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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피구 : 바르셀로나란 왕국에 유산을 남긴 자, 그리고 파괴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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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6-22 14:22:39

피구의 바르셀로나 시절을 잘 정리한 칼럼입니다.

의,오역이 많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꽤 깁니다...

 

[TFT] 루이스 피구 : 바르셀로나란 왕국에 유산을 남긴 자, 그리고 파괴한 자

BUILDING AND DESTROYING A LEGACY: LUÍS FIGO AT BARCELONA

 

 

 

 

[These Football Times = Steven Scragg]

 

산 하우메 광장에 있는 카탈루냐 게네랄리타트 궁 발코니에서 루이스 피구가 “레알 팬들이 울고 있습니다. 챔피언을 축하해 주십시오!”라고 열성적으로 외쳤다. 1998년 4월 말, 바르셀로나가 11일 만에 라 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타이틀을 확정 지었을 때 이야기다.

 

카탈루냐의 새로운 황제 대관식은 지금 막 열렬한 신도들 앞에서 거행됐다. 그는 그들의 주장이었으며 카탈루냐 축구의 국가 원수와도 같았다.

 

요한 크루이프의 발자취를 따라, 피구는 카탈루냐를 포용하고 상징하는 인물로 거듭나고 있었다. 카탈루냐의 전 세계적인 입지는 실존하지 않고 최면적인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피구 그 자신도 카탈루냐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피구는 카탈루냐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카탈루냐 사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년 만에, 그를 향한 애정과 무수한 경외감은 증오로 변해버렸다.

 

바르셀로나에 적을 뒀던 피구를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입으로, 서면으로 가득했다. 2000년 여름, 영문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실에 대해. 그리고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피구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피구에 대한 첫인상을 떠올리면, 레알 마드리드의 흰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를 상상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캄프 누의 엘 마타도르, 그야말로 바르샤의 상징이었던 피구는 이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갈락티코 톱니바퀴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구가 레알 유니폼을 입고 바르셀로나 원정을 갔을 때, 그는 묵묵히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피구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시간들과 영광들이 기록에 남은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바르샤 팬들은 그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했을 했으니까. 하지만 피구의 빈자리로 인한 고통, 더 짚어 말하자면 그가 떠난 행선지 때문에 특히 더 뼈아팠다.

 

 

 

 

그만큼 바르셀로나에서 피구는 우상 그 자체였다. 그를 향한 바르셀로나 팬들의 평가는 긍정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그러했던 감정 탓에 블라우그라나 팬들은 피구를 보면서 더 큰 상실감과 불편함을 느꼈다. 꾸레들의 시선에서, 피구는 그들을 배신했으며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바르샤의 붉고 푸른 형상의 피구는 이제 찌그러져 버렸다. 마치 깨진 유리에 비치듯 감각을 흩뜨리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피구가 캄프 누에서 베르나베우 행을 택한 논란의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라우드럽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미하엘 라우드럽은 레알의 흰 유니폼을 입고 카탈루냐에 돌아오면서 수많은 욕을 얻어먹었지만 따지고 보면 레알의 흰색보단 바르샤의 색채에 더 가까운 선수였다.

 

 

<1995년, 입단 동기들과 함께. 감독 크루이프, 메호 코드로, 게오르게 하지, 게오르게 포페스쿠,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등과 함께한 피구>

 

라우드럽이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듬해, 1995년 피구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었다. 성대한 입단식도 없었다. 스포르팅 CP에서 220만 파운드에 지나지 않는 헐값에 영입됐기 때문이다. 당초 그는 세리에 A의 레이더망에 걸렸고, 이탈리아로 향할 것이 유력했다. 하지만 유벤투스와 파르마 이중 계약이 발목을 잡았다.

크루이프가 감독을 맡은 마지막 시즌, 피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제공받았고, 신동답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곧 떠나게 될 게오르게 하지, 호세 마리아 바케로, 그리고 아직 빛나지만 부상이 잦던 로베르토 프로시네츠키 등과 함께 누 캄프를 수놓았다.

 

하지만 첫 시즌, 라 리가에선 3위에 머물렀고,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패하면서 그들의 더블을 지켜봐야만 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강 바이에른 뮌헨전에 아깝게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크루이프 시대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의 사임은 그라운드에서의 실패라기보다는 회장과 감독 사이 알력 다툼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다.

