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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랴(와 레드벨벳)를 통해 경험하는 타자의 응시와 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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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00:24:02

최근에 제 글을 구독하시는 분이 생겼습니다. 제 글을 구독하고 있는 건 분명 어떤 사람임이 틀림없겠으나, 누구신지, 왜 구독하셨는지 알 수 없으니, 객관적인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 타인의 응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저의 주관적인 경험이군요.


응시의 대상이 된 주체는 타자의 시점에서 스스로를 객체화하게 됩니다. 구독자가 없을 때는 게시물을 순전히 재미로 올렸지만, 구독자가 생기니 이 구독자란 얼굴 없는 타자가 구독을 관두는 행위를 통해 내 게시물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세랴에 올린 글의 다수는 레드벨벳 글일 테고, 최근에는 클래식이나 음악 관련한 게시물을 몇 번 올렸습니다. 하지만 구독하신 분이 제가 올리는 레드벨벳 사진 보시려고 구독하신 거라면, 그에 해당하는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클래식이나 음악글 때문에 구독하셨다면, 팬심 담은 주접글 따위 올렸다가 구독자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듭니다. 게다가 구독자분의 구독글 알림난을 쓸데없이 채우고 싶지 않아서 영양가 없는 단문이나 신변잡기 뻘글 쓰는 것은 피하고 싶어지는군요. 타자의 응시, 더 정확히는 타자의 입장에서 주체가 만들어내는 상상적 응시는 이렇게 '나'의 자유로운 기투(projection)를 제한하는가 봅니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인형극에 대하여”는 인간과는 달리 타인이 긍정하는 대상이고자 하는 욕망과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의 욕망 간의 간극으로부터 기인하는 불협화음이 완전히 결여된 존재인 인형이야말로 가장 ‘우아한’ 동작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던지죠. 하지만,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사르트르 식으로 말하자면) ‘자유’라는 ‘저주를 받은’ 존재인 인간은 클라이스트의 사변적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형이 될 수 없고, 레드벨벳이 Dumb Dumb에서 스스로를 '어색한 마네킹'에 비유하며 설명하듯, 타자의 시선에 노출되어 만 보면 시작되는 바보 같은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반복되는 dumb dumb에서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drive(욕동/Trieb)를 읽어내는 게 저 혼자만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자유가 객체화하는 타자의 응시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독방에서, 익명성이란 굳게 닫힌 ‘문’ 뒤에 숨어, 일방적으로 모니터와 키보드란 작은 ‘열쇠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 '나'는 무반성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존재는 즉각적인 자기의식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고, 앞서서 다루었듯 자신을 객체화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타자의 응시입니다. 타자에 의한 객체화는, 거울 단계의 나르시시스트 적 상태를 벗어나 ‘사회적인'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합니다.


물론 객체화가 '나'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에 맞추어 주체성을 제한함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는 객체화가 어떤 자유를 향한 욕망의 원인이 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타자에 의한 객체화가 사회적인 나를 형성한다면, 모든 객체화에서 벗어나 다시 아무런 구속 없는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퇴행적인, 혹은 유아적인, 욕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주체(subject)는 객체/대상(object)이 아니기에, 그 누구도 ‘나’를 온전히 주체로 대할 수는 없으며, 주체화 '그 자체'는 내 욕망의 대상이 될 수도 없습니다. ‘나를 (대상화하지 말고) 주체로 대해 달라’는 요구는 내가 '타자의 장(field of the Other)'에 속한 사회적 존재임을 받아들인 이상, 근본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요구일 뿐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특정하고 정체화하고 표상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에서 탈출할 수 없는 사회적 주체의 자유, 혹은 주체성 그 자체에 가까운 부정성(negativity)은, 지금 현재 정체화된 '나'에 관한 의문과 부정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체화, 즉 다른 객체화를 향한 움직임을 통해 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레드벨벳이 Dumb Dumb에서 훌륭하게 표현했듯 말이죠: 저 언니처럼 되고 싶은데 / 넌 자꾸 나를 귀엽다고 하는 걸까 왜. 여기서 슬기가 호명하는 ‘저 언니’는, '자아-이상(Ego-Ideal)'이라 할 수도 있겠고, 라캉식으로 '대상 a (objet petit a)'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느 개념을 통하든 ‘귀엽기만 한’ 아이돌의 정체성을 벗어나 실력 있는 ‘아티스트’란 정체성을 실현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메타텍스트적 해석 역시 가능하겠네요.

 

타자에 의한 객체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사회적 주체의 욕망과 자유는 주체성과 타자성간의 해소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근본적인 간극, 혹은 안타고니즘(antagonism)을 긍정하고, 이를 중재함으로써 실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15년, Dumb Dumb의 레드벨벳은 자아(이상)와 타자의 응시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 아포리아의 상태로 노래를 끝맺지만, 2019년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공개된 Psycho에서 레드벨벳은 헤겔적인 ‘지양’의 네러티브를 들려줍니다. 서로를 부서지게 하지만 서로를 빛나게 하기도 하며, 다시 안 볼 듯 싸우다가도 다시 붙어다니는, 참으로 별나고 이상한 사이가 노래의 화자와 그의 연인과의 관계입니다. 남들은 둘이 잘 만났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 사이가 잘 풀릴지 확신할 수 없고, 서로 부딪히는 게 때론 미치도록 피곤하지만 (you got me feeling like a psycho),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두 주체의 충돌과 간극, 타협과 화해의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사랑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사람과 사람 관계의 본질이기에, 노래의 마지막 파트에서 '우리'가 함께할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희망적 선언 Hey now we’ll be ok / it’s alright을 통해 긍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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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8-12 00: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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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2020-08-12 00:43:41

장문을 썼더니 배가 고프군요.

2020-08-12 00:39:47

구독취소합니다

OP
2020-08-12 00:40:29

으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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