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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김성근' 펠릭스 마가트,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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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05 23:44:07

대한민국 야구사에서 감독으로서는 가장 많이 화자되는 인물 김성근.. 극한의 정신력을 강조하며 지옥훈련으로 선수들의 진을 쏙 빼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그의 자서전 '꼴지를 일등으로'의 제목처럼 팀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위로 끌어올리는 노하우가 있는 인물이었죠. 다만 마지막에는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채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는데.. 그런데 독일축구계에도 웬지 이러한 특징들과 묘하게 매칭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펠릭스 마가트죠.

 

펠릭스 마가트.. 1953년 독일 바이에른 주에 속한 아샤펜부르크 출신으로 이 곳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독미군기지가 들어섰던 곳인데 마가트는 이 곳에서 근무하던 푸에르토리코 국적의 주독미군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향의 지역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두각을 나타내며 1974년에 2부리그 짜르브뤼켄에 입단, 2년 후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킨 뒤 당대 독일에서는 최고의 명문구단 중 하나였던 함부르크 SV로 이적해 금새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아 1977년에는 처음 독일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총 41회의 출전경력을 남겼고 이후 함부르크는 케빈 키건, 호어스트 흐루베쉬 등의 스타공격수들이 합류하는 등 막강한 전력을 구축,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세 차례의 마이스터를 들어올리는 등 황금기가 꺾이기 시작했던 묀센글라드바흐를 대신해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당대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죠. 그리고 당시 팀의 핵심은 단연 마가트로서 현대축구로 치면 박스 투 박스 형에 가까운 미드필더로서 중원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1986년 33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선수생활을 마무리했고 곧바로 함부르크의 단장으로 취임해 일을 시작합니다. 당시 분데스리가에는 '천재 플레이메이커' 출신으로 27세의 젋은 나이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곧바로 단장 일을 시작했던 울리 회네스라고 하는 파격이 이미 있기는 했지만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단장 일을 시작한 마가트의 경우도 흔치는 않은 것이었죠. 이후 친정팀 짜르브뤼켄으로 옮겨가 단장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1992년에는 FC 브레머하벤이라는 아마추어팀에 선수 겸 감독으로 합류해 1년 여 간 지도자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후 함부르크로 복귀해 2군 감독과 1군 수석코치를 병행하다 1995/96시즌 초반 기존 감독의 사임으로 감독으로 승격, 팀을 잘 수습해 리그 5위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는데 당시 함부르크는 지난 네 시즌 간 중하위권에 머물던 팀이었기에 그 성과는 더욱 돋보였죠.

 

