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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랴 인을 위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1 - 기울어진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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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15 22:01:59

이번 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어떻게 각 나라의 외교적 각축장인가, 왜 기울어진 운동장(?)인가에 대해서입니다.

 

0.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국제법상 국가 중심으로 운영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는 회원은 국가 단위로 당사국(state party)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UN 시스템에 적용되는 국제법상 당연한 일입니다. 가령, 우리 나라는 문화재청 의견을 받아서 외교부에서 대응하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다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여러 가지 기울어진 운동장 모습이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일본과 한국의 싸움 - 이건 자강두천이죠 ㅎㅎ

팔레스타인과 미국/이스라엘의 싸움 - 이건 팔레스타인이 새로운 유네스코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엄청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는데, 밑에서 다루겠습니다.

대만, 티벳과 중국의 싸움 - 얘네는 회원국이 아니니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중국이 무조건 이기는 싸움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자기 편 들어달라고 아프리타 국가들에 돈도 어마어마하게 뿌림..

 

1. 시작부터 유럽-북미(+중국) 중심

소위 서양이 UN 시스템, 문화, 그리고 심지어 문화유산의 보존 연구 헤게모니도 잡고 있어서 세계유산은 태초부터 유럽-북미 중심이라는 비판이 필연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멕시코 등 중남미의 세계유산들도 잉카, 마야, 아즈텍 문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페인 식민통치 유적들이라서 사실상 한 편입니다. 실제로 기독교 관련, 거대 기념물, 엘리트적인 건축이 과하게 수가 많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비서양 국가들로부터 줄을 이었죠. 문화적 상대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국가가 한 해에만 여러 개씩 등재 신청을 때려버립니다. 여기에 중국도 아주 미친듯이 신청을 합니다. 참고로 중국은 현재까지 세계유산에 등재가 된게 55개인데, 앞으로 우리 이렇게 신청하겠다 하고 잠정 리스트에 올린게 무려 60개입니다....

 

2020년 현재 국가 순위로 중국과 이탈리아가 탑 먹고 있습니다. 한국은 14개라서 15개 커트라인에 걸려서 짤렸습니다.. 죄다 서양 또는 서양과 연결된 중남미 국가들이고, 예외가 중국, 인도, 이란, 일본입니다. 그런데 얘네는 많을 이유가 있잖아요.........

 

이러니까 아프리카랑 태평양 도서국가들이 뿔이 잔뜩 났습니다. "야 명색이 '세계' 유산인데 니네만 세계냐? 우리도 세계다!"

 

그래서 유네스코가 1994년에 '균형적이고 대표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세계유산 리스트를 위한 글로벌 전략'을 꺼내 놓습니다. 즉, '좀더 다양한 국가의 유산을 올리겠다'입니다. 그리고 한 국가가 1년에 신청할 수 있는 개수를 최대 2개로 막아버리고, 그것도 문화유산 2개는 신청 못하게 합니다. 자연유산이랑 복합유산 대비 문화유산이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까 중국이 신청을 2개 하고 싶으면, 문화유산 또는 복합유산 1개, 자연유산 1개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래도 계속 매년 맥스 2개씩 채워서 잘 냅니다. 얘네 후보지가 무려 60개니까요!

(오히려 한국이 애매합니다. 특히 자연유산으로 신청할 마땅한 후보지가 별로 없거든요. 이건 다음에 한국에 대해서 다룰 때 한 번 쓰는 걸로)

 

자, 여튼 글로벌 전략 때문에 이제 좀 균형이 맞으려고 합니다. 처음 보던 국가들이 세계유산 리스트에 나타납니다.

 

싱가포르, 식물원(2015년)

 

토고, 바탐마리바 족의 흙건축(2004년)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오아시스(2011년)

 

마샬 군도, 비키니 산호초 핵실험지(2010년)

 

에리트리아, 아스마라 아프리카 근대도시(2017년)

 

 

그런데 글로벌 전략을 실시하니까 또 생각치 못한 논란이 생겨납니다.

1) 그래도 유럽 북미 니네 너무 많아! 그리고 아직 힘 짱 쎄..

유럽 북미가 여전히 전체 세계유산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연구자들은 국가 면적, 인구, GDP 뿐만 아니라 UN 안보위원회 회원국 여부도 영향을 미친다고 통계적으로 검증하기까지 합니다 ㅎㅎ 그래서 서양/비서양으로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구도가 여전하다고 주장해요.

 

그리고 어떤 연구자는 최근에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인도 입김이 계속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2) 야 세계유산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

세계유산은 인류의 문화/자연 유산 중에서도 '(인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가진 것들만 미래 인류를 위해서 지키고 보존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매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심사해서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일부 전문가들이 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기존에 세계유산이 없는 나라들을 배려하다보니 이게 과연 지구상에 쌔고쌘 문화재 중에서 정말 인류 보편적이고 탁월한 거 맞아? 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분명 일부 서양 전문가들의 문화 우월주의가 없진 않겠습니다만, 원래 과학적으로 판단하고 심사한다고 자부해왔던 세계유산 등재 시스템이 정치질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거 배려하고 저거 배려하고 이러면서 평가하는 가치가 막 들락날락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제대로 터집니다.

