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잡설)2차대전 독일보다 1차대전 독일이 훨씬 승세가 있었다
저 제목은 단순한 전력 통계만을 두고 거론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바로 그 통계와 실제 결과물의 격차가 전쟁, 특히 현대전이 단순 통계로만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너무나 많은 변수들로 인하여 예측이 거의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요. 실제로 전력 통계만 보면 해당 통계 자료들을 종합한 결과물 예측 상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반년 내로 북베트남과 베트콩을 박멸해야했습니다. 전황은 전~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구요.
여하간 단순 전력 수치만 보면 1차대전 독일제국군은 당시 무소불위의 세계 1위 최강 육군국으로써 한 전선에만 무리하면 300만의 병력을 투여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에 상비, 예비군 전원 포함해서 1300만의 전력을 자랑했는데 이는 서부전선에서 독일을 막아내는 핵심이었던 프랑스군의 두배(한 전선 투여 한계 120~150만, 총 전력 700만 안팎)에 육박하는 수치였습니다.
반면 1차대전의 핵심인 서부전선에서 독일을 맞상대해야할 프랑스는 이미 왕년의 챔피언 자리는, 유럽 판도에서는 독일에게, 세계 식민지 판도에서는 영국에게 1위 자리를 애진작에 내준 콩라인 중의 콩 말 그대로 홍진호의 위치에 있었지요.(정확히 말하면 세계 식민지 판도는 말고불변의 영국 1위, 프랑스 2위였으므로 그냥 시작부터 콩라인이었지만)
열강 후발주자로써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인구가 폭증하던 독일과는 달리 열강 선발주자로써 이미 100여년 전에 영국과 함께 세계를 제패하다시피한 이후로 꾸준히 저성장과 저출산, 산업 성장 둔화세를 겪던 프랑스의 인구는 당시 이미 독일에게 추월당한지 오래이고 영국한테도 추월당하네 마네하는 판국이었던데다 보불전쟁에서의 참패로 인한 이미지 실추로, 세간의 사람들 중 프랑스군이 자신들의 두배를 상회하는 저 강대한 독일제국군을 막아내리라 기대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독일 제국군은 내실이야 어떻건 간에 군사 교리, 대전략 계획 면에서도 프랑스나 러시아를 훨씬 상회하는 발전된 체제를 갖추고 있었지요. 제대로 된 군사 작전 계획 절차도 없던 프랑스나 아예 귀족 지휘관들의 주먹구구식 판단에 의존하던 러시아에 비해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히 정교한 전략 계획을 짜고 플랜을 차근차근 실행시켰던 것이 당시 독일 제국군이었으니 1차대전에서 독일군이 거의 모든 전선에서 교환비 우세를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겠습니다.
또한 독일 장비, 훈련량의 질적 수준도 충분히 세계 제-일!을 외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1:1로 육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이길 나라는 단 한 나라도 당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참고로 그때까지의 미국은 '어린 군대'로써 경험도 없고 미국 본토가 위협받을 일은 거의 없었던지라 굳이 유럽 열강들처럼 군비 증강에 치중할 이유는 없었기에 1차대전 시작 직전 고작 200만 남짓의 '총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전쟁 시작 시점에서 미국은 독일의 상대가 전혀 될 수 없는, '약한 육군'의 나라였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미국이 1:1로 이길 수 있는 유럽 열강 자체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기껏해야 이탈리아하고 그나마 또이또이했을런지. 물론 체급이 깡패라고 참전을 결정하고 대량 징발을 개시하자 그 두배인 500만 가량으로 총전력이 급상승하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프랑스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수준이었고 서부전선에서의 미군 단독 작전에서 미군이 보여준 풋내기스러운 모습(전쟁에 통달한 상태인 독일제국군에게 육지 총력전에서 풋내기나 다름없던 당시 미군은 실컷 농락당했던)을 고려하면 질적으로도 기대할만한 면모는 별로 없었습니다. 따라서 단순 계산으로 만약 미국이 유럽과 붙어있는 형태이고 그러면서도 저런 전력 수준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면 독일이건 프랑스건 1:1로는 1년내로 미국을 밀어버릴 수 있었을 겁니다.