그러나 이듬 해에는 다시 성적이 추락했고 또 여러 선수들이 지나치게 혹독한 훈련, 또 의사소통의 부재 등을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결국 마가트는 시즌을 다 완주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됩니다. 이 때부터 마가트의 지옥훈련은 이미 악명이 자자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공백이 길지는 않았습니다. 4개월 여 뒤인 1997년 9월에 2부리그의 1.FC 뉘른베르크가 마가트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마가트는 직전 시즌 3부리그로 추락했다가 2부리그에 다시 승격한 팀을 한 시즌만에 곧바로 1부리그로 올려보내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이번에는 재계약 조건이 맞지 않아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자 1998년 10월, 이번에는 베르더 브레멘이 강등권으로 추락한 '팀을 구원할 유일한 감독' 으로 마가트를 선택했고 마가트는 이듬 해 5월 초, 리그 3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강등권에 승점 3점차 우위를 점한 것은 물론, DFB-포칼 결승전에도 진출해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지만 이번에도 선수들과 척을 진데다 프런트, 팬들과도 갈등을 겪으며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고 또 다시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토마스 샤프가 부임해 최종적으로 잔류에 성공했고 DFB-포칼 우승이라는 영광까지 함께 가져갔죠. 추후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되는 아일톤이 마가트와 불화를 겪은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고, 또 당시 신인 시절의 토어스텐 프링스도 마가트 감독의 지시에 자신의 의견을 냈다가 항명죄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단기간 내 성과를 뽑아내는 마가트는 나름 '소방수'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1999년 12월, 이번에는 위기에 빠진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마가트에게 팀의 구원을 맡기게 됩니다. 당시 팀은 17위로 비강등권인 15위와의 승점차는 8점..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난이도의 미션이었죠. 그러나 마가트는 팀을 최종 14위로 끌어올리며 또 다시 소방수로서의 역할을 해냈고 그 덕에 차기시즌에도 팀을 지휘하게 되었지만 역시나 장기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1년 여만에 또 다시 팀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물러난 지 한 달 뒤인 2001년 2월 말, 이번에는 VfB 슈투트가르트가 소방수로 마가트를 급히 불러들입니다. 이번에도 리그 종료까지 10경기를 남겨두고 17위로 추락한 팀을 구해내야 되는 쉽지 않은 임무.. 그러나 과연 특급소방수답게 최종성적 15위로 아슬아슬하게 강등을 피하는데 성공했고 이번에는 차기시즌까지도 8위라는 만족스러운 성적으로 마감하며 드디어 단기형 감독의 오명도 벗어내는데 성공하게 되죠. 더불어 안드레아스 힌켈, 알렉산더 흘렙, 케빈 쿠라니 등 유소년 팀의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활용하고, 또 바이에른 뮌헨에서 임대로 온 필리프 람의 잠재력도 폭발시키는 등의 수완으로 이 때부터 '슈투트가르트 유치원'의 원장으로서도 명성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2002년 하순부터는 단장직도 겸하기 시작해 '단장 겸 감독'이 되었고 2002/03시즌 2위를 차지해 팀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고 또 16강으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죠.

 

그렇게 분데스리가의 '명장'으로 떠오른 마가트를 주목한 것은 바로 바이에른 뮌헨이었습니다. 사실 바이언의 계획은 2004/05시즌까지 오트마 히츠펠트 감독 체제로 가면서 뒤이어 히츠펠트, 마가트 두 감독의 계약이 정리되면 마가트가 뮌헨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03/04시즌 바이언이 무관에 그치면서 바이언 측에서는 히츠펠트와의 계약을 1년 빨리 정리한 뒤 슈투트가르트 측에 보상금을 지불하고 마가트를 불러들였죠. 필리프 람 등이 전한 후일담으로는 마가트는 스타플레이어들이 가득한 뮌헨에서도 선수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도높은 훈련을 진행했었다고 하는데요.. 아무튼 히츠펠트 말년에 부침을 겪었던 팀을 다시금 국내 최강의 팀으로 재건하는데 성공,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두 시즌 연속으로 동시석권하는데 성공합니다. 문제는 임기 내내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 또 무엇보다도 2006/07시즌의 대참사.. 당시 마지막 희망이었던 세바스찬 다이슬러마저 또 다시 부상으로 쓰러지며 은퇴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탈출구는 없었고 결국 마가트는 시즌 중 경질되고 말았죠.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전력보강에 매우 소흘했던 프런트에 있다고 볼 수 있을지언정 마가트의 역량 역시도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죠.

 

이후 6개월 여의 야인생활을 이어오던 2007년 여름, VfL 볼프스부르크가 마가트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선임합니다. 마가트에게는 감독 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무이사' 라는 프런트 직책까지 주어졌는데 여기에는 축구단 전반을 관리하는 단장직 외에도 노조관리, 유소년 육성관리, 또 폴크스바겐 산하 타 종목 스포츠팀에 대한 관리 및 책임까지도 맡게되는 막강한 권한이었죠. 여기에는 당시 모기업 폴크스바겐의 CEO로 부임했다 2015년 배기가스 조작사건으로 물러난 마틴 빈터코른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빈터코른은 부임하면서 축구단에 대한 강력한 투자의지를 보였고 이러한 프로젝트의 헤드로서 마가트를 선택한 것.. 당시 VfL 볼프스부르크는 직전 두 시즌 간 15위로 간신히 2부리그 강등을 피한 차였고 또 마가트가 오기 직전 시즌에는 정말로 강등의 문턱에 도달했다가 후반기 터키에서 급히 불러들인 '왕년의 베를린 에이스' 마르셀리뉴의 하드캐리로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팀이었죠..

