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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z 선정, 10년대 한국 '앨범' 베스트 : 10위 -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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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10-06 02:05:25
 많은 이들이 앨범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난 10년간은 LP판매량이 급증한 시대이기도 했다. 지난  대중음악의 역사도 풀랭쓰의 명반들에 의해 이끌어져왔을을 상기해볼때, 여전히 이 매체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여러개의 곡을 특별한  순서대로 연결 시킨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실험일지도 모른다. 먼 미래, 피지컬이 사라진다 해도 그 형식은 남는다. 10년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서 어떤 작품들이 그 가치를 이어왔는지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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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그 이면에
날이 선 가시가 있대도
난 손을 뻗을 걸"
 
10. 레드벨벳 [Perfect Velvet] (2017)
 
: S.E.S 시절부터 해외에서 곡을 수급하는데 집중하였던 SM엔터테인먼트는, 십수년 동안 산업의 정점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을 체계화시켰다. A&R의 폭넓은 기용을 통하여 사전 기획과 컨셉 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송캠프라는 송라이팅 협업 구조를 재빠르게 도입하여 진일보된 사운드와 검증된 멜로디라인을 이끌어냈다. f(x)의 음악이 케이팝 공정을 통하여 장르적인 성취를 얻어낸 개척자의 위치에 도달했다면, 레드벨벳은 두가지 컨셉을 활용하여 음악을 넘어 그룹 자체의 이미지를 다변화시켰다. 이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준 '레드'에 비해서 '벨벳'은 그 무게감으로 인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였는데,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이들만의 색깔을 추구한 결과 [Perfect Velvet]이라는 대표작을 남기게 된다. SM식 발라드와 알앤비풍의 가요에 국한되어있던 '벨벳'의 캐릭터성을, 어두운 분위기와 난해한 사운드, 불친절한 곡의 구조를 활용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했을 뿐 아니라, 수민과 디즈, 진보, 이센스의 [The Anecdote]를 프로듀싱한 Obi 등 전자음악과 블랙뮤직에 일가견이 있는 뮤지션들을 초빙하면서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하우스('Perfect 10)와 네오소울('Kingdom Come), 퓨처 베이스('I Just') 등이 고루 섞인 장르적 배합에서, 멤버들의 화음을 곡 전반에 패드를 깔아둔 것처럼 운용하는데 이는 f(x)에서 보이스 샘플을 활용하여 이펙트로 쓴것의 발전된 형태로 보인다. 전작에서 '빨간 맛'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뒤 이러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중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는 팀이 첨단의 시스템 하에서 이정도의 실험성을 추구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레이블의 기획력과 케이팝 산업의 시스템이 극에 달한 [Perfect Velvet]는, 우리 모두를 소녀들의 귀곡산장으로 이끌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대안1. 레드벨벳 'Russian Roulette' (2016)
○ youtu.be/QslJYDX3o8s
: 컨셉이 지나치게 확실하다보니 작품 별로 하나의 방향성만으로 설명되던 레드벨벳이, 비로소 그 중간지대를 획득한 것은 'Russian Roulette'부터라고 봐야할 것이다. '레드'와 '벨벳'이 혼재된 이 곡은 후의 [Perfect Velvet]를 예고하며, 동시에 레드벨벳이 비평적으로 하나의 궤도에 도달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생각을 안한지 너무 오래됐네요"
 
9. 무키무키만만수 [2012] (2012)
 
