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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잡설)흑인 노예 무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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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15 20:50:46

사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상과는 달리 흑인 노예 무역의 시작은 백인 침략자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들이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흑인 민족/부족/국가 사회집단들 간의 분쟁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의 노예들과 이러한 노예들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아프리카의 고대사회적 경제 구조가 아메리카 식민지화와 함께 대량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유럽인들의 이해 관계에 맛물리면서 '상호 공조'로써 발생한 것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노예 무역의 시작 시점, 그리고 적어도 18세기 말엽까지는, 흑인이 같은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백인들에게 팔아넘기는 것이 세계 노예 무역 시장의 일반적인 구도였다.


흑인이 어떻게 같은 흑인을 노예로..?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지극히 현대인적이고 또한 '북미 흑인'스러운 감정이기도 한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일반적인 한국인들이나 북미 흑인들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제각기 민족 집단, 부족 집단, 심지어는 제어 사용자 집단(제족 집단) 단위로 크게 다르며(애초에 아프리카가 중국 몇 개는 들어가고도 남는 거대한 대륙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피부색이 같다고 해서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거나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절대다수 흑인 국가들, 민족 집단들은 서로를 그저 때려잡아야할 외적이나 그냥 이방인으로 인식했다. '흑인은 모두 동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20세기 북미/미국 흑인들을 중심으로나 나온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여하간 유럽의 기술발전과 상업의 발전, 이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세계 무역 질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부족들, 국가들을 '전략적 구속'에 빠뜨렸다. 흑인 민족 집단들, 부족 집단들끼리 전쟁을 벌여 서로 간에 얻은 포로들을 노예화하여 노예제 사회의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당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부족/국가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에 필요한 경제 기반 구축에 있어서 매우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본래는 당연히 이런 흑인 국가들이 딱히 자신들이 취득한 노예들을 유럽 상인들과 거래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유럽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무기 기술 면에서 세계를 선도하고(이미 총기가 제식화되기 이전인 14~15세기에도 이미 군사 기술적인 면에서 유럽이 사실상 세계 1위급에 올라섰다고 평가받기도) 거기에 16세기 이후 유럽 중심의 총기 발전 상황이 눈부시게 빛나며 총기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무기의 패러다임을, 더 나아가 전투의 패러다임을, 그리고 전쟁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자 이 총기 사용법을 전파 받은 사하라 이남 흑인 민족/부족 집단들, 국가들은 상호 경쟁 간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은 총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승패의 주요한 관건이 되어버렸다.

발전한 유럽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낙후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흑인 국가, 사회집단들이 그나마 좋은 값어치를 받으며 유럽-아메리카 무역 질서에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은 그 자신들이 취득하여 그 자신들의 노예제 사회를 돌아가게 만들 원동력이던 '노예 그 자체'였고 또한 유럽의 급격한 발전을 통해 취득한 막대한 부 및 노예 인력 투자를 통해 더 많은 부로 환원되어 돌아올 이득을 이미 알고 있던 유럽 무역상인들은 마땅히 그 노예 수입에 상당한 재화를 지불할 용의도 충분했다.

따라서 사하라 이남 흑인 국가들, 사회집단들은 '자신들의 사회에 필요한 노예 인력을 자신들의 사회 안에서 사용하지 않고 대신 수출함으로써 그 대가로 총과 기타 재화를 손에 쥐고 이를 통해 당장 서로 간의 경쟁에서 생존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으며 사실 그것은 당장의 상황에서는 불합리한 판단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총과 기타 재화를 손에 쥔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기 훨씬 쉬웠고 멸망당한 쪽은 결국 그 자신들이 노예를 보존하려다 스스로 노예 처지가 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히 이것은 아직 고대 사회식 노예제 인력을 기반으로 국가 사회의 경제 질서를 운용하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흑인 국가들에게는 '잠재적이며 장기적인 국가 운용에 필요한 기반'을 포기하는 행위였고 말하자면 이는 딜레마였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1670년, 지역 패권국이던 다호메이를 중심으로 연간 3천여명의 노예가 유럽 노예무역상들에게 판매되었지만 서아프리카에 플린트락 머스킷이 전파된 이후인 1688년부터는 연간 2만여명의 노예가 유럽 노예무역상들에게 판매되었다. 다호메이는 이렇게 노예를 판매하면서 얻은 총기로 나라를 확장했고 곧 서아프리카 최대 노예 거래 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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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09-15 20:49:29

하긴 동아시아에서도 전쟁나면 서로 노예로 삼고 공녀 요구하고 그랬으니

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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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15 20:55:17

기독교 세계화가 이루어진 이후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금기시되던 유럽에서도 전쟁으로 잡힌 전쟁포로들은 대부분(물론 기사, 귀족, 왕족급은 당연히 논외) 암암리에 노예 시장으로 팔려가곤 했죠. 단지 유럽인들이 유럽 내에서 직접 노예를 쓰는걸 터부시했다 뿐이지 유럽 외로 유출시키고 대신 재화를 얻는 용도라는 개념으로써는 노예제가 부분적으로나마 잔존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유럽 내에서 아예 안 쓴 것도 당연히 아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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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5 20:49:46

인간 최대의 적은 동족이라고 하는게 틀린말이 아니죠. 슬라브 노예 하면 오스만제국 수요가 제일 높았을것 같지만 스페인 위시한 서유럽이나 러시아도 만만치 않았던걸 생각하면 참...

