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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는 원더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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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3 11:12:51

 

[TFT] 전에 없는 원더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YUGOSLAVIA IN THE 1990S: THE WONDER-TEAM THAT NEVER WAS

 

 

 

[These Football Times = Jonathon Aspey]

 

 

1991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는 데얀 사비체비치, 로베르토 프로시네츠키, 다르코 판체프 등의 활약에 힘입어 유러피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장 피에르 파팽, 아베디 펠레, 크리스 와들 같은 스타들이 가득한 마르세유를 상대로 이룬 결과였기에 더 놀라웠다. 발칸반도에선 그 시대가 황금기로 여겨진다. 비록 그 시기 유고슬라비아는 민족적, 종교적 갈등으로 분열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1980년 그 갈등을 지탱하는 존재로 여겨졌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사망했고, 1990년대 내내 벌어진 발칸반도에서의 유고 내전은 어쩌면 불가피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의 시작은 슬로베니아였다.

 

유고 내전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선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주도세력이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가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티토는 ‘형제애와 통일’이라는 정책을 통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던 발칸반도 국가들을 결속시켰다. 그리고 티토 사후, 유고 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민족들 사이 유대감은 사라졌고 순식간에 균열의 시간이 찾아왔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권좌에 오른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1987년,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 사이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코소보로 향했다. 지역 지도자들과 만남 중, 밖에선 소동이 일어났고 신경이 곤두선 밀로셰비치는 군중들을 중재하러 갔다. 세르비아인들이 밀로셰비치에 경찰에 의해 구타를 당했다고 말했고, 코소보 내 세르비아파 지도자들은 그들이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밀로셰비치는 “앞으로 당신들이 맞는 일은 없을 거요”라고 말했다.

 

이 한순간은 밀로셰비치의 신화로 남았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불을 붙였다. 1989년 즈음,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됐고 유고 연방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인물이었다.

  

한편 크로아티아에선 그들 스스로의 민족주의에 의한 대대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1990년 크로아티아 선거에선 친 독립계 인사이자 HDZ(현 크로아티아 민주연합) 대표인 프라뇨 투지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며 즉각적으로 세르비아와 갈등으로 연결됐다. 결국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발발했다.

 

상황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에서 떨어져 나왔고 ‘10일 전쟁’을 벌였다. 슬로베니아가 독립 움직임을 보이자 밀로셰비치 휘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움직였던 것이다. 전쟁은 열흘 만에 브리오니 협정으로 마무리됐고, 1992년 슬로베니아는 공식적으로 유고 연방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1995년 데이튼 협정에서. 악수를 나누는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과 밀로셰비치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이 확대되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선 보스니아-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세르비아계 그리고 보스니아인들 사이 긴장관계가 폭발,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유고 내전의 각종 범죄와 참상의 대부분이 보스니아에서 자행됐다고 할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전쟁이 끝날 즈음인 1995년, 데이튼 협정이 맺어졌고 모든 슬라브 민족들을 한 국가로 묶겠다는 생각의 결정체, 유고슬라비아는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물론 데이턴 협정 이후에도 분열은 계속됐다. 그리고 유고 연방은 현재, 세르비아, 코소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분열됐다.

 

하지만 축구적 관점에서 볼 때, 유고 내전의 참상과 영향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비극은 1990년대 초반 이뤄진 크로아티아의 독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대표팀 중 하나를 잃은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87년 유고슬라비아는 칠레에서 열린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그 팀을 더 들여다보자면, 그저 머릿수를 채워 보낸 것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대표팀의 핵심 선수였던 알렉산다르 조르제비치, 이고르 베레코, 데얀 부키체비치, 이고르 페요비치, 세호 사보티치, 보반 바분스키 등은 모두 부상 중이거나 출전 정지 등으로 빠져 있었다.

 

그리고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알렌 복시치 등은 소속팀에서 1부 리그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대회에 차출되지 않았다.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조차 중요한 컵 대회 경기를 이유로 대회 도중 FIFA 측에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의 귀국을 요청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피파는 이를 거부하고 프로시네츠키가 남은 토너먼트를 뛰게 했고 결국 그는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팀은 원맨팀도 아니었다. 프로시네츠키는 즈보니미르 보반, 다보르 슈케르, 로베르트 야르니, 프레드라흐 미야토비치 같은 선수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이 팀에 거는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기대는 크지 않았으나, 어린 스타들은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토고가 속한 조에서 손쉽게 조 1위를 차지했다.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에겐 흔한 일이지만, 당시 청소년 대표팀도 캐릭터가 확실한 팀이었다. 그리고 유고 언론들도 이 팀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신바람 나는 축구로 산티아고 전역을 들끓게 했으니까. 조 1위를 차지한 그들의 앞에는 산티아고에서 운명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8강전 상대는 바로 강력한 상대, 브라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유럽의 브라질’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야토비치와 프로시네츠키의 골로 2-1로 승리를 거뒀고 4강에서도 이고르 스티마츠와 슈케르의 골에 힘입어 동독을 2-1로 눌렀다.

