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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라트 스캔들 +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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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05 02:28:41

[TFT] 파르마라트 스캔들

PARMA AND THE PARMALAT SCANDAL

 

 

 

[These Football Times = Kevin Nolan]

 

그 시작은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 지나지 않았지만 끝은 17년의 감옥살이로 마무리됐다. 두 운명적 사건 사이엔 이탈리아 최대 규모 유제품 가공 업체와 결국 파산을 맞이한 구단의 흥망성쇠가 투영돼있다.

 

1961년 파르마, 22살의 청년 칼리스토 탄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업이었던 햄 유통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는 40년에 걸쳐 그저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 지나지 않던 영세 기업을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제품 회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회사는 바로 파르마라트다.

 

1980-90년대, 사업은 끝을 모르는 확장세로 접어들었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마라트는 이탈리아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됐다.

 

파르마라트는 전 세계에 36000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있었으며 이탈리아 내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했다. 탄치와 그 가족들은 상상 이상의 부를 축적했고, 파스타 회사를 운영하는 바릴라 가문과 더불어 파르마 시내에서 가장 이름 높은 가문이 됐다.

 

바릴라 가의 사업이 꾸준한 상승 흐름을 탔다면, 탄치의 제국은 거품성이 짙었다. 그리고 결국 그 거품은 꺼져버렸고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권 내 최대 규모의 재정 비리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파르마라트의 상승세는 끝을 몰랐고 탄치는 여느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축구를 사랑했다. 1991년, 파르마의 구단주였던 에르네스토 체레시니가 사망하자 탄치는 AC 파르마를 인수하기로 결심한다.

 

이탈리아엔 ‘한 구단의 소유주가 되기 전까진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없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파르마라트의 성공을 등에 업은 탄치 일가는 단숨에 98%의 클럽 지분을 사들였고 전임 체리시니 구단주의 세 아들이 남은 지분을 나눴다.

 

당시 파르마는 이탈리아의 거인으로 불렸던 90년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1913년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세리에 A에 오르지 못한 채 세리에 B와 C를 전전했고, 파르마라트에 인수당하기 직전 시즌, 전설적인 감독인 네비오 스칼라의 지도 아래 처음으로 최상위 리그에 올랐다. 파르마는 승격에 그치지 않고 탄치 일가의 비호 아래 이제 막 날갯짓을 하려던 참이었다. 

 

 

 

 

1992년, 크로시아티는 유벤투스를 꺾고 역사상 첫 트로피,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1992-93 시즌엔 컵 위너스 컵과 UEFA 슈퍼컵까지 추가하며 비로소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야욕이 넘쳤던 탄치는 세계 굴지의 스타들을 엔니오 타르디니로 데려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썼다. 몇몇 시즌뿐 아니라 10년에 걸쳐. 그렇게 아스프리야, 디노 바죠, 파비오 칸나바로, 엔리코 키에사, 에르난 크레스포,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릴리앙 튀랑,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지안프랑코 졸라 같은 선수들이 파르마의 쟐로블루 유니폼을 입었다.

 

유스 시스템도 괜찮았다. 지안루이지 부폰을 배출했고 나중엔 주세페 로시 같은 선수도 나왔으니 말이다. 1995년, 파르마는 UEFA 컵 결승에서 라이벌 유벤투스를 무찌르고 첫 우승을 달성했다. 1996-97시즌은 팀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인 세리에 A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파르마라트의 자본에 힘입어 인구 17만에 지나지 않는 작은 도시의 클럽이 7년도 안 돼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팀이 됐다.

 

 

 

 

 

파르마는 성공 가도를 내달렸고 1999년엔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을 동시 석권하며 이탈리아 축구 연대기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작은 클럽들이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면 빅 클럽들이 그 스타들에 군침을 흘리기 마련.

 

팬들이 가장 아끼던 스타 에르난 크레스포는 2000년에 5700만 유로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라치오로 떠났고 이듬해 유스 출신 부폰도 5300만 유로에 유벤투스로 향했다. 그 다음 해는 릴리앙 튀랑도 4150만 유로에 비안코네리에서 부폰과 재회했다. 팀을 빛낸 스타들이 떠나자 파르마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고 승격 이후 처음으로 6위 밖으로 밀렸다.

