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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올타임 베스트 25 스쿼드 (4)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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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2-06 20:50:10

Intro &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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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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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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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 시절 활약

2. 클럽에서의 활약  

3. 1부리그 활약 중심  

4. 누적을 좀더 반영  

 

25인 스쿼드 선정이 목적이라 클럽 소개나 선수 소개는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다분히 주관적인 선정이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수밖에 없는 내용인만큼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토리노는 1906년 창단되었습니다. 93시즌 1부리그에 있었고, 12시즌 2부리그에 있었고, 그 중 10시즌이 1995년 이후였으니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리그내 강자로 떠올랐고, 팀의 최전성기는 1940년대입니다. 5연속 스쿠데토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수페르가 사고라는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리그내 강호였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올타임 Serie A 누적 승점 TOP5에 들었습니다. 1991-1992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최전성기에 주로 사용했던 전술인 3-2-2-3을 기준으로 선정하였습니다. 

 



P: 골키퍼, D: 수비, C: 미드필더, T: 2선, A: 공격 

(2선을 따로 분류한 Gazzetta dello Sport식 포지션 구분입니다.)

 

주전은 리그 경기 40% 이상 선발 출전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평균적으로 1시즌에 12~13명 정도가 포함됩니다.

 

 

[P] Valerio Bacigalupo (1945-1949) [137/-115]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5-1946 시즌 21세의 나이에 토리노로 이적. 4시즌간 토리노의 주전 골키퍼로 리그 4연속 우승에 기여.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5세의 나이로 사망. 토리노 시절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단계였음.

 

[P] Lido Vieri (1958-1969) [357/-377]

토리노 역대 출전 5위. 골키퍼 중 최다 출전. 토리노 유스 출신으로 3부리그에서 1시즌 경험을 쌓은 뒤 1958-1959 시즌 19세의 나이로 1부리그 토리노의 주전으로 자리잡음. 팀이 2부리그 강등 되었을 때도 함께 했으며, 승격 이후에도 주전으로 활약. 10시즌 넘게 토리노에 소속되었고 30대에 인테르로 이적. 이탈리아 대표팀 4경기 기록이 있고, 유로 1968 우승 당시 백업 골키퍼.

 

[P] Luciano Castellini (1970-1978) [267/-230]

몬자 유스 출신으로 2부리그 몬자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후 24세였던 1970-1971시즌 1부리그 토리노로 이적하여 곧바로 주전을 차지. 8시즌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경기당 평균 0.86실점의 훌륭한 기록을 보여줌. 이후 나폴리로 이적. 당시 Zoff와 Albertosi라는 엄청난 골키퍼와 동시대였기 때문에 대표팀 경기는 1경기뿐이고 써드 골키퍼로 1974 월드컵 참가.

 

[D] Cesare Martin (1919-1936) [345/1]

토리노 역대 출전 6위. 수비수 중엔 최다 출전. 토리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 4형제가 모두 축구 선수로 토리노에서 활약했으며 이 중 둘째인 Cesare, 셋째인 Dario는 국가 대표 경력이 있음. 중앙 수비수로 활약. 무려 17시즌이나 토리노에서 활약했고, 14시즌이나 주전 선수였음. 토리노 시절 말년엔 팀의 주장 역임.

 

[D] Osvaldo Ferrini (1932-1944) [268/0]

중앙 수비수로 초기 축구 시스템상 중앙과 왼쪽을 전담했던 수비수. 토리노 유스 출신으로 토리노에서 데뷔하여 12시즌간 토리노에서 활약. 토리노 5연속 우승의 첫 시즌에 주전 멤버로 리그, 코파 더블에 기여.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코모로 이적.

 

[D] Aldo Ballarin (1945-1949) [149/4]

2차 세계대전 이후 23세의 나이에 토리노로 이적. 4시즌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4연속 리그 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 메토도에서 시스테마로 넘어가는 과도기 멤버로 새로운 전술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자리잡고 있었음.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7세의 나이로 사망. 당시 대표팀 주전 선수였음.

 

[D/C] Mario Rigamonti (1945-1949) [140/1]

브레시아에서 데뷔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22세의 나이에 토리노로 이적. 4시즌간 토리노의 핵심 멤버로 리그 4연속 우승에 기여. 시스테마의 중앙 수비수로 당시 새로운 전술 변화의 핵심 위치였음.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6세의 나이로 사망. 대표팀에서는 유벤투스의 Parola와 동 포지션으로 경쟁이 치열했음.

