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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플레이어스트리뷴] 쿨리발리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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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25 10:36:03

By. Kalidou Koulibaly (SSC 나폴리)

 


 나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말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나에게 매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온다.
"쿨리, 팬들이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외칠때 당신의 기분은 어떻습니까? 그런 일들이 당신을 괴롭히나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나는 실제로 이런 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결코 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너무나도 추악한 일이며, 언급하는 것조차 힘겨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 이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아이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우리는 증오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내가 인종차별을 축구계에서 처음으로 실제로 경험한 것은 몇 시즌 전 라치오와의 경기에서였다. 내가 공을 가지고 있을때마다 라치오 팬들은 시끄러운 소음을 내곤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런 상황이 내 상상속의 일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경기가 중단되자 나는 팀 동료에게 물었다.
"지금 저자들이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고, 나는 몇몇 라치오 팬들이 내가 공을 가지고 있을때마다 원숭이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순간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으로 내 생각을 알리고 싶기도 있었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그것이 바로 그자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되뇌였다. 
 "그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내가 흑인이라서? 이 세상에서는 흑인 남자라는게 정상적이지 않은 건가?"

 그 전에 천 번은 했던 것처럼 그저 사랑하는 축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다쳤고, 모욕을 당했다. 사실, 이는 자기 자신을 수치스러운 존재로까지 여기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 

 잠시 후, 이르라티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는 나에게 달려와서 "칼리두, 나는 너를 지지해. 걱정하지 마. 저 구호를 중단시킬게. 경기 끝까지 뛰고 싶지 않다면 나에게 알려줘"

 나는 이것이 매우 용감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심판에게 끝까지 뛰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팬들에게 상황을 알렸고, 3분 뒤에 경기는 재개되었다. 하지만 그 구호들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터널로 걸어가던 나는 정말로,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경기 시작 전 내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같이 입장한 작은 마스코트 소년이 있었다. 그때 그 아이는 자신에게 유니폼을 줄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경기가 끝난 후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서 그 소년을 찾았고, 관중석에 있었던 아이에게 내 유니폼을 주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당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말이었다. 이 어린 아이는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어른들이 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있었다. 이 소년은 무엇보다 내가 어떤 기분일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별일 아니야. 고마워. 안녕"

 이것이 어린 아이들의 마음이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가 세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이 단순히 피부의 색깔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몇몇 팬들이 내 팀동료들을 어떻게 부르는 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세르비아인 선수들을 "집시"라고 부르며, 심지어 이탈리아인인 로렌조 인시녜를 "나폴리 쓰X기"라고 부른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더 잘해야만 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클럽들은 그럴듯한 성명을 발표하지만,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곤 한다.
 우리는 잉글랜드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거기에서는 이런 일을 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되면, 영원히 경기장 출입이 금지된다. 나는 언젠가는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또한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곤 한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의 마음 속에 닿을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다. 

 아마도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그저 축구 선수 혹은 흑인 축구 선수를 볼 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이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항상 이야기 하곤 한다.
 "너네가 만약 나를 '리틀 쿨리'나 친구로 보지 않고 그저 축구선수로서 여긴다면, 나는 인생에서 실패한거야."
 

 

나는 생 디에라는 프랑스 마을에서 자랐다. 세네갈인, 모로코인, 터키인 등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나의 부모님은 세네갈 출신이다. 아버지가 먼저 프랑스로 가셨고, 나무꾼으로 일하셨다. 그렇다, 프랑스 나무꾼이셨다. 그건 정말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일을 하시기 전까지, 어떤 증빙서류도 없이 파리에 온 아버지는 방직공장에서 한 주에 7일 동안 일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 같은 것은 없었다. 5년 동안 이렇게 일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프랑스로 데려올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작은 칼리두가 생 디에에서 태어났다. (나의 이름은 쿠란에서 따왔다.)

 나의 어머니는 우리가 세네갈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당시 6살이었던 나는 살짝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조부모님과 모든 사촌들을 만났으며, 세계의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는 것은 나에게는 어느 정도 충격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축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이런 일에 대해 정말로 화가 났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때 내가 상점에 가서 모두에게 신발을 사주자고 애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나도 그 아이들과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칼리두, 네 신발을 벗으렴. 가서 다른 아이들처럼 해"라고 말하셨다. 

