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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잡설)전근대 중국 도교의 강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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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0-29 17:40:58

 

도교의 한 일파인 태평도의 황건당도 따지자면 종교적 비밀결사 집단에서 시작해서 전국을 뒤흔든 것이고 오두미도는 훨씬 유순한 방법으로 중국 전역에 교세를 떨쳤고 훗날 동진 말기에는 오두미도의 또다른 한 일파인 손은의 무리가 강남 버전 황건당으로 규모만 놓고보면 황건당 못지 않은 수준으로 들고 일어나 동진에게 완전히 사망 선고를 내렸던 사례들이 있습니다.

 

도교 교단이 지배층에 영향을 끼쳐 불교를 엄청나게 탄압케 만들었던, 남북조-수당 시기의 삼무일종법난도 또다른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심지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들고일어난 근대 중국의 민중 운동이었던 태평천국운동도 근본적으로는 기독교와 도교를 기묘하게 섞어놓은 어레인지된 무언가였으니만치 도교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사건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국 민중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에서 도교 문화의 영향은 셀 수도 없이 깊게 남아있습니다. 즉 도교는 수천년의 세월 동안 오랜기간 중국 민중들에게 뿌리를 내린 유서깊은 신앙이었다는 것인데 정작 전근대 도교의 조직화 구조를 보면 비슷한 전근대 조직화 종교들인 기독교, 조로아스터, 이슬람, 유대교 등에 비교해보면 굉장히 무질서하고 중구난방스러운 형태이며(그러니 분파 규모도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내세관, 구원관을 보더라도 개인적인 감상이 많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 정교함의 수준은 도저히 기독교 등의 저 조직화된 종교들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도교의 조직화 체계, 전근대 도교의 교리들만 보면 저러한 조직화된 종교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원시 신앙들(그리스-로마 신화, 북구 신화, 슬라브 신화 같은)과 얼추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지요.(자연에는 힘에 있다, 자연의 조합된 무언가를 먹고 불로장생한다 정도 수준)

 

도교의 그러한 덜 조직화된 형태가 유교의 억제 속에서도 살아남으며 중국은 물론 주변국(한국, 베트남 등)에 영향을 끼치면서까지 살아남았던 모습은 마치 비유하자면 유럽에서 로마가 이미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로마 신화 신앙이 유지되어 현대까지 이어진 것과 유사한 수준의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상대적으로 덜 조직화된 종교인 도교가 훨씬 정교한 사상이었던 유교의 억제 속에서도 크게 흥성할 수 있었는가를 봐야할텐데 이유의 많은 부분은 유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 동북아 각지의 지배층들이 수용했던 유가 사상의 '괴력난신은 거론치 아니한다.'의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유교는 전근대 사상이라기에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지향적이었으며 내세라던가 혹은 현세에서 우화등선하는 '승천'이나 '해탈'(불교적으로 말하자면)이라던가 '구원'(기독교적 혹은 미륵 신앙 등으로 말하자면)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예 도외시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물론 시대마다 다소 다르긴 합니다. 초기 유교는 도교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따라가는 모습이 있긴 했던. 송 주희의 성리학 때부터는 정말로 저런 것은 괴력난신이라고 취급조차 안하려고 하였지요.)

 

따라서 국가 통치의 기조에 조직화된 대형 종교의 논리가 필연적으로 개입하던 유럽, 중동(유대교, 기독교, 조로아스터, 이슬람 등)과는 달리 동북아시아는, 물론 유교를 종교로 보자면야 여전히 종교의 논리에 국가 통치 기조가 영향받는 형태이긴 하지만 유가 특유의 정치사회 사상에 가까운 이론들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유형의 '신적 존재에게 통치 권위를 빌어오는' 다른 전근대 종교들과는 굉장히 다르며 어떻게보면 오늘날 현대의 특정한 정치 사상들에 입각한 현대적 세속 통치와 매우 유사한 형태였다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으로 말미암아 유교는 전근대 피지배층들 절대다수를 만족시켜주기에는 역부족인 종교-사상이기도 했습니다. 즉 내세의 나를 인정해줄, 혹은 가혹한 현실을 잊게해줄 의지할만한 절대적 권위의 신성 대상을 가지지 못했다는 그 특징으로 말미암아 원천적으로 저러한 '일반적인' 종교들을 완전히 봉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이는 특유의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교리를 기반으로 '신, 내세, 구원, 안식'의 이론을 구성하여 기존 원시 신앙들을 싸그리 논리로 찍어눌러버릴 수 있었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 등의 지배 속에서 해당 지역 원시 신앙들이 토착 미신으로만 남거나 아예 사멸하는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요소입니다.