: 대외적으로는 '안드로메다'나 '투쟁과 다이어트'의 과격하고 정신없음에 눈길이 많이 쏠렸지만, 앨범을 차근차근 들어보면 '2008년 석관동'나 '너의 식물'과 같이 상대적으로 얌전한 스타일의 노래도 포함되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얌전한 곡에서마저 이들이 가진 아방가르드한 성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건 이전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형태의 가사의 유형이라던가, 이들이 주고 받는 노래의 형식이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달파란은 그가 예전에 삐삐밴드의 이윤정에게 그러했듯이, 이들의 스타일에 많은 터치를 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껏해야 '안드로메다'의 트렘펫과 '무키무키만만수'에서의 피리 정도일까. 후에 본명 이민휘로 활동하는 민수는 딱 필요한 정도의 기타 스트로크를, 무키는 장구를 뒤집어 높어 '구장구장'이라 명명한 드럼 셋을 활용하여 곡을 전개하는데, 정말 단출한 세팅에서 이정도의 파괴력과 혼란스러움을 뽑아낸다는 것이 놀랍다. 불협화음이 산재하는 가운데에서도 가사는 날카로운 지점을 가지고 있는데, '방화범'이나 '남산 타워'는 사회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7번 유형'과 같은 곡은 한편의 블랙코미디로 읽을 수 있다. 연주부터 가사까지 모든 부분이 기존의 관습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여주는 [2012]를 발매한 무키무키만만수는 의외로 방송과 공연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그 덕에 인터넷 상에서 컬트의 지위를 획득하고 밈으로 사용되기도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의 한국음악의 어느 한순간을 조명하였을때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 음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2]의 호오와 관계없이, 한번 듣는 순간 도저히 잊혀지지않는 음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앨범은 낯설게 하기를 제대로 해냈다

 

 
'바다를 건너야 할 아이들에게'
 
8. 한승석 & 정재일 [바리abandoned] (2014)
 
: 이전까지만 국악 크로스오버는 단순한 형태로만 이루어졌다. 슬기둥이나 푸리, 공명 같은 팀들이 90년대부터 타악을 기반으로 월드뮤직의 성향을 보여왔지만, 여진히 퓨전 국악이라는 이미지는 가야금으로 비틀즈의 곡을 커버하는 수준에 지나지않았다. 양악기와 국악기의 공존은 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잠비나이 등을 통하여 그 장르적인 가능성을 탐구하게 된다. 잠비나이와 블랙스트링, 이희문이 영역을 넘나드는 과정이 공연장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분위기 속에서, 호기심많은 천재 정재일은 자신이 가진 풍부한 음악적 세계관을 또 한번 확장시키기로 결정한다. 서울재즈아카데미가 낳은 첫번째 재능이자, 15살에 타악그룹 푸리의 원일과 함께 음악을 시작하며 서양음악과 한국전통 음악 양쪽의 양분을 고루 받은 이력, 슈퍼밴드 긱스 활동으로 다져진 연주력과 김민기의 선택을 받은 학전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면서 팝적인 감각과 서사를 이끄는 능력까지 갖춘 그는, 극작가 배삼식과 소리꾼 한승석을 자신의 무대로 초빙하였다. '푸리'를 통하여 합을 맞쳐본바 있는 한승석과 정재일은, 바리공주설화를 배경으로 '버려짐'에 대한 아픔을 노래한다. 한승석의 절창은 서사를 만들어내고, 정재일은 건반을 위주로 극적인 요소를 부가한다. 그 이전부터 기획된 프로젝트였으나, 시기적으로 세월호 사태가 일어난 직후에 발매되어, 청자로 하여금 보다 숙연한 감상을 안기기도 하였다. 이들의 행보는 17년 [끝내 바다에]까지 이어지며 비로소 완성된다. 현재 정재일은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으로 또 다른 차원의 위상으로 넘어갔다
 
 

 
"The world moves too fast to walk slowly"
(천천히 걷기에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지)
 
7. 메써드 [Definition of Method] (2019)
 