 결국 나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사촌들과 경기를 했다. 그리고 이게 나의 축구 이야기의 시작이다. 
 우리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 나는 우리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매일 축구를 했다. 정말로 많은 이민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거기서 세네갈 vs 모로코, 터키 vs 프랑스, 터키 vs 세네갈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이는 매일 열리는 작은 월드컵과 같았다. 

 이 동네는 마치....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머니가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녀는 식료품점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먼저 갔다. 닫혀있는 문은 없었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친구네 집에 가서 "안녕하세요, 모하메드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의 어머니는 "아니, 나갔어.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 하고 싶진 않니?"라고 말한다.
 그 당시 나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신발을 벗어 놓고 집으로 들어가서 마치 우리 집인 것처럼 신나게 놀곤 했다. 나는 완전히환영받았다. 

 만약 그녀가 "칼리두, 가게에 가서 빵 좀 사오렴"이라고 말하면, 나는 마치 내 어머니가 시킨 것처럼 가게에 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제로서 여기게 된다. 우리는 흑인, 백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무슬림, 기독교인이지만, 그렇다, 우리는 모두 프랑스인이다. 배가 고플때는 함께 터키식 식사를 하러 갈 수도 있었다. 아니면 오늘 밤에는 우리 집에 모여서 세네갈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같았다. 

 나는 2002년 월드컵 중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가 있을 시간에 우리는 학교에 가야만 했다. 이 대회는 한국에서 열렸기에 시차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 우리 모두 밖으로 나가서 월드컵 결승전인 것처럼 축구를 했지만, 그 후에는 다시 교실로 들어와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매우 우울했다.  경기는 오후 2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오후 1시 59분,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 모두들 책을 펴라"고 말했다. 
 우리는 교과서를 펼쳤다. 하지만 우리는 꿈을 꾸는 중이었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았다. 우리는 앙리, 지주, 디우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2분이 지났고, 3분이 지났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좋아. 모두 책을 치워."

 무슨 일이지? 무슨 말을 하시는거야? 우리는 생각했다. 
  "이제 너네들 모두가 매우 지루해 할 것으로 확신하는 교육적인 영상을 볼거야."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는 리모컨을 들고 교실에 있는 작은 TV에 그 월드컵 경기를 틀었다. 
 "우리 사이의 비밀이야. 알겠지?"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였다. 25명의 우리 반은 터키인, 모로코인, 세네갈인, 프랑스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함께였다.
 세네갈이 승리한 이후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때, 내 세네갈인 친구의 부모님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 춤을 추고 있던 것이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모두가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심지어 터키인이나 프랑스인 친구들의 부모님도 함께 춤을 추었다. 
 이 기억은 내 마음 속에 깊게 남아있다. 축구가 어떤 것인지를, 내가 살던 동네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화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돈을 가질 수도 있고, 멋진 차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정, 가족, 평온함의 이 세가지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이것들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들은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며, 부모님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축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셨다. 정말로, 전혀.
 부모님은 내가 뛰는 축구 경기에 오신 적이 없다. 아, 아빠는 한번 오셨었다. 엄마는 없다. 하지만 TV에 중계되는 큰 경기는 때때로 나와 함께 보시곤 한다. 따라서, 나는 부모님이 경기장에 오시지 않는다면, 부모님에게 경기장을 가져다 드려야 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다. 
 내가 TV에 나와야 부모님이 나를 보실 수 있다. 

 메스에서 처음으로 1군에 올라갔을 때의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경기 막판에 교체선수로 투입되었고, 이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기 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보고 있었어요? 행복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행복? 너는 항상 축구를 하잖니. 평상시와 같네. 네가 좋아하는 일 맞지? 이제 TV에 나오게 되었구나. 정말 멋진 일이야."

