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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카사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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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21 11:46:25

 [TFT] 안토니오 카사노 드라마

THE SOAP OPERA OF ANTONIO CASSANO

 


 

 

 

[These Football Times = Matthew Santangelo]

 

 

 

 

많은 팬들로 하여금 축구를 아름다운 경지로 느끼게 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적인 선호와 취향의 문제다. 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은, 경기 막판 한 선수가 마법을 부리거나 예측불허의 탁월한 플레이로 승리를 가져오는 것으로 큰 만족을 얻기도 한다.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열띤 더비 속에서 양 팀의 긴장감을 즐길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킥오프 전 웅장한 제막식이나 상대 울트라스의 카드 섹션 같은 것들을 즐길 수도 있다.

 

축구에서 낭만이라 함은 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팀을 위해 피치에 서는 것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는 큰 성공들과 역사, 문화, 아름다운 기억들이 담겨있고 이는 곧 한 클럽이 얼마나 대단한 클럽인가를 감정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양하고 양극화된 성격을 가진 이에 끌리는 이들도 있는데, 바리의 골든보이 안토니오 카사노보다 더 음흉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리 베키아 지역의 가난에 찌든 동네, 산 니콜라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안토니오와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건장하고 후안무치한 카사노는 그의 불우한 환경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무기는 바로 신이 내린 두 발이었다.

 

카사노 이전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 축구는 그의 소명이었다. 축구는 그에게 식권과도 같았는데, 글자 그대로 그는 빈민가를 거닐며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내기를 해 날마다 먹을 빵을 마련하곤 했다. 결국 바리 지역 스카우트는 이 어린 판타지스타를 포탁했고 이 야심차고 교활한 천재에게 돌파구를 마련해 줬다. 1999년 12월 17일, 카사노는 17살의 나이로 레체를 상대하며 세리에 A 데뷔를 했다. 이 재능 넘치는 바리 공격수가 이탈리아반도를 충격에 몰아넣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조성 넘치는 기술과 순수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플레이어, ‘바리의 보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카사노는 단 두 경기 만에 산 니콜라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오로지 몇 안 되는 선수들만 흉내 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https://youtu.be/5rRX8GzJNEI

 

89분, 하프라인 왼쪽 부근에서 상대 골문을 향해 질주하던 카사노를 향해 40야드짜리 롱 패스가 날아왔다. 카사노는 오른발 바깥쪽으로 트래핑 한 뒤 다시 부드럽게 머리로 한 번 더 컨트롤, 치고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볼을 내놓았다.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로랑 블랑이 버티는 인테르 수비진이 그를 막아섰지만, 카사노는 잽싸게 그들 사이로 볼을 쳐 나갔고 가까운 포스트로 차 넣으며 파브리치오 페론 골키퍼까지 따돌리며 인테르를 2-1로 침몰시키는 광경을 연출했다.

 

 

카사노는 10년도 더 지난 2010년, 그의 자서전 ‘Dico Tuto(난 당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리오)’에서 12월 중순의 이 사건을 두고 “그날 인테르전 골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강도가 됐거나 더 나쁜 길로 빠졌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범죄자가 됐겠지. 그날 나는 내 재능을 뽐냈고, 혹여 내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나쁜 것들을 다 떨쳐냈다”고 회상했다.

 



 


환상적인 안토니오라는 뜻의 ‘판탄토니오’에 매료된 이들은 빠르게 늘어갔다. 그에게는 혈혈단신으로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 트릭으로 가득 찬 기술과 불안정한 인격이 조화된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로베르토 바조 같은 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변덕스러운 성격을 제어하며 길고 영광스러운 커리어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이 갈레티‘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19세의 카사노는 파비오 카펠로의 부름을 받고 디펜딩 챔피언 팀 로마로 향했다. 이적료는 무려 600억 리라(약 3000만 유로)에 달했고 당시 10대 선수가 그런 이적료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프란체스코 토티의 곁에서 카사노는 쟐로로시의 가장 다이나믹한 선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카펠로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카사노의 무한한 잠재력을 오롯이 활용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외려, 카사노의 질풍노도에 갇힌 성질머리를 길들일 수 있느냐라는 쪽이 가까웠다.