이는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1차대전은 결국 미국이 참전해서 이긴 것'이라는 것과는 꽤 다른 통계 수치임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지요. 물론 춘계대공세가 결국 좌절되고 뒤이어 미군이 참전하여 한달에 25만씩 지원병력을 프랑스-영국 연합사령부에 배달하자 이게 독일의 전의를 꺾어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미군 병사들의 전의는 아주 훌륭했고 프랑스 장성들은 이를 크게 칭찬하며 미군 병사들을 잘 운용한 편이었지요.(1차대전 서부전선 연합군의 최고사령부는 명목 상이야 프-영 연합 체제이지만 사실상 프랑스 군 수뇌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형태였고 영국 지휘관들은 이에 잘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아니꼬와서 말을 잘 안듣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1차대전의 미국군은 속된말로 별로 한 것은 없지만 킬딸은 제대로 친 셈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람들이 킬딸을 게임에서 볼 때에야 욕하는거지 실제 전쟁에서는 제대로 킬딸칠 것도 못쳐서 결과가 뒤집히는게 부지기수이니 킬딸 잘 치는 것도 칭찬은 충분히 받아야 마땅하다 하겠네요. 또한 이러한 1차대전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 육군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미국에게 엄청난 이득이 되었습니다.
한편 동부전선으로 넘어가보면 단순 수치 상으로는 총합 전력 1200만의 전력이었던 러시아 제국이 1300만의 독일 제국과 능히 육군력을 겨뤄볼만 하긴 했습니다. 문제는 전쟁 극초반부 독일 장성들이 당시 러시아를 '허접한 프랑스ㅋㅋ, 그보다도 더 허접해서 수만 많은 거적데기 반쪽군대인 러시아군ㅋ'라고 자만하며 러시아군을 매우 우습게 여긴 것처럼 러시아군의 장비, 화력의 질적인 수준은 독일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도 동부 전선에서 평균적으로 독일군과 러시아군은 1 : 1.3 내지 1 : 1.4의 교환비를 내었고 핵심 전선에서는 심각하면 1 : 2.5의 교환비까지 벌어질 정도로 러시아군은 처참하게 독일군에게 털렸으니 1:1로 붙는다고 가정한다면 당시의 러시아 제국군도 독일 제국군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지요.(참고로 프랑스, 영국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평균적으로 1 : 1.1의 교환비를 보였습니다. 1.1 쪽이 프랑스, 영국군. 종종 영국군 단독 작전으로 넘어가면 1: 1.5의 처참한 교환비가 발생하기도..)
그러나 이러한 통계와는 별개로 그 내실에서는 오히려 막강한 전의를 보여주던 프랑스군, 러시아군과는 달리 독일군의 내부 트러블이 상당하였는데 이는 프로이센 왕가와 귀족집단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독일을 통합한 독일 제국 특유의 '귀족 장교, 평민 부사관-병사의 대립'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진 것이 한몫합니다. 뭐 훗날 2차대전의 일본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긴 한데 1차대전 독일제국군의 병영부조리와 구타 가혹행위는 유럽 열강 군대들 중에서는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고 이는 그만큼 부조리와 구타가 아니라면 귀족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형편없는 동기에서 기인하는 평민 병사들의 낮은 전의를 고취시키기가 꽤나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훗날 2차대전의 일본군도 마찬가지로 민주정 수호, 국민 수호와 같은 전의를 자발적으로 고취시킬만한 동기가 전혀 없던(천황과 귀족 장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형태였으므로)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어 병사들의 전반적인 전의 미비, 동기부여 저하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고 일본 군부가 이를 타개하고자 극도의 부조리와 구타로 병영 질서를 유지하려 들게 되었으니 은근히 비슷한 면모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 1차대전의 프랑스군은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한 굴욕감으로 인해, 당시 민족주의가 유럽을 잠식해가던 상황이었으니만치 그만큼 민족적 자존심에 큰 흠집이 났다고 스스로 여겨 일개 병사들의 복수심조차 대단했고 결국 제 2 제정을 붕괴시키고 민주정과 민주주의를 재구축했으며 이 대의에 기반하여 국민과 국민의 정부를 수호하겠다는 자발적인 동기가 병사들에게 전반적으로 강하게 작용하여 전의 고취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러시아군은 사실 부조리와 구타는 독일군 못지 않기는 했지만(러시아도 귀족 장교, 평민 병사의 대립 구도는 같았으니) 독일에 비해서 교육 수준이 낮던 당시 러시아 평민들은 그만큼 자유주의 사상에 미비했던지라 '진심으로' 황제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훨씬 강했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있던 독일 평민들에 비해서 통제가 훨씬 쉬운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평민 출신 러시아 군인들은 대개 보드카 한 잔 주면 눈이 돌아가서 차르 만세를 외치며 우라돌격을 해댈 정도로 특이하지만 강렬한 전의를 보여주었지요.