 

당시 폴크스바겐 측에서는 마가트가 요청한 그라피테, 에딘 제코, 디에고 베날리오, 조수에 등 훗날 마이스터의 주축들을 선뜻 영입해주었고 그 결과 2007/08시즌 5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보답합니다. 그러자 2008년 여름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듀오인 안드레아 바르찰리와 크리스티안 자카르도를 합계 21 mio의 당시 분데스리가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금액에 영입하는 등 대규모 추가투자를 단행, 결국 2008/09시즌 마이스터라는 대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했죠. 2000년대 초반 슈투트가르트 시절부터 마가트는 항상 중원을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한 4-4-2 포메이션을 운용했습니다. 1차적으로 수비와 중원을 단단히하고 또 개인능력이 좋은 플레이메이커에게 공격을 책임지도록 했죠. 사실은 마가트 뿐만 아니라 당시 분데스리가의 대세이기도 했고 또 AC 밀란 등 당대 최강팀들도 활용하던 포메이션이었는데 마가트가 볼프스부르크에서 구사한 다이아몬드 4-4-2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즈베즈단 미시모비치, 제코, 그라피테 공격삼각편대는 그렇다쳐도 조수에, 크리스티안 겐트너, 하세베 마코토, 사샤 리터와 같은 개인능력이 딱히 특출나지는 않은 선수들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해 단단한 중원을 구축한 것은 분명 인정할만했죠.

 

그러나 볼프스부르크에서의 성공으로 인해 슈투트가르트 시절 이상으로 주가가 오른 마가트에게 볼프스부르크라는 스몰마켓은 아쉬운 무대였습니다. 물론 단순히 돈으로만 보면 볼프스부르크가 당대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 못지 않은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규모부터 해서 그야말로 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는 빅클럽이라 하기 어려웠죠. 반면에 샬케 04.. 이 팀은 매 시즌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지금까지도 독일 내 다섯손가락 안에 항상 들어가는 빅클럽으로 인정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런 팀에서 마가트에게 볼프스부르크 시절과 같은 권한.. 이사 겸 단장 겸 감독이라는 직책을 제의하고 나섰고 사실은 볼프스부르크에서 마이스터를 들어올리기 전에 이미 차기시즌 샬케로 가는 것이 결정된 상황이었죠.

 

그렇게 샬케로 향하고 맞이한 첫 이적시장.. 마가트는 별 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고 대신 특유의 지옥훈련을 샬케에서도 어김없이 실시하며 선수들의 진을 빼놓습니다. 마가트 식 지옥훈련의 주종목 중 하나는 계단을 무식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인데 부임 초기에는 여기에 적응되지 않은 샬케 선수들이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속출하고 심지어 구토를 하는 선수도 여럿 나오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 바 있었죠.. 사실 사람사는 곳은 다 같아서 샬케 팬들도 마가트가 처음 와서 선수들을 이처럼 혹독하게 굴릴 때는 드디어 선수들이 정신 좀 차리겠구나라며 반기는 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더불어 단기적인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면서 전 시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샬케는 선두 바이언에 승점 5점이 뒤진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 '마가트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불안의 조짐이 맴돌기 시작합니다. 우선 마가트 특유의 '수집병'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합니다. 처음 부임한 2009년 여름만 해도 무난한 이적시장을 보냈던 마가트는 그러나 그 해 윈터브레이크 기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왠 무명선수들을 데려오기 시작합니다. 이 겨울이적시장에서만 8명의 선수를 한꺼번에 영입하는데 동유럽, 북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수원 삼성에서 활약했던 에두, 또 중국 국적의 하오 준민과 같은 선수까지 데려와 스쿼드를 불려나갔죠. 사실 이러한 성향은 볼프스부르크 시절부터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체코 리그에서 활약하던 공격수를 데려와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어낸 '에딘 제코 신화'가 탄생함으로서 마가트의 '수집병'은 심화되기 시작했죠. 김성근 감독 역시도 한화 이글스 시절 외부에서 FA부터 시작해서 긁어모을 수 있는 선수는 최대한 긁어모아 스쿼드를 방대하게 불렸던 사례가 있는데요.. 김성근의 경우 노장위주로 수집을 했고, 마가트는 20대 선수를 주로 수집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아무튼 팀의 스쿼드를 비정상적으로 거대화시켜 구단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잉여전력을 대거 양산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죠..