 

카사노는 로마에서 첫 시즌부터 5골을 터뜨려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로마에서 종종 곤경에 빠진 제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2003년 홈에서 AC 밀란과 벌인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심판을 향해 모욕적인 제스처를 표했고 즉시 퇴장당해 카펠로와 불화를 빚었다. 결국 2006년 1월엔 겨우 500만 유로의 헐값에 레알 마드리드로 팔려가며 카사노의 ‘배드 보이’라는 평판은 스페인으로 향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로스 블랑코스의 일원으로 라울, 지네딘 지단, 데이비드 베컴 같은 선수들과 뛴다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 그들만큼 뛰어난 선수가 되겠다는 열의를 불타오르게 할 만하다. 하지만 카사노에게 마드리드 시절은 궁극적으로 그의 ‘플레이보이‘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했을 뿐이었다. 끊임없는 파티와 형편없는 식습관으로 배불뚝이가 된 카사노에겐 ’엘 고르디토(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수백 건에 달하는 섹스 이슈는 레알에서 카사노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카사노는 완전히 절제를 잃었고 이기고자 하는 욕망을 잃은 상태였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 마르첼로 리피가 2006년 월드컵 스쿼드에서 그를 제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주리는 베를린의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역사적인 네 번째 월드컵을 들어 올렸지만 카사노는 그저 소파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승리하는 꿈을 어떻게 그의 손아귀에서 흘려보냈는지를 반성하면서 말이다.

 

2006-07시즌, 카펠로는 10년 전에 이어 두 번째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았으며 도저히 고칠 수 없었던 카사노와의 관계를 기어코 끊었다. 후에 당시 레알의 회장이었던 라몬 칼데론은 카사노를 두고 클럽과 카펠로에 ‘존경심이 부족했다’며 ‘카사노와 같은 짓을 하다’라는 뜻의 ‘카산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레알에서의 카사노를 논하기도 했다.

 




 

 

2007년 8월, 삼프도리아는 카사노를 임대로 제노아 땅에 데려왔고, 그곳은 카사노의 안식처가 됐다. 적어도 몇 년간은 말이다.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온 카사노는 리구리아 주에서 뭔가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 선수로 떠올랐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뛰어난 재간과 시야, 볼 컨트롤과 골을 노리는 야수의 눈빛으로 그는 세리에 A 22경기에서 9골과 6개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블루체르시아티의 선봉에서 이뤄냈고, 왈테르 마차리 감독의 지도 아래 삼프도리아의 리그 5위를 주도해 UEFA 컵 출전권을 얻어냈다.

 

그는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이뤄내긴 했지만, 논란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3월, 토리노전에서 퇴장당한 것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향해 유니폼을 던졌다가 5경기 정지와 15000유로의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리카르도 가로네 구단주는 노골적으로 카사노의 자유 계약 영입을 이끌어냈다. 아주 가치 있는 영입이었다. 심지어 카사노의 징계 기록지를 고려하고까지 말이다. 카사노의 감정 폭발을 일시적으로라도 줄어든 것 같았고, 안젤로 팔롬보로부터 부주장 자리까지 건네받았다. 이는 곧 그가 마음을 굳히고 축구화 끈을 동여매는데 집중하겠다는 뜻과 같았다.

 

 

1월 피오렌티나에서 지암파올로 파치니가 영입됐고 둘은 충격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의 관객들을 챔피언스리그로 인도했다. 가로네 구단주는 둘을 1990-91시즌 삼프도리아 역사상 유일한 스쿠데토를 이룬 로베르토 만시니-잔루카 비알리 듀오에 비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카사노는 구단 시상식에 불참하며 가로네 구단주와 앙금이 쌓였고 결국 다시금 보기 흉한 끝맺음을 짓고 말았다. 2011년 1월 AC 밀란이 카사노에 손을 내밀었고 그는 고작 300만 유로에 산 시로로 향한다.