 

 

 나쁜 뜻으로 하신 말이 아니다. 그저 어머니의 태도가 그렇다. 그녀에게 그 경기는 내가 어렸을 때 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아마도 좋은 일이 될 것이었다. 축구는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축구는 나를 세계로 데려갔다. 나는 벨기에의 헹크에서 뛰었고,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갔다. 그리고 나는 많은 언어를 배웠고.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언어를 배울 수 있게 된다면 모든 문을 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과 장소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폴리에 가기 전, 나는 정말로 불안해 했다. 이탈리아어도 모르고, 몇몇 사람들이 마피아와 범죄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한번도 나폴리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그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여기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는 내가 벨기에의 헹크에서 뛰고 있었을때였다. 내 친구 아흐메드가 며칠간 집에서 머무르기 위해 오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오는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영어로 답변했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상대가 말했다. "여보세요. 라파 베니테즈입니다."

 나는 "에이, 아흐메드. 장난치지마. 나 너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다시 전화를 했고, 나는 짜증이 났다. 
 "아흐메드. 그만해. 나 여깄어. 언제 오는데?"
 "여보세요? 나는 라파 베니테즈인데.."

 나는 다시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나의 에이전트가 연락을 해왔고,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쿨리, 잘 지냈어? 나폴리의 라파 베니테즈 감독으로부터 이야기 들었지? 너한테 전화를 할거야."
 "뭐? 농담이지? 방금 그가 나한테 전화를 한 것 같아. 난 내 친구가 장난치는줄 알았단 말야!"

 에이전트는 라파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했고, 라파는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라파! 헬로우! 봉주르! 올라! 헬로우!"
 "안녕. 영어로 말하기를 원합니까?"
 "원하는 대로 하세요. 무엇을 원하시든 그걸로 말하죠."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했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여자친구는 있는지? 파티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나폴리와 선수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나는, "음... 감독님.. 함식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선수들이나 나폴리에 대해서 정말로 알고 있는게 없었지만, 나는 라파 베니테즈를 알고 있었고,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
 나는 에이전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서 "해야할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해. 나폴리로 갈 거야."라고 말했다. 

 

 

겨울이적시장 종료까지 48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나폴리는 헹크와 거래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라파는 약속을 지켰고, 여름에 나는 나폴리에 입단했다. 
 메디컬 테스트를 하기 위해 도착했을때, 나는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복도에서 데 라우렌티스 회장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때의 일이 나폴리와 이 클럽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를 의심스러운듯이 보더니 "오, 네가 쿨리발리야?"라고 말했다. 
 "네. 제가 쿨리발리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키가 크지 않은데? 너 192cm 아니야?"
 "아니요. 회장님. 저 186cm인데요."
 "젠장! 192cm라고 모든 곳에 써있었는데! 헹크에 전화해서 돈을 좀 돌려달라고 말해야겠구만!"
 "괜찮습니다 회장님. 모든 돈을 다 지불하세요. 제가 모든 센티미터를 경기장에서 돌려드릴테니까요. 걱정마십시오."
 그는 이 말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나폴리에 온 것을 환영해, 쿨리발리. 잘 왔어."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라파는 나와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리에 앉은 후에 메뉴도 받기 전에 처음으로 한 일은 다른 테이블에 있는 와인잔을 죄다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잔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더니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혹시 그가 미쳤나?라고 생각했다. 
 "좋아. 이제 내가 전술을 보여주지"

 웨이터가 다가왔지만, 라파는 와인잔들을 사방으로 움직이면서 "이것이 우리의 플레이 방식이야. 너는 여기로 가야하고, 그 다음엔 여기로 가야하지. 이해하겠어? 이제 너는 두 가지를 매우 빠르게 해내야만 한다. 이 전술을 이해하고, 이탈리아어를 배워."
 "알겠습니다. 보스. 알겠어요."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라파는 수석 비디오 분석가가 있는 방에 나를 데려가고서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는 감각적인 패스, 드리블, 슬라이딩 태클 등 나의 최고의 플레이 모두를 보여주었다. 

 "이것, 이것, 그리고 이것?" 그의 말이었다. 
 "네? 괜찮지 않나요?" 내가 한 말이다.
 "더 이상 이런 쓸데없는짓 하지마"
 "하지만 공을 되찾았는걸요!"

