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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부자' 호펜하임의 등장과 도약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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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17 15:51:05

근래 분데스리가에서는 '사실상의' 기업구단 RB 라이프찌히가 리그 최상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물론, 최근 챔피언스리그 4강 무대까지 진출하며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10여 년 앞서 비슷한 길을 걸어온 팀이 있으니.. 바로 TSG 1899 호펜하임입니다.

 

이 팀의 이름처럼 최초로 창단된 것은 1899년, 특이하게도 축구가 아닌 체조클럽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 이 체조클럽과 동명의 축구클럽이 합병해 그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8부리그 즈음에 위치한 아마추어 축구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 팀의 운명을 바꾸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설립자 디트마 홉.. 국내에서는 주로 '샙 ERP'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기업인데요.. 홉은 호펜하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TSG 1899 호펜하임의 유소년팀에서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워온 적도 있어 그러한 인연으로 1990년부터 호펜하임에 투자를 시작해 2000년대에 접어들며 투자금액을 본격적으로 늘려나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팀은 3부리그까지 올라서게 됩니다. 또 여담으로 이 시기 팀을 이끌었던 감독이 다름아닌 현재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있는 한스-디터 플리크인데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그러니까 호펜하임이 급부상하기 직전까지 장기간 팀을 이끈 바 있습니다.

 

그리고 홉이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2005~06년 즈음부터 투자규모를 이전보다 훨씬 크게 늘렸는데 그 덕에 3부리그 수준에서는 압도적인 선수들이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들도 영입을 할 정도였죠. 또 국내에서 호펜하임이 처음 소개된 것도 이 즈음의 일로 당시에는 '독일판 첼시'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물론 이후의 방향성은 많이 달랐습니다만.. 또 팀의 도약을 이끌 선장으로서는 랄프 랑닉을 선택, 2007년 처음으로 프로무대인 2부리그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카를로스 에두아르두, 치네두 오바지, 뎀바 바 등의 선수를 거액의 이적료에 영입하며 분데스리가 2부리그 이적료 기록을 압도적으로 갱신한 끝에 불과 한 시즌 만에 2부리그 무대를 졸업하고 2008년, 계획보다도 빠르게 1부리그 무대로 입성하게 됩니다. 사실 2007/08시즌 2부리그에서 전반기까지는 고전하며 역시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여졌으나 시간이 지나며 조직력이 다듬어지자 선수빨이 워낙 압도적인 상황이라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1부리그 승격을 결정지었죠.

 

그러나 1부리그 승격 뒤 예상과 달리 추가적인 전력보강이 거의 없이 지난시즌 2부리그에서 활약한 전력을 중심으로 시즌에 나서게 되는데 그 라인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

 

외즈칸 - 벡, 야이슬레, 콤페어, 이베르츠베르거 - 구스타보 - 에두아르도(바이스), 살리호비치 - 오바시, 이비세비치, 바

 

당시 랑닉 감독은 젋고 에너지틱한 스쿼드 구성을 이용해 상당히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살리호비치와 공격수 3인방이었죠. 세야드 살리호비치.. 이 선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적으로 동시기 활약하던 동향의 즈베즈단 미시모비치와도 많이 비교되곤 했었습니다. 유사한 포지션에 국적도 같고 나이도 비슷했는데 다만 스타일은 서로 간의 특색이 제법 달랐습니다. 미시모비치가 한치의 오차없는 간결한 플레이로 중원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살리호비치는 조금 더 역동적으로 측면까지 활동반경을 가져가면서 위력적인 왼발킥을 주무기로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커버하며 영향력을 발휘했었죠.. 여기에 수비적으로 루이스 구스타보나 당시 잠시 반짝했던 가나 국적의 전천후 수비자원 이삭 보르사 등의 선수가 확실하게 받혀주고, 파트너로는 공격력이 좋은 에두아르도나 활동량이 강점인 토비아스 바이스와 같은 선수들이 활약하며 위협적인 중원을 이루었죠.

 

그리고 공격수 3인방.. 최전방의 베다드 이비세비치는 역시 보스니아 국적으로 득점감각이 탁월한 전형적인 '포처' 스타일의 공격수였습니다. 전반기만 20골 가까이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죠. 이후 큰 부상 등이 겹쳐 부침이 있었지만 불혹의 나이가 된 최근까지도 특유의 득점감각만큼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우측면에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돌파력이 좋았던 오바시.. 당시 인기게임이었던 피파온라인 2 가성비 선수로도 유명했는데요.. 또 좌측면에는 '스티븐 제라드를 무릎끓린 사나이' 뎀바 바가 활약했는데 오바시와 달리 측면돌파보다는 중앙으로 진입해 직접적으로 득점을 노리거나 지원하는 플레이로서 활약이 좋았죠.