 

즉 유교의 현실지향적이고 내세에 대해서는 거의 도외시하는 면모들을 본 당대 동북아 피지배층들은 유교를 국가 통치 기조로써는 따르더라도 '신앙 숭배의 대상으로써는' 따르지 않게 되었고(간단히 말하면 유교 사상은 '당장 나한테 위안이 안되니까') 별개의 종교(대체로 기존의 원시 신앙에서 유래하는)를 유지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고려-조선의 불교(물론 불교는 도교, 신토보다 훨씬 조직화된 종교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신토(일본은 유가의 권위 자체가 약한 편이기도 했지만), 중국의 도교가 유가 사상 속에서도 살아남고 강력한 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한 유가를 따르는 지배층들도 저러한 종교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이 도교가 특유의 원시 신앙적이고 다소 정립되지 못한 논리 체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남고 외부 종교들의 교리를 조금씩 흡수하여 자가 개정을 행함으로써 현대까지 매우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떨치며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뭐 물론 유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에 적대적인 사상인 공산주의가 중국에 퍼지고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터진 이후로 오늘날 도교의 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쪼그라든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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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0-29 17:42:41

    유교 특유의 배척성이 오히려 도교나 불교가 성행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유교적 천하관이 북방민족이 받아들이기엔 무리여서 도교나 불교적 세계관을 끌어들였다 이런 내용이었죠

    OP
    1
    2020-10-29 17:47:44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농민 집단(대다수 평민)의 의지를 민심이요 천심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천명으로 여김으로써 농민 집단의 권위를 얻은 자가 천명을 받은 천자가 됨으로써 세속 통치의 절대적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것이 유교적인 통치 권위 수립 논리인데 일단 유목민들은 힘의 논리에 귀속될 수 밖에 없는 정치 구조, 남성 생산자들이 대부분 곧 전사들이기도 한 그 사회 구조 때문에 유교의 이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딱히 유목민들의 사회, 정치 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불교가 크게 성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네요.

     
    여담으로 많은 유목민들이 근대 무렵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지만 그 시점은 유목민들이 점점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반농반목적이나마 체제를 개편할 때의 시기와 겹치고 이슬람의 '신앙심과 미덕이 충만하다면 그것만으로도 통치자로써의 권위가 있음을 신께서 인정하신다'라는 논리는 오직 힘과 무력으로 지배 구조를 수립할 수 있었던 순수한 유목민 집단에게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세 유목민들이 이슬람을 탄압한 많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2020-10-29 17:50:38

    확실히 전근대 정치나 사상사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군요. 덕분에 오늘도 잘 공부합니다.

    2020-10-29 17:49:55

    조선시대 무속신앙이 많이 연상이 되네요

    OP
    1
    2020-10-29 17:57:09
    신토나 도교처럼 그나마라도 약간의 조직 체계를 갖추어 발이라도 맞추어나간 뒤에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는 형태의 타이밍이었다면(대표적으로 불교) '종교'로써 생존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지금쯤 무속신앙은 '무교'라고 불렸을지도..ㅋㅋ 뭐 학자에 따라서는 정말로 한국 무속신앙을 무교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공식적인 개념은 아니니 말이지요.