 

그리고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서독을 누르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몇 년 뒤 레드스타가 마르세유를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물리쳤던 것의 전조였을까? 그 세대 유고슬라비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이름값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7년 왼쪽 위부터 듀키치, 요카노비치, 밀로세비치, 미하일로비치, 크라이, 스토이코비치, 비다코비치, 유고비치, 페트로비치, 미야토비치, 사비체비치

 

 

 

만약 유고 연방이 분열되지 않은 채로 남았더라면 당시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국가대표팀에 안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1994 월드컵 즈음, 25-26세로 전성기에 도달한 모습을 전 세계 축구팬들 앞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 사비체비치, 판체프, 미하일로비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스렉코 카타넥 같은 스타들이 더해졌다고 상상해보라. 하지만 이들이 한 팀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것은 축구계에 더 없는 비극이었다. 사실 카테넥은 “구 유고 연방 국가들이 힘을 한 데 합쳤더라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판체프, 복시치, 슈케르로 이뤄진 공격진이 보반, 프로시네츠키, 사비체비치, 스토이코비치가 포진한 중원의 지원을 받는다고 상상해보라. 그야말로 볼 맛 나는 축구. 장엄하고 천재적인 광경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유고 연방 붕괴 이후 발칸반도에서 축구 이야기가 나올 때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었는데’가 됐다. 더욱이 그 세대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유로 92나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나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황금세대의 진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다. 크로아티아의 약진으로 기억되는 그 대회는 그들의 처녀 무대이자 3위라는 높은 성적으로 마감한 대회기도 하다. 그 팀엔 프로시네츠키, 보반, 야르니, 복시치, 슈케르가 있었고 3,4위전에서 네덜란드를 꺾고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팀은 거의 잊혀져버렸다. 사실상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 불과한 이름뿐인 유고슬라비아는 유로 2000 8강 토너먼트에서 개최국 네덜란드에 1-6이라는 대참사의 희생양이 됐으니까. 그 팀엔 스토이코비치, 미야토비치, 미하일로비치, 데얀 사비체비치만이 남아있었을 뿐. 유고슬라비아는 1998 프랑스 대회에서 결과적으로 10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는데, 이는 결국 그 대회 3위와 10위 팀이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고 황금세대의 일원들 대부분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즈음 하향세를 걷는 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1998년은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 있어 최고의 해는 아니었던 셈이다. 특히 사비체비치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프랑스에선 단 두 경기 출장에 그쳤다. 또 다른 10번, 드라간 스토이코비치는 커리어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2001년 일본과 평가전에서 마지막 대표팀 경기를 치르고 은퇴했다.

 

 

그리고 레드스타의 유러피언컵 우승의 영웅, 다르코 판체프는 이즈음 마케도니아 대표팀으로 뛰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1998년 월드컵에 나오지 못했다. 판체프의 전성기는 1990년대 초중반이었으며 비록 인터 밀란에서 부진했다곤 하지만 대개 동료들의 뒷받침이 부족했던 탓이었지 그의 잘못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그리고 그 역시 황금세대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내전으로 인한 출전 금지 때문에 최전성기의 모습을 국제무대에서 시연하지 못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였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브라질이라는 합당한 팀들이 결승 무대를 장식했다. 다른 4강 멤버들은 바르셀로나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이끄는 불가리아와 스웨덴으로, 이변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1994년 월드컵에 유고슬라비아 각 연맹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한 팀으로 나왔다면 얼마나 멋진 그림이 나왔을까. 그들은 월드 클래스 재능들이었으며 선수 생활 최정점에 이른 터였으니.