: 이 선택은 이견이 존재한다. 지명도로만 본다면 전작 [Abstract]을 베스트에 놓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의 4인조 체제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이 추구하던 멜로딕 데스 메탈와 스래시 사이의 균형감을 맞춰 절제된 연주력으로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보다 앨범 전체의 안정감을 중시하여 통일성을 맞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밴드가 걸어온 역사성을 보았을때 어쩌면 [Abstract]은 최고작에 위치할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Definition of Method]이다. [Abstract]이 절제라면 [Definition of Method]는 분출의 사운드다. 특히 [Abstract]에서 처음 선을 보인 드러머 김완규가 좀 더 밴드의 합과 잘 어울리는 것은 [Definition of Method]이다. 좀 더 확실한 더블 베이스의 활용, 김요원의 노련한 베이스에 뒤지지않는 그루브와 필인으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던 전작에 비해 각 곡마다의 개성이 돋보인다. 김재하는 자신의 송라이팅의 절정을 보여주었으며 우종선은 그로울링과 클린 보컬 양 극단을 오가며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유튜브 음악 크리에이터 이라온(Raon)과의 협연('Nothing To Fear')은 이들의 음악적 시도가 얼마나 열려있는지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분명 [Abstract]의 충격적인 완성도도 고려대상이긴 하였다. 하지만 [Definition of Method]라는 발전적 요소가 있었기 떄문에 [Abstract]의 오리지널리티 역시 재평가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청자들에게 [Abstract]가 현재까지 메써드의 최고작으로 꼽히겠지만, 나의 지지는 [Definition of Method]로 향한다.
 
대안1. 메써드 'Crying For Liberation Part Ⅱ' (2012)
○ youtu.be/aGQKdXCzWf4
:메탈발라드 트랙은 메탈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감성적인 면모를 가졌는지 드러내게 한다. 최근 메써드는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그 엔딩을 장식한 곡은 3집의 'Crying For Liberation Part Ⅱ'이다. [THE CONSTANT]의 중간 트랙으로 앨범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Crying For Liberation Part Ⅱ'는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통하여 이들의 강렬한 연주 이면에 있는 아름다운 선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어차피 지나면 구시대 유물이잖아'
 
6. 서사무엘 [The Misfit] (2019)
 
: 2010년대를 지나오면서, 서사무엘은 아티스트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최신작이 최고작이 되는 것. 끊임없이 우상향을 그리는 예술가의 모습. 라이브와 레코딩에서 리스너들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고루 받는 것. 이 모든 것을 서사무엘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으로 쟁취했다. 1집 [FRAMEWORKS]보다 2집 [Ego Expand (100%)]이, 2집 보다 미니앨범 [UNITY]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3집 [The Misfit]는 이전의 기록들을 다 뛰어넘는다. 이는 2020년이 지나서 발표한 [D I A L]과 [UNITY II] 같은 미니앨범들 에서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The Misfit]는 마지막으로 나온 정규앨범이라는 점에서 조금더 언급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마 서사무엘의 시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알앤비 음악으로 이정도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예상한 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싱어가 아닌, 빅딜에서 영딜러스 멤버 중 하나로 시작한 '래퍼'였으며 게릴라즈 크루에서 뉴챔프 옆에서 더블링을 치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심지어 당시 리스너들 역시 서사무엘의 포텐셜을 그렇게 높게 보고 있지 않았고, 그가 랩으로 참여한 결과물 역시 썩 좋은 완성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뉴블락베이비즈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싱어로의 재능을 깨우치게 되며 2013년 [Welcome To My Zone]을 통하여 달라진 모습으로 '재데뷔'를 하게 된다. 서사무엘의 대단한 점은 오랜 시간을 겪어온 장르인 리듬앤블루스를 스튜디오에서 해체, 조립하여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 했다는 것에 있다. 나는 그가 일종의 레코딩 아티스트나, 심지어는 실험적인 엔지니어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FRAMEWORKS]에서 훵크, 힙합,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니카를 자유자재로 장르를 뒤섞더니 [Ego Expand (100%)]에서는 재즈와 디스코의 리듬을 바탕으로 미니멀한 연출을 보여주고, [UNITY]에서는 디지털과 프로그래밍을 자제하고 아날로그 레코딩롸 리얼 세션을 활용하여 네오소울을 보여주었다. 각 앨범마다 그는 단 한번도 레코딩 과정을 동일하게 두지 않았으며 이것은 [The Misfit]에서도 유효하다. 싱어와 래퍼 사이에서 고민했던 그의 과거는, 지금은 싱잉랩이라는 유행보다 한발 앞섰던 시행착오가 되었고, 그 지점을 제대로 캐치하여 앨범에 담았다. 특히 자신의 보이스를 최대한 활용하여 수많은 레코딩 트랙을 믹싱하였으며, 이는 유려한 화음과 사운드 이펙트로, 사운드 전반을 책임지는 음향으로 활용된다. 보컬 레코딩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그의 방법론은 [The Misfit]을 전작들과는 또다른 감흥을 안기게 한다. 서사무엘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깨닫음은 두가지다. 자신의 재능을 잘 찾을 것, 그리고 계속 고점을 갱신할 것.
 