 

 

 

 

 

 

크루이프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피구는 다른 이들이 헤매는 틈을 타 높이 도약했다. 팀은 그렇지 못했지만 1995-96시즌 피구 개인은 어느 정도 괜찮은 성과를 거뒀다. 처음 맛본 엘 클라시코에선 아직 루이스 엔리케가 레알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승점 1점에 그쳤다. 캄프 누에서 펼쳐진 두 번째 맞대결에선 쐐기를 박는 후반전 피구의 추가골과 함께 바르샤가 3-0 승리를 거뒀다.

유로 96을 계기로 피구는 그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렸다. 포르투갈 골든 제너레이션의 일원으로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과 함께 맹위를 떨쳤는데, 루드 굴리트는 그들에 ‘섹시한 축구를 한다’는 평을 남겼다. 이들은 1989년 U-16 세계선수권대회에선 4강에서 스코틀랜드에서 패하긴 했지만 1991년 청소년 월드컵(현재 FIFA U-20 월드컵)을 들어 올린 삼총사이기도 하다.

 

유로 96, 8강서 체코에 예기치 않은 패배를 당하며 국제무대에서 그가 명성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단 평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클럽 커리어에선 금방이라도 빅 이어를 들어 올릴 듯한 기세였다.

 

 

<페르난도 쿠투, 호나우두, 비토르 바이아와 함께.>

 

 

바비 롭슨 감독이 크루이프의 후임자로 오면서 바비 롭슨이 전에 맡았던 클럽인 포르투에서 비토르 바이아가 왔고 PSV에서 호나우두가, 레알에선 루이스 엔리케가 유다의 탈을 뒤집어쓰고 넘어왔다. 게다가 왕년의 스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도 파르마에서 1년간 외도 끝에 바로 돌아왔다.

전년도 크루이프와 구단 수뇌부 사이 내전 이후, 1996-97시즌 내내 바르샤 축구는 일대 재건기를 갖는데, 이전에 비해 개방성과 축구 자체의 순수함으로 대표됐다. 라 리가 타이틀 레이스에선 레알 마드리드에 한 발짝 정도 처지는 흐름이긴 했지만, 라이벌 팀과 맞대결에선 저력을 발휘했고 타이틀 레이스에서 끊임없이 압박을 가한 끝에 결과적으로 챔피언을 차지했던 파비오 카펠로의 레알을 승점 2점 차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리그에서의 아쉬움은 리그 및 유럽 컵 대회로 상쇄했다. 로테르담에서 열린 파리 생제르맹과 컵 위너스 컵 결승에선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적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선 레알 베티스를 상대로 2점을 뒤지다 연장 끝에 승리했다. 피구는 국왕컵 결승에서 결승골을 포함 2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펼쳤다.

 

1996-97시즌의 성공은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으나 롭슨은 쫓기듯 단장으로 보직을 바꿨고, 루이스 반 할이 감독으로 왔다. 클럽은 호나우두를 내줄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이자 호나우두의 바이아웃 금액인 2400만 달러를 지불한 인터 밀란의 머니 파워를 막을 수 없었다.

 

또다시 피구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는 꾸레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었다. 전임 감독 롭슨이 전술 조직과 수비 정돈에 약점을 드러내며 일선에서 반강제로 물러난 와중에 말이다. 레알에 밀려 2위를 기록하긴 했으나 롭슨이 이끄는 바르샤는 102골을 넣으며 48점만을 내줬다.

 

 

 

 

 

1년 뒤, 피구는 카탈루냐 게네랄리타트 궁전에 주장으로 서 있었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히바우두가 그의 새로운 파트너로 누 캄프에 왔고, 어쨌든 반 할은 교묘한 지략가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이 시즌 바르샤는 1997년처럼 자유분방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골 수는 24골이 줄었고 롭슨이 지도할 때보다 8점을 더 허용했으니 말이다. 그들을 라 리가 우승의 영예로 인도한 것은 실용적인 축구였고, 메스타야에서 펼쳐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도 10명이 싸운 레알 마요르카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더블을 달성했다.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 바르샤는 다시 리그 타이틀을 손에 넣었지만 이는 최소한의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홈구장에서 펼쳐졌기 때문인데, 바르샤 서포터들은 우승을 기대했으나 조별 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조국이 1998년 월드컵 예선에서 낙마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피구. 1999년 여름, 그는 어렴풋이 자신의 명망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꾸레의 그를 향한 애정은 여전했으나 구단이 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최고 반열에 드는 선수였고 합당한 대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더 널리 알리고 싶었고 바르셀로나에서 이를 이루고 싶었다. 바르샤라는 클럽에서, 그 자신이 몸담은 도시에서 말이다.