OP
1
2021-09-15 20:59:00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완전한 노예제 시스템의 철폐는 생각보다 최근에 일어난 일로 간주해야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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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15 20:53:43

원래 대항해시대3 교역물 중에 노예가 있었는데 한글판 정발되면서 잘렸죠...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노예무역의 존재를 배제한 게 정치적 올바름 측면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당시 시대상의 큰 부분이 잘려나간 느낌은 들긴 합니다

OP
2
Updated at 2021-09-15 21:00:27

보통 이런 노예 무역을 게임에서 제대로 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유로파 시리즈에서도 노예 무역은 그냥 프로빈스 자원으로 대충 퉁치고 나머지 묘사는 삭제하고 넘어가버린; 아무래도 솔직히 이게 다루기는 힘든 문제라 이해는 합니다. 함부로 묘사했다가는 그 의도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그냥 무지막지한 비난이 떼거리로 들어올 수도 있는 주제이니..

1
2021-09-15 20:55:35

그당시 노예들은 대부분 전쟁포로나 전쟁에서 진 부족들이 많았고 남자 노예들은 거세된뒤 팔렸기에 후세가 없었죠. 당시에는 경호의 목적이 가장 컸고 재산증식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미흑인역사 수업에서 배웠네요

OP
2
Updated at 2021-09-15 21:09:01
그 거세도 사실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아프리카가 하도 넓어서 노예무역 반경 루트도 다양했던지라.. 에티오피아-오만-소말리아-예멘 방면에서 주도되던 노예 무역의 경우에는 거세가 극도로 일반적이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 인도양 방면을 통해 성행하던 흑인 노예 무역의 생존자 후손들은 극도로 드문 편입니다. 소위 말씀하신 '경호 용도'의 노예 수요가 타 지역에 비해 유독 훨씬 많던 지역도 바로 이 소말리아-오만-탄자니아-예멘 등지였지요. 그 외 지역은 딱히 경호를 목적으로만 노예를 요구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동력 용도의 노예 수요가 압도적이었지요.

한편 16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이루어진 아메리카 노동력(북미, 남미 포괄해서인데 솔직히 당시까진 남미 쪽으로가 압도적이었던. 북미가 덜 개척된 상황이었던지라 말이지요. 그래서 주로 포르투갈/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브라질, 카리브해 제도들에 흑인 노예 무역이 치중되었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북부 브라질, 카리브해 제도 국가들에서 사람들 외모가 흑인풍이 꽤 짙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용도의 노예 무역에서는 거세는 정말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백인-흑인이야 백인 주인들이 엄금하는 부분이니 거의 일어나지 않았어도 원주민-흑인 혼혈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한편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직접 식민화하면서 직접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아프리카-아메리카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을 직접 시행한게 1821~1822년경부터로 추정되는데 이 때부터 무역망을 통해 본격적으로 북미에도 흑인 노예들이 대량 유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2021-09-15 21:19:47

극초반 노에라면 대부분 그쪽 출신일겁니다… 루트가 이집트를 통해 그리스로 팔려가는 루트가 최초라고 들었던거 같습니다. 그 시기라면 아직은 노동력을 위한 노예를 거래하기엔 공급도 적었고 구매가능한 계층은 노동력보단 안전을 위한 노예를 거래했다고 하셨거든요

OP
2021-09-15 21:22:18
아 그 고대 시절 홍해-이집트 루트로 이루어진 노예 무역이라면 정말이지 경호원 용도가 비중이 훨씬 높긴 했을 겁니다. 본문은 근대 시점으로만 다뤘지만 고대사에서도 이집트가 오늘날의 수단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흑인 노예들을 잡아들였는데 뭐 노동력으로 아예 안 쓰였다고 하긴 뭣하겠지만 근대 흑인노예 운용법에 비하자면 고대의 흑인 노예 무역을 통한 흑인들은 대체로 경호원(메자이 등)으로 쓰여진 감이 훨씬 컸던 것으로 보이니 말이죠.
1
2021-09-15 21:23:12

아마 노동력을 위한 흑인들은 이집트에서 내수로 돌았을 확율이 높다고 하더라구요

Updated at 2021-09-15 21:16:10

"흑인이 어떻게 같은 흑인을 노예로.." 라고 생각이 존재한다는 게 더 신기하네요 ㄷㄷ 이 또한 아프리카 및 사하라 이남에 대한 모독 아닐지

OP
1
Updated at 2021-09-15 21:19:16
보통 북미 흑인들이 처음 노예 무역 역사 공부한다고 치면 '띠용..?'하는 부분이 이 파트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미국 특유의 사회 구조, 사회 내 핍박받는 약자(?) 집단인 흑인으로써의 동지 의식 등) 입장임을 고려하면 이해는 가긴 합니다
2021-09-16 14:14:29

요즘은 피부색으로 연합하는거 보면
블랙팬서 백인으로 그려본 작가가 만방에 흑인들에게 욕먹는거 보고 할말잃었습니다ㅋㅋㅋ

OP
2021-09-16 19:35:01
원래 90년대 전까지만 해도 화이트워싱이 일반적이었고 이것 때문에 북미 유색인 사회가 화이트워싱에 엄청 민감하죠. 문제는 상황이 역으로 반전되어서 너무 온갖 상황에다 대고 화이트워싱이니 어쩌니하고 지적하고 선 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

영화 갓 오브 이집트에서도 왜 아프리카 국가 신화 배경인데 흑인 배우가 한 명 밖에 없냐며 북미에서 이 주제로 욕 오지게 먹었는데 사실 어떻게 말하자면 백인이고 흑인이고 간에 '북미인,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주관적이고 편협한 잣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꼴에 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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