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 역습축구" 통념이 깨지는 라운드네요.
- 축구 외적인 사정도 어느 정도 개입했다지만 - 이전 월드컵과 같이 웅크리고 카운터 노리던 이란이 박살나면서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가운데, "빌드업 축구"라는 불명확한 개념 하에 비판받아 온 벤투호는 우루과이 상대로 선전..
나아가 일본은 이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것들이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을 주며 독일을 꺾었고, 사우디 역시 아르헨티나 상대로 물러섬 없이 적극적이며 정교하게 라인 컨트롤하면서 역전승..
이란의 카운터 전술의 한계는 비단 이번 월드컵 뿐만이 아니라, 퀘이로즈와 함께 한 지난 2번의 월드컵에서 이미 드러났던 문제였습니다.
그에 반해 현대 축구 규격에 맞춰 꾸준히 발전해 온 일본, 클럽팀 조직력을 그대로 이식해 선수들의 개인 기량 이상의 것을 보여준 사우디, 지난 월드컵들과 달리 4년간 체계적으로 대회를 준비할 수 있었던 한국의 경기력.
결코 이변이나 우연이 아니죠.
상대가 우리 진영에 쉽게 진입하게끔 만들어주고, 90분 내내 우리 진영에서 활개치는걸 지켜보며 처절하게 수비 일변도로 가다가 한 방의 카운터를 노리겠다는 전략.
말이 쉽지 이걸 구현해내기 위해 요구되는 수비 집중력과 체력은 비현실적인 수준이고, 그에 반해 돌아오는 리턴값은 매우 작죠. 결국 득점해야 이기는 축구인데, 정작 득점은 요행을 바라는 수준의 전략인데다가 그렇게 수비하고도 선제실점하면 대책 마련이 불가능한 전략이다보니.
사실 위와 같은 전술은 투지, 열정, 근성같은 표현과 함께 '하면 된다' 느낌을 주다 보니, 그간 우리나라에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애국심 따위의 감정에 입각해 그저 열심히 뛰면 되는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
무언가 변화하려는 시도들은 반대로 "빌드업 축구"라는 다소 불명확한 개념을 들고 계속 비판받아왔죠. 언더독 주제에 무엇을 주도하려 하느냐, 무엇을 자꾸 만드려고 하느냐 하는 식으로요.
지난 일본과 사우디가 그랬고, 오늘 벤투의 한국이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언더독이 주제도 모르고 펩바르셀로나에 빙의해 압도적 점유율을 바탕으로 가패삼기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죠.
탑독을 상대로도 우리 흐름일 땐 우리 축구하고, 상대 흐름일 땐 상대의 흐름을 최대한 저지할 수 있는 저지력을 갖춘 축구인 셈입니다.
- 상대방의 기초 빌드업이 불편하게끔 전방압박 시퀀스를 다듬고
- 상대방이 우리 진영에 쉽게 진입할 수 없게끔 1, 2차적으로 저지하는 구조를 세우고
- 우리의 흐름이 왔을 때 자신있게 펼칠 수 있는 빌드업 시퀀스를 마련하고
- 어떻게든 마무리 단계까지 끌고가서 상대 역습 가능성을 낮추고
- 경기 내내 상대방이 잘하는 것들 못하게끔 방해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구조.
이번 라운드 아시아 팀들의 경기결과를 통해서, 아시아 축구가 축구계 언더독으로써 나아갈 방향성은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체력과 투지" 신화를 비롯한 여러 오해와 미신들도 앞으로 더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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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갓동님 어디까지 내다보신겁니까 ㄷㄷㄷ
확실히 공 안 갖고 있을 때 + 우루과이 애들이 우리 진영에서 볼 돌릴 때 가 더 무섭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