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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과 장년 사이에 느끼는 것들 (개인적인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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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00:33:59

안녕하세요 중년과 장년 사이에서 일도 많아지고, 흰머리도 많아지고, 뱃살도 많아지는 가운데 짬을 내지 못했습니다. 간만에 술 한잔 걸치고 글을 적어봅니다. 취기가 영향을 미쳐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겠네요. 요사이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고자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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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설레지만..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만나기 전 약속을 잡는 것만으로도 설렙니다. 마지막으로 봤던 적이 언제였을까,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까, 예전처럼 정신 놓고 놀 수 있을까 등 많은 생각과 기대들이 교차하며 약속 당일 아침부터 매우 설렙니다.

그러나, 술을 한잔 두잔 마시고 슬슬 피곤해지면, 집에 언제쯤 갈까 하는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정신 잃을때까지 마시고, 다음날 다신 술 마시지 말자며 웃고 다시 저녁에 술 마시던 사이였는데, 이젠 몸에서 받아주질 않는다는걸 압니다.



2. 거절한 만큼 행복해지더라.

직장을 포함한 사회생활에서 내가 거절한 만큼 행복해졌습니다. 나이가 드니 내 한계도 보이고, 살아온 나날들의 후회가 겹쳐서 나라는 인간의 성장과 소득 곡선이 그려집니다. 곡선 범위 바깥의 일들, 부탁들은 거절해야죠. 이젠 밤새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다. 수요일에 밤 새서 일을 하면 목, 금은 버틴다 해도 주말엔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면 와이프 눈치도 보이고, 집안일도 미루게 되면서 나에게 어떤 데미지가 올지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거절하고 적당히 살아가게 됩니다.



3.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회의가 되거나 미팅이 되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상황에 상관 없이 누군가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대충 어느정도 허구가 섞여있구나 하는 견적이 나옵니다. 그 견적이 맞을지, 틀릴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제가 살아온 경험치들이 비추어 ‘대충 그렇겠지’ 라는 결론을 내어버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내가 이러니 다른 사람들도 그러겠지 라는 틀릴지 맞을지 (대다수 틀립디다) 모를 견적을 믿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눈을 뜹니다.


4.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가 첫째, 둘째는 위압감 조성을 위해서

신체적으로, 물리적으로 폭력을 주고 받을 나이는 지났지만, 싸움은 잘하고 싶습니다. 말 싸움에서 밀리더라도 내가 주먹으로 이 xx 조지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한다고 한달에 두어번 갈지말지 모르는 헬스장에서는 매스만 주구장창 키웁니다. 그렇다고 고중량 운동을 하는것도 아닙니다. 허나, 신체적으로 이 사람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들내미가 들어달라고 하면 들 수 있어야 하고, 가끔이나마 땀을 흘려주지 않으면 혈관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헬스장에 가지만, 덤벨을 들면서 모 회사 모 부장 다음에 만나면 쥐어 박아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5. 내 걱정도 팔잔데, 나라랑 회사 걱정이 더 재밌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잘 산다는게 뭔데 그리고 그걸 누가 정의하는데 라고 변만 늘어놓고 나라걱정 회사걱정이 술자리 안주 입니다. 사장님 탕수육 대짜 원래 이렇게 적은가요? 분노하고 다신 오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출근길에 읽은 뉴스기사 토론, 점심시간에 타부서 사람 만나면서 떠든 회사 망한다 조직 개편이다 하는 등의 토론이 훨씬 재밌습니다. 그런 자리가 파하고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 손잡이가 뭐 이렇게 흔들리냐 자리는 뭐 이리 없어 하다보면 공허한 자아가 말을 걸지만..


6. 전문직 부럽다

내가 하는 일.. 젊고 혈기찬 애들이 더 잘한다는거 압니다. 그러니 출퇴근 시간 갖고 조지고, 핸드폰 많이 한다고 조지는 것 밖에 없지요. 체력이 있어야 한번이라도 유관부서 한번 더 찾아갈 수 있습니다. 종종 용역사 관리 차원에서, 업계 동향 파악 차원에서 전문직들 , 이를테면 회계사, 변호사, 변리사, 관세사, 의사 등등등, 만나면 어디서 또 엑셀 기가막힌 매크로를 들고 오고, 어디 세법이 개정되었다고 하고, 통관 절차 변경이 어떻고 늘어놓습니다. 다 새롭기 그지 없지요. 속으로 입만 쩍 벌리고 따발총 처럼 쏘아대는 언변에 눌려있다가, 한마디 툭 던집니다. “용역비 좀 나중에 줘도 되죠?” ..... 참담합니다.