 

수비진영도 대부분 20대 초반의 젋은선수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다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러면서 전반기를 바이언과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며 2위로 마감하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당시 살리호비치가 중원에서 지체없이 전방으로 공을 공급하면 오바지와 바가 우당당탕 침투해 기회를 만들고 이비세비치가 정확하게 마무리하는 패턴이 호펜하임 축구의 색깔이었죠. 그렇게 내심 1990년대 후반 1.FC 카이저슬라우턴처럼 승격시즌 마이스터 신화.. 또 불과 10여년 전까지 아마추어 신분이었던 팀의 1부리그 정복 신화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본격적으로 분석을 당하게 된 후반기 급격히 추락하며 결국 시즌을 7위로 마감,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UEFA컵 진출에도 실패하며 마무리가 아쉽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즌 전 예상에 비해서는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선전이었습니다만..

 

그렇게 1부리그에서 첫 시즌을 마친 뒤 당시 분데스리가 수위급 수비수였던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요십 시무니치를 영입하게 되는데 당시에도 나이가 30줄을 넘은 선수로서 당시 호펜하임의 팀 기조와는 상반되는 영입이었습니다. 현재 라이프찌히와 같이 호펜하임도 '거인'이 되기보다는 유망주를 잘 키워낸 뒤 많은 차익을 남겨 매각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자생가능한 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은 팀이었고 지금까지도 유효한 상태죠. 실제 호펜하임이 2008년 1부리그에 승격한 뒤 2020년까지 순수이적료로 남긴 마진은 동기간 분데스리가 구단 중 독보적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시무니치를 적잖은 이적료에 영입한 것은 어느정도 성적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는 것.. 또 팀이 전체적으로 젋었고 특히 수비진의 경험이 많이 부족했기에 중심을 잡아줄만한 노장선수를 필요로 했다는 것..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기대와 달리 2009/10시즌의 최종성적은 11위.. 기존 선수들이 어느정도 파악을 당하거나 또 부상 등으로 첫 시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데다 나름 이적료를 들여 영입한 유망주들도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일보후퇴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홉의 투자는 단순 선수영입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09년 1월에는 연고지 진스하임에 6,000만유로를 들인 3만석 규모의 신축경기장 라인-넥카 아레나가 완공되었고 2010년에는 1,500만유로를 투자해 클럽하우스와 훈련시설, 유소년 육성시스템 등을 포괄한 첨단 축구센터도 구축해 확실한 모양새를 갖추었죠. TSG 1899 호펜하임의 연고지 진스하임.. 인구 3만5천명 규모의 소규모 도시입니다. 원래 2000년대 중반 홉이 본격적으로 이 구단을 키우는 과정에서 연고로 삼으려 했던 도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꽤 규모가 있는 하이델베르크였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해 대신 선택한 곳이 바로 진스하임이었죠. 호펜하임 역시 지역명이기는 하지만 인구 약 3천명 규모의 사실상의 마을 수준이라 최대한 큰 연고와 팬베이스를 원했고 경기장 이름을 라인-넥카 아레나라고 지은 것도 넥카강 유역 전역을 팬베이스로 삼겠다는 의미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실제 본연고지 진스하임 뿐만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등 연고팀이 강세를 보이지 못하는 주변지역의 축구팬들을 주력 팬베이스로 삼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독일에서는 이렇게 성적 등의 외부요인 위주로 응원팀을 옮겨다니는 팬들을 격하하는 의미로 '이벤트 팬'이라는 단어도 존재하는데요.. 특히 이런 '기업구단'에 대한 반감이 큰 독일에서는 이러한 이벤트 팬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는 못한데 이는 호펜하임 구단이 지속적으로 겪어오고 있는 수모.. 불과 몇달 전인 지난 3월에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도중 홉을 조롱하는 걸개로 인해 경기가 오랜 기간 중단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이런 사건들과도 연결고리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에도 호펜하임과 홉은 구단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하더라도 넥카강 유역의 대표구단으로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 것은 현재진행형이라고도 볼 수 있죠.

 

이야기는 다시 축구내적으로 돌아와서 2010/11시즌.. 첫 육성 후 매각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카를로스 에두아르두가 무려 2,000만유로의 이적료에 러시아로 옮겨간데 이어 겨울에는 1,700만유로 역시 거액의 이적료에 루이스 구스타보가 바이언으로 이적한 것.. 대신 대부분의 돈을 또 다른 유망주를 영입하는데 투자했고 이 때 보강된 선수로서 케빈 포얼란트, 세바스티안 루디, 길피 시구르손, 호베르투 피르미누 등이 있었죠. 그러나 이후의 호펜하임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계속해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러자 홉은 조급해져 세계 각지에서 유망주를 막 사모으는 수집병에 걸리고 맙니다. 당장은 분데스리가에서 통하기 어려운 선수들을 막 사모아 조합하다보니 팀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어렵게 버티던 팀은 결국 2012/13시즌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되는데 이 때 마르쿠스 기스돌 감독이 소방수로 나서 극적으로 팀을 강등위기에서 구해냅니다. 그리고 이어서 앞서 사모은 피르미누, 포얼란트, 루디 등의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또 다른 유망주 중에서도 빛을 보는 선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수습이 되어 두 시즌 간은 중위권의 성적을 기록.. 2015년에는 피르미누를 리버풀에 무려 4,100만유로에 매각하는 큰 성과도 올리게 되죠.

