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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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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15 01:52:40

비행기 탑승 중이어서 설리 소식을 이제서야 봤네요. 팬도 안티도 아니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유독 연예인들에 대해서 감정적인 공격이 많은 것 같아요. 몇십 년만에 아이즈원 아이돌 덕질을 다시 하면서 안티 댓글에 같이 전전긍긍하게 되어서.. 완전히 100% 들어맞지는 않지만, 가끔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가 생각나곤 합니다. 연예인들도 때론 그냥 우리 같은 사람들인데 어리기도 하고..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고인이 가는 길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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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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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 at 2019-10-15 02:53:36

    저도 50원짜리 갈비에 분개하지 않는지 종종 돌아보려고 하는데 참 이게 말처럼 쉬웠으면..
    속상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는지

    OP
    1
    2019-10-15 03:00:58

    누구 말마따나 작금의 사회는 분노사회인가봅니다.. ㅜ

    1
    2019-10-15 03:58:38

    ㅜㅜ 공감이 많이 가는 좋은 글이네요 저도 오늘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고 안 좋습니다 ㅜㅜㅜ

    1
    2019-10-15 09:09:48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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