이는 독일군이 아무리 질적인 우세를 앞세워 러시아 군인들을 동부 전선에서 마구 도륙내더라도 독일 장성들이 예측한 '오합지졸 러시아군을 초전박살내면 슬라브놈들 지레 지려서 화평 협상이나 하려들겠지 뭐ㅋㅋ' 와는 아득히 거리가 멀 정도로 강렬한 전의를 드러내며 미친듯이 달려드는 러시아 물량 웨이브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는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절반 밖에 안되는 프랑스군이 강렬한 전의와 함께 영국군이 지원오기 전까지 끈덕지게 버텨서 마른 강의 기적을 구현하고 전선을 고착화시켜 독일 제국이 추구하던 '초살시켜서 빠르게 전쟁을 끝낸다.'라는 큰그림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거기에 통계 수치 상의 수적, 질적 수준이 상당히 괜찮았던 오스트리아군이 위와 같은 내부 문제가 독일보다도 훨씬 심각해서(민족주의의 광풍이 몰아닥치는 판국에 다민족 연합체인 오스트리아 제국군 병사들의 전의란 사실상 제로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독일의 오른팔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으니 독일은 나홀로 프러영을 상대하는 꼴이 되어버렸지요. 1차대전 독일 제국의 패배는 러시아를 우습게 보다가 끈덕진 러시아의 공세에 발목을 잡히고 이 덕을 입으면서 끈기있게 방어를 성공시킨 프랑스군의 마른 강 전투 승리 시점에서 사실상 결정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이에 비해서 2차대전 시작점의 나치 독일의 군세는 폴란드 침공전 개시 시기에조차도 단순 통계 전력 상부터가 프랑스보다 열악한 상태였고(실상은 그렇지 않았지만) 소련에게는 사실상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해보였지만 프랑스군과 러시아군이 각각 심각한 내부적 문제점으로 흔들릴 때에 도리어 1차대전에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매우 강력하게 단합된 군사적 기틀을 다진 상태였기에 도출된 결과물은 그야말로 정반대였다고 하겠습니다.
1차대전 독일 제국의 귀족 정치가, 장성들은 1차대전 종료와 함께 터진 독일의 민주 혁명과 민주주의 내각 구성과 함께 그 힘을 잃고 그 자신들의 대저택 영지에서 연금이나 타먹는 퇴물로 전락했는데 독일 군부를 평민 내지 하급 귀족 출신 장교들이 장악해버리면서 1차대전 독일군의 고질적인 '귀족 장교 vs 평민 부사관-병사'의 대립이 해소되었으며*1 또한 그러한 새로운 군부 장성 집단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1차대전 이상으로 출중했으며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나치스가 독일 민심을 장악하면서 내건 캐치프라이즈 사상이 국가적인 열망과 단결을 이루어내었다는 것이 아주 주효했다 하겠습니다.
*1 (굉장히 아이러니한 부분이 2차대전의 나치독일은 1차대전의 독일 제국에 비하면 그야말로 명백한 악의 축인, 사악한 집단이 맞는데 정작 군대 내 병영부조리, 구타가혹행위는 역으로 1차대전 독일제국군이 심각했고 반대로 2차대전 나치독일군은 굉장히 온화하고 평등한 내무 분위기를 형성했다는 점입니다. 비록 글러먹은 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건 나치독일군은 병사들이 충분히 자발적으로 전의를 고취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는 시스템의 수혜를 입었고 그만큼 억압적으로 병사들을 통제할 필요성이 없었기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었지요.)