 

또 마가트는 과거부터 폭언, 욕설을 섞어가며 선수들이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강하게 지도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런 상황에 질려 불만을 표하는 선수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라커룸 불화와 팀 케미스트리 붕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은 김성근 감독과는 크게 상반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김성근의 경우 선수들을 분명 스포츠적으로는 상당히 혹독하게 대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또 여러 투수들을 지나치게 혹사시켜 선수생활을 망쳤다는 비판도 끊이질 않는데 이 부분은 마가트의 지옥훈련과도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겠습니다만.. 대신 김성근 감독의 경우 인격적으로 선수들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하는 일은 없고 방법이 다소 잘못된 부분이 있을지언정 선수들을 하나하나 제자로서 아끼는 마음은 진실되었다는 평가죠.. 김성근을 감독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또 스승으로 모시며 추켜세우는 전현직 선수들이 많은 것은 물론 윗사람에 대한 불만을 쉽게 표할 수 없는 한국의 문화적 요인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 때문만은 절대 아니겠죠. 이 것은 김성근과 마가트의 분명한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아무튼 첫 시즌을 2위라는 호성적으로 마감한 직후인 2010년 여름.. 마가트는 하피냐, 마르셀로 보르돈, 케빈 쿠라니 등 주축선수들을 정리하고 대신 라울, 클라스 얀 훈텔라르, 후라도 등 준척급 선수들을 영입한 것을 포함해 대규모 스쿼드 개편을 시행합니다. 기존 주축선수들을 정리한 것이 재정난 때문이라고 표면적으로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그 중에서 하피냐, 쿠라니 등은 마가트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추측되곤 했었죠. 게다가 대신 영입한 선수들의 몸값도 만만찮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마가트에게 반기를 든 선수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볼프스부르크에서 영광을 함께 한 플레이메이커 미시모비치.. 이 선수는 당시 마가트가 이끄는 샬케로의 이적을 강력하게 원해 이적이 추진되었으나 볼프스부르크 측에서 댓가로 샬케 중원의 핵심이던 저메인 존스를 요구해 무산된 바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존스가 이후 마가트와의 불화로 숙청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가트가 미시모비치의 대안으로 영입한 스페인 출신의 플레이메이커 후라도는 큰 몸값을 들였음에도 망했죠. 또 제코 역시도 마가트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선수인데 역시 마가트의 지도를 받아 대형선수로 성장한 과거가 있죠.

 

