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이 뜸했던 이유
작성글 보기를 눌러보니 2월 9일을 마지막으로 글을 네 개 밖에 쓰지 않았더군요
저는 글이 막히는 일이 없는데도 글이 막혀서 못 쓰고 그냥 자는 것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해서 이 글을 지나치고 그냥 글을 쓰기에는 마음이 자꾸 걸리더군요 ㅠ
그래서 오늘은 꼭 글을 쓰기 전까지 자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글을 쓰고있어요
큰삼촌은 지난 제 글들에도 종종 등장하셔서 기억하실 분도 계실 수 있어요
제가 고3때까지 살던 연립주택에서 옥탑방에 계셨구요, 제가 12살 때까지 같이 살았어요
예술을 하시는 분이다보니 집 안에 계시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어린시절을 큰삼촌이랑 같이 보내게 되었어요
저희 큰삼촌은 아이들을 무지 좋아하시는데다가 무지 재밌는 분이셔서 저도 무지 좋아했어요
제 글에 자주 등판하는 엄마보다도 제가 좋아하고 따랐던 분이라서 큰삼촌이랑 같이 살았을 때부터 세랴를 했더라면 큰삼촌이랑 있었던 일을 더 많이 썼을 거예요
마냥 아이 눈높이를 잘 맞춰주시고 잘 놀아주시기만 하셨던 게 아니라 생각도 멋있는 분이셔서 진심으로 존경했어요
항상 스스로 생각하게끔 해주셨던 말씀덕분에 지금 저는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땐 부족한 사람이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데 약 2년전 암으로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게 되셨어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나서서 챙기는 편이셨으면서 본인의 아픔은 다 참으면서 버티시다가 너무 늦게 발견하고 말았던 거예요
그 뒤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수척해지셨는데도 제 앞에선 조금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셨어요
요양병원에 계실 때는 제가 병문안 갔었는데요, 제가 평생을 큰삼촌께 받기만 했는데도 노트북사라고 용돈을 100만원이나 주시더군요 ㅠ
큰삼촌이 결혼하고 분가하시기 전까지 용돈을 큰삼촌한테 받아서 병문안가서 용돈을 받았을 때 어렸을 적 생각이 났어요
그렇게 청천벽력같던 순간도 잠시 큰삼촌은 다시 뵐 때마다 그대로셔서 조금씩 낫고 계실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최근에서야 알게되었는데 큰삼촌의 상태는 나아진 적이 없었다고해요
큰삼촌은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서 괜찮은 척을 하셨던 거였어요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를 아득히 넘어버려서 결국 입원하시게 되었는데요, 진통제의 부작용 때문에 옆에 반드시 간병인이 있어야만했어요
통증 때문에 20분 자고 20분동안 일어나계시고를 반복하셔서 24시간을 교대로 간병하는 간병인이 필요했는데요, 간병인을 구하려고해도 큰삼촌의 상태를 보고 다들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큰삼촌의 와이프(저한테는 큰외숙모)랑 제가 교대로 간병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오후부터 저녁까지만 있다가 밤을 맡았었는데요, 해보니까 남한테 맡길만한 일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것 보다도 잠깐 집에서 쉬고 올 때마다 상태가 나빠져계시고, 제가 있는 동안에도 실시간으로 안 좋아지시는게 눈에 보이더군요
그렇게 제가 간병을 시작한지 5일만에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밤에 돌아가셔서 다음날부터 장례식을 치뤘어요
밤에는 눈뜨고 있고 낮에 자는게 버릇이 되어서 무지 힘들겠다고 생각했지만요
막상 장례식장에 있으니 졸린 것도 잠깐이더군요
장례식장에는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고 정말 많은 꽃들이 왔어요
같은 장례식장의 다른 곳과는 비교될 정도로 무지 성대하더군요
어른들은 원래 본인상에는 많이 안 온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놀라워하셨어요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큰삼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멋있는 사람이었나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최근까지 하셨던 일의 동료분들까지 다양한 곳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요, 그렇게 큰삼촌이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살아오셨던 흔적이 모두 아름다웠던 걸 새삼스럽게 느꼈어요
큰삼촌의 장례식을 마치고 산에 묻었어요
병문안 갔을 때 tv로 다큐멘터리를 보시면서 다 나으면 꼭 산에서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제 영원히 산에서 지내게 되셨어요
그렇게다시 장례식장으로 정리하러 돌아왔는데 큰외숙모의 차가 말썽이었어요
큰삼촌이 차도 잘 아셔서 제가 중고차를 사게 된다면 같이 가주기로 하셨던 기억이 나던데 어쩜 그렇게 바로 생각나게 만드는지 하늘이 야속하더군요
저도 이런 마음이었는데 아마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힘드셨을 분들은 할머니랑 할아버지일 거예요
할아버지랑 할머니한테는 직접 낳아서 기른 아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다른 때보다도 저랑 엄마를 곁에 두고 싶어하셨어요
평소에도 저랑 엄마가 같이 있다가 빠져나고나면 공허하다는 말씀을 종종하셨는데 이번엔 텅 빈듯한 마음이 훨씬 크셨나봐요
그렇게 할머니 곁에 3일을 더 있어드리고서 집에 돌아왔어요
공백의 일주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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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상실감이 얼마나 크실지 짐작조차 안 됩니다 ㅠ 시녜님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