 

밀란, 인테르, 유베, 피렌체, 라치오, 로마와 함께 7공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파르마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파르마 팬들이 성공을 만끽하는 동안, 그들의 미래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2013년엔 파르마라트가 1억 5000만 유로에 달하는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처음 파르마라트 사태가 발생했던 2003년 경, 많은 전문가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파르마라트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계좌엔 추정 상 39억 유로에 달하는 돈더미가 쌓여있다고 알려져 때문이다.

 

파르마라트 측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투로 적절한 때에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며 모든 사람들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일은 해결되지 않았고 파르마라트는 급격히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같은 달, 파르마라트의 39억 유로 계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해당 뱅크 오브 아메리카 계좌를 더 살펴본 결과, 그 계좌에서 예금이 오고 간 명세서들은 모두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파르마라트의 사업세가 얼어붙기도 전에, 파르마라트 주식은 그 즉시 종잇장으로 전락했다.

 

탄치 일가 사람들과 파르마라트 임원들이 사기, 횡령, 허위 회계 혐의 등으로 속속들이 잡혀 들어갔고 칼리스토 탄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스캔들에서 탈출구를 찾아보려 했지만 뱅크 오브 아메리카 이탈리아 지부 기업금융국장인 루카 살라가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하자 사면초가에 몰리고 말았다.

 

탄치 사건 수사의 일환으로, 수사관들은 해당 계좌를 더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밝혀진 것은 유럽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사기·허위 기장 계획이었다. 처음 밝혀진 39억 유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 실제로 파르마라트의 계좌에선 그 4배인 143억 유로가 증발했다.

 

미국 채권자들은 재빨리 황폐화된 파르마라트를 상대로 100억 달러 규모의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파르마라트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2004년 12월까지 파산 절차를 가속화하고 급여, 판매업자, 생산 활동을 보호하는 긴급 법안을 통과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고 했던가. 파르마라트가 꾸민 일은 너무도 컸다.

 

2004년 초, 파우스토 토나의 보좌관인 알레산드로 바시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토나는 16년 동안 파르마라트의 재무이사였으며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탄치의 오른팔로 알려졌다.

 

2008년, 2년 반의 징역형을 받은 토나는 그의 동료 행원들에 따르면 성격이 괴팍하지만 금융에 있어선 날카로운 혜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란 평을 듣고 있었다. 쉽게 말해 토나는 복잡하게 얽힌 해외 자회사들 막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파르마라트발 유독가스는 파르마 구단과 파르마시에도 번졌다. 2003년 회계연도에만 파르마는 7700만 유로의 손실을 기록했다. 당시 클럽의 상황을 설명하려면 몇 년 전 리즈 유나이티드의 사례를 들고 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리즈의 추락만이 유럽에서 가장 큰 사기행각이 남긴 그림자에 비견될 수 있을 테니까.

 

클럽의 존속을 위해선 팀의 선수들을 모조리 팔아치워야만 했다. 클럽 수뇌부는 집단 사임했으며 클럽을 구해줄 새 구단주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바릴라 가는 파르마 인수에 관심이 없었고 다른 후보자들도 무너져가는 궁궐에 관심이 없었다. 결국 클럽은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렇지만 쟐로블루는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계속해서 세리에 A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클럽명을 살짝 바꾸는 것이었는데, 이제 구단 이름은 AC 파르마에서 FC 파르마로 바뀌었다. 이리하여 파르마는 세리에 A에 잔류하는 한편 TV 중계권 수입도 챙길 수 있었다. 선수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꽤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기장 밖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한편, 놀랍게도 팀은 2004-05시즌 UEFA 컵 준결승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세리에 A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고 팀은 강등권을 허덕였다. 실제로 2005-06 시즌 세리에 A에 남을 팀을 가리기 위해 에밀리아-로마냐 주 라이벌인 볼로냐와 강등 플레이오프를 치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강등은 곧 파르마 구단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두려움 탓인지, 클럽은 해당 시즌 UEFA 컵 우승 팀인 CSKA 모스크바와 경기에 주전을 거의 투입시키지 않았고 볼로냐와 일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차전, 홈에서 0-1 패배로 파르마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그러나 파르마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와 세바스티앙 프레이가 있었다. 둘의 놀라운 퍼포먼스와 함께 2차전을 2-0으로 이긴 파르마는 가까스로 세리에 A 잔류에 성공했다.