 

2. 사우디의 오일 머니 , 결정을 뒤집다

2018년에 바레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등재 신청한 '알-아흐사 오아시스: 진화하는 문화 경관'을둘러싸고 웃긴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통 여기에서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부문 외부 전문가 자문단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미리 실사하고 작성한 보고서의 의견을 토대로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는데요. 이 오아시스 유산에 대해서 ICOMOS는 '등재되어서는 안 된다(should not be inscribed)'라는 강력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ICOMOS의 반대 이유는 요약하면, 12개나 흩어진 사이트를 하나의 단일한 '1960년대 대규모 석유 개발 전의 오아시스' 개념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한 농경 문화는 이미 단절된 지 오래라 '진화'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강력한 반대가 나오면, 회원국이 신청을 '철회'하고 좀더 잘 준비해서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왜냐하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불가'가 결정되면 이제 그냥 접어야 하고, '보류(refer)'는 약간의 수정 후 다음에 재심사, '반려(defer)'는 재심사 받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수정이 필요한 경우라서 보통 '반려'만 떠도 등재 거절로 판단해서 회원국이 사전에 철회해버립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 같은 경우 서울 한양도성이 2017년에 등재를 추진했다가 ICOMOS가 실사나와서 '등재 불가' 의견을 때려서 그냥 자진 철회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우디는 이걸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선거로 돌아가면서 함) 중에 하나인 쿠웨이트한테 오일 머니를 먹여서 회의장에서 기존에 오아시스 등재된 것이 거의 없으니 이건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읍소'하게 만들고, 여기에 미리 로비를 받은 중국, 우간다, 튀니지, 쿠바, 스페인, 브라질, 인도네시아, 호주 등이 세계유산 리스트에 밸런스를 맞추자, 이런 열악한 기후에 지금까지 살아온 저들의 '이야기'를 봐달라 이렇게 지지합니다.. 실상 저런 '이야기'들은 유네스코에서 지향하는 과학적인 심사와 아주 거리가 먼 데 말이죠. 게다가 회의가 열린 곳이 같은 중동의 바레인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등재가 되었습니다. 무려 3단계를 상향 조정해서 말이죠. 여기서 다시 한번 과연 세계유산의 글로벌 전략의 어두운 면이 나옵니다. 

 

 


사실 이렇게 로비로 결정을 뒤집은 건 비단 사우디 뿐만은 아닙니다. 

중국은 2009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소림사가 있는 쑹산 일대 등봉 천지지중 역사기념물에 대한 ICOMOS의 '반려' 의견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로비해서 최종 결정에서 '보류'로 업그레이드했고, 이듬해에는 ICOMOS 재심사에서 '권고' 의견으로 올려서 기어이 등재를 해내고 맙니다 ㅋㅋ.


한국은 안 하느냐? 한국도 합니다 ㅋㅋㅋ. 일본에서 군함도 신청했을 때 전방위적인 로비를 했고요. 한국이 신청할 때도 우호적인 결정으로 이끌려고 뒤에서 엄청 노력합니다. 그래도 사우디처럼 양심 없는 정도는 아닙니다 ㅎㅎ

 

여튼, 2010년대부터 이런 정치적 로비로 자문위원회의 의견에서 상향 조정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3.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 중단과 탈퇴

트럼프 형이 국제기구 탈퇴하고 깽판 놓는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닌데...

2011년 팔레스타인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막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유네스코의 정식 회원으로 가입을 합니다. 그러자 미국은 유네스코 예산의 22%나 지원하던 걸 바로 중단해버립니다.

 

돈줄이 끊긴 유네스코 내에는 이때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내부 인력들이 줄줄이 책상을 빼고 쫓겨납니다. 제 지인도 이때 유네스코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하나둘씩 안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당연히 세계유산 프로그램도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팔레스타인이 러시아와 프랑스 등의 지지에 힘입어 2012년에 베들레헴 예수 탄생지와 순례길, 2014년에 예루살렘 남부 올리브 와인밭, 2017년에 맘루크 왕조의 헤브론/알 칼릴 구시가지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합니다.

 

베들레헴 예수 탄생지와 순례길

 

남부 예루살렘 올리브 와인밭

 

맘루크 왕조 헤브론/알 칼릴 구시가지

 

 

자.... 특히 2017년의 헤브론 구시가지는 유대인 유적지인데 팔레스타인 단독 등재가 트럼프가 있는데도 벌어졌습니다. 우리의 트럼프, 가만히 있을 인간이 아닙니다.