 이 다음은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멍청한 짓이야! 네 체력 덕에 공을 따낸 것이지, 만약 상대가 더 영리했다면 문제가 생겼을걸."

 그리고 나서 그는 다른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매우 지루한, 평범한 플레이였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이런게 좋은거야. 매우 좋은거지."
"하지만 감독님, 이건 그냥 단순한 플레이인데요?" 
"그래, 쿨리, 정확해."

 이는 여기에서의 내 경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내가 이탈리아에 왔을때 나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전술을 배웠기에 나는 더 나은 축구선수가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전술에 대해서는 매우 꼼꼼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정을 꾸린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한 나폴리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에 있는 집에 돌아가도 내 친구들은 나를 "세네갈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야, 저기 나폴리 사람 온다"라고 말한다. 

 나폴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도시다. 이 모든 따뜻함을 보면 나는 아프리카가 떠오르곤 한다. 사람들은 단지 지나치면서 흘깃 바라만 보지 않는다. 여기 사람들은 손을 뻗어서 닿고 싶어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한다. 여기 사람들은 상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 내 이웃들은 나를 아들처럼 여긴다. 나폴리에 온 이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정말로 평화롭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아들이 여기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폴리에 대한 모든 것을 요약해 보여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침에 병원에 갔고, 이날 밤 우리는 홈에서 사수올로를 상대 할 예정이었다.
 비디오 분석 세션 중에 내 핸드폰이 계속 진동했다. 평상시라면 핸드폰을 꺼두었겠지만, 아내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5~6번 전화를 걸었다. 

 당시 우리의 감독은 마우리시오 사리였다. 그는 열정적인 남자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지금 당장 와야 해. 우리 아들이 나오고 있어."
 나는 사리에게 가서 말했다. "감독님, 죄송하지만 저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제 아들이 나오고 있어요!" 
 사리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안돼, 안돼, 안돼. 나는 오늘 밤 네가 필요해. 쿨리. 정말로 필요하단 말야. 못 가."

 "제 아들의 출산이에요. 감독님은 저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벌금을 부과하세요. 출장 정지 징계를 내리세요. 신경 안써요. 저는 갑니다."

 사리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은 것처럼 보였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흡연, 흡연, 생각....
그리고 마침내 그는 말했다. "좋아. 좋아. 병원에 가도 된다. 하지만 오늘 밤에 있을 경기를 위해 반드시 돌아와야 해. 나는 네가 필요하니까. 쿨리!"

 나는 최대한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만약 아버지가 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탄생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정오에 병원에 도착했고, 신에게 감사하게도, 오후 1시 30분, 작은 나폴리인이 태어났다. 우리는 아기에게 세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오후 4시, 나는 사리의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은..... 당신은 반드시 이해해야만 한다.... 그는 미쳤다. 좋게 말하는 거지만, 그는 미쳤다!
 "쿨리?! 돌아오고 있는거야?! 나는 네가 필요하다니까! 정말로 필요해! 제발!"

 아내는 여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아마도 그녀도 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팀 동료들, 그리고 나폴리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내의 축복을 받고 경기장에 갔다. 그리고 경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리가 드레싱룸에 와서 출장명단을 공개했다. 나는 그걸 살펴보고... 보고.... 또 보고....
 내 등번호는 거기에 없었다. 

 "감독님! 농담하는거에요?"
 "뭐? 이게 내 선택이야."

 그는 나를 벤치에 앉혔다! 선발 출장도 아니었다!

 "감독님! 내 아들! 내 아내! 저는 그들을 두고 왔다구요! 제가 필요하다고 말했잖아요!"

 "응, 우리는 벤치에 앉은 네가 필요해." 그의 말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나는 심지어 선발 출장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일에 대해서 떠올리면 나는 그저 웃고 싶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울고 싶었다. 
 아마도 이것이 부정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이야기는 내가 사랑하는 나폴리에 관한 모든 것이다. 
 이에 대해 내가 설명한다고 해도 당신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마치 농담을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이 도시에 와서 직접 느껴야 알 수 있다. 미친 곳이다. 그렇다. 하지만 따뜻한 곳이다. 