 

[D] Giorgio Puia (1963-1972) [326/16]

트리에스테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비첸자를 거쳐 25세인 1963-1964 시즌 토리노로 이적. 토리노에서 9시즌 활약 후 은퇴. 장신의 중앙 수비수로 당대 이탈리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였음. 대표팀에는 백업으로 주로 활약했고, 1970 월드컵 참가.

 

[D] Roberto Cravero (1981-1983, 1985-1992, 1995-1998) [300/18]

토리노 유스 출신으로 토리노에서 데뷔하여 2부리그 체세나 임대 생활을 거치고, 22세인 1986-1987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 1992-1993 시즌엔 라치오로 이적했으나, 3시즌 뒤 다시 토리노로 복귀하여 토리노에서 은퇴. 토리노에서 6시즌 주장으로 활약. 포지션은 리베로. A매치 기록은 없으나 유로 1988 스쿼드에는 Baresi의 백업으로 포함되었었음.

 

[C] Antonio Janni (1920-1937) [330/52]

토리노 역대 출전 9위. 토리노에서 데뷔하여 무려 17시즌 토리노에서 활약했고, 그 중 13시즌은 주전으로 활약. 1937-1938 시즌 바레세로 이적하여 1시즌 활약 후 은퇴.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Cesare Martin의 뒤를 이어 토리노의 주장 역임. 192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주전 미드필더였음.

 

[C] Giuseppe Grezar (1942,1949) [159/19]

트리에스티나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23세인 1942-1943 시즌 토리노로 이적.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토리노에서 활약하였음. 토리노 5연속 리그 우승 당시 5시즌 모두 주전으로 활약.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30세의 나이로 사망.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 선수였음.

 

[C] Eusebio Castigliano (1945-1949) [115/36]

2차 세계대전 이후 24세의 나이에 토리노로 이적.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도 가능했고, 따라서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득점력도 상당히 훌륭했음. 4시즌 연속 주전으로 활약하며 토리노의 4회 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8세의 나이로 사망.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전 미드필더였음.

 

[C] Giorgio Ferrini (1959-1975) [566/56]

토리노 역대 출전 1위. 16시즌이나 토리노에서 활약했고, 10시즌 이상을 토리노 주장으로 활약한 최고의 레전드. 메짤라로도 활약했고,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오랫동안 활약. 토리노 유스 출신으로 3부리그 바레세에서 선수 생활 데뷔를 한 후 토리노로 복귀하여 2부리그 시절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아 승격 이후에도 주전으로 활약.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1962 월드컵과 1968 유로 참가.

 

[C] Renato Zaccarelli (1970-1971, 1974-1987) [413/21]

토리노 역대 출전 3위. 토리노 유스 출신으로 카타니아, 노바라, 베로나 등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23세인 1974-1975 시즌부터 토리노의 주전으로 활약. 1970년대 토리노 제2의 전성기 당시 핵심 미드필더였음. 1985-1986 시즌엔 언론사 최고 평점 선수에게 수여되는 Guerin d'oro 수상. 1980년대엔 토리노의 주장 역임.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선수로 1978 월드컵, 1980 유로 참가.

 

[T/A] Adolofo Baloncieri (1925-1932) [194/101]

토리노 역대 득점 8위. 알레산드리아에서 28세인 1925-1926 시즌 토리노로 이적. 인사이드 포워드로 초창기 이탈리아 최고 선수 중 한명. 동 포지션의 Giuseppe Meazza, Valentino Mazzola와 더불어 최고의 선수로 여겨짐. 이적 후 토리노의 주장 역임. 1932-1933 시즌 코멘세로 이적 후 1시즌 뒤 은퇴. 당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192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였음.

 

[T/A] Gino Rossetti (1926-1933, 1937-1938) [223/144]

토리노 역대 득점 3위. 21세인 1926-1927 시즌 스페지아에서 이적. Baloncieri, Libonatti와 막강한 공격 편대를 구성. 최전방과 윙어로도 활약했으나 주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였음. 1928-1929 시즌에는 리그 30경기 36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리그 득점왕. 1933-1934 시즌 나폴리로 이적하였다가 4시즌 활약 후 1시즌 토리노로 복귀했고, 이듬해 다시 스페지아로 이적. 토리노 시절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A매치 13경기 9골 기록.

 

[T] Ezio Loik (1942-1949) [181/70]

22세였던 1942-1943 시즌 베네치아에서 Valentino Mazzola와 같이 토리노로 이적. 그란데 토리노의 핵심 멤버로 리그 5연속 우승에 큰 기여. 인사이드 포워드로 Mazzola와 짝을 이뤘으며 환상의 콤비였음. 많은 활동량의 바탕으로 팀에 큰 도움이 됨.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9세의 나이로 사망.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Mazzola와 짝을 이뤄 핵심으로 활약.

