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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농구선수' 서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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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7 16:01:51

어느덧 인기 방송인으로 거듭나며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핫한 '셀럽'이 된 서장훈.. 그러나 현역시절 워낙에 유명한 선수였던데다 그 키 때문이라도 그가 소싯적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드문데요.. 그 것도 허재와 함께 한국농구사의 양대산맥이라고 할만한 대단한 선수였죠.

사실 서장훈은 국민학교 시절 처음 입문했던 운동은 야구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며 농구로 전향했고 휘문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기량과 신장 모두 급성장하며 이미 2m에 육박하는 대형센터가 되어 막을 자가 없었죠. 휘문고등학교 진학하고 키가 207cm까지 자라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더구나 현주엽이 휘문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온 1년 후배로서 휘문고등학교 진학 시점에서는 역시나 동년배 중에서는 궤를 달리하는 선수로 성장해서 서장훈과 함께 더블포스트를 형성했기에 고교농구 수준에서의 그 위력은 ㄷㄷ

이후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연세대학교로 진학해서 선배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등과 함께 연세대학교 농구부의 황금기를 이끌게 되죠. 용병도 없던 그 시절 한국농구계에서 서장훈의 존재감은 급을 달리하는 수준이었기에 전희철-현주엽의 고려대, 김유택-한기범의 기아 정도만 정상적인 선에서 대항이 가능했을 뿐, 많은 팀들이 비정상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서장훈을 막곤 했었는데 그 결과 결국은 큰 일이 터지게 되죠.

서장훈이 2학년이던 1994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경기.. 삼성의 더블포스트를 구축하던 박상관-이창수 듀오는 수비를 빙자한 폭력을 행사하며 서장훈을 막았고, 그럼에도 꾸역꾸역 활약을 이어가자 끝내 박상관이 팔꿈치로 서장훈의 후두부를 강타, 급소에 큰 타격을 입고 그대로 코트에 쓰려져 버렸고 3개월 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죠. 조금만 급소와 더 가까운 곳에 맞았으면 평생 전신마비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아찔했던 상황.. 서장훈이 1차적으로 목에 만성적인 부상을 얻게 되고 또 대학농구 초창기의 스피드나 탄력을 잃은 것도 이 사건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죠. 물론 프로와서 용병들과 맞서기 위해 몸을 불린 것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서장훈은 훗날 박상관, 이창수와 화해했고, 또 박상관의 딸 박지수와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이미 국내여자농구 역대 최고의 센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선수), 이창수의 아들 이원석을 (경복고 3학년에 재학 중인 205cm의 장신포워드로 연세대 진학 유력) 만난 자리에서도 덕담을 전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아무튼 그 시절에는 폭력이 동반된 수비를 심판들마저 묵인해주는 시대였고, 한기범의 마대자루 난동사건과 임달식의 허재 가격 사건 등도 그런 시대상으로 인해 터진 사건들이었죠. 그나마 지금이야 시대 상도 많이 변했고, 또 전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영상이 모두 인터넷에 박제되기도 해서 옛날보다 훨씬 덜해졌습니다만.. 지금도 유명선수들 팔뚝을 유심히 보면 집중견제에 따른 손톱자국이 수없이 나있을만큼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성 자체가 상당히 거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시절 서장훈 같은 급이 다른 선수.. 기량 자체도 급이 다른데 키까지 다른 선수들보다 10cm 이상 크다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견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고 더구나 20대 초반 대학생 신분의 서장훈은 당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 농구대잔치 시절 무지막지한 견제가 서장훈이라는 선수의 기량 자체를 갉아먹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죠..

이후 회복하게 된 서장훈은 국내농구계에 회의를 느낀 것도 있고, 또 선수보호차원도 있어 미국의 산호세주립대로 유학을 떠나게 되죠.. 그러나 학교가 그닥 농구로 인지도 있는 대학도 아니었고, 서장훈도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1년 만에 귀국.. 졸업 후 때마침 프로농구가 창단되어 서장훈은 신생팀 진로에 지명이 되는데 이에 반발하며 다소간 진통이 있었죠. 당시 국내농구는 대학을 졸업하면 드래프트와 같은 시스템 없이 실업팀들이 선수에게 적절한 계약금을 지급하고 또 동료선수 2~3명을 더 데려가 모 기업의 평사원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식으로 스카우트가 이루어 졌었는데 드래프트로 자신이 팀을 선택할 수 없게 되다보니 그와 관련하여 반발이 있었는데 진로가 프로농구단을 창단하기 직전 부도가 나버리고 SK가 인수한 뒤 서장훈에게 최고대우를 약속하며 합의가 이루어졌죠.

더구나 휘문중-휘문고 시절 함께 했던 1년 후배 현주엽까지 SK에 입단하게 되면서 국내농구 역사에 남을 더블포스트를 구축하게 되는데.. 그러나 두 선수는 의외로 호흡이 맞지 않았고, 결국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에 보내면서 슈터 조상현을 영입함으로서 팀 밸런스를 맞추게 되죠. 그러면서 황성인-조상현-하니발-서장훈-재키 존스라는 화려한 베스트 5를 구축한 SK는 1999/00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또 서장훈도 내외각능력을 골고루 갖춘 하니발과 재키 존스, 두 수위급 용병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더욱 절정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죠.