또 추가적으로 로또를 사는 것도 잊지 않으며 스쿼드는 크게 비대해졌으나 정작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수준에서 쓸만한 선수는 제한되었고 마가트와 주축선수들과의 계속된 갈등으로 라커룸 분위기도 최악으로 치닫으며 또 1990년대에 존재했던 마가트 2년차의 악몽이 재현, 2010/11시즌 샬케는 크게 추락해 후반기가 한창 무르익을 시점까지도 하위권에 머물게 됩니다. 그나마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전까지 진출한 성과는 있었지만 결국 샬케 구단 측에서는 마가트를 전격 경질, 이후 랄프 랑닉이 임시로 지휘봉을 잡아 팀을 수습해 분데스리가에서는 강등을 피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 진출까지 일구어냈죠. 이후 샬케는 재정부담이 더 심해지기도 했거니와 마가트가 세계 각지에서 데려온 잉여전력들을 처리하느라 꽤 오랜기간 진땀을 빼야했습니다. 이는 볼프스부르크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놀랍게도 금새 재취업의 길이 열립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길이 바로 친정팀 볼프스부르크로의 복귀였다는 것.. 사실 마가트가 떠난 뒤 볼프스부르크는 크게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2000년대 헤르타 베를린의 단장직을 역임했던 디터 회네스 단장을 축으로 또 슈투트가르트의 마이스터를 이끈 아어민 페, 잉글랜드 출신으로 당시 네덜란드 트벤테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떡상했던 스티븐 맥클라렌 등을 감독으로 앉혀가며 대형투자를 지속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이 이어졌고 특히 당시에는 강등권의 위협에 시달리던 차였죠. 마가트는 3월 중 긴급히 과거에 맡았던 직책들을 모조리 돌려받은 채 귀환, 아무튼 해당 시즌 팀의 2부리그 강등을 막아서는데는 성공합니다. 나름대로 과거의 '소방수' 역할을 다시금 수행해낸 것이었죠.

 

그러자 마가트는 어김없이 이적시장을 통해 로또를 대거 수집합니다. 그리고 2011/12시즌의 리그 성적은 8위.. 시즌 중 어김없이 선수들과 갈등을 겪고 심지어 선수들에게 자체벌금조치를 남발해 분데스리가 선수노조에서 이를 문제삼는 촌극까지 있었음에도 아무튼 차기시즌을 한 번 기대해볼법한 순위라는 판단 하에 볼프스부르크 구단에서는 한 시즌 더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2012/13시즌 팀은 최악의 출발을 했고 결국 10월 중 마가트는 또 다시 전격 경질.. 이러한 연속된 실패에는 스쿼드 구성의 실패와 선수단의 엄청난 불만 등으로 팀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도 있겠습니다만.. 또 본질적으로 마가트의 전술 자체가 그 시점에서는 너무 구식이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 분데스리가에도 본격적으로 속도전과 기술축구가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마가트는 여전히 체력과 정신력을 1차적인 가치로 삼은 채 현대축구의 전술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죠. 이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현대축구 트랜드를 새로이 흡수해 말년에 큰 성공을 거둔 유프 하인케스와도 비교되는 것이었죠.

 

당시 독일의 유력지 BILD에서는 마가트가 물러나며 수령하는 금액이 연봉과 위약금 등을 포함해 무려 5~60 mio 규모라고 보도한 바 있었는데요.. 그 만큼 본인도 특급대우를 받았고 모기업 폴크스바겐 측의 지원도 대단했으나 결국 볼프스부르크 2기 체제에서는 최악의 결과를 남긴 채 물러난 셈이 되었죠. 이후 볼프스부르크에 남겨진 것은 프로계약선수만 40여명, 게다가 임대를 보낸 선수까지 포함하면 5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스쿼드.. 또 대부분 3~4년짜리 계약으로 이루어진지라 볼프스부르크가 마가트의 유산을 정리하는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2년 여를 야인으로 보내 마가트는 2014년 2월, 선수시절을 포함해 커리어 첫 해외진출을 하게 됩니다. 잉글랜드 풀럼이 감독으로서 마가트를 불러들인 것.. 당시 풀럼은 프리미어리그 강등권에서 해매던 상황으로 마가트의 '소방수' 효과를 기대했으나 이번에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챔피언쉽으로 강등.. 그 해 9월 여러 이유로 경질되고 맙니다. 이 마가트의 풀럼 시절은 7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이지만 정말 기괴한 일화들이 많은데요.. 선수의 부상치료를 위해 물리치료사가 짠 프로그램을 무시하고 부상부위에 크림치즈를 바르라는 자체처방을 내린다던가.. 물론 지옥훈련, 무자비한 벌금조치, 전력 외 선수 투명인간취급 등은 그대로.. 구글에 검색하면 여러 기막힌 일화들이 나올겁니다..