 

1부 리그 잔류에는 성공했지만 파르마는 이제 긴축재정의 시대를 맞이해야 했다. 매 시즌 타이틀 컨텐더였던 파르마는 이제 없었다. 클럽은 법원 지정 파산 관재인 엔리코 본디에 운영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전 레알 마드리드 회장인 로렌조 산즈가 클럽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007년 1월에 경매에 나왔다. 클럽을 인수한 이는 이탈리아의 기업인 토마소 길라르디. 그가 파르마를 사들였을 때 추정액은 고작 3000만 유로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클럽은 수많은 쇠락과 반등을 맛보는 신세가 됐다. 한편 80세의 노쇠한 칼리스토 탄치는 가족들과 연이 끊겼다. 17년 형을 선고받은 그는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그가 건설한 파르마 제국은 머나먼 기억 한 편에 남겨져있을 뿐이다.

 

경기장 밖에서, 파르마의 동화는 엉터리였고 거짓 투성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안에서 벌어진 파르마 이야기는 분명히 실재하는 이야기다. 이 작은 변방 클럽은 전대미문의 파란을 일으켰고 그들 앞을 가로막는 팀들을 짓밟았다. 그들은 죽음에 직면하기도 했고 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살아남았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심지어 칼리스토 탄치조차 클럽보다 위에 설 순 없었다. 파르마는 스스로 그들의 성공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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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파르마의 영광의 시대, 90년대를 조명한 글을 썼는데, 파르마 스캔들을 조명한 글이 있어 번역해봤습니다.

생각보다는 지난번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긴 한데, 그래도 그 사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파르마 관련 글들이 쓰여진 날짜가 2015년 1월입니다. 꽤 오랜 시간 전이다보니 파르마의 세리에 D 강등과 드라마틱한 승격 이야기도 빠져있네요. 

 

 

여튼 글이 꽤 길어 보충 설명하기 위해 타임라인을 가져왔는데요, 저도 경제에 어두워 어떤 것이 중요한 일인지 맥락 짚기가 그냥 파르마 파산만 표시했습니다.

 

 

 

 

파르마라트 스캔들 타임라인

 

 

2003/12

-파르마라트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파르마라트는 50억 유로의 유동자산이 없다고 발표.

-파르마라트의 재무를 담당하는 본라트 파이낸싱 코퍼레이션이 40억 유로가 케이맨 제도의 한 계열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 이야기도 부인.

-밀라노 주식거래소, 파르마라트 주식 거래 중단

-뱅크 오브 아메리카 변호인단들은 은행 측이 파르마라트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

-수사관들은 파르마라트의 채무가 130억 유로에 달한다고 발표


 

 

 

2004/01

-파우스토 토나의 보좌관이었던 알레산드로 바시 자살

-감사자들은 파르마라트의 부채가 143억 유로라고 판단, 경영진 주장의 8배

 

2004/02

-탄치의 아들 스테파노, 딸 프란체스카 체포

-칼리스토 탄치는 심장질환 의심으로 병원 후송

-자회사인 파르마라트 USA는 뉴욕에서 파산 보호 신청

-수사관들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필두로 씨티그룹, 모건 스탠리, 도이치 뱅크, UBS AG를 비롯한 여러 이탈리아 은행들을 파르마라트 파산과 관련된 수사 대상으로 지정

 

2004/03

-파르마라트는 회생을 위해 미국 은행으로부터 6억 1800만 달러 대출, 총 부채는 170억 달러에 이름

-이탈리아 검찰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파르마라트 측에 15억 달러가량의 회사채를 발행했을 때, 그 기업의 재정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어야 했다고 지적

 

2004/04

파르마라트의 후원 비중이 높았던 AC 파르마 파산

 

2004/05

영국 연금펀드 헤르메스와 유럽 주주권리단체 데미노르를 위시한 채권단은 파르마라트를 상대로 사기 행위와 오도된 정보를 흘린 혐의로 100억 달러 규모의 집단 소송을 제기

 

2004/10

파르마라트는 씨티그룹, 딜로이트, 그랜트 손튼에 총 100억 달러 규모 손해배상 소송 제기

 

2004/12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파르마라트와 투자자들로부터 180억 달러가량의 손해배상 청구의 피고였으나 이탈리아 법원에 의해 파르마라트의 채권자로 등록, 파르마라트의 주주가 되어 다른 채권자들과 마찬가지로 출자전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획득