    반면 한국은 외래 유입 종교인 불교의 영향을 사회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받아서 일본의 신토나 중국의 도교와 같은 자체 원시 신앙에서 유래한 종교가 생존하기 어려웠는데 특히 조선은 정말 거의 유일한 케이스로써 일시적이나마 성공적으로 종교들을 억제하고 only 유교에 입각한 국가 사회를 건설해내보임으로써 이와 같은 현상 속에서 무속신앙의 설 자리는 더더욱 좁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나마라도 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원시 신앙을 극혐하며 배타적으로 대하는 종교 교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유교의 위에서 언급한 특징들 덕에 무속신앙이 원시신앙으로나마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2020-10-29 17:52:27

    제가 고딩때 제자백가 사상을 공부할 때는 노장사상이 무지 마음에 들었는데 도교는 ㄷㄷ하네요

    OP
    1
    2020-10-29 18:03:49
    노장사상이 도교에 미친 영향은 확실히 있기는 하고 도교 교단 측에서도 아예 노자를 도교의 일종의 첫 교주, 신성적 존재로 간주하는 모습까지 드러내기는 하지만(오늘날 뿐이 아니라 옛날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 황실이 도교를 신봉하면서 노자를 아예 황제로 추존해버리기까지 하는 모습 등을 보면..) 정작 역사 속의 노자, 장자의 논리와 도교는 괴리되는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지요.

    노자가 도교를 창시한 것은 당연히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많고 오히려 원시 토착 신앙에서 발전하며 성립된 도교가 조직성, 정교함을 갖추면서 그것에 필요한 외부 이론들을 유입하는 과정에서 노자의 논리를 상당부분 차용하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단 도교 교단 자체 주장을 제외하면 노자가 직접 도교를 만들어내었다는 사료적 물증이 부족한.(물론 도교 학자들 중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견해를 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도교가 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맞지만 그렇다고 노자가 곧 도교이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노자의 사상 중에 다소 양생론적인 관점이 있어서 이것이 도교에 큰 영향을 주기는 했겠지만 결국 노장사상은 근본적으로는 제자백가의 일환으로써 '사회를 어떻게 유지하고 통치해 나갈 것인가'를 다루는 부분에 스스로를 한정하고 있으니.
    2020-10-29 18:06:49

    도교하면 이상하게
    계곡가에서 술마시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이런이미지가..

    OP
    2020-10-29 18:10:54

    도교의 핵심 이론 중 하나가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현세에서 우화등선하여 도와 육신이 일치하는 영원불멸의 신선이 되자는 것인데 이 신선이 되는 수련법이 기실 실상을 보면 상당히 가혹한 것이지만 일단 겉으로 보면 어디 계곡 같은데 가서 탱자탱자 시간이나 죽치는 꼴로 보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강경 유학자들은 이걸 보고 '사회에 도움 하나도 안되는 탱자탱자 게으름피우는 놈들' 정도로 인지하기도 했던 듯

    2020-10-29 18:13:34

    도교의 역사는 수은 중독의 역사 아닌가여

    OP
    2020-10-29 18:17:15
    전근대성의 한계라 하겠습니다ㅋㅋㅋ

    차라리 아브라함계나 다르마계 종교들이면 내세에서 안식 찾자 라던가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어서(고행을 좀 하는게 그렇긴 하지만) 현세 순환에서 벗어나자 등 내세로의 길을 모색하는 형태이니 당장 현세의 자기 몸에 무슨 짓을 하지는 않게되는 교리를 가지는데 도교의 핵심 중 하나인 신선방술은 전근대에는 그야말로 중금속 먹기 딱 좋은 이론이었죠.

    현세에서 수련하여 우화등선함으로써 신선이 되어 영원불멸하게 된다가 궁극적 목표인데 그 수련법에 전근대 지식의 한계로 말미암아,
     
    '살은 썩는 것, 금속은 썩지 않는 것 = 금속은 영원불멸한 것 = 금속을 섭취하면 우화등선의 수련에 도움이 됨 = Profit!'

    의 체계가 성립되었다는 것 ㄷㄷ :0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연단술이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지 않나 합니다. 실제로 많은 도교 신봉자 중국 황제들이 그렇게 수은 등의 중금속을 섭취하다가 요절하고 골로 가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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