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왕국의 눈물 다 해본 후기(장문)
캡쳐하진 않았지만 엔딩 후 진행도는 48프로였네요.
어제부로 우선 회차 마무리하고 나름대로 저의 감상을 늘어놓을 준비가 된 거 같아 게임플레이 소회를 해봅니다. 장단점을 동시에 짚어볼 생각이고, 그에따라 필연적으로 비교 대상인 전작 야생의 숨결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1. 이번 왕눈이 전작에 비해 눈에 띄게 큰 호평을 받는 부분은 스토리입니다.
야숨의 경우 스토리를 이끄는 메인퀘스트의 큰 맥락은 두 줄기였죠. 추억의 장소로 가서 기억을 찾는 것과, 4신수의 용사들을 해방하는 것. 이 두 흐름이 가논토벌/젤다와의 재회라는 엔딩에서 합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숨의 스토리는 짧고, 각 스토리들의 연계도 느슨한 편입니다.
하지만 왕눈의 스토리는 그렇지 않죠. 메인퀘스트가 차지하는 분량이 전작에 비해 큰 편입니다.
우선 4현자는 전작의 4신수처럼 따로 간단히 분류할 수 있지만, 지상화 조사로부터 시작되는 퀘스트는 길고 순서도 엄밀한 편입니다. 일직선으로 나열해보자면
11지상화 조사 - 마지막 눈물 조사 - 하이랄 성에서 가짜젤다 색출 - 카카리코 마지막 유적 조사 - 뇌명섬 발견 - 5번째 현자 합류 - 마스터소드 수탐(데크나무) - 마스터소드 획득
까지가 한 흐름입니다. 거기에 4현자의 합류는 5번째 현자 퀘 전 시점이어야 자연스럽고(현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5번째 현자를 찾아야한다고 말하는건 이상하니까..), 코가님 퀘스트라인 역시 가논돌프의 위치를 획정해주는 퀘스트이기 때문에 세번째 메인퀘스트 줄기로 봐야할 것입니다.
물론 이 메인 퀘스트들을 엄밀히 순서를 지켜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꼬이면 기묘한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죠. 저같은 경우, 하이랄 성이 마지막 퀘스트인줄로 착각하고 충분히 모험을 즐기다보니 미넬이 먼저 합류하고 마스터소드를 수복한 다음에야 가짜젤다를 고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퀘스트가 어떻게 되느냐? 하이랄 성에서 젤다가 가짜인 것을 알고 프루아가 5번째 현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해주죠. 그런데 링크가 손짓 한 번 하고 나니 응? 벌써 5번째 현자를 찾았다고? 응? 벌써 마스터소드를 가지고 왔다고? 라고 바로 반응합니다. 아무래도 자연스럽다고 보긴 어렵죠.
또 다른 예로, 유튜브 김실장 팀도 이번에 왕눈을 엔딩까지 달렸습니다. 11지상화를 모두 조사하고 스핀반도에 마지막 눈물을 떨구는 컷신이 나오자 김실장도 바로 그쪽으로 뛰었어요. 그런데 가는 중간에 김실장이 물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떨군 백룡을 뒤쫓아 먼저 마스터소드를 얻고, 그 다음에야 12번째 눈물 컷신을 봤죠.
이런 순서로 진행하더라도 당연히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헝클어지고 나면 분위기가 짜게 식는 건 어쩔 수 없죠. 스토리를 그렇게까지 중시하지 않는 유저라도 아, 이 순서로 했어야 하는게 맞구나 라는 생각 정도는 들 겁니다.
야숨은 스토리라인이 짧고 간단했기 때문에 무엇을 어느 순서로 하든 거의 상관이 없었습니다. 시작의 대지 벗어나자마자 방패 점프 하고 가논 잡았다! 야숨 끝! 해도 말이 되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왕눈은 깊고 복잡한 서사를 내세우고 있고, 그래서 퀘스트라인을 엄밀하게 지키는게 전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듣기로는 야숨처럼 시간의 신전 벗어나자마자 하이랄 지저로 직행하면 마스터소드가 떨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이야기가 말이 된다고 보기 어렵죠.
