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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마그네시아 전투, 셀레우코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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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26 11:40:48

 

"나의 군세를 보시오. 이 정도면 로마를 상대하기에 충분하겠소?"

 

"대왕이시여. 로마 놈들이 매우 탐욕스러운 놈들이기는 하나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로마와의 전쟁을 결심한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 왕국의 왕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와 객장 한니발 바르카의 문답(그러나 이 문답이 역사서에 실리는 일은 없었다)


 


마그네시아 전투는 당대 지중해를 제패해 나아가던 고대 로마 공화국이 동부 지중해의 패권까지 확립하여 말 그대로 '마레 노스트룸'을 구축하는 상징적이고도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양 측의 군세, 네임드도 굉장히 쟁쟁했지요. 로마 공화국의 최정예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최정예가 모두 결집한데다, 당대 로마 장성, 장교진들은 포에니 전쟁을 통해 한니발-카르트하다쉬트(카르타고)와 주고받은 무수한 공방,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과의 발칸 반도 패권 전쟁을 통해 쌓은 엄청난 숙련도를 자랑하는 실전파들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최고로 일컬어지던 스키피오 형제(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시아티쿠스. 다만 아프리카누스는 병 때문에 앓느라 지휘는 안하고 거의 조언만 했습니다.)가 최고 지휘관으로 나섰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 지휘관 역시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래 헬레니즘 세계관 군주로써의 최고의 호칭이라 할 수 있는 '메가스'의 호칭을 다시금 구현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판도를 정점으로 이끌던 국왕 안티오코스 3세 본인에 나름대로 유능했던 차남 셀레우코스 4세에다 비록 일개 조언자로만 쓴게 문제이긴 하지만 무려 그 한니발 바르카(3차 포에니 전쟁 패배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로 망명)까지 포함된, 그야말로 당대 지중해 세계의 드림팀 매치였습니다.

 

전력은 셀레우코스 왕조 쪽이 더 우세했는데 로마 군 쪽은 최대치로 잡아도 5만, 최소치일 경우 2만 5천~3만 가량이었던 반면,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세는 최소치가 5만에 최대치가 7만 5천에서 많게는 10만까지 추산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전투에서 그 전까지만 해도 승승장구를 달려오던 안티오코스 3세는 결정적인 판단 미스를 두 차례 범하며 거짓말같이 참패해버렸고 로마군의 사상자가 부상자를 줄잡더라도 많아야 1천여명 남짓인 반면 셀레우코스 왕조 군세는 거의 만명 단위의 사상자를 내며 깨강정이 나고 말았습니다.(한니발 : 아이고난1)

 

먼제 양 측의 군제 편성 기록에 의거한 편제 형태를 보면 로마 측의 경우 마리우스 군제 개혁 이전의 시점인지라 여전히 폴리비안 군제 상태였기에 종래의 하스타티, 프린키페스, 트리알리 삼단 편제를 유지하였고 이러한 종래의 보병 위주 전력에 용병 기병대 3~5천 가량을 운용하는, 굉장히 정석적이고 심플한 '전형적인 고대 로마 공화국군' 스타일이었습니다.(여담으로 더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마 군단병[ㄹㅔ기오나리] 시스템은 마리우스 군제 개혁 이후의 얘기입니다.)

 

반면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세는 당대 서아시아 최대의 판도를 자랑한 제국의 군세답게 아귀라스피다이(귀족들로 구성된 최정예 팔랑크스. 소위 은방패 팔랑크스)를 중심으로 막강한 팔랑크스 군단과 대규모 켈트 전사(당시 켈트계 종족들은 유럽 뿐이 아니라 중동으로도 대규모로 몰려들어가 난동을 부리거나 아예 정착했는데 결국 모두 토착민들에게 흡수되었지만 당시까진 켈트 정체성을 유지하던 부족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식 친위 기병대 수천, 사르마티아-이란 유목 세력들의 기마 갑옷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어낸 셀레우코스 카타프락토이 수천, 코끼리 수십마리, 낫전차 수십대 등등 그야말로 제국 내에서 기용 가능한 전력을 올스타 드림팀으로 뽑아낸 다채롭고 호화로운 병력 구성을 자랑했죠.