 




로쏘네리에서 두 시즌, 카사노는 그리 많은 시간을 뛰진 못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비뉴, 알렉산드레 파투는 우승의 영광을 좇는 막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체제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밀란이 18번째 스쿠데토를 따낸 지 약 한 달 뒤, 카사노는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2011년 10월, 클럽은 3-2로 로마에게 승리를 거뒀지만 의사들은 카사노에 허혈성 뇌졸중을 진단했고 이를 야기한 심장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전 세계 곳곳의 축구팬들은 죽음의 문턱에 선 카사노를 향해 쾌유를 바라는 성원을 보냈고 그는 눈을 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필드로 돌아오고자,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다시 샘솟았다. 수술 후 5개월 뒤, 카사노는 피오렌티나에 1-2로 패한 경기에 피치로 복귀했다. 건강하고, 좋은 몸 상태로 결의에 찬 바리 소년은 유로 2012를 대비하는 체자레 프란델리 호에 깜짝 승선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논란의 틈바구니가 익숙한 마리오 발로텔리와 콤비를 이룬다.

 

대회 기간에도 29세의 카사노는 다시 한 번 기자 회견장에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다. 한 기자는 그에게 프란델리의 아주리 스쿼드에 동성애자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카사노는 “그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은 카사노를 향해 엄청난 분노와 항의를 표했고 그는 미디어가 자신의 말 뜻을 잘못 해석해 쓴 오보라고 해명했다. 후에 그는 “나는 진심으로 논란을 일으킨 내 발언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며 나는 동성애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누구도 공격하거나 비방하고 싶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성적 자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지 않다”며 사과했다.

 

UEFA는 유로 대회 기간 중 벌어진 카사노의 발언에 대해 15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2012년 여름, 고작 그 사건이 카사노가 펼친 빛나는 활약을 가릴 수는 없었다. 아주리의 10번을 배정받은 카사노는 토너먼트 6경기 내내 최상의 경기력을 뽐냈고 이탈리아 축구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비록 대회에서 기록한 골은 아일랜드전 단 한 골에 지나지 않았지만 독일과의 4강전에서 보여준 활약을 비롯, 비평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활약을 펼쳤다. 그는 기상천외한 몸놀림으로 발로텔리의 첫 골을 도우며 독일을 2-1로 침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비록 결승에서 0-4로 패하긴 했지만 아주리의 유로 2012 선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AC 밀란은 재정 문제를 타개한다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명목하에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고 실바를 팔아치웠다. 이는 카사노가 팀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게되는 계기가 됐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파치니에 현금을 더한 트레이드를 제시한 인테르. 하지만 카사노의 네라주리 시절은 길지 않았다. 안드레아 스트라마치오니 감독과 시즌 내내 충돌했고 지지부진한 활약 끝에 9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카사노의 이탈리안 투어는 끝나지 않았고 2013년 7월엔 파르마로 향한다. 그의 당면 과제는 불타는 열의를 유지하며 체중 조절, 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사노는 2013-14시즌을 12골 8도움으로 마감, 크로시아티를 6위로 이끌어 유로파리그 티켓을 따내는 등 굉장한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파르마는 심각한 재정 문제를 안고 있었다. 몇 달이나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결국엔 구단을 압류당한 채 파산에 이른 것. 카사노의 계약 역시 종료됐다.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곳을 찾던 카사노를 맞이한 곳은 다시 삼프도리아였다. 2015년 8월, 2년 계약을 맺었고 그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1년 뒤, 마시모 페레로 회장은 카사노는 더 이상 삼프도리아의 플랜에 없다고 밝혔고 2017년 1월 계약이 만료되기까지 유소년 팀과 훈련을 하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카사노는 이제 중국행 루머가 도는 등 해외 이적설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승격팀 헬라스 베로나가 카사노에게 손을 내밀었고, 35세의 카사노는 삼프도리아에서 훌륭한 호흡을 보였던 파치니와 다시 재회할 기회를 얻었다. 알레시오 체르치도 함께. 이탈리아의 훌륭한 재능들로 이뤄진 스리톱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카사노가 향하는 길에는 늘 논란이 따르기 마련.

 

카사노의 합류는 베로나 팬들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계약 한 지 몇 주 후인 7월 24일, 카사노는 두 번째로 은퇴 의사를 밝히며 축구보다 가족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카롤리나는 SNS에 카사노가 새로운 클럽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기도 했는데, 이후 선수 자신이 이를 분명히 했다.