대안1. 서사무엘 '다섯시' (2018)
○ youtu.be/xOsqwdreeA0
: 서사무엘은 팝적인 감각에도 능한데, 엠넷에서 진행한 싱어송라이터 경연 프로그램 [브레이커스]에서 공개한 '다섯시'가 대표적이다. 새벽 자전거 라이딩을 주제로 한 이 곡은, 그가 얼마나 세련된 멜로디 감각을 지녔는지 보여준다.
 
대안2. 서사무엘 'Let us talk (Bedroom Ver.)' (2020)
○ youtu.be/8bp8u9RnTFo
: 서사무엘의 보컬적인 능력이 최대로 발휘된 트랙으로는 'Let us talk (Bedroom Ver.)'을 꼽을 수 있겠다. 수많은 더빙트랙으로 화음을 쌓은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장점을 최대로 발휘한다
 
 

 
5. 김오키 [Cherubim's Wrath] (2013)
 
: 지난 10년간 한국대중음악 최고의 허슬러를 꼽으라면 그것은 김오키 일 수 밖에 없다. 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아방트리오, 뻐킹매드니스, 새턴발라드 등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며 메인스트림과 인디를 오가며 피쳐링 세션으로 기용되기도 하는 그는 10년대에만 본인의 리더작을 10여장 발매하였다. 그 시작을 알린 [Cherubim's Wrath]는 김오키라는 색소포니스트가 가진 자유로움을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프리재즈의 형식만을 취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제 의식을 음악으로 풀어내고자 하였으며, 실제로 그의 연주는 어떠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발버둥을 연상케 한다. 아방가르드한 연주력을 보여주지만, 타 세션들의 절제된 배경은 이 앨범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색소폰이 가장 아찔한 금속성을 최대한으로 끄집어 내면서 재즈가 가진 원초적인 운동성을 들려준 그의 작업은, 아직 그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던 시기에, 프리재즈라는 명칭으로 설명하려했는지 이해가 간다. 20년대의 김오키는 10년대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다소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내면에 있는 깊은 성찰과 비판의식을 확인해 보려면, 우선 그의 첫 앨범[Cherubim's Wrath] 부터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여기저기 난 많이 꼬였어"
 
4. 김사월X김해원 [비밀] (2014)
 
