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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이라는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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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23:48:01

일본 불매운동이라는 유령이 인터넷상의 모든 커뮤니티를, 즉 세랴를 포함한 모든 곳이 이를 논의하려고 불판을 깔았다. 불매운동 지지자치고, 감정적이라고 비난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또 불매운동 지지자 치고, 더 엄격한 불매에 대해, 또는 더 극단적인 불매에 대해 감정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대일 불매운동은 이미 인터넷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 불매운동자들이 인터넷을 향해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불매운동의 유령이라는 소문을 불매 자체의 선언으로 대치해야 할 절호의 시기가 왔다.

 

.... 하지만 저는 불매운동을 하지 않고 지금도 다양한 일제 공산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세랴에서 자꾸 공격받는 "감정적 불매운동자"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답답하여 글을 써봅니다. 이 글은 "불매운동 선언" 보다는, "반-불매운동-비판 선언"에 가깝겠습니다. 시작부터 스텝이 꼬이네요.

 

"불매운동은 감정적이다. 다른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추상적이어서, 그 내용을 다른 문장의 맥락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불매운동이 목적 달성이 어렵다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부끄럽게도 닉네임을 헨리 키신저에게 빌려쓰고 있습니다만, 힘의 강약에 따라 약하면 굽히고 줄 때 받으라는 식의 현실주의 미만의 일차원적 논의보다 국제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상대적 약자에게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것이 명분이고 감정입니다. 팔레스타인이, 모리셔스가, 또 다른 독립한 식민지가, 티베트가, 이외에도 강대국에 맞서서, 지켜야만 할 것이 있는 나라와 그를 이루는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국제사회를 향해 무엇이 정의인가를 물어왔습니다. 오늘날 약자가 강자를 향해 가장 쉽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바로 이러한 도덕과 법에의 호소입니다.

이러한 배경 덕택에, 오늘날 약소국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세계무대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 있어 가장 강렬한 무기는 바로 도덕적 정당성입니다. 우리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미국을 가장 신뢰하는 이유도, 그리고 그렇게 미국이 신뢰를 통해 국제사회를 지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대일로로 대변되는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안하는 중국에 선뜻 줄을 서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오늘날의 국제역학관계를 내려놓더라도, 조약 위반이 문제되는 것 같은데 일본 정부가 즉각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대항조치countermeasure를 실행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이러한 문제는 양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조율하여 해결하는 것이 통상적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들의 여론은 반드시 반영됩니다. 대표적 예시로 한미 FTA에서의 쇠고기가 있습니다. 당부는 별론으로 하고 그러한 움직임은 쇠고기 협상 내용을 일정부분 수정하였던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 국민이 할 수 있는 최대가 이런 종류기도 하구요.

둘째는 불매운동이 이성을 통한 논리적 행동이 아니라 감정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계산이 틀리고 형량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지고지순의 이성 사고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성만의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동의한 과학적 논리체계에 따른 인과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불매운동에 관해 이러한 논리체계에 따른 완벽한 계산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저는 의문입니다. 특히, 단지 나 개인 하나의 행동이 한일을 넘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누가 계산할 수 있습니까? 어떤 입장이건, 우리 뇌가 무의식에 형성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나의 행위의 정당성은 내 마음속의 직관이 아니라 설득력을 인정받는 논리와 그를 지지하는 자료에 의하여야 하지, 몽롱한 역사적 사실이나 수상할 정도로 단순하게 사고하는 가상의 불매운동자에 의하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감정은 오늘날 바로 그 국제법에서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국제사회는 국가들의 관행과 법적 확신opinio juris에 의하여, 또는 명문화된 조약에 의하여 과거에는 금지되지 않았던, 많은 인도적 규율들을 만들어냈습니다. ICCPRICESCR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며, 고문금지협약 및 그에 관련된 국제관습법을 통해 생명과 신체의 존엄을 보호할 의무를 짊어졌고, 국제연합헌장과 그에 관련된 국제관습법을 통해 전쟁을 종결하였습니다. 이렇게 발달한 인권의식은 영국이 R v. Bow St Magistrate에서 제한적 면제이론을 통해 피노체트를 단죄하게 만들었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중대한 범죄를 지은 자들에게 마땅한 형벌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국제질서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더 이상 이성 없는 자리에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ICCPR과 같은 국제조약을 고려했을 때,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하고 그러한 국가실행이 그 스스로에 의하여 철회되지 아니하고 국제관행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이러한 행위는 어린애 떼쓰기가 아니라, 국제법상 국가관행의 증거를 남겨 국제법의 변화까지도 목표로 하는, 이성으로 빛나는 행위로 보입니다.