 

그러나 피르미누의 이탈이 너무 컸던 탓일까.. 2015/16시즌 호펜하임은 전반기까지 최하위권에 머무르며 또 다시 강등의 위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율리안 나겔스만..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 33살.. 그러니까 당시 28세라는 아주 파격적인 나이에 호펜하임의 감독으로 선임된 것이었죠. 2010년부터 호펜하임의 유소년팀을 담당했으니 내부사정에는 아주 밝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경험이 없는 일부 선수들보다도 어린 감독.. 그 것도 절체절명의 강등위기에서는 너무나도 큰 도박이었죠. 그런데 영웅은 난세에 등장하는 법.. 매 경기 변화무쌍한 포메이션과 전술을 운용하면서도 선수들을 기막히게 배치하고 활용하며 노련한 상대감독들을 크게 당황케했고 그렇게 잔류를 확정할 때까지 거둔 성적은 무려 7승 2무 3패.. 최종적으로 첫 시즌을 7승 2무 5패라는 성적으로 끝마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죠.

 

그 다음은 더 놀라왔습니다. 주포 포얼란트가 2,000만유로의 이적료를 안겨주며 팀을 떠났지만 새로이 영입된 안드레이 크라마리치, 케림 데미르바이, 케빈 폭트, 벤자민 우브너, 잔드로 바그너 등의 선수들을 모두 기막히게 활용하며 헛돈을 마구 쓰던 일전과 달리 선수영입의 효율을 상당히 높였고 또 데니스 가이거와 같은 자신이 잘 아는 유소년 선수들을 새로이 기용하고 기존에 활약하던 니클라스 쥘레, 루디와 같은 선수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어 몸값을 대폭 끌어올렸죠. 그 결과 2016/17시즌의 성적은 4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변.. 호펜하임의 오랜 숙원이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끈 것이 다름아닌 29세 젋은 감독 나겔스만이 된 것이었죠. 다만 아쉬운 것은 최종예선에서 하필 리버풀을 만나는 바람에 패퇴.. 본선무대까지는 밟지 못하고 유로파리그 경험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뒤이어 쥘레, 루디 등 또 다시 주축선수들의 이탈이 있었지만 니코 슐츠, 플로리안 그릴리쉬 등 새롭게 영입된 선수들을 팀에 잘 녹이는 등 다시금 전력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해 2017/18시즌은 한 단계 더 높은 성적인 3위를 기록..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까지 오르게 됩니다. 비록 조별예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패퇴하는 아쉬운 결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팀에게나 나겔스만 감독 본인에게나 아주 큰 경험이 되었죠. 이후 2018/19시즌을 끝으로 나겔스만 감독은 더 큰 도전을 위해 수 많은 분데스리가 상위권 구단들의 오퍼를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RB 라이프찌히를 선택해 떠났고 호펜하임은 나겔스만이 키워낸 조엘리통, 데미르바이, 슐츠 등을 거액에 매각해 무려 1억 2천만유로가 넘는 이적료 수익을 거둬들이게 됩니다. 물론 적잖은 금액이 또 다른 원석들을 영입하기 위한 이적료로 재투자되었지만 나겔스만이 이끈 3년 반의 기간은 결국 팀에 아주 큰 자산이 되어 돌아온 셈이었죠.

 

그리고 2020년 현재.. 이제 80세를 맞이한 홉의 후원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단에 투자한 총액이 무려 3억 5천만유로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대신 2015년에는 '구단에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것이 인정되는 인물'에게는 50+1 규정을 예외로 하는 법규를 적용받아 96%의 지분을 인수해 사실상 구단주의 지위를 얻는데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호펜하임 구단은 이제는 홉의 후원없이도 어느정도 자생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 상황이기도 하죠. 또 나겔스만이 떠난 2019/20시즌도 시즌 중 네덜란드 국적의 알프레더 슈뢰더 감독이 경질되는 등 부침이 있었음에도 최종 6위로 끝마치며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그리고 차기시즌은 38세의 젋은감독 세바스티안 회네스가 이끌게 됩니다. 다름아닌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었던 울리 회네스의 조카인데요..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 2군을 3부리그 우승으로 이끈 성과를 인정받아 호펜하임에서 프로무대 감독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회네스 감독이 이끄는 차기시즌의 호펜하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 한 번 귀추가 주목되는 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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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8-17 15:57:06

글 잘 읽었습니다.

2020-08-17 15:59:20

구단주 조롱걸개 걸고 그 팀 선수는 다 사가버리는게 뭔가 모순이군요...

2020-08-17 16:39:02

이비세비치 전반기에 전성기 메시급 스탯 찍었던거 겁나 무시무시했음

2020-08-17 22:21:36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ㅎ

2020-08-17 22:23:15

많은 투자와 고속승격으로 유명해진 호펜하임의 돌풍을 일으켰던 이비셰비치가 올시즌 많은 투자를 한 베를린에서 뛰면서 호펜하임에게 골을 넣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런저런 감정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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