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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잡설)그림으로 보는 시아파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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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3-01 12:08:24

 

 

보기에 굉장히 복잡해보일 수도 있지만 간단히 표현하자면 아부 탈리브의 아들 시아 알리, 선지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하산과 차남 후세인까지가 '정통 칼리파 혈통'으로 여겨지는게 시아파의 공통점이며 이후에는 '그 다음부터는 후손들 중 누가 시아파 적통 이맘-마흐디 계승자 라인인가'를 두고 분파가 갈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극소수파인 카이사니파만이 후세인의 라인이 아니라 삼남 무함마드 알 하나피야가 그 유일 후계자이자 마흐디라고 말하고 있고 나머지는 후세인의 후손들 중 특정 라인에서 '이 자에서 뻗어나오는 계보가 진정한 이맘-마흐디 라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분화하게 되었지요.


가장 메이저한 계보는 저 중 청록색 12이맘파로써 현대 이란의 주류 시아파이기도 합니다. 하사신으로 유명한 시아파는 보라색의 니자리파. 심지어 현재까지도 존재하지요. 물론 하사신 같은 건 더 이상 운영 안하는 상태입니다만.


 

여하간 시아파가 사실 수니파에 비하면 소수파가 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수니파는 비아랍인, 비쿠라이시 외부 지배계층이 활용할 여지가 굉장히 큽니다.


수니파에서 칼리파, 즉 이슬람 사회를 정치-종교를 통틀어 이끌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는 '움마(장로 회의 같은 개념)의 선정 하에 신앙심과 덕행이 충만한 자'라는 것이 명목 상의 기준이며 물론 실제로는 쿠라이시 혈족 계통 가문들(하심, 압바스, 우마이야, 파티마) 출신한테 칼리파가 될 어드밴티지가 대단히 많았지만 어쨌건 이런 기준 때문에 훗날 아예 아랍인 지배층이 아닌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서 오스만 술탄이 카이로 압바스 칼리파 가문으로부터 선양의 형식으로 칼리파 자리를 취득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시아파는 '우마이야 가문의 계략으로 부당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시아 알리와 그 장남 하산, 그 차남 후세인이 진짜 칼리파이며 이후부터는 [칼리파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칼리파가 될 수 있는 '혈통적 권리'로써 시아 알리의 차남 후세인의 후손들이 이맘의 직위를 세습하며 정당한 칼리파이자 마흐디(구세주)로 재림하리라고 주장하는 입장에 있지요.

 

이는 말하자면 시아파 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시아 알리와 혈통적으로 엮이지 않는 이상 칼리파 자리, 이슬람 사회 전체의 통합 군주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비아랍인 외부인 지배층들이 활용할 여지가 너무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란 고원의 여러 이란계 세력들(튀르크계 지배층들은 대체로 수니파에 가까웠던)은 유독 시아파를 지지하는 정서가 쉽게 확산되었는데 이는 아랍인에게 지배받던 이란인들이 아랍의 약화를 틈타 분리주의, 독립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그걸 정당화할 사상적 용도로 시아파를 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이 왕조의 칼리파/아미르알우마라 이중 통치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혈통적으로 시아 알리의 부계 후손이 될 수는 없으므로 칼리파나 이맘 자리는 못 얻겠지만 그 대신 시아 알리의 후손 누구누구가 마흐디로 재림할테니 우리는 이를 추종하며 현실에 이 자리를 미리 준비해놓겠다는 현세의 신하의 위치로써 수니파 칼리파 세력과는 별개의 독립 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라는 활용 관점에서 시아파로 차츰 개종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거기에 시아 알리의 차남 후세인과 사산 조 이란 제국 마지막 황녀의 혼인 관계에서 이후의 이맘 계보가 이어져내려온다는 점에 있어서도 이란인들이 정서적으로 동조할만한 부분이 확연히 있기도 하구요.


본래 수니파 이란 왕조였던 사만 왕조가 나스르 2세 때에 시아파로 개종했던 이유도 수니파 상태에서는 압바스 칼리파 아랍 이슬람 제국이 아무리 쇠락했어도 명목 상의 충성을 바쳐야만하지만 시아파로 개종할 경우, 수니파 칼리파와는 별개로 자신은 시아 알리의 후손들의 마흐디 재림을 믿는다며 완벽하게 독립적인 위치를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점도 있습니다. 다만 사만 왕조는 국민 대부분이 수니파를 믿는 와중에 왕만 이런 개종을 해버리는 바람에 이후 국가 전체가 쇠퇴하는 수니 vs 시아 내전을 겪게 되었지요.