: 미세한 리버브가 아찔함을 자아내는 김해원의 사운드 메이킹, 사람을 홀리는 김사월의 목소리, 이 둘의 하모니가 주는 묘한 낙차가 주는 에로티시즘은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에 비견되기까지 했다. 흘러나오는 욕망은 허밍과 코러스로 재현되며, '지옥으로 가버려'에서의 기타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관계성을 격정와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사막 Part 1'에서 김사월이 내밷는 동사 하나하는 뇌쇄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포크 팝에서 남녀의 듀엣이 이정도의 내밀한 정서를 가진 것은 특수한 일이다. 이 진득한 긴장감이 선사한 것은, 음반의 완성도 뿐 아니라 장르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 그 얇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포크라는 장르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에서 포크 분과를 새로 설치하게 만들었으며, 각종 공연장에서 포크 팝 뮤지션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세련된 어쿠스틱 팝 뮤지션들도 포크의 방법론을 다시 탐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권나무와 천용성, 정우, 예람, 전유동 등 많은 뮤지션들에게 리스너들의 시선이 가게되었다. 90년대 김광석의 죽음으로 하나의 장르가 사라졌다면, 10년대 김사월과 김해원의 등장으로 잊혀졌던 장르가 다시 소생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렇게 이 음반은 이미 클래식의 영역에 들어갔다

 

 
"간절히 바란 단 하나의 꿈
눈앞에 펼쳐진 단 한 줄의 기적"
 
3. 로로스 [W.A.N.D.Y] (2014)
 
: 00년대 중후반에 솟아 오르던 여러 밴드들 중 로로스는 이색적인 감성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해외 포스트록씬을 주름잡던 Explosions in the Sky나 Sigur Ros가 가지고 있던 서정미와 일본 밴드 MONO의 클래시컬한 스케일의 편곡 스타일을 두루 갖춘 밴드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인디씬의 영향 또한 짙게 베어있었으며, 그 인지도 역시 초창기의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국카스텐에 밀리지 않았다. 인상적인 데뷔를 보낸 후 휴지기를 갖으며 꽤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온 [W.A.N.D.Y]는 그 기다림을 가치 있게 만든 앨범이다. 10년대 한국 록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을 포착했으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 잔잔하게 레이어를 쌓아올려 터트리는 포스트록의 문법, 그리고 여기에 로로스는 치유와 위로의 키워드를 얹었다. '거친 세상과 나약한 용기에 고개 숙일 때'에도 춤을 출 수 있다고 말하는 따스한 손길, '훗날 이 슬픔이 잦아든 여백은 무엇으로 채워질까'라며 값지고 고운 눈물을 흘려고 된다고 말해주는 가사는, 많은 것들이 사라졌던 2014년을 버티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선사하였다. 비정하고 잔인한 세상 한 가운데에서 마음 속에 품 은 '단 하나의 꿈'과 '단 한 줄의 기적'을 믿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이 헌사는, 로로스에게 전방위적인 찬사를 주었다. 특히, 사운드의 측면에서 지금 현재도 다시 나오기 힘들 정도로 폭넓은 층위를 지녔다. 도재명의 구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하제인의 악기 운용, 양 측면에서 기타 노이즈의 벽을 세운 진실과 최종민의 유려한 연주, 사운드를 조립하고 해체하는 포스트록의 특징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는 김석의 베이스와 복남규의 드럼까지, 각 멤버가 자신의 위치에서 제몫을 해낸 것도 꼭 언급해야하는 부분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기우마저 느끼게 해준 [W.A.N.D.Y]는 이 다음해 로로스의 해체로 인하여, 그렇게 밴드의 정점이 되었다. 이 앨범이 나왔을 당시 인디 씬 팬들의 반응이 생각난다. [W.A.N.D.Y]의 발매는, 마치 그들 모두의 소망 하나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2010년대 한국 대중 음악의 나온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순간.

대안1. 잠 '잠꼬대 아닌 잠꼬대' (2023)
○ youtu.be/HwuIkY1ytMs
 : 도재명은 로로스 해체후 솔로 활동을 하다, 최근 그의 첫 시작이었던 슈게이징 밴드 잠을 재결성 하였다. 문성근 배우가 낭송한 문익환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기반으로 그때 그 잠을 소환한다. 
 