이런 약점 아닌 약점은 전작의 극도로 자유로운 오픈월드 플레이에 '스토리'라는 새로운 강점을 더하다가 나온 부조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작의 경우는 스토리가 단순했기 때문에 이런 약점이 나올 빌미가 없긴 했으니까요. (서사가 단순하다는 말은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2. 기왕 이렇게 된 거 컨셉을 그렇게 잡은 건지, 왕눈은 야숨보다는 유저의 동선을 알게모르게 컨트롤하려는 경우가 잦은 편입니다. 마구간이나 갈림길 같은 곳에 배치된 데려다줘 코로그 같은 경우가 그렇죠. 근처에 배치된 조나우 기어들을 통해서 해결하는 필드 퍼즐이긴 하지만, 결국 유저가 직접 코로그를 지근거리까지 배웅해야 하는 만큼 다음 이정을 인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npc의 대사나 몹 배치도 동선을 은근히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구간의 신문 독자들은 다들 '신문사를 방문해볼까' 하는 대사를 치면서 첫 현자를 리토 마을 쪽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죠. 아니면 리토마을 방향으로 향하기라도 하도록 말입니다. 확실친 않지만 적어도 악단을 처음 만나는 지점까지만이라도 유저가 가보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야숨은 어느 요정이든(보통 카카리코이긴 하지만) 처음 만나는 대요정이 곧바로 방어구 업글이 시작돼요. 하지만 왕눈은 무조건 헤브라가 시작이고, 그 다음에야 나머지 3군데는 병렬적으로 배치됩니다.
그리고 몹의 난이도도 헤브라 쪽이 조금 쉬운 편이죠.
야숨이나 왕눈이나 방어구 업글은 몬스터 소재를 낮은 등급부터 차근차근 써야하기 때문에 레벨스케일링과는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기본 보코블린 같은 최하등급 몬스터를 일정 숫자 이상은 유지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강제로 약하게 배치된 몹들은 야숨의 경우엔 조금 적었던 기억이 있는데요(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야숨은 몬스터 소재 자체가 그다지 많이 소비되지는 않는 재화였죠. 물약계열을 만드는 것 아니면 팔아서 루피 만드는 정도? 그래서 어느 등급이든 간에 몬스터 소재는 쌓이게 되고, 그래서 기본 등급 몹을 그다지 많이 배치할 필요는 없죠.
하지만 왕눈은 몬스터 소재가 가장 흔한 스크래빌드 재료이기 때문에 전보다는 훨씬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등급의 몬스터들을 전작보다는 많이 유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등급으로나 몹의 종류로나(가는 길에 리잘포스같은 까다로운 몹이 제일 적었던 느낌) 리토마을 쪽이 가장 쉬웠던 것 같습니다. 물론 1차 목적지인 대요정 있는 마구간에서 북쪽으로 가지 말고 얌전히 리토마을로 가세요~ 하는 듯한 그리오크도 그렇구요.
그렇게 리토마을까지 가면, 그때부터 유저의 동선을 조금 퍼뜨려주죠. 신문사 퀘스트로 각 마구간이 어디에 있는지 쭈욱 소개한 다음, 그 마구간들이 또 각각 퀘스트로 동선을 퍼뜨리고, 가끔은 하늘 쳐다보는 퀘스트 줘서 하늘도 가게하고, 하늘에선 낡은 지도를 줘서 지저로 가게하고...
지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저야말로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모험심보다는 제작진의 유도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이죠. 우선 시야가 꽤 많이 차단돼서 유저의 호기심 자체가 지상이나 하늘보다 훨씬 덜하고, 그래서 뿌리를 밝히는 순서는 조슈아의 지시나(이가단 퀘스트) 하늘에서 파밍한 지도,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다음 뿌리 빛의 방향에 의존하고 있어요.