바로 극단민족주의와 인종우생학이지요. 1차대전 독일제국군의 전쟁 명분은 결국, [위대한 황제 폐하와 제국 정부의 무구한 영광을 위해 영프를 때려눕혀 그들로부터 식민지를 대량으로 뜯어내서 우리 독일이 세계제일의 식민대국이 되도록 하자!]입니다. 딱히 국민들에게, 평민 병사들에게 와닿을 내용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2차대전 나치독일군의 전쟁 명분은 [독일 민족 전체의 생존권 확대, 모두가 다 잘 살아갈 수 있는 신세계의 도래, 우리는 우월한 인종이고 우리 독일인과 같은 우월한 인종/민족이 세계 다른 열등한 인종/민족들을 지배하고 멸종시키고 노예화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여러분들이 그것을 누리게끔 총통께서 인도하신다!]라는 것이고 이에 1차대전 패배로 인한 경제 침체에 대한 극복 요구(강인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걸 극복해주길 ㅜㅜ 정도의 사고방식)와 민주주의 사상에 대한 당시 독일 국민들의 미비한 이해력과 공감대가 섞이면서 그야말로 독일 정부와 대중 전체가 하나된 목표 의식을 지니고 단결하여 전쟁에만 몰두할 수 있게끔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자발적인 동기부여로 일치단결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반면 프랑스의 경우 1차대전에서 용맹하게 잘 싸우긴 했지만 그 대가로 인구대비 사상자로 따지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세계최강 독일제국군을 정면으로 상대하던 입장이었으니) 국가가 되었으며 그 후유증이 엄청난 상태였습니다. 당시 독일에 비하자면 훨씬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였으니 민주정 특유의 '그래서 이 책임은, 여기서 도출된 문제의 해결점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두고 국민들과 정치가들의 정서가 분열하고 갑론을박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게 분열적이고 혼란스러워 보여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매우 당연한 것이고 이걸 민주주의를 택하면서 얻는 마땅한 대가라고 생각해야하지만 하필 시기가 '독재와 전쟁이 민주주의적 의견보다 우선시되는' 시기였고 여기서 이러한 분열상은 아무리 민주주의로써 당연한 면모였다고는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프랑스에 영 좋지 않은 결과물을 가져다 준 셈이라 하겠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정치가들은 사상을 두고 내가 옳네 니가 옳네 대립하며 국론을 합치하지 못하며 군부 인재들이 물갈이되지 않은 채로 1차대전 수준의 구태의연한 사상을 가진 늙은 장성들이 정치가들과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교리 정립, 전략 계획 수정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은 것이지요.
소련은 스탈린의 공산당 일당독재(사실상의 스탈린 일인독재) 체제가 구축되었지만 공산당 내부 파벌 정리 및 스탈린 일인독재 체제의 확실한 안정화를 위해 '대숙청'이 진행되었으며 최고위 장성들부터 말단 장교들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의 장교진이 도륙당했던지라(별 단 장성들이 100단위로 죽거나 굴라그행이었는데 사실상 군부 운영 능력을 반갈죽해버린 꼴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병사들의 전의야 공산주의적 사상 무장 하에 부르주아지 파쇼들을 몰아내자!라며 충만할지언정 이를 지휘할 지휘관 수준이 전반적으로 급락해버렸으니 초반에 나치독일군을 제대로 상대해내기 어려울 수 밖에 없게 되었구요.
이는 명백히 전력 상 압도우위였던 1차대전 독일제국군이 프러 어디 하나 제대로 밀지도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갇혀 죽은 것과는 달리 전력 상 프와 동급에 러보다 한참 밀리던 2차대전 나치독일군이 프를 밀어버리고 러도 거의 밀어버리기 직전까지 가는 기염을 토해내는 아주 주요한 상호 원인들로 작용하게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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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그리고 미래 동력 갈아버린 2차대전 소련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