 

문제는 안티오코스 3세는 한니발이 평가해준 것처럼 저 '로마를 때려눕히기에 충분해 보이는' 호화찬란한 병력의 모든 것을 다 활용하고 싶어했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요소를 너무 도외시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전차 전술은 정말 하아아안참 옛날에 고대 이집트를 정복하던 시기의 하카마니시 파르스(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이 한번 파훼해보인 적이 있고 심지어 그 파르스 제국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대패할 때에도 똑같이 전차 쓰다가 마찬가지로 파훼당했을 정도로 구 시대의 유물에 가까운 물건이었지만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 군에게 낫전차를 써먹어보려다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지요. 전차야 그냥 전차 수백대를 잃은 정도 선에서 끝나니까 그렇다치는데 코끼리 문제까지 가면 얘기가 심각해집니다.

 

훗날의 사산 조 이란 제국이나 인도 국가들과는 달리 코끼리 활용 노하우가 상당히 미달하는 편이었던 헬레니즘계 중동 왕국들은 코끼리 부대를 쓰는 건 좋은데 종종 배치를 이상하게 하곤 했는데 안티오코스 3세는 코끼리를 하필 팔랑크스 보병 대열 중간중간에 멋있게 배치한 통에, 이미 카르타고와 한니발을 상대하면서 코끼리 대처 노하우를 얼추 익혀놓은 로마 병사들이 의도적으로 코끼리들을 놀라게 만들면서 코끼리들이 알아서 날뛰어 팔랑크스 대열에 균열을 일으키게 만들었죠.

 

전근대 보병전에서 대열은 무조건 핵심 중의 핵심, 대열이 일단 한번 제대로 무너지면 100만 대군조차도 대열을 유지하는 정예 1천 병력에게 무조건 쳐발린다는 공식을 생각하면 저 코끼리 배치 방식은 너무나 위험하고 안이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메가스 호칭을 내기바둑으로 딴 건 아닌지라 로마의 기병대를 가볍게 압도하는 강력한 헬레니즘 친위 기병, 동방 용병 기병, 셀레우코스 카타프락토이라는 초중무장 수천 기병대로 마치 과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병을 이끌고 압도 우세 상태이던 파르스 제국의 대열과 대열 사이의 틈을 찔러 다리우쉬(다리우스) 3세를 도망치게 만들어 승리를 거머쥐듯 로마 기병대를 압살하고 로마의 측면을 찌를 기회를 포착했죠. 여기서 알렉산드로스였으면 기가막힌 측면 찌르기로 로마 공화국군을 파멸로 몰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뭘 잘못 먹었는지 패주하는 로마 기병대를 지나치게 계속 쫓기 시작했고 셀레우코스 왕조 군세의 우익은 자신들의 대왕과 정예 기병대가 저 멀리~~ 가버리는걸 따라가느라 대오가 엉망진창이 나버렸지요.

 

로마 군세는 대오가 저런 식으로 알아서 무너지던 셀레우코스 왕조 군세를 여유롭게 각개격파하며 때려잡기 시작했고 너무 가다못해 로마군 본진 캠프까지 가버린 안티오코스 3세는 자신이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채며(;) 결국 황급히 퇴각해버렸습니다.(??? : 로마는 기병대 상대할 줄 모르는 새가슴. 고구려가 짱인디염) 결국 마그네시아 전투는 이렇게 어이없게 로마의 대승으로 끝나버렸고 한니발은 이후 음독자살하면서 그 풍운아로써의 삶을 끝마치게 됩니다.

 

안티오코스 3세는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평화 조약에 사인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제 2의 알렉산드로스를 꿈꾸며 발칸반도-헬라스 진입을 노리던 대전략이 산산조각나버렸고 로마 공화국에 의해 거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대한 영향력까지 먹혀버리고 그 이서로 넘어가지 못하게 되어버린데다 로마에게 엄청난 양의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틈을 타 이란계 유목민족이던 팔라바(파르티아)인들이 제국 동북부에서 준동하고 박트리아(그리스 지배층-이란, 북인도계 피지배층)가 다시 책동을 벌였으며 과거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한 차례 멸망당했던 하야스단(아르메니아)이 다시 독립하는 등 판도가 엄청나게 깎여버렸죠.