-이탈리아 경찰이 파우스토 타나와 루치아노 델 솔다토 등을 포함 파르마라트 임원 5명 체포


 

 


2005/02

파르마라트는 2004년 4분기 세전 이익이 1년 전보다 7700만 유로 증가했다고 주장

 

2005/05

이탈리아 금융 시장 감독관 콘소브는 파르마라트 주식의 증권거래소 상장 재개를 허가

 

2005/06

이탈리아 검찰은 칼리스토 탄치를 포함한 16명을 파르마라트 붕괴에 관한 책임을 물어 기소


2005/07

파르마라트 투자자들이 제기한 80억 달러 규모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기각. 루이스 카플란 판사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측이 파르마라트의 재정난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회사의 침체에서 이익을 억을 수 없다고 주장

 

2005/08

-루카 살라는 그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 이탈리아 지부 기업금융국장이던 시절과 후에 파르마라트의 금융 컨설턴트가 되고 파르마라트가 파산한 혐의로 이탈리아 당국에 체포

-루카 살라는 파르마라트에서 개인 계좌로 635만 달러를 횡령한 혐의를 받았으나 보험과 민간 위탁 계약 수수료로 번 돈이라고 주장

 

 

 

2006/03

-루이스 카플란 판사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파르마라트로부터 최대 1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 파르마라트가 사기, 분식회계, 기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

 

 

 

 

참고 웹 페이지

< | https://en.wikipedia.org/… >

< | https://www.preceden.com/…

< | http://news.bbc.co.uk/… >

 

원문 링크

 | https://thesefootballtimes.co/…  

 


 

 
 

 

6
Comments
1
2019-07-05 11:02:03

글 잘 읽었습니다. 저번 글 읽으면서도 느꼈던건데 파르마랑 리즈가 흥한 시기와 시련을 겪은 시기가 묘하게 비슷한거 같네여

OP
1
2019-07-05 14:25:08

리즈 사태도 살짝 봤는데 파르마가 클렵 운영보다 스폰서의 병크가 컸다면 리즈는 구단이 문제를 만들었더라구요.

터진 시기가 꽤 비슷하긴 하네요
클럽의 역사는 아무래도 리즈가 좀 더 깊다고 봐야할 듯??

1
2019-07-05 15:46:49

오.. 파르마의 역사 대충 알고 있었는데..

 

한눈에 쉽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글 중간에

 

 2013년엔 파르마라트가 1억 5000만 유로에 달하는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처음 파르마라트 사태가 발생했던 2003년 경, 많은 전문가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파르마라트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계좌엔 추정 상 39억 유로에 달하는 돈더미가 쌓여있다고 알려져 때문이다.

 

으로 나와있는데 2013년에 종합해보니 저정도였다! 이건가요?ㄷㄷ

OP
1
Updated at 2019-07-06 01:46:56

저도 원문의 저 2013년 이야기 때문에...

파르마라트 사태의 타임라인을 넣기로 했습니다. 뜬금없이 2013년 이야기가 나오고

처음 발생했을 때 15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이야기가 나오더니 2013년을 앞으로 빼면서 1억 5000만 유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 파르마라트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찾아보려했지만 못찾겠더라구요... 

 

다시 작업을 재개한 파르마라트는 프랑스 유제품 기업인 락탈리스에 합병된 것으로 보입니다. 2011년 40억 유로에 파르마라트 주식의 80%를 확보했다고하니 어마어마하게 흔들렸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겠네요.

 

현재 파르마라트의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제가 경제에 어두워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제가 이해한 바로는파르마라트가 분식회계로 파산에 이르렀고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여러 은행들, 투자자들과 소송 끝에 15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가 쌓였습니다.

2005년 쯤부터 파르마라트는 주식시장에 재상장됐고 기업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락탈리스에 합병된 후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는 약 50억 유로 정도로 평가 받는 것으로 보이네요.

1
2019-07-05 23:23:05

와 이렇게 길게 설명을.. 감사합니다!

OP
1
2019-07-06 01:45:52

저도 궁금해서 찾아본거라 ㅎㅎㅎㅎㅎ

파르마 사태에 관한 정보가 국내에서 쉽게 찾기 힘든 편이어서 이번 기회에 더 두터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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