 

[T] Valentino Mazzola (1942-1949) [201/123]

토리노 역대 득점 5위. Serie A 한정 득점 3위. 194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명. 그란데 토리노의 핵심. 23세였던 1942-1943 시즌 베네치아에서 토리노로 이적. 리그 5연속 우승의 핵심.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팀의 주장 역임.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나 득점력도 매우 뛰어났던 선수로, 1946-1947 리그 득점왕.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30세의 나이로 사망.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멤버로 이탈리아 대표팀 첫 10번이자 이탈리아 전체 역사로 보더라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언급되는 선수. 인테르와 이탈리아 레전드인 Alessandro Mazzola의 아버지.

 

[A] Franco Ossola (1939-1949) [181/85]

바레세 유스 출신으로 당시 바레세 감독이자 토리노 레전드인 Antonio Janni의 추천으로 19세인 1939-1940 시즌 토리노로 이적. 10여년간 토리노에서 활약하며 리그 5연속 우승에 기여. 포지션은 윙어였고 좌우를 가리지 않았음.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7세의 나이로 사망.

 

[A] Pietro Ferraris (1941-1948) [174/57]

1941-1942 시즌 29세의 나이로 토리노로 이적. 1938 월드컵 우승 멤버로 프로 베르첼리, 나폴리, 인테르를 거쳤던 이미 이탈리아 내에 널리 알려진 선수였음. 주 포지션은 레프트 윙포워드. 토리노에서 4연속 리그 우승과 1942-19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하였고, 1948-1949시즌 노바라로 이적 후 2시즌 활약하고 은퇴. 토리노 시절에도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

 

[T] Claudio Sala (1969-1980) [360/33]

토리노 역대 출전 4위. 오른쪽 윙이 주 포지션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활약. 몬자 유스 출신으로 몬자에서 데뷔하여 나폴리를 거쳐 21세인 1969-1980 시즌 토리노로 이적하여 11시즌 활약 후 2부리그 제노아에서 2시즌 활약하고 은퇴. 드리블 능력이 훌륭했음. 1970년대 Zaccarelli, Graziani, Pulici와 더불어 핵심 선수. 1970년대 후반 토리노의 주장. 언론서 평점 1위에게 주어지는 Guerin d'oro를 1975-1976, 1976-1977 2시즌 연속 수상. 대표팀에서는 Franco Causio의 백업으로 주로 활약했고, 1978 월드컵 참가.

 

[A] Paolino Pulici (1968-1982) [437/172]

토리노 역대 출전 2위. 역대 득점 1위.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토리노 최고의 레전드. 3부리그 레냐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18세인 1968-1969 시즌 1부리그 토리노에서 데뷔. Graziani와 함께 토리노의 공격을 이끌며 1940년대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만들었음. 1972-1973, 1974-1975, 1975-1976 리그 득점왕 3회. 대표팀에서도 활약했으나 클럽에서의 성과에 비해 기회도 덜 주어지고 기록도 저조했음. 1974, 1978 두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모두 백업 공격수였음.

 

[A] Julio Libonatti (1925-1934) [239/150] 

토리노 역대 득점 2위. 아르헨티나 출신의 오리운도. 25세인 1925-1926 시즌 아르헨티나에서 토리노로 이적. Baloncieri, Rossetti와 막강한 3각 편대를 구성. 1927-1928 시즌 리그 득점왕으로 토리노의 스쿠데토 획득에 큰 기여. 9시즌 토리노에서 활약 후 2부리그였던 제노아로 이적.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도 활동했고, 이탈리아로 넘어온 이후에는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여 A매치 17경기 15골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첫 중앙 유럽컵 우승에 기여.

 

[A] Guglielmo Gabetto (1941-1949) [225/127]

토리노 역대 득점 4위. 25세인 1941-1942 시즌 유벤투스에서 토리노로 이적. 그란데 토리노의 9번으로 토리노의 5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 키가 큰 편은 아니었으나 기술적으로 훌륭했고 아크로바틱했다는 평가.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33세의 나이로 사망.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Silvio Piola에 가려 기회가 많지 않았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주전 공격수로 활약.

 

[A] Francesco Graziani (1973-1981) [289/122]

토리노 역대 득점 7위. 20세인 1973-1974 시즌 아레조에서 이적하여 8시즌간 활약. 마지막 시즌엔 주장 역임. 이후 피오렌티나로 이적. 최전방 공격수지만 측면 윙포워드나 세컨 스트라이커도 소화 가능. Pulici와 짝을 이뤄 토리노의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어감. 1976-1977 시즌 리그 득점왕.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공격수로 다수의 월드컵, 유로 참가.