안티오코스 3세는 당장 저렇게 동부에서 깽판을 치는 세력들을 막아야 했고 거기에 로마에게 갚을 배상금도 구해야하다보니 다시 한 번 '대동방원정'을 준비했지만 이란 고원의 어느 한 바알 신전으로 들어가 배상금을 갚을 겸, 신전 약탈 명령을 내렸다가 그 순간 튀어나온 암살자에게 살해당하면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래도 원체 체급이 거대한 제국이다보니 썩어도 준치라고 안티오코스 3세의 후계자들인 셀레우코스 4세, 안티오코스 4세 등은 전부 문무겸비의 준수한 군주들로 팔라바 인들을 공격하여 때려눕혀 다시 복속시키고 박트리아를 공격하여 비록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다시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게 만드는 등 일시적으로 제국을 회복시키긴 했지만 하야스단의 성장을 막지 못했을 뿐더러 안티오코스 4세 시절에 슬슬 들고 일어나던 이스라엘 인들의 종교-민족 독립 투쟁을 겪느라 내부적으로 끙끙 앓는 상태를 이어나갑니다.(유다 마카베오와 마카비안 전쟁)


이미 마그네시아 전투에서의 참패로 중동 헬레니즘 국가들의 고질병이던 인력난(군사 인력의 핵심이 소수 지배층인 그리스인이므로 그리스인이 지나치게 한번에 많이 죽을 경우 믿고 맡길 군사 인력이 부재해짐. 피지배 민족들을 군사 인력 중심으로 끌어쓰더라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피지배 민족들과 문화 융합하는게 최선이겠지만 그리스 문화 중심주의를 고수했기에 불가능)은 셀레우코스 왕조를 좀 먹어들어가고 있었는데 이걸 내부적인 개혁으로 완화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시간마저도 왕위 계승 내전으로 날려먹으면서 셀레우코스 왕조는 데메트리오스의 찬탈 때에 확정적으로 쇠퇴하고 맙니다.


셀레우코스 4세(안티오코스 3세의 차남)는 유능했지만 배상금 갚느라 일평생 허덕이다가 암살당했고 그 동생인 안티오코스 4세가 왕위를 차지하고 어느 정도 제국을 재건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안티오코스 4세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인 안티오코스 5세가 즉위하자 셀레우코스 4세의 아들로써 자신이 정당한 왕위 계승자라고 생각한 데메트리오스가 사촌인 안티오코스 5세를 살해한 뒤에 왕위를 찬탈하였으며 이후 각지에서 '니가 왕이냐? 그럼 나도 왕임ㅋ' '나 안티오코스 4세의 숨겨진 아들임!' 이랍시고 사방팔방에서 반란이 터지면서 데메트리오스도 일평생 반란이나 막다가 골로 가야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니 당연히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긴 어려웠고 데메트리오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2세의 시기에는 이미 이란 고원 전체가 팔라바(파르티아)인들에게 정복당한 상태였습니다. 하야스단(아르메니아) 왕국은 중흥을 거듭하며 대성장, 과거 자신들을 멸망시켰던 셀레우코스 왕조를 모욕하며 지속적으로 시리아를 침략하였지요.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는 60여년간 무려 15명의 왕들이 반복된 내전 속에서 등극하고 폐위당하기를 반복하며 급속도로 쪼그라들며 폭망하였습니다.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셀레우코스 왕조가 승리했다면 어땠을런지는 너무 if라 알 수 없긴 해도 로마가 마레 노스트룸을 구현하며 지중해 세계 단독 최강자로 군림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중동의 통일자였던 하카마니시 파르스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이란인 지배자들이 아닌 그리스인 지배자들이 그리스 문화를 향유한 채로 중동을 지배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이래, 비록 그의 제국은 그의 사후에 뿔뿔이 분열했지만 디아도코이(계승자) 왕국들(디아도코이 왕조들의 시조들은 하나같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들이었습니다.)은 그리스인 지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동부 지중해와 중동을 계속 주름잡았으며 그 중에서도 셀레우코스 왕조는 단연코 가장 광대한 영토, 가장 거대한 군사력을 자랑했지요.