7. 작은 회사에서 오퍼가 온다.

업력은 오래됐지만 변변한 레코드도 없고, 규모도 너무나 작은 회사에서 오퍼가 옵니다. 전문이사 시켜줄게 와서 같이 일하자. 뜯어보면 연봉도 줄고, 2년 계약직 입니다. 밑에 직원도 1~2 명.. 내가 가서 크게 키우자! 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내가 여기서 뭘 어떻게 하라고? 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내 시장가치가 이만큼 이구나.. 라는 결론이 이르릅니다. 참담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꿰어진건지 모를 단추 구멍을 찾아보고 싶은데, 하루 종일 시달린 육체는 그런 사유의 시간을 허락치 않습니다. 눈을 감고 억지로라도 잠에 들고,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합니다.


——

오랜만에 술을 좀 마셨습니다. 저주받은 것 같은 내 인생이 억울합니다. 재주가 없어 잔머리는 좀 굴렸지만, 성실함은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당장 1년 후가 막막합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선택을 잘못 했습니다. 손을 자르고 싶은 선택들.. 내가 너무 밉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 딸 들한테 이런걸 물려주기 싫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신용이, 생산물이, 인구가, 후생이 팽창하는 시대의 종말에 가까워지는 지금 이 시대에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피해자가 양산되는 흐름에 돌 조차 던지지 못한, 앞으로도 던지지 못할 나이기에 여기서 글 하나 싸지르고 내일 또 잊을겁니다. 논리적이지 못한 글 적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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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8-25 00:37:20

1번부터 그동안의 글과는 뭔가 다르다싶었는데..

힘내시길

2019-08-25 00:43:09

2번은 진짜 거절할 때 드는 죄책감 한숟갈 정도면 많은 행복을 가질 수 있더군요 ㅠㅠ 

2019-08-25 00:43:28

화이팅하시죠

2019-08-25 00:43:57

회사생활 딱 1년했는데 벌써 공감되는것도있고 앞으로 이럴거같다라는 부분도 보이네요! 항상모두 화이팅입니다ㅜ

2019-08-25 00:45:28

정독했네요 아직 책임질 게 많지는 않으나 두루두루 공감가는게 많네요

2019-08-25 00:46:44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ㅠㅠ 

응원합니다 ㅠㅠ 

2019-08-25 00:48:28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글이 참 좋습니다

2019-08-25 00:53:42

뭔가 상당수가 공감... 

2019-08-25 00:59:06

형님,,ㅜ ㅜ

2019-08-25 01:02:22

형님 화이팅입니다!!

2019-08-25 01:03:26

이번 글은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힘내시길 응원합니다ㅠㅠ

2019-08-25 01:04:18

화이팅

2019-08-25 01:04:55

파이팅합시다.. 우리..

2019-08-25 01:06:21

아이고 형님.. ㅠㅠㅠㅠㅜ 덤벨 열심히 드셔서 부장님을 콱!!!! ㅠㅠㅠ

2019-08-25 01:08:53

 아직 경험이 미천하지만 공감이 많이되네요....화이팅입니다....

2019-08-25 01:10:11

힘 내시고 건강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2019-08-25 01:18:34

마지막 문단에서 느껴지는게 많습니다.
글 감사드리고, 주제넘지만 그럼에도 힘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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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01:19:12

형님. 잘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알고보면 다 그냥 왔다가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 사이에 가족들과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9-08-25 01:22:44

하...
아버지들은 정말 대단하신듯

2019-08-25 01:23:07

방금 술기운에 알딸딸했던게 한번에 깨지는 느낌

2019-08-25 02:12:16

논리왕성님 존경합니다

2019-08-25 02:31:08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2019-08-25 02:46:02

아직 어려서 뭘 잘모르는지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삶의 깊은 지혜가 묻어나는 글이네요. 정독하고 갑니다.

2019-08-25 03:04:34

힘내세요.. 근데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읽다가 빠져들어 감동이요 ...

2019-08-25 06:55:11

명문 ㅠㅠ

2019-08-25 10:45:28

청년인디 벌써 공감되분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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