 

 

 아마도 이제 당신은 나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축구 선수다. 맞다.
 나는 흑인 축구 선수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이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무슬림이다. 나는 세네갈인이다. 나는 프랑스인이다. 나는 나폴리인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다. 
 나는 전세계를 돌아다녔고, 많은 언어를 배웠으며, 많은 문을 열었다. 나는 운이 좋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당신에게 다시 상기시켜주고자 한다. 
 이 세상에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 우정, 친구, 평온함이다. 
 어린이였던 우리가 생 디에에서 배운 것은 이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아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젠가는 나에게 고함 치는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https://www.theplayerstribune.com/en-us/articles/kalidou-koulibaly-napoli-we-are-all-brothers

 

출처 - 펨코의 '산소과자'님

이 게시물은 forrock님에 의해 2021-04-16 23:21:24'칼치오게시판'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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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9-25 10:03:27

"쿨리, 팬들이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외칠때 당신의 기분은 어떻습니까?

기분이 어떻기는 당연히 드럽겠지 이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건지 기자 진짜 멍청한 질문 했네요

2019-09-25 10:04:41

쿨리발리 선수 응원합니다

Updated at 2019-09-25 10:10:37

사리 에피소드는 아들 출산 보고 경기장으로 온것까지만 알고 있었는데 벤치행은 처음 알았네요 헐....

2019-09-25 10:11:16

사리 파트는 진짜 무슨 제정신인가 싶은

2019-09-25 10:23:41

 사리;; 와 진짜 싸이코패스인가 

2019-09-25 10:25:55

멋진 선수

2019-09-25 10:33:11

사리는 대체...

3
Updated at 2019-09-25 10:40:08

심판, 소년, 데라우렌티스, 베니테즈 하나같이 다 아름다운 얘기였는데 사리 나올때 한숨

2019-09-25 10:39:50

정독했네요.오랜만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2019-09-25 10:40:46

사리는 사대박급 일화

2019-09-25 10:51:16

사리;;

2019-09-25 11:54:02

사맄ㅋㅋㅋㅋㅋ 벤치에 앉은 네가 필요하다니 ㅜㅜ

1
2019-09-25 12:07:50

와씨..ㅠㅠㅠㅠㅠ 진짜 멋지네요..
뛰랑이 생각납미다

2019-09-25 15:29:02

저도 딱 이생각 나더라고요.. ㅜ

2019-09-25 20:37:12

실제로 튀랑이 롤모델이라고 하죠ㅋㅋ

2019-09-25 12:11:37

"하지만 그렇게 키가 크지 않은데? 너 192cm 아니야?"

 "아니요. 회장님. 저 186cm인데요."

 "젠장! 192cm라고 모든 곳에 써있었는데! 헹크에 전화해서 돈을 좀 돌려달라고 말해야겠구만!"

 "괜찮습니다 회장님. 모든 돈을 다 지불하세요. 제가 모든 센티미터를 경기장에서 돌려드릴테니까요. 걱정마십시오."

너무 멋지고 감동적인 사람..

2019-09-25 13:20:14

지금 세리에가 품기에는 너무 큰 선수네요

2019-09-25 13:32:15

눈물나게 좋은 글이네요

축복만 있길

2019-09-25 13:53:22

사리는 정말 까면 깔수록 새롭게 느껴지네요..

2019-09-25 13:55:01

감동

2019-09-25 14:25:02

사리 제정신인가
날강두랑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소중한걸 전혀 모르는 사람인 듯

2019-09-25 15:39:52

사리 너무 싫다

2019-09-25 16:32:05

사리는 증말 미쳤고만요
쿨리발리 글 좋네요 bb

2019-09-25 20:08:48

사리는 본인이 쿨리발리 입장이었으면 어땠으려나 싶네요.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쿨리발리 짱짱맨...

2019-09-25 20:31:50

와 사리 인성 철철 녹네 ㄷㄷㄷ

2019-09-25 20:42:51

 사리는 진짜 소시오패스같은데

2019-09-25 20:58:39

멋진 사람

2019-09-26 22:16:01

나보다 어린데................ 정말 존경심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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