 

피구의 캄프 누에서 마지막 시즌은 내부 갈등으로 점철된 해였다. 피구 개인도, 클럽도 말이다. 반 할이 팀 스쿼드를 모국 네덜란드 선수들로 채우려 했던 것도 문제였다. 그가 감독을 맡은 1년간 루드 헤스프, 미하엘 라이지허, 프랭크, 로날드 데 보어 형제, 필립 코쿠, 볼로 젠덴, 빈스톤 보하르데, 패트릭 클루이베르트까지 더치 커넥션들이 줄줄이 영입됐다. 히바우두의 포지션 문제를 두고 반할과 왼발의 마법사 사이 갈등도 터졌다.

 

 

 

 

1999-00시즌 내내, 피구는 증오가 가득한 상황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펼쳤다. 국내 무대에서 바르샤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클럽 사상 최초의 라 리가 우승을 막지 못했지만 유럽 무대에선 비로소 날아올랐다. 오히려 챔피언스리그 무대가 더 알맞았을까. 바르샤는 두 번의 그룹 스테이지를 훌륭히 치렀고 8강에선 첼시에 1차전을 패했으나 2차전 대반격을 통해 준결승에 올랐다.

 

피구는 이 모든 성과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8강 두 경기에서 경고를 받아 준결승 1차전이 열리는 발렌시아의 홈구장 메스타야에선 벤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피구가 쌓아온 커리어의 방향성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났다. 관중석에서 그의 동료들이 엑토르 쿠페르가 이끄는 발렌시아에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 바르샤가 결승이 열리는 파리로 나아가기 위해선 1차전 4-1 패배라는 큰 산을 넘어야만 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벌어질 엘 클라시코라는 원대한 꿈은 누더기가 돼있었다.

 

아직, 피구는 포기하지 않았고 조각난 꾸레들의 꿈을 캄프 누에서 다시 맞추려 했다. 하지만 1-4 패배를 뒤집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바르샤는 결국 이번에도 라이벌 팀이 유럽 정상에 서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이 피구가 캄프 누에 바르셀로나 선수로 발을 디딘 마지막 순간이었다.

 

 

 

패기 넘치는 피구는 유로 2000에서 조국 포르투갈을 4강까지 이끌었고, 곧 플로렌티노 페레즈가 레알 마드리드 회장 선거에서 예기치 않은 승리를 거뒀단 소식을 들었다. 페레즈는 피구를 바이아웃 금액을 내고서라도 레알로 데려오겠단 선언을 한 터였다.

 

27세의 피구는 전성기의 정점에 이른 터였고, 그 누구도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가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선수가 됐을 뿐 아니라, 축구계에서 일촉즉발의 국경과도 같은 경계선을 넘은 것이었다. 레알은 바르샤에게 숙원의 적수이자, 이념적으로도 독립을 꿈꾸는 카탈루냐에 대척점이랄 수 있는 스페인의 수도 팀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가 팀을 떠나려 했던 것보다도, 그가 옮긴 팀이 문제였다. 바르셀로나의 영웅이자 주장, 기수였던 이가 철천지원수에게로 팔려갔던 것이었다.

 

 

 

 

 

피구가 캄프 누 원정을 떠나 바르샤를 상대할 때면, 그를 향한 비난의 정도는 단순히 증오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동전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고 심지어는 돼지머리까지 피치 위에 나뒹굴었다. 그가 이적한지 20년이 가까워져가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베를린에서 열린 지난 2015 챔피언스리그 결승 식전행사로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의 레전드 매치가 열렸을 때를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바르셀로나가 UEFA에 루이스 피구를 대표팀에 뽑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으니까.