 

 
"해메던 이십대의 나를 보셨다면"
 
2. 이센스 [The Anecdote] (2015)
 
: 특정 작품이 발매도 되기전에 지나치게 하이프 받는 것은 경계해야한다. 기대치라는 것은 충족해봐야 본전이고 만약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 그 반향은 더욱 거세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센스의 [The Anecdote]는 아마, 발매되지 않은 가장 유명한 앨범 중 하나였을 것이다. '꽐라'를 통해 꽤나 인상적인 루키 시절을 보냔 그는 사이먼 도미닉과 함께 슈프림팀을 결성하여 오버그라운드에서도 그 입지를 탄탄히 다져왔다. 할말을 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격은 여러 트러블과 논란들을 낳았으며, 여기에 대마초 흡연으로 인하여 모든 활동이 중지되면서 헤이터들에겐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다시금 크레딧을 획득한 것은 프라이머리의 '독'과 컨트롤 디스전이다. 엇박의 짐승같은 리듬감의 소유자인 그는 '독'을 통하여 진정성을 보여주었으며, 개코와의 디스전을 통하여 자신이 이 랩게임에서 어떠한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신보 작업 소식이 들려왔지만, 여기서 또한번의 마약 혐의가 발목을 붙잡았다. 마치 타임어택을 하는 듯, 미공개곡과 싱글들을 공개하면서 구치소 수감일과 앨범 발매일은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이 레코딩을 지켜본 래퍼들의 증언은 [The Anecdote]의 기대감을 한층 더 올리게 했다. 이 현상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서술한 기대치의 본전치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났기 떄문이다. [The Anecdote]의 완벽한 퀄리티는 예상 이상의 감흥을 주었으며, 기존의 기대치는 오히려 이 완성도와 시너지를 일으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표제에 알맞게 개인사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The Anecdote]에서 이센스는 '주사위'에서 힙합 하기 전의 성장과정을 풀어내고, 창작의 고뇌를 'Writer's Block'로 담아내며, 자신이 어떻게 이 씬에 들어왔는지 'Next Level'로 이야기한다. 편부 가정의 감정을 표현하는 'The Anecdote'와 90년대 키드였던 자신을 추억하는 'Back In Time'는 자전적인 요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예로 볼만하다. 여기에 1MC 1DJ의 체계를 갖춘 Obi의 프로듀싱은, 붐뱁의 고유한 성질을 십분발위하여 트렌드를 쫒기 보다 이센스의 랩과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주자는 취지를 보여준다. 이는 BANA의 김기현 대표가 SM엔터테인먼트 시절부터 유지해온 인맥과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The Anecdote]는 당시 쇼미더머니의 자극적이고 휘발성 강한 랩 송, 스웨거의 지나친 활용에 피로감을 느끼던 리스너들에게 자신들이 힙합을 좋아했던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하였으며, 후대의 래퍼들 역시 일종의 교본으로 삼는 작품이 되었다. 덧붙여, [The Anecdote]는 한국에서 옥중 발매하는 최초의 이력으로 남게된 작품이기도 하다.
 
대안1. 이센스 'Sh All Day' (2014)
○ youtu.be/VLrqGu0ZW20?t=4
: 이대로 가면 아마도 이센스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래퍼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그의 가장 큰 재능 중 하나는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리듬감인데 [The Anecdote] 발매 전에 나온 'Back In Time' 싱글에 같이 수록된 'Sh All Day'는 그의 짐승같은 박자 감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대안2. 이센스 '알아야겠어' (2019)
○ youtu.be/jZ3imbosmp4
○ youtu.be/MPHm_bH4NaI
: 출소 후 그의 첫 행보는 홍콩에서 열린 2018 MAMA 시상식에서의 공연이다. 당시 이센스가 보여준 새로운 랩은, 리스너들에게 또한번의 기대감을 심어주었으며, 이 곡은 추후 [이방인]에 수록된다
 
 

 
"내가 그리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좆나게 웃길 뿐인데"
 
1.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2011)
 