 

"카롤리나는 틀렸어, 많은 고심과 반성 끝에 내가 결정했다. 안토니오 카사노는 더 이상 필드 위에 서지 않을 것이다. 베로나시, 모든 팬들, 회장께 사과드린다. 35세인 나는 의욕적이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우선순위가 내 아이들과 내 아내와 가까이 있는 것에 있다고 느낀다."

 

 

 

 

축복받은 재능을 지닌 카사노의 커리어 초반은 이탈리아반도를 뒤흔들었다. 그의 재능은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이탈리아 선수가 될 수 있는 수단이었으므로, 그의 재능은 의심할 바 가 없다. 누더기를 걸친 시절부터 부자가 되기까지, 바리의 거친 빈민가에서 칼치오의 주류로 이어진 카사노의 출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카사노가 피치 위에서 남긴 것들을 뒤로하고, 축구계에서 카사노를 이야기할 때면 다음과 같은 말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이다.

 

“카사노? 그가 축구에 매진했더라면 어땠을까?”

 

 

 

 

원문 링크

https://thesefootballtimes.co/2019/09/06/the-soap-opera-of-antonio-cassano/

 

 

 

안토니오 카사노의 일대기 같은 글이 있네요. 그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바죠나 사비체비치와 사진을 찍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그 실력만큼은 인정받았나 보네요.

당시로선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었을테니, 그리고 카사노의 옷을 보니 바리 유소년 선수로 밀란 스타들과 사진 찍은 것으로 말미암아 리그 경기의 볼 보이로 나섰거나 어떤 상을 수상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무튼 카사노의 삼프도리아 시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비록 로마에서 뛰던 기린아 카사노를 보진 못했지만, 삼프도리아에서 활약만으로도 날 서 있는 카사노가 얼마나 무서운 선수인지를 알 수 있었죠. 유로 2008 루마니아 전이었나, 답답한 경기에서 카사노의 투입으로 잠브로타까지 살아나며 경기를 한 순간에 바꾸던 모습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2013시즌이었나 토트넘과 인테르의 유로파리그 경기가 생각이 나는데, 그 시점부터 카사노를 마음 한 구석에 품게 됐습니다. 심장 질환으로 수술까지 받았던 선수였지만 연장까지 120분을 불태울 수 있는 투지를 가진 선수라는게 보였거든요. 꼴통이라는 표현이 모자라지 않는 선수지만, 축구에 대한 열망만큼은 진짜였나봅니다. 

 

마지막 은퇴하는 순간까지 그 놈의 성질머리와 인성은 칭찬 받을 구석이 결코 없지만, 어쩌면 이런 그라운드의 악동들이 축구팬들에게 애증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네요. 저만 해도 그래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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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9-21 03:51:34

밀란에서 판매대상이 된게 아니라 티실 즐라탄 나가는거 보고 회의감느껴서 이적요청한걸로 아는디...

OP
2019-09-21 11:38:47

아 본문에도 카사노가 강제된게 아니라 본인스스로 그런 마음을 먹게 됐단 뉘앙스로 나와있네요 곧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9-21 03:55:31

로마에서 만개했다면 좋았을것을 ㅜ

2019-09-21 08:47:51

진짜 재능인데 멘탈만 좋았다면 더 대단한 기록을 남겼을듯합니다

2019-09-21 09:30:02

질라 - 카사노
아주리 최고투톱이 될거라 생각했었는데 ㅜㅜ

2019-09-21 19:28:27

보는 맛이라는 표현은 이런 선수한테 쓸 수 있는 것 아닐 지..
글 잘 봤습니다.

2019-09-21 19:53:58

솔직히 그런 멘탈로도 이 정도로 성공했는데

멀쩡한 멘탈이었으면 진짜 난리났을 듯

2019-09-22 12:18:51

잘 읽고갑니당ㅎㅎ 내용이 흥미롭네요!!

2019-09-22 16:41:13

나으 귀요미이건만 멘탈이...축구에 좀 더 집중했으면 후

2019-09-22 23:00:49

악마의재능 ㅜㅜ

2019-09-23 07:02:50

아주리 공격진에서 토티 다음으로 좋아한 선수

2019-09-24 20:15:58
2019-09-26 21:11:33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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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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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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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0
59
6253
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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