 

뒤이어 다시 2년 간의 야인생활 뒤 2016년 여름, 이번에는 중국의 산둥 루넝에서 마가트에게 헬프콜을 치게 됩니다. 역시 첫 임무는 1부리그 잔류.. 이번에는 그 목표를 일구어내는데 성공했고 또 이전까지 오합지졸이던 산둥 팀을 마가트 특유의 엄격한 규율과 지옥훈련을 통해 확실한 정신개조를 일구어냈다며 중국에서는 꽤 호평을 받기도 했다는데요.. 이후 본격적으로 한 시즌을 지휘한 2017년도에는 나름 6위라는 상위권의 성적으로 팀을 이끌고 계약기간이 끝나며 물러나게 됩니다. 나름대로의 명예회복에는 성공한 셈이었죠.

 

이후 또 2년여 간 소식이 없다가 올 초부터 플라이어알람이라는 독일 소재의 인쇄물 전문기업에서 후원하는 두 곳의 축구팀을 관장하는 글로벌 스포츠 디렉터라는 직책을 맡아 새로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팀들은 바로 독일 3부리그의 뷔르츠부르거 키커스와 오스트리아 1부리그의 아드리마 바커라는 구단인데 기본적인 역할은 양 구단에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또 추후 현장복귀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여지를 열어두기도 했습니다. 또 아드리마 바커의 경우 세리에매니아에서는 '솔도더 사건'으로 유명한 츠보니미르 솔도가 감독으로 있는데 이 역시 마가트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솔도는 슈투트가르트 시절 마가트의 지도를 받았고 당시 팀의 주장이기도 했던데다 또 산둥 루넝에서는 마가트를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일한 경력도 있어 마가트와는 인연이 깊죠.

 

아무튼 펠릭스 마가트.. 1970~80년대 독일을 대표하는 미드필더 중 하나였고, 이후 1980년대 후반에는 단장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는 감독으로, 또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단장 겸 감독으로서 참 다사다난했고 또 독일축구계에 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던 인물인데요.. 그 스타일 역시도 평범치 않은 인물이었고 그 것이 분명 통하던 시기와 상황이 있었지만 바뀐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자신의 스타일 만을 고집한 것이 명예를 이어가지 못한 요인이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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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6-27 13:36:01

    무릎은 쓸수록 강해진다

    2020-06-27 13:40:34

    ㅋㅋㅋ 딱 맞음

    2020-06-27 13:42:45

    ㅋㅋㅋㅋㅋㅋ독일의 김성근ㅋㅋㅋㅋㅋㅋ

    2020-06-27 13:47:2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독일의 김성근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제목만 보고 터졌네요

    2020-06-27 13:52:12

    진짜 왠 B급 선수 수집벽이 있는 할아버지

    2020-06-27 13:53:24

    독~일의~~~김~~성근

    2020-06-27 15:14:29

    감!동!님 사랑해~

    1
    2020-06-27 15:18:10

    야야야 야야야

    2020-06-27 13:54:12

    독일의 마가트 감독님 사랑해

    2020-06-27 14:12:04

    진짜 딱 적절하네욬ㅋㅋㅋㅋㅋ

    1
    2020-06-27 14:31:44

    그라피테 사용법 알고있다

    1
    Updated at 2020-06-27 14:44:35

    크림치즈 ㅋㅋㅋㅋㅋㅋ

    한국은 된장인데 사람사는데는 똑같네요

    2020-06-27 14:47:57

    아들이 전력분석 잘하는것까지 공통점인가요?

    2020-06-27 15:49:30

    그건 안성근인듯..

    2020-06-27 14:56:38

     여기 오모시로이한 선수가 있다

    2020-06-27 14:59:23

    도르트문트는 모래알같은 팀

    2020-06-27 15:37:4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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