 

루이스 피구가 블라우그라나에 너무 큰 의미였던 탓일까. 그리고 그의 이적이 너무나 꾸레들의 가슴을 후벼 팠던 탓일까. 오늘날 바르샤에서 그의 이미지는 허상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다. 루이스 반 할의 경질과 함께 맞이했던 2000년 여름, 바르샤 팬들은 피구가 이번에도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리라 여겨졌고 바르셀로나가 나아갈 길을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신, 그는 더 큰 모래폭풍을 몰고 와버렸다.

 

 

 

 

원문 링크

 | https://thesefootballtimes.co/…

 

 

레알로 이적하기전까지 피구... 그야말로 카탈루냐의 기수 대접을 받는 정도였군요. 예전에 엘 클라시코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요.
 레알과 바르샤를 오갔던 선수들로 라우드럽과 루이스 엔리케를 많이 조명했었는데, 피구가 이적했을 때 임팩트가 참 컸던 기억이 납니다. 저 코너킥 사진에 무수히 많은 이물질들이 피구를 향해 날아가던 장면이 기억이나네요...

그 다큐에서 어떤 코미디언이 프랑코 정권과 카탈루냐 이야길 하면서 한풀이하던게 아직도 선합니다.

이 게시물은 Neptune님에 의해 2019-06-25 13:12:06'칼치오게시판'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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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9-06-22 09:06:56

    얼마전 피구 방한때 보고와서 그런지 더 집중해서 읽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P
    1
    2019-06-22 14:23:00

    헉 피구가 최근에 방한햇었던가요 애 몰랐지

    1
    2019-06-22 17:18:03

    블록체인 기술 홍보하러 한국 왔었습니다

    1
    2019-06-22 10:54:18

    실력은 역대급인데 짱시룸...

    OP
    1
    2019-06-27 04:55:43

    바르샤 팬분들 입장에선 더욱 그럴 것 같네요...

    바르샤 관련 발언도 꽤나 했더랬죠

    1
    2019-06-22 12:55:55

    만약 저 때 레알 안가고 남았다면

    선수 개인의 위상은 더 올라갔을 여지가 높죠

    OP
    1
    2019-06-27 04:56:50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히밥이 오고나서의 바르샤는 피구의 바르샤라기보단 히밥의 바르샤라고 생각하는데, 2002년 이후 히밥이 피지컬 하락이 왔단걸 생각하면 피구는 더 길게 바르샤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을 수 있었겠죠??

     

    1
    2019-06-25 17:29:03

    피파 99하면 피구 능력치가 개판이라 진짜 짜증났었는데 ㅋㅋㅋ

    OP
    1
    2019-06-27 04:57:06

    ㄷㄷㄷ 99 ㄷㄷㄷ

    1
    2019-06-27 00:45:23

    바르셀로나의 토티가 될수있었는데ㄷㄷ

    OP
    1
    2019-06-27 04:58:02

    토티가 로마를 떠나 라치오로 가는건 상상조차 안되는데... 

    바르샤 팬들의 기분도 십분 이해는 갑니다

    1
    2019-06-27 17:43:01

    이 와중에 어제 발매된 새 축구카드 시리즈에는

    피구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인카드가 발매되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싸인을 카드 위에 직접한게 아니고 미리 싸인해놓은 스티커를 카드에 붙인 형식이라 
    피구가 직접 이 카드위에 싸인하는 웃픈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네요

    OP
    1
    2019-06-27 22:12:49

    저는 이런 축구카드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이런건 어디서 구매하나요?? 수집하는 분들 너무 부럽네요

    만약 피구본인이 저 카드에 사인해야 했다면 웃으면서 할 수 있었을지..ㅎㅎ

    1
    2019-06-28 10:03:16

    네 보통 아래 링크나 네이버 스포츠카드 카페 등에서 정보를 얻구요

     | https://www.cardboardconnection.com/…

     

    카드를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정도인데요

    첫번째는 박스나 팩을 구매해서 랜덤으로 카드를 얻는 방법하고

    이베이나 국내한정으로 카페등에서 거래하는 방법이 있어요

    링크 보시면 엊그제 나온 카드들이 판매되는 목록이예요

     | https://www.ebay.com/…

     

    이베이에서 판매되는 비싸고 멋진 카드 사진 몇장입니다

     

     

    1
    2019-06-28 10:06:29
     | 네스타 사인카드 올려봅니다  |  자유게시판

    이건 예전에 올렸던 네스타 카드글 링크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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