 

셋째는, 불매운동이 목적에 비해 과대한 비용을 지출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추후 관계개선이 있은 뒤를 도모하자는 이러한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키신저라는 닉네임을 사용해서 또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국제정치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위, 장기적으로 손해가 되는 행위라는 것은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계산에 능하고 가장 완벽하게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자신했던 남자가 헨리 알프레드 키신저이고, 그는 미국 시장의 확대와 공산주의 진영 확장 저지를 위해 무능한 민주 정권대신 아우구스트 피노체트와 호르헤 비델라를 비롯하여 제3세계에 독재자들을 앉히고 그들을 풍족하게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사라진 지금 제3세계 곳곳에 남은 상처는 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헨리 키신저가 그의 선택으로 행한 인명을 죽이고, 고문하며, 기타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행위들을 방조, 조장 및 원조, 지지,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교사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없었다고 하여서 반드시 더 좋은 결말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돌아보니, 경제 우선이라는 슬로건하의 독재체제는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 위대한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뒤돌아보면 정말로 효과적이었는지 의문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장 같이 독재를 했지만 칠레는 독재자의 기적이 칭송받고 있지만, 옆의 아르헨티나에 앉힌 독재자는 남미 최고의 부국을 아작내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거시경제에서 어떠한 행위가 얼마나 이익이고 얼마나 손해인지 감히 계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정치적 이익까지 함께 고려해야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계산은 일반인의 영역은 결단코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매운동을 한다고 그 행위가 결단코 손해만 가져올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계산의 공포 속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불매운동이 감정적이다-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추후 태도 개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또는 법과 논리와 같은 이성적 체제에 반하여 부적절하다, 또는 달성하려는 목표에 비해 지나치게 큰 것을 희생하여 손해를 자초하고 있다-와 같은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불매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소비가 저의 신념, 또는 경제적 이익에 반한다는 상당한 인과관계 또는 객관적 귀속이 입증되는 경우가 아닌 경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하고, 어떠한 상품이 특정한 국가(그 국가라는 실체에 대한 의문을 포함하여)와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우며, 그러한 인과관계 또는 이익 귀속의 주체를 알지 못하면서 단지 제 마음의 만족을 위하여 저의 소비행위를 규율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문들이 명백히 해결된 경우에 한하여, 어떠한 판단을 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이를 어떠한 운동의 동참이라는 방법을 섣불리 택하여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는 방법은 회피하고자 합니다.

 

야밤에 롤체대회 보면서 쓰는 글이라 엉성합니다. 개인적 주장에 대한 개인적 주장이다 보니 어펜딕스는 준비하지 않았습니다만, 혹시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서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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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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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7 23:59:51

    저도 불매운동을 반대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옛날 사진들을 들고 오거나 조작된 사진을 제시하며 일본제품에 대한 극단적 불매주의자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중국과 구별이 안간다는 주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이 시점에서 제가 확고히 가지고 있는 생각은 "반반불매운동"이라는 것, 그 뿐입니다. 불매운동은 개인의 자발적 의사에 달린 것이고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매국 소리를 들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지만 우매하고 감정적인 대중들의 중국 따라하기 정도로 보는 시선(우에카라 메센)만큼은 참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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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8 00:01:12

    와우.. 좋은글이네요 내일 한번더 정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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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8 00:04:04

    이성과 감정의 영역을 명징히 나눌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도리어 가장 감정적인 것들이 가장 이성적인 것들이 되기도하고 가장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이 감정의 합리화의 불과할 때가 많기 때문이죠. 결국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에 대한 논의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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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8 00:04:42

    불매든 뭐든 그냥 제 소중한 시간 이런걸로 스트레스 받으며 라이프 패턴 바꾸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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