에 무리뉴가 드레싱 룸에 들어와서 한 행동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무리뉴가 들어와서 아이스백을 찼는데 내용물이 우리 앞에 다 쏟아지는 웃긴 일로 인해서 긴장감이 좀 풀렸죠."

인테르는 이러한 일로 원한이 생긴다기보다는 서로 가족과 같은 팀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논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수들과 감독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오직 탑 클럽만이 극복할 수 있는 그러한 어려움이 있어요."라고 무리뉴는 말했다.

1월 말의 인테르는 2위인 로마보다 11점을 앞선 선두였다. 그러나 피로에 지친 인테르는 로마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35라운드 로마가 삼프도리아에게 2-1로 패배하면서 인테르는 리그 3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1위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밀리토는 귀중한 득점을 성공시켰다>

밀리토에 대해 무리뉴는 "그는 감탄스러운 선수에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트레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결정지은 마지막 3경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죠. 그는 로마를 상대로 한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리그 타이틀을 가져온 시에나전, 뮌헨을 상대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다 득점을 성공시켰죠. 정말 대단했어요."

사네티가 자신의 머리 위로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모라티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뒤, 더  이상 정복할 대상이 없는 그는 팀을 매각했다. 그날 밤 가장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사진은 무리뉴가 차에서 내려 베르나베우 밖에서 마테라치와 함께 울고 있던 사진일 것이다. 마테라치는 한 달 내내 무리뉴에게 팀에 남아달라고 간청했다. "우리를 누구 손에 남겨두고 떠나는지 알고 있어?" 마테라치는 라파 베니테즈를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했지만 무리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테르는 트레블을 달성했지만 무리뉴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테라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행동이나 모든 선수들과 포옹을 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무리뉴가 말했다. "나는 그들과 경기장에서 메달을 수여받았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죠. 그들과 함께 있었지만 드레싱 룸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제게는 너무 힘든 일이였고 사람들이 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선수들과 밀라노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합의를 하긴 했지만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는 않았거든요."

"당시에는 정말로 레알 마드리드로 가고 싶었어요. 잉글랜드, 이탈리아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었으니 스페인에서도 그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선수단과 함께 밀라노로 돌아가서 선수들과 팬들의 반응을 보면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요. 그들로부터 도망쳤다고 말할 수 있어요. 맞아요 전 도망친 거죠." 그날 밤, 이렇게 그는 인테르의 전설이 되었다.

"며칠 뒤에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맺었어요. 그리고 밀라노로 돌아와서 모라티 회장을 포함한 그의 가족들과 식사를 했어요. 테이블 위에는 우리가 따낸 트로피가 있었고 그 안에는 모라티의 작은 손자가 들어가 있었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마드리드, 시에나, 로마에서의 기억은 남아있기 때문에 '왓츠앱'의 채팅방은 바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이들의 재회는 미루어졌다. 하지만 무리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과 항상 함께하고 있어요, 그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죠."

조세 무리뉴는 많은 타이틀을 따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인테르에서 해낸 트레블을 바라보면 '스페셜 원'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이를 표현할 단어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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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5-23 18:23:29

k리그 타노스 침투력 ㄷㄷ

2020-05-23 18:27:17
 마테라치는 한 달 내내 무리뉴에게 팀에 남아달라고 간청했다. "우리는 누구 손에 남겨두고 떠나는지 알고 있어?" 마테라치는 라파 베니테즈를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했지만 무리뉴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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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테즈 예견됬었던 1패 ㄷㄷㄷ

2020-05-23 18:28:38

무리뉴 하면 첼시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의 경력에서 가장 정점이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인테르겠죠. 선수단, 전술, 성적, 그리고 멋까지 왜 무리뉴가 최고의 감독인지를 입증한 시즌(또는 시기)였어요. 물론 마드리드에서도 잘했습니다. 당대 최강팀 바르셀로나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또한 지금의 첼시를 있게 만들었고 첼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첼시와 깊은 인연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죠. 하지만 무리뉴가 가장 멋있던 시기는 인테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020-05-23 18:49:06

무링요 인생에서 제일 멋졌던 시절

2020-05-24 16:53:29

라스트 스페셜 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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