: 과거 음악 웹진 '보다'에서 2011년 올해의 음반 1위로 꼽힌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하여, 이경준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번 음반이 중요했음은 팬들이 먼저 알았고, 아마 장기하 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함량미달의 작품이 등장했을 때 나오게 될 "내 그럴 줄 알았어" 류의 그 수많은 비난들. 이번 음반은 확실히 예상을 깬 음반이다.] 그렇다. 당시 장기하와 얼굴들, 특히 장기하에 대한 대중들의 인상은 괴짜 음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싸구려 커피'가 나온 2008년 정도에는 인디와 메인스트림이 완벽히 갈라져있던 시기였기에, 일반적인 대중들은 장기하가 어떤 커리어를 걸어왔는지,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토킹헤즈를 모방하여 만든 춤은 밈이 되었으며, 당시 인터넷에 유행하던 합성 콘텐츠로 소모되었다. 그 누구도 장기하의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컬트적인 인기로 인해 공연과 방송 출연이 많아지면서 인지도만 올라갔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멤버들을 모아 정식 밴드로 나아간 [별일 없이 산다]에선 일상의 모습와 언어를 활용하여 세대론을 우스꽝스럽게 펼쳐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웃기는 음악을 하는 밴드 정도로 인식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미지는 이미 소비되었고, 밈은 지나갔으며, 국카스텐과 검정치마, 브로콜리 너마저 등 동시기에 등장한 팀들이 하나 둘 명반들을 제조하였고, 한쪽에서는 10CM와 옥상달빛이 메인스트림 차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대중들의 취향 역시 바뀌어나갔으며, 세상엔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던 때가 온것이다. 그래서 이경준 평론가의 말 처럼, 이 앨범은 정말 중요했다. 밴드의 퇴보냐 발전이냐의 기로에 있던 장기하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맘껏드러낸다. 후에 정식 멤버가 되는 하세가와 요헤이를 이때 프로듀서로 초빙하고, 킹스턴 루디스카의 키보디스트 이종민을 발탁한 것이다. 이 두 섭외는 장기하가 가지고 있던 취향을 맘껏 펼쳐내는데 일조한다. 송창식에게 영향 받은 창법, 산울림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 송골매의 대중 지향적인 록 등 7-80년대 한국 포크와 록에 영향을 받은 그의 음악적 자양분을 하나의 앨범에 담아낸 것이다. 특히나 '마냥 걷는다'와 '날 보고 뭐라 그런것도 아닌데'에서 이종민의 건반 플레이와 사운드는 장기하의 야심을 제대로 구현한다. 여기에 장기하가 가진 창법과 가사 전달력이 빛을 발한다. '그렇고 그런 사이'의 중독성을 배가시켰으며 'TV를 봤네'에서 일상 속 찰나의 순간을 짚어냈으며, 리쌍과 작업했던 '우리 지금 만나'의 솔로 버전을 통해 한국말이 주는 뉘앙스의 재미를 재치있게 살렸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남긴 것은 지금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생각해보라, 인디 록이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몇이나 되는가. 인디씬의 흐름 가운데 놓여있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주류 시장에서도 통했으며, 이는 2010년대를 취향의 시대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 앨범의 성공은 장기하를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주류와 비주류의 사이 공간에 서있게 만들었으며, 그것을 10년동안 유지하는데 성공하였고, 한 시대를 온전히 활동 한 후 뒤끝없이 해체를 선언하였다. 그 시작점에 있는 것은 [장기하와 얼굴들] 이다. 그래서 2018년에 지정한 100대 명반에 [장기하와 얼굴들] 가 아닌 [별일 없이 산다]가 들어간 것은 평론가들의 실수다. 대중들이 장기하에게 설득된 것은, 그리고 제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은 [장기하와 얼굴들] 이기 때문이다. 해체 후 5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전설적인 밴드의 위상에 도달한 그들의 대표작으로 [장기하와 얼굴들]를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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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 [장기하와 얼굴들]은 가장 좋아하는 앨범도, 가장 즐겨들은 앨범도 아니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하였을때 이 작품은 최상단에 놓기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줄로 요약하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아무도 이렇게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9
Comments
2023-06-11 04:53:24