 

다만 로마 공화국의 당시 뿜어져나오던 물량과 이미 카르타고를 제압하면서 얻어낸 서부, 중부 지중해 독점 무역의 압도적 부를 생각하면 로마는 마그네시아에서 패전하더라도 대량의 병력을 수 차례 더 동원할 수 있었고 따라서 안티오코스 3세가 설령 마그네시아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가 꿈꾸던 그리스 전체 지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나톨리아 대부분은 계속 점유했을테고 아마 그 부근에서 로마와 대치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겠으며 한편 그리스 인력이 축나지 않았을테니 큰 혼란 없이 전력을 유지하면서 팔라바, 하야스단, 박트리아를 억제-제압할 수 있었겠지요. 오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그리스-이란-시리아 융합으로 중동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문화권이 형성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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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1-26 11:26:40

로마의 실전경험이 지휘관부터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너무 압도적이었음.

그동안 겪어온 전투의 양과 질이 너무 높아서

집정관 10여명이랑 병사 수십만명 죽어가면서 익힌거니..

OP
Updated at 2020-01-26 11:34:21
사실 셀레우코스 왕조 군세도 100여년에 걸친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실전 경험이 적은 군세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와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는 거의 운명의 라이벌급이었죠. 거기에 당시가 켈트 종족 대이동 끝물 무렵이라 켈트 칭구들이 중동까지 쳐들어와서 온갖 깽판을 치고 있었고.. 여하간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세는 당대 최강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로마는 저 병력이 전멸해도 저만큼 다시 뽑아낼 여력이 충분했지만 셀레우코스 왕조는 본문에서 언급한 특유의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는 인력난 때문에 마그네시아 같은 치명적인 참패를 당해서 인력 손실이 걷잡을 수 없어지면 그만한 수준을 다시 짜내기가 어렵다는 엄청난 단점이 있었죠.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안티오코스 4세 시기에는 얼추 외형적으로 그만한 수준을 다시 짜내긴 했는데 이후에는 내전으로 폭망행
 
물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살아생전 시도했던 것처럼 피지배층(시리아인, 이란인)과의 융합을 시도해서 피지배층과 지배층이 민족적으로 구분되지 않게 해서 인력난을 해소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건 그리스 지배자들이 제대로 시도하질 않았지요. 사실 그것이 팔라바 제국이 굉장히 스무스하게 이란을 집어삼키고 큰 피지배층 반란 없이 이란 제국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를 들자면 제가 강원도인 피지배층이라도 일본인 지배층보단 경기도인 지배층을 환영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일테니 말이죠
2020-01-26 12:00:33

셀루시드니뮤ㅠㅠ

OP
2020-01-26 12:07:51

옛날에 롬토1 EB 모드할 때에 중동 쪽 팩션 안하고 유럽 쪽 팩션할 경우, 대충 유럽 정리하고 중동가보면 거의 항상 동방을 은색으로 물들인 초거대 중동 통일 셀게이가 금갈 풀군단 열개씩 보내면서 엄청난 최종보스 압박감을 선사해주던 기억이 나네요

2020-01-26 12:14:35

바닐라하면 맨날 젤 먼저 망하는 호-구시드 ㅠ ㅠ
카타프락토이랑 곡길희를 둘 다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팩션이라
잘 먹은 ai로 만나면 어마무시한 압박이

OP
2020-01-26 12:17:16

롬토2에서도 냅뒀을 때 운 좋으면 중동 다 먹고 패왕되긴 하는데 플레이어가 조금이라도 겐세이질 놓으면 원체 다굴 맞기 쉬운 위치라 스노우볼처럼 망하더군요; 뭐 어차피 망해도 보통 그 자리를 프톨레마이오스가 먹는지라 은색 웨이브 대신 파란색 웨이브(EB 모드에선 노란색)가 오는건 똑같지만 ㅋㅋㅋ;

2020-01-26 12:19:54

기본적으로 굉장히 오픈된 위치라 (거의 수춘블러드 수준) 안티오크의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망하기도 쉬운지라 진짜 바닐라에선 거의 무조건 제일먼저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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