독기를 통해 움직임이 제한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저에서 찾아낼 수 있는 발견의 종류가 지상에 비해 다양하지 못하다보니(이건 하늘도 약간은 공유하는 문제) 이런 인위적인 인도가 아니라면 유저의 동인이 조나니움이나 강한 무기 정도밖에 없죠. 지상에도 약간 빈듯한 공간이 몇군데 있지만(저에겐 필로네 쪽이나 겔드고지에서 리토마을 남쪽까지가 그랬습니다), 지저는 넓은 공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엔딩으로 향하는 시점이라면 가장 강한 몹들과의 전투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건 후순위가 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스토리의 몰입감이 강해서 뒤로 갈수록 그런 곁가지가 되는 요소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엔딩으로 향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하거든요. 이것 역시 야숨이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이드임팩트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전작은 스토리가 느슨하다보니 엔딩 전에 이것저것 다 하고 하이랄로 가볼까? 하는 느긋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눈은 꽉 짜여져 있고 치닫는 힘이 야숨보다 훨씬 세기에, 뒤로 갈수록 모험욕구의 비중이 전작보다는 줄어드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회차를 끝내는 타이밍이 제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3. 큰 틀에서 벗어나 게임플레이쪽으로 눈을 돌려보자면, 왕눈은 울트라핸드의 장점이 무시무시하리만치 잘 구현된 게임입니다. 링크의 다른 능력들보다도 울트라핸드의 비중이 훨씬 세죠.(스토리와 함께 왕눈을 캐리하는 요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능력들은 조금 애매하게 구현되었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블루프린트는 울트라핸드의 서브능력이나 다름없고, 트레루프도 발매 전에 기상천외하게 사용되리라고 예상했던것과는 달리 사용처가 꽤 한정적이었습니다(리모컨 폭탄 느낌?). 스크래빌드는 소재를 내려놓고 결합하는 방식이 불편했고, 방패에 사용할 경우엔 꽤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오른손무기에 쓸 때는 야숨의 무기파밍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습니다. 활의 경우는 소재결합쪽에 자리를 내줬는데 이 소재결합이 생각보다 귀찮은지라... 활에도 스크래빌드를 적용했더라면 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아쉬움 정도는 있었던 것 같네요.
무엇보다 리버레코 쪽이 개인적으로는 애매했는데요. 다른건 별 불만이 없지만 능력을 발동했을 때 게임이 멈추는 것에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전작의 경우엔 이런 경우가 없죠. 공중활은 세계 내에서 혼자 움직이지만 거기에도 스태소모라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요소가 있어요. 하지만 리버레코는 시전했을 때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립니다. 메뉴키를 누르거나 무기를 바꾸는 걸로 멈춰지는 것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주는 정지상태로 느껴져요. 이건 트레루프에서도 느껴지는 위화감이었습니다.
4. 울트라핸드는 엄청난 기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울트라핸드를 보면 정말 샌드박스의 재미를 게임으로 만들면 이런 형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자 안의 모래로 성도 만들고 다리도 만들고 하다보니 테라리움을 만들게 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야숨의 능력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주는 재미의 '궤가 다르다'는 생각 역시 듭니다. 조금 자세히 말하자면, 울트라핸드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라면 야숨의 능력은 '내가 이건 할 수 있고 이건 할 수 없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울트라핸드와 가장 유사해 보이는 마그넷 캐치의 경우 자력이 통하는 오브젝트만 움직일 수 있었어요. 아이스메이커는 물에서만 발동됐죠. 타임록은 쓰임에 따라 엄청난 사기스킬이었지만 일단 그 기능만 보자면 꽤 섬세함이 필요한 능력이에요. 그래서 이 능력들은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따져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울트라핸드가 꽉 들어찬 냉장고 가지고 차린 근사한 정찬이라면 야숨의 능력들은 자취생이 온몸 비틀어서 만들어낸 그럭저럭 먹을만한 한끼같은 느낌이죠. 당연히 전자쪽이 훨씬 대단하지만, 온몸을 비틀다보면 나를 가두고 있는 틀이 어떤 모양인지 알게 됩니다. 야숨에서는 이런 방식으로도 세계와 호흡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물론 이 의견은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도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왕눈은 스토리와 울트라핸드의 기능성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전작부터 이어져온 자유로운 탐험이라는 방식이 깊은 서사를 헝클어뜨릴 수도 있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왕눈은 유저의 동선을 좁히려고 꽤 노력하는 듯 보인다.
하늘과 지저는 지상에 비해 단순하고 빈 공간인 느낌이 든다.
리버레코와 트레루프를 사용했을 때 시간이 멈추는건 위화감이 든다.
글쓰기 |
글 대충봤는데 왕눈 하려고 야숨할 필요는 없는거군요
스위치 생겨서 왕눈 사려다 고만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