서사무엘은 ego expand 앨범이 아주 고평가받았는데, 선정은 미스핏츠가 됐네요 ㄷ

OP
Updated at 2023-10-06 02:05:54
 서사무엘은 정규 앨범 3장 중 뭘 꼽아도 될만한 뮤지션이었습니다. 그가 우상향을 그리는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The Misfit]를 선택했네여. [FRAMEWORKS]나 [Ego Expand (100%)]가 단독적으로 우수한 앨범들이라면 [The Misfit]는 [UNITY] 시리즈나 [D I A L]과 같은 작품들과 엮이면서 이야기할거리가 더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의 연작 싱글들 역시 [The Misfit]의 방법론을 따라간다고 보았네요.
 
 그래서 저도 '최고작'은 [FRAMEWORKS]나 [Ego Expand (100%)]에서 고르겠지만, 현재 서사무엘이라는 뮤지션의 '대표작'은 [The Misfit]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세 작품의 편차가 도드라지게 차이 나이 않는다는 점에서도 기인했구요. 일반적으로 최고작을 고르자는게 이 리스트의 목적 중 하나였지만, 발표한 작품이 모두 뛰어날 경우, 각 작품간의 편차가 크지 않으면 그 중에서 대표성을 보자라는 기준을 가졌습니다.
2023-06-11 05:05:28

장기하와 얼굴들 클리츠도르 우승 벌벌..
초반에 좋아하시는 장르는 일부러 순위를 낮추는 작업도 하셨다길래.. Abstract 안 나와서 의외로 매써드는 안 뽑으시나 했는데 10위 안에 그것도 Abstract가 아니라 Definition of Method 벌벌.. 로로스도 들어오고 1위에서 100위까지 정말 정말 대중들에게 호응이 적은 슈게이징 포스트락의 선전이 돋보이네요 노래 시리즈 앨범 시리즈에 로바이페퍼스 아폴로18 프렌지 비둘기우유 할로우잰이 이름을 올렸고.. 이 정도 기억나네요 도재명도 솔로로 거론하셨던가요?
이센스 앨범은 그렇게 마스터피스라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벌벌.. 들어야지 들어야지 했다가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꼭 들어봐야겠네요

OP
1
Updated at 2023-06-11 15:44:24
도재명의 [토성의 영향 아래]보다는 [A True Travel]이 더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했었네요. 다만 '토성의 영향 아래'는 고려 대상이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이지람이나 이선지의 작품들을 각각 리스트에 올릴 예정이어서 아쉽게 제외.

최근 도재명은 슈게이징을 했던 그의 첫 밴드 잠(zzzaam)을 20년만에 재결성 하였습니다. 지금 매달 싱글을 발표 중인데 올해 연말에 자주 언급될것 같네여.
2023-06-11 09:08:23

좋아하지 않으시는데도 인정할만한 앨범이라니 들어봐야겠네요

OP
Updated at 2023-06-11 15:34:57

약간 오늘 트레블한 맨시티 느낌쓰. 펩 맨시티는 제가 응원하는 팀도, 좋아하는 감독도 아니지만 실력과 업적, 영향력 등으로 누구나 수긍하게 만드는ㄷㄷ

2023-06-11 10:32:12

w.a.n.d.y는 정말 좋은 앨범이죠 해체가 너무 아쉽습니다..

OP
1
Updated at 2023-06-11 21:00:23

이거 들으면서 '아 음악을 좋아하길 참 잘했어'라는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1
2023-06-11 19:27:47

긴 시리즈 마무리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힙합 뮤지션한테 가장 필요한건 인간의 매력? 자기 음악에 대한 설득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센스는 음악적인 성과도 성과지만 서사가 정말... 한국 힙합의 신이 되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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