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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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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03 22:06:04

조국도, 검찰도 아니고 강고한 법 권력이 조국대전의 승자가 아닐까...하는 생각. '주리토크라시(법의 지배). 조국이 유죄로 판가름 나면 검찰로 상징되는 강고한 법 권력은 제어받지 않겠죠. 개혁이 좌초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기 때문에. 조국이 무죄가 되도 문제는 잔존합니다. 그저 무죄라는 이유로 조국이 정당성의 외피를 입을 것이기 때문에. 일전에 김굴비님이 쓰셨듯, 조국은 법이라는 협애한 틀로 다룰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386 엘리트가 가진 도덕성이라는 상징자본을 두고, 그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한 합의가 모아져야 할 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검찰이 나서게 되면서 조국 유죄냐, 무죄냐에 이목이 집중됐죠. 팩트를 확인하고 문제를 확정할 '정초적 권력'이 또 검찰에 이양됐습니다.이렇게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결에 너무 큰 판돈을 거는 사회는 갈등이 조정되지 않습니다. 다만 봉합될 뿐이죠.

한국 사회의 흔한 그림입니다. 일례로 박찬주 전 대장은 직권남용을 적용할 법리가 없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죠.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공관병 갑질 사실은 인정됐지만 그는 당당합니다. 법이라는 '공인인증서'를 들고 있어서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가 처벌받는 건 당연하죠. 그러나 법이 분쟁해결 절차의 모든 것이 되는 현실은, 민주적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강화할 뿐이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갈등이 조정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오히려 승자는 의기양양하고 패자는 불복하는 그림만 연출할 공산이 크겠죠.

조국 이후 한국 정치의 '법 경로의존성'은 해결되지 않을 듯합니다. 앞으로도 갈등이 여의도가 아니라 서초동에서 봉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국 사태로 고위공직자의 거취를 합의 아니라 수사와 판결에 의존하는 선례가 재생산됐습니다. 향후 정권들은 도덕적 문제가 심각한 인사도 '못 먹어도 일단 고!'를 보다 쉽게 외칠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조국 사태처럼 뒷감당은 수사와 사법 당국에 맡기면 되겠죠. 당장 검찰개혁에 성공해도 한국 정치는 다시 뒷걸음질 칩니다. 지금같은 정치 문화에선 공수처가 법이라는 잣대로 정치를 대체할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커 보여요. 온갖 빌미로 고위공직자와 가족이 공수처 문앞을 드나들겠죠. 검찰권은 줄어들겠지만, 더 큰 범주인 법 권력의 위세는 팽창하는 역설입니다. 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갈등이 광장으로 번지고 서초동에서 종결되는, 익숙하고 피곤한 레파토리의 반복입니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가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한 이유겠죠. 오래가는 합의를 생산하는 갈등의 순기능에 주목하자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정치가 워낙에 기능부전이니 딱히 낙관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네요. 툭하면 원내의 일을 장외로 끌고나가고, 삭발하고, 광장정치가 불가피한 선택지인 양 구는 모습을 보니 더... 이런 사회에서 시민으로 사는 건 너무 피곤합니다. 갈등이 제도권에서 해결되지 않으니 분노로 변하고 시민들은 광장으로, 광장으로 나서는 거겠죠. 넘모넘모 피곤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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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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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03:33

글 잘 읽었습니다. 슬프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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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03 22:05:39

한국 사회의 흔한 그림입니다. 일례로 박찬주 전 대장은 직권남용을 적용할 법리가 없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죠.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공관병 갑질 사실은 인정됐지만 그는 당당합니다. 법이라는 '공인인증서'를 들고 있어서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가 처벌받는 건 당연하죠. 그러나 법이 분쟁해결 절차의 모든 것이 되는 현실은, 민주적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강화할 뿐이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갈등이 조정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오히려 승자는 의기양양하고 패자는 불복하는 그림만 연출할 공산이 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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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고,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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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06:27

도덕이냐 아니냐는 얘기가 끝났고 범법이냐 아니냐의 얘기까지 왔는데 사실 여기선 말씀하신대로 뭔 결과가 나와도 패배자는 걍 국민이죠... 안타깝습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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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07:27

아직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도덕, 혹은 도덕적 기준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법 = 도덕' 이라는,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적지 않은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뭐 그러네요... 어쨌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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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07:34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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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20:24

제가 제일 무서운 상황은 조국 본인은 기소도 안 되거나 무죄, 정경심은 일부 잡죄(?)만 유죄받고 사모펀드 같은 큰 거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나오는 거네요. 한 쪽은 일부 유죄 받은 부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고, 또 한 쪽은 본인은 무죄 아니냐 또는 대부분 무죄 아니냐 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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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24:01

이미 법이 해결할 단계도 사실 지나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 견중업님이랑도 얘기 했었는데 이미 사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이건 자업자득)이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번에 광화문 vs 서초 같은 사태 재현될 것. 도덕성 논란 끝난 시점에서 걍 빠른 속도로 손절해야했는데

 

진짜 이거 세랴에서 몇 번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대체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진짜 1도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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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03 22:26:34

뭐 까놓고 말해서 법질로 먹고 산다는 변호사들도 사건 지면 반농반진으로 판사가 뭘 모른다, 심하면 돈 받았다 드립 치는 마당에...(그 사람들이야 말로 판사의 위대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일텐데 말이죠...연수원에서 어떻게 하던 사람들이 가는 자리인지 모를 리가 없는데 ㅋㅋ) 법률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면 믿어줄리가 없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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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03 22:33:49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딱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공학에 의거한 정치적 판단.

조국 사태 초기 때 온오프에서 얘기됐던 주제 하나가 생각나네요.

'조국 임명을 강행해야 지지율이 올라갈까, 아니면 사퇴시켜야 지지율이 올라갈까.'

결국 현 정부는 전자를 택했고, 그로 인한 결과가 그들의 지금 그리고 향후 정권 유지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했을테니 계속 몰아붙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정치인들 다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공감이 되어요.

결국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그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들 역시 기득권이고 그들이 여태껏 누려온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정치라고 느껴지니까요.

착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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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35:42

그 정도의 정치공학적 판단이라도 했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국 임명은 지지율 하락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은데(특히 무당층) 단기간이 아니라 엄청 뒤의 미래를 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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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39:12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현 민주당 당원들 중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거스르거나

그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 같으니

그냥 대통령님이 하시는대로 어떻게든 맞춰 따라가야겠다...라고 생각한 결과가 이걸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ㅎ

엄청 뒤의 미래를 그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엄청 뒤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정도라면 지금의 사태는 초래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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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22:21:28

공감 많이 되는 글입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정치권에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을지 참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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