 

여하간 이란의 시아파 정서는 말하자면 '범아랍 범이슬람 통일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이란주의' '아랍으로부터의 이란 분리주의'적 정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하겠습니다. 아랍 이슬람 제국 중앙 정부의 약화와 더불어 구 이란 제국령 이란 고원, 옥수스 유역에서 들고 일어난 독립 이란계 세력들의 '중앙과 분리되고자하는 분리주의 의식'이 이를 가속화시켰다고 보고 반대로 외부인 침략-정복자로써 중동을 포괄하는 제국을 세웠던 튀르크 군벌 집단들은 이란인과 아랍인을 아우르는 지배 체계를 위해 좀 더 보편적인 수니파를 따르려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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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3-01 10:35:30

시아파랑 수니파 사이가 안좋을수 밖에 없는데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는 시아파가 어떻게 견뎠나요? 오스만이 짱세니까 그냥 존버하고 있었던건지... 그리고 저런 상황이면 오스만도 곱게는 안놔뒀을것 같은데요...

제가 역사 잘 모르고 공부도 안하지만 그렇게 강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투르크쪽 상황은 접하기 쉽지 않은것 같네요.

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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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3-01 10:50:18
실제로 시아파 국가화한 이란계 제국들하고 오스만 제국하고 수도없이 피튀기게 전쟁했죠.

각각 기독교 vs 조로아스터교의 싸움이기도 했던 고대 동로마 제국과 사산 조 이란 제국 저리가라 할 정도로 오래 싸웠는데 다만 동로마와 사산조의 국력 격차가 2배는 났던 것처럼 오스만 제국과 통일 이란 제국 왕조들 간의 국력 격차는 대략 3배는 되어서 보통 오스만 제국이 전적 우위이기는 했습니다.

애당초 근세-근대 이란계 제국들 자체가 고대 사산 조 이란 제국보다는 국토 규모에서건 내부적 경제 안정성에 있어서건 좀 후달려서 오스만 제국을 정면으로 상대하기 어려웠지요. 다만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도 여전히 기술력과 제도적 한계 상 이라크 너머로 진격하는게 너무 어려워서 이란을 완전히 정복하는건 불가능했기에 계속해서 특정 튀르크-이란계 왕조가 이란 고원을 통일할 경우 그 즉시 이라크-모술-쿠르디스탄-아르메니아 등지에서 공방전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이게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 온전히 전력을 투사하지 못한 매우 거대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스만의 몰락에도 이란계 세력이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1대 단명 왕조이긴 하지만 그 1대가 오스만을 영혼까지 갈아버리며 후세대 역사가들에게 '중동의 나폴레옹'이라 평가받은 자인 나디르 샤의 아프샤르 왕조 이란 제국 시절이었던지라 나디르 샤 통치 시기 오스만 제국은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이란에게 연전연패하며 박살이 나버렸고 안 그래도 슬슬 서구 열강 제국주의의 시대가 시작하면서 위세가 줄어들던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패배로 몰락의 속도에 가속이 붙고 말았지요
2021-03-01 12:58:50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오스만의 유럽진격을 막는데 생각보다 큰 공헌을 했군요 ㄷㄷㄷ 특별한 일이 없는한 두 종파가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겠네요...

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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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3-01 13:06:50
오스만의 존재가 또한 통일 이란계 제국의 강성해짐을 막는 역할을 했던지라 서로가 서로에게 억제기나 다름없었습니다 ㅋㅋ 주기적으로 서로 뚜까패며 전쟁을 해야했으니..

현대에 아제르바이잔 국가 성립에도 오스만 제국이 사실 은연 중에 굉장히 큰 역할을 했는데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튀르크계-이란 식 민족들은 사실 대체로 이란 제국 내부 구성원으로 분포했었고 튀르크인들의 점진적인 이란화가 근현대로 올수록 가속화되어가고 있었으나 모든 무슬림의 종주국이자 보편 제국으로 군림하면서도 동시에 튀르크의 대표자이기도 했던 오스만 제국의 존재는 그러한 이란 고원 튀르크계들의 이란화를 어느 정도 늦추는 역할도 했다고 보는 편입니다.

거기에 러시아가 이란을 제국주의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의 손에 넘어가고 이후 확실하게 아제르바이잔계의 독립 민족 의식이 생기게 되었지요.


수니파는 그래도 아주 극단주의, 근본주의 신자들이 아니라면 시아파에 대해서도 '같은 무슬림이잖아? 싸울 이유가 없다구' 정도의 태도를 보이는 편이지만 시아파 신도 사회는 항상 소수파였다는 점, 대체로 수니파 국가에서 탄압받으며 살았다는 점, 혈통주의자로 오인된다는 점(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등등으로 인해 수니파에 대한 혐오 정서가 훨씬 큰 편입니다.

이란 현재 신정 정부가 그토록이나 억압적이고 근본주의적이며 민중의 지지도 크게 얻지 못하는 와중인데도 그 구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에는 이러한 시아파 사회가 '그렇다고 수니파랑 화해했다가 수니파 애들이 우리 사회에 침입해서 예전처럼 우리 핍박하면 어떡함?'이라는 심리가 단단하게 한 몫하고 있지요. 즉 우리 사회를 수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란 신정 정부는 필요악이다 뭐 대충 이런 관념들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억압적인 이란 시아파 근본주의 신정 정부는 이런 심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지요.

말씀하신대로 이슬람 전체의 종교 개혁-현대 윤리에 발맞춘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대립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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