 

 

Bacigalupo, Vieri, Castellini 

Martin, O. Ferrini, Ballarin, Rigamonti, Puia, Cravero
Janni, Grezar, Castigliano, G. Ferrini, Zaccarelli
Baloncieri, Rossetti, Loik, Mazzola
Ossola, Ferraris, Sala, Pulici
Libonatti, Gabetto, Graziani


[주관적 베스트 11]




[아쉽게 제외된 선수]

[D] Fabrizio Poletti (1962-1971) [285/22]
19세였던 1962-1963 시즌 4부리그 아스티에서 토리노로 이적.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이었고 센터백도 소화 가능. 토리노에서 2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고, 1971-1972 시즌 칼리아리로 이적. 1967년 10월 15일 당시 토리노와 이탈리아 최고의 영스타 luigi Meroni의 차량 사망 사고 당시 함게 탑승하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경미한 부상만 당했었음. 196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자주 뽑혔으며 주로 인테르의 Burgnich의 백업이었음. 1970 월드컵 참가. 

[D] Roberto Mozzini (1971-1979) [239/11]
토리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8시즌간 활약. 주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였음. 1975-1976 스쿠데토 당시 주전 수비수. 1979-1980 시즌 인테르로 이적. 1970년대 후반엔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활약했고, 주로 백업이었으나 짧은 기간 주전으로도 나왔음.

[D] Luigi Danova (1976-1985) [340/0]
토리노 역대 출전 7위.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 24세였던 1976-1977 시즌 체세나에서 토리노로 이적. 토리노에서 9시즌 활약 후 레체로 이적하였음. 토리노 시절 이탈리아 대표팀에 선발되어 A매치 1경기 기록.

[A] Romeo Menti (1941-1943, 1946-1949) [133/54]
21세인 1941-1942 시즌 피오렌티나에서 이적하여 2시즌 활약. 2차 세계대전 즈음하여 밀란, 피오렌티나 등에서 활약한 후 1946-1947 시즌 다시 토리노로 돌아왔음. 토리노에서 4회의 스쿠데토를 경험했고 그 중 3회를 주전급으로 활약. 주 포지션은 라이트 윙포워드. 수페르가의 비극 당시 29세의 나이로 사망.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었음.


[언급될만한 선수]



[그 외 언급될만한 선수]
Giuliano Terraneo / Virgilio Maroso / Roberto Rosato / Júnior / Enzo Bearzot / Aldo Agroppi / Eraldo Pecci / Giuseppe Dossena 



[종합]
토리노의 최전성기는 '그란데 토리노' 시절이었기에 누적이 좀 부족하더라도 그란데 토리노 주전 멤버들은 대부분 포함시켰습니다. 전반적으로 선수 선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Cravero, Poletti, Mozzini를 두고 고민했었고, Menti를 포함시킬까 말까 했으나 누적이 아쉬워 제외했습니다. 2부리그 기록은 배제하기로 했기에 토리노 팬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이지만 Marco Ferrante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또 1960년대 엄청난 유망주로 많은 기대를 받았던 Luigi Meroni 같은 경우도 누적이 너무 짧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이 게시물은 Αgger님에 의해 2019-06-13 04:47:00'칼치오게시판'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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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12-04 16:22:11

황소세러머니 페란테 ㄷㄷㄷㄷㄷㄷ

2018-12-04 18:05:58

수페르가의 비극이 없었다면 역사가 달라졌겠죠?

OP
2018-12-04 18:15:59

진짜 안타까운 사건이죠. 토리노에게도 이탈리아에게도요

2018-12-04 21:09:41

잘 보았습니다. 사실 토리노 올타임으로 25인 스쿼드를 만든다면 그란데 토리노 시절 + 2-30년대 + 6-70년대 선수들 합치면 큰 골격이 다 나오는 정도라서 사실 인선의 문제는 크게 어려움이 없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있을 사람은 거기에 다 있으니. 멘티나 포사티, 폴레티 정도가 아래로 내려간 게 보이지만 사실 그건 개인 취향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페란테는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저기에 끼기는 무리가 있지요.

OP
2018-12-04 22:21:00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언급한 선수들 마지막까지 진짜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2018-12-04 22:31:25

정말 양질의 글..

2018-12-04 23:19:29

와..한명도 모르겠네요 ㄷㄷ 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얻기 힘든 좋은 정보도 많이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2018-12-06 20:50:10

잘 봤습니다! 레전드들 기록을 보니 벨로티는 명함도 내밀기힘들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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