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화된 1차대전 인사들 사진 + 잡설 (1)
더글러스 해이그 1861~1928 / 최종 계급 :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왕국 육군 원수
1차대전 교리 발전상에 대해 무지하던 80~00년대 밀덕들(대부분 1차대전이 아니라 2차대전 파던 사람들이라 1차대전은 문자 그대로 수박 겉핥기 수준만 알던)에게 무식하게 병력 들이붓던 똥별의 대표마냥 폄하되기도 했지만 애초에 동맹인 프랑스군에 비해서 육전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있던 연합왕국군을 싸움이 가능한 대군대로 멱살 잡고 재편시킨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브리튼 군부, 정치인들이 머저리들이라 이 사람한테 파이브 스타를 달아준 것이 아니다.
여담으로 해이그는 1차대전기의 프랑스군의 기동 공세전 사상에 불신감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라 프랑스군을 엄청나게 디스한 편이다. 당시 영국군 장교단의 보편적인 진리이던 '강력한 진지, 강력한 전선, 강력한 화력적 우위'라는 개념에 비하자면 프랑스군의 기동공세 교리는 지나치게 도박적이고 자기파멸적으로 보였을 것이다.(정작 교환비는 영국군 쪽이 더 안 좋았다는게 함정이지만)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1849~1945 / 최종 계급 : 도이체스라이히 제국 육군 원수
유럽 최후의 후사르(후사르라고 하면 보통 폴란드 윙드 후사르를 떠올리지만 18세기 이후로 유럽 각 국의 경기병들은 죄다 후사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물.
병력 밀집도가 심하게 높던 서부전선과는 달리 전선 전체가 널널(?)하던 동부전선에서 주로 전공을 세웠던 인물이라 기병들을 자주 활용했고(이는 주적이던 러시아 제국군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역시나 1차대전에 대해 아는 것이 겉핥기 수준이던 옛날 밀덕들이 마켄젠을 '유능하기는 하지만 다소 시대착오적이던 구시대적 인물 중 한 사람' 정도로 얼치기로 이해하던 것과는 달리 마켄젠은 기병 장교로써의 기병관을 그대로 현대적으로 대입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사실 대부분의 기병 장교들이 그랬다. 러시아 볼셰비키 적군의 세묜 부됸니, 클레멘트 보로실로프 등도 기병말고는 아는게 없는 똥별이라는 식으로 얼치기 밀덕들에게 격하되었지만 실상은 이들은 기병 개념을 장갑차와 기갑이 그대로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현대의 기병' 개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로 이를 현실로 구현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인물로 그의 병력 운용은 독일 제국 기동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지 구시대적인 나폴레옹 시절 기병돌격 같은 것이 아니었다.
여담으로 마켄젠은 주로 러시아, 루마니아, 세르비아를 상대로 활약했는데 비록 오스트리아군을 도와 세르비아에게 결정타를 먹이는데 일조하기도 했지만 정작 마켄젠 본인은 세르비아군과 싸워본 뒤 동맹인 오스트리아보다 적국인 세르비아를 훨씬 더 호평하였다.
알렉산데르 콜차크 1874~1920 / 최종 계급 : 로시스카야 제국 해군 제독 - (비공식)로시스카야 최고 지도자
사실 1차대전에서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전황 기여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제국 해군 소속이던 콜차크도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의 분야에서 유능했던 인물이며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1차대전 종료 이후 러시아의 임시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적도 있다.
일찍부터 함대 결전 사상을 포기하고(물론 이것은 영미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이던 러시아 제국 해군 규모도 고려한 문제이겠지만) 구축함과 기뢰를 활용한 고속 기동과 소모전에 주안점을 둔 인물이고 기뢰 배치와 구축함 소함대 전술로 독일 제국 해군을 상대로 나름대로 선전한 적도 있어서 42세에 부제독 위치에 오른(이는 당시까지 러시아 역사 전체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부제독 승진 기록이다.) 인물이다. 이후 흑해 함대를 이끌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게 엄청난 골치를 안겨주며 흑해 제해권을 확보해내기도 하였다.(트라브존 공략 작전에 일조)
그러나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이 붕괴하고 마침내는 볼셰비키들이 일으킨 적백내전으로 러시아 전역이 내전 상황에 빠지자 반사회주의 계파들을 규합하여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를 자처했으나 결국 적군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볼셰비키들에게 사로잡혀 총살당했다.
앙리 구로 1867~1946 / 최종 계급 : 프랑스 공화국 육군 대장
1차대전에서 개발되어 오늘날까지도 애용되고 있는 탄력적 방어(또는 심층 방어)의 대가였고 '미끼를 내걸고 적 병력을 적 포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계산된 위치까지 끌어내어 역으로 포격을 가하는' 미끼 역습 포격 전술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여 독일 제국군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힌 프랑스 지휘관이다. '탄력적 방어'란, 즉 공자의 진격을 바로 가로막지는 않고 의도적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지연전을 벌여 시간을 벌면서 해당 시간을 활용하여 심층적인 추가 후방 방어선들을 만들어내는 방어 교리이다. 이러한 탄력적인 방어는 진격하는 공자가 방자의 영역으로 진격하면 진격할수록 소모가 급증하여 추진력을 잃게끔 유도한다. 따라서 일정 시점에서 마침내 공세 한계점에 도달하게 만들며 이 때가 방자의 역습 시간이 되는 것이다.
전력적으로 우월했던 독일 제국군이 일반적으로 공자였으므로* 프랑스 공화국군은 주로 방자였기에 탄력적 방어, 그리고 이어지는 종심 역습 전투 등의 '방어 후 역습 교리'는 프랑스 측에서 좀 더 빠르게 발달시켰으며 앙리 구로는 1차대전 후기 프랑스 공화국군이 방어 후 역습 교리를 당시 기준으로 정점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때를 상징하는 상징적인 지휘관이기도 하다. 이러한 탄력적 방어와 종심 역습은 이후 2차대전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정작 2차대전 프랑스군은 쓰지 못했다는게 함정이지만..) 당장 1차대전 막바지에 참전한 미군 장교들에게 교리적으로 영향을 크게 심어준 인물이 바로 이 앙리 구로라고 할 수 있다.
*(X무위키 등에서는 프랑스, 영국은 식민지군을 쓸 수 있어서 독일 제국보다 전력이 우월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동원령으로 끌어모아 공세에 퍼부을 수 있었던 전력 규모의 수준은 독일 측이 프랑스 측의 1.5배 이상으로 아득히 우세했다. 식민지군이 정말로 정규 국가군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연합왕국'이라는 체계를 통해 캐나다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군 등 '일반적인 식민지가 아닌 자치령 국가들의 정규군'을 활용할 수 있었던 영국에 한정되는 얘기이고 프랑스의 식민지군은 그야말로 보조적인 역할 수행 그 이상을 담당할 수 있는 규모도, 질적 수준도 되지 못했다. 실질적인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 정규군의 규모는 독일 측이 훨씬 압도적이었으며 이 독일을 상대로 최소한 양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뿐이었지만 대신 러시아 제국군은 질적으로 독일 제국군에게 너무나 뒤쳐졌다.)
글쓰기 |
애초에 현대 독일과 프랑스 기준으로도 독일이 앞서는데 당시 슐레지엔 같은 꿀땅이나 폴란드령 포젠까지 가진 독일이 프랑스를 인구비로 찍어누르는게 어렵지 않았죠. 전 그래서 베르됭 전투 오히려 더 미스테리한... 적어도 제1차 세계 대전에선 프랑스가 독일 상대로 훨씬 선전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