바로 유네스코 탈퇴(!)를 하겠다고 선언해버립니다. 유네스코가 너무 친 팔레스타인, 반 이스라엘이라 못해먹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결국 2019년 1월 1일 되자마자 잽싸게 탈퇴 시전합니다. 미국 형님이 가는데 이스라엘도 당연히 같이 갑니다 ㅎㅎ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나비 효과가 생겨납니다. 유네스코 최대 분담국이던 미국이 나가니까, 2위 3위인 일본, 중국 입김이 강해집니다.... 이게 일본이랑 역사 문제로 사사건건 싸우는 우리 나라한테는 악재로 작용합니다.

 

(한국-일본 군함도 문제는 나중에 다루는 걸로)

 

4. 유네스코는 허수아비?

회원국 중심으로 운영되는 세계유산 프로그램에서 대체 유네스코는 할 수 있는게 뭐냐? 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은 것이 제한됩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에 등재해서 그럴싸한 타이틀을 주고, 그 이후의 관리에 대해서는 당사국에게 권고(recommendation)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만약에 당사국이 안 따른다? 할 수 있는 건 '니네 그러면 세계유산에서 빼버린다!'입니다. 그런데.... 이게 경고한다고 바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네스코가 계속 말 좀 들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구조입니다.  (나중에 또 다룰게요)

 

그래도 쌩까고 세계유산 그딴거 x까 하면서 뛰쳐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글에서 다루겠지만 독일 드레스덴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리고 유럽에 지금 말 안 듣겠다는 도시/국가가 현재 진행형으로 여럿(!) 있습니다 ㅎㅎ

 

시리아 내전이 벌어져서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여러 유서 깊은 유적지가 파괴되고, 특히 팔미라 유적은 IS가 완전히 날려버렸습니다 ㅜㅜ. 아 진짜 시리아 여행 가는게 인생 목표 중 하나였는데 망했어요........... 

 

 

유네스코는 당장 시리아 내의 모든 세계유산 6개소를 위험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으로 올려놓고 특별 보호 조치에 나서려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때 시리아 정부군을 후원하던 러시아가 제동을 겁니다. "시리아 정부가 정식으로 요청한 것도 아닌데 왜 니네가 먼저 나서냐?" "니네 그러는거 월권 행위다" 러시아는 자기들 편인 시리아에 다른 나라 입김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싫었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위험유산으로 올리긴 하는데, 지금까지 유네스코가 시리아에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건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이 개입한 예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폭격으로 날아간 예멘 사나 구시가지(1986년 세계유산 등재)

 

 

5. 유네스코 참 나이브하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는 2008년에 캄보디아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프레아 비히어 사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원이 웃긴게, 두 나라의 국경 분쟁지역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프랑스가 식민 통치 시절에 잘못 싸놓은 똥 때문에 양국이 오랜 분쟁에 있었는데, 유네스코가 기름을 붓습니다. 태국은 이거 제대로 안 했다고 외교부 장관이 경질됩니다. 급기야 2011년에는 교전이 발생하여 유혈사태가 납니다. 사원에 총탄이 박힙니다....

 

요렇게 생겼는데요. 국경이 아주 골때립니다. 사진 오른쪽 하단의 절벽 끄트머리가 캄보디아 땅이고, 왼쪽 사원 바깥 쪽의 평평한 땅은 죄다 태국 땅입니다. ㅎㅎ 그런데 진입로는 이쪽이란 말이죠. 누가 절벽으로 올라가고 싶겠어요? 그래서 2008년 세계유산 등재 전까지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태국 땅을 지나서 갔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더 엽기적인 국경이 잘 느껴집니다. 

결국 양 국가가 지난한 분쟁을 벌이다가, 2013년에 국제사법재판소가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 됩니다. 사원은 캄보디아 땅, 사원 주변은 태국 땅. 캄보디아 정부는 태국 땅을 지나지 않는 진입로를 만들 것.

 

이 사례는 유네스코가 애초에 바보 짓을 했습니다. "야 우리가 등재 신청한 것은 잘 받아줄게. 대신 니네 이거 앞으로 태국이랑 잘 의논해서 관리하는거다?" ㅋㅋㅋ 이걸 누가 지키나요.. 여기에서 유네스코의 나이브함이 다시 한 번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에는 개별 사례를 많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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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8-15 21:49:23

어마무시한 정보량을 재미나게 모아주셔서 한번에 훑어내렸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못할짓 많이 한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치도 못한 피해사례가 또 있었군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OP
2020-08-15 22:25:56

헤헤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1
2020-08-15 23:02:17

ㅎㄷㄷ 하게 재밌네유 ㅋㅋㅋ

1
2020-08-15 23:07:04

쭉 연재 갑시다

2020-08-18 05:55:11

 엄청 기대되는 시리즈네요!!

2020-08-29 22:46:58

preah 저기 ㅋㅋㅋ 배운기억ㅇ 나네요. 바보같이 잘못그린 지도를 놔둬서 태국이 졌다고...

OP
2020-08-29 23:17:33

ㅋㅋ 그런데 또 신문기사들 보면 태국이 사실상 이긴 결과라고도 해서 잘 모르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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