 

재미 삼아 라인업을 구성해보자면, 즈보니미르 보반, 다보르 슈케르, 로베르트 야르니, 프레드라흐 미야토비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데얀 사비체비치, 다르코 판체프,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레피크 사바나조비치, 알렌 복시치,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등이다. 이 라인업이라면 적어도 8강은 가야 하는 라인업이 아닌가. 스웨덴과 불가리아가 4강에 올랐단 것을 생각하면 1994년 유고슬라비아가 월드컵에 나갔더라면 적어도 그들과 견주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축구란 역시 알 수 없는 법. 결국 우리는 유고 연방이 붕괴되지 않았더라면 그 나라의 스포츠 역사가 어찌 됐을까라는 물음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드라젠 페트로비치와 블라데 디바치로 대표되는 농구팀이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했듯, 우리는 그 유고 대표팀이 어느 정도의 족적을 남길지 결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한 척도는 그들의 클럽 퍼포먼스와, 그 황금세대가 아직 활동하던 시기, 각 독립국들이 얼마나 국제무대에서 빛났는지 정도다.

 

우리는 그저 생각하고 꿈꿀 수 있을 뿐. 이 문장은 전 세계가 놓친 유고슬라비아와 그 대표팀을 포괄하고 있다. 그저 놀라웠을 것이라고 할 수밖에.

 

 

원문 링크

 | https://thesefootballtimes.co/…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평소 궁금했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 관한 글을 번역해봤습니다. 아쉽게도 제 정보력으로는 상기된 슈퍼스타들이 한 경기에서 뛰었던 것을 찾기가 참 어려웠네요.

 

1990년 월드컵은 90년대를 수놓은 스타들이 아직 덜 여물었고 일부 앞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이코비치, 사비체비치, 판체프, 프로시네츠키 이런 선수들이 많이 뽑혔네요. 아직 야르니, 유고비치, 슈케르, 미야토비치 등은 월드컵까지 나갈 정도는 아니었나봅니다. 70년대 출생 중에는 복시치가 유일하네요.

 

1992년 즈음 유로 예선이나 친선경기 사진이 있더라면 좋을텐데 1992년 3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A매치 기록이 없더라구요. 뭐 워낙에 본문에 언급된 선수들이 전방 쪽에 많이 편재돼있다보니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이름 있는 선수들이 동시에 필드를 밟은 일은 많지 않네요.

 

유고슬라비아 시절엔 다르코 판체프가 슈케르, 미야토비치, 복시치 등 보다 중용받았던 편이고 드라간 스토이코비치가 굳건하게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지키는 한편, 경쟁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긴 했지만 보반과 프로시네츠키 중에는 후자가 대표팀 선발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이네요. 프로시네츠키는 1990년 월드컵에도 뽑혔고 경기도 뛰었구요.

 

근데 뭐, 정작 9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의 전적을 살펴보니 썩 좋지는 않네요. 메이저대회를 앞둔 친선전에서 네덜란드, 브라질, 체코, 잉글랜드 등 강호들한테는 거의 두들겨 맞았군요. 이 당시에는 사펫 수시치가 에이스였는데 선수 생활의 황혼기라 그런지... 유고슬라비아도 7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살짝 공백기가 있다고 봐야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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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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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4 00:04:26

잘 읽었습니다

 
지금도 축구 커뮤니티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유고 연방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이라면서 올스타 라인업을 짜고 노는 글들을 볼 수 있는데
 
저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라인업이 꽤 강력해 보이기는 한다는 점에서 동유럽은 확실히 유럽에서 경쟁력이 있는 지역 같네요. ㅋㅋㅋㅋ
OP
1
2019-07-24 02:54:48

저도 그런 관심에서 출발해 저 선수들이 90년대 초 유럽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보니 조사를 시작했는데요, 알아갈수록 느낀건 생각외로 강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공격진 면면이 화려하고 당대 어느 팀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스쿼드입니다만 

그 공격진을 죄다 필드위에 올릴 수도 없는 것이고 후방이 빈약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중앙 수비가 좀 약하고, 골키퍼도 대단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심지어 유러피언컵 우승팀인 레드스타는 베스트 11 중 딱 한명을 빼고는 전부 유고 연방 선수들이라고 했는데, 그 한 명이 루마니아 센터백 미오드라흐 벨로데디치였다고 합니다. 다른 포지션에 월드클래스급 선수들, 수비진에도 좌우측에 야르니, 카테넥 이런 선수들이 있던 것에 비해 중앙 수비에서 듀키치를 세계적인 선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요.

 

이런 것들과는 별개로 꾸준히 동유럽에서 볼 잘 차는 선수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동유럽 풀이 경쟁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저런 황금세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는 셈이죠

1
2019-07-26 12: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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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읽다가 읽기가 힘들어서..
술 취해서 술좀깨고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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