2001년에는 FA 자격을 얻게 되는데 무려 삼성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악연이 있던 박상관, 이창수 듀오는 나란히 팀을 떠나야 했죠.. 사실 삼성은 서장훈 합류 이후 몇 시즌 간은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2005/06시즌 이정석-강혁-네이트 존스-서장훈-오예데지라는 강력한 라인업에 이규섭 등 탄탄한 벤치자원까지 갖추어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비스를 4:0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죠. 나이지리아 왕족 출신의 듬직한 센터 오예데지로 인해 서장훈은 인사이드에서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또 서장훈이 오예데지와 함께 골밑에서 해준 덕에 공격력이 대단했던 포워드 네이트 존슨이 자유롭게 공격을 펼치며 삼성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 구축되었죠.

이 시절의 서장훈은 KBL에서 용병빅맨들과 거의 유일무이하게 대적이 가능한 국내선수였고 지금까지도 서장훈만큼 용병들과 비빌 수 있는 선수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사실 KBL 초창기 용병수준은 썩 높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겠습니다만.. 2000년대 중반은 유럽리그에서 이름 날리던 선수들까지 100만달러 씩 받고 한국에 오던 시절이라 용병수준이 중국과도 대적 가능하던 때였는데 그 때도 서장훈은 용병들과 비빌 수가 있었죠. 골밑에서 높이가 확실했고, 또 순수 골밑 공격기술도 원채 좋았고 슛이라는 보조무기도 워낙 훌륭했으니.. 수비에 대한 지적은 이 때도 있었지만 용병들과 주로 매치업을 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참작할만한 부분도 있었고, 또 공격력이 워낙 대단해 상쇄가 되었죠.

다만 이 시절 서장훈은 또 다시 아찔한 사고를 당하는데 TG삼보(현 DB)와의 경기 중 김주성에게 뒷목을 가격당해 또 한 번 목에 큰 부상을 입은 것.. 결국 선수커리어에 있어 두 차례나 목에 큰 충격을 받은 서장훈은 이후 선수생활 내내 목보호대를 착용해야 했고, 또 서장훈이 코트에서 짜증도 많이 내고 또 심판에게 항의도 많이 해서 농구 팬들 사이에서 은근 비호감 이미지가 있던 시절이라 목장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고 말았죠.. 다만 서장훈 개인이 원채 예민한 성격인 것도 있지만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커리어 내내 견제를 원채 심하게 당한 덕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농구 팬들 사이에서 적지 않죠..

그리고 우승 이후 서장훈은 두 번쨰 FA를 맞이하게 되고 삼성을 떠나기로 한 가운데 KCC와 전자랜드, 모비스에서 영입의향서를 제출하였는데 전자랜드가 가장 입찰액이 높았고 또 대학시절 지도를 받았던 최희암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상황이었음에도 KCC를 선택했죠. 연세대 직속선배였던 이상민과 함께 뛰려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그러나 얄궂게도 KBL의 FA 보상선수 제도로 인해 KCC는 추승균을 보호하기 위해 이상민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고, KCC는 삼성이 이상민이 아닌 다른선수를 선택하게 하고자 물밑협상에 나서기도 했지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요구하자 결국 포기했죠. 그 것이 하승진, 윤호영, 김민수 등이 나오는 황금드래프트의 로터리 지명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삼성은 노장이지만 스타성이 리그 최고인데다 전력에 1~2년은 더 도움이 되는 이상민을 당연히 선택, 실제로 두 시즌 간 아주 요긴하게 활용했죠.

KCC 이적 후 첫 시즌에는 지난 해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고, 그러나 두 번째 시즌에 하승진이 입단하며 상황이 바뀌게 되죠. 서장훈은 훨씬 젊었던 신인 시절 현주엽과도 느리다는 이유로 공존이 안되었던 선수인데 하승진과의 공존은 당연히.. 처음에 허재 감독은 꾸역꾸역 두 선수를 함께 활용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더 젊고 가치있는 하승진의 비중을 늘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서장훈은 트레이드를 요청해서 전자랜드가 강병현 등 3명의 선수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드디어 서장훈을 품는데 성공했죠. 당시 전자랜드도 정영삼이 에이스로 있는 가운데 같은 포지션의 강병현이 입단하며 교통정리 문제가 있었는데 이 트레이드로 양 팀 모두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었죠.

이후 하위권에 머물던 전자랜드는 정영삼-포웰-서장훈 삼각편대가 공격을 이끌기 시작하며 극적으로 성적을 반등시켰고, 결국 그렇게 염원하던 6강 플레이오프 무대에 안착했는데 또 얄궂게도 상대가 KCC.. 게다가 시리즈가 매 경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선수가 실려나가는 그야말로 혈전이 펼쳐진 끝에 결국 전자랜드가 2승 3패로 패퇴했죠. 당시 전자랜드 최희암 감독이 심판판정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등 여러모로 큰 논란이 되었던 서리즈였죠.

이후 2010/11시즌에는 당시 빅맨용병 중 공격력만큼은 최고 수중니던 허버트 힐, 또 귀화혼혈선수로서 합류한 문태종과 소위 '서태힐' 트리오를 이루며 정규시즌 2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기도 했죠.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또 KCC를 만나 업셋을 당하며 챔피언결정전의 꿈은 이루지 못했고.. 이후 세 번째 FA 자격을 취득해 재계약을 하지만 곧바로 LG로 트레이드가 되었죠.

당시 LG는 문태영이 있었고, 또 용병으로는 오예데지를 선발하여 서태힐 못지 않은 트리오를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점점 인사이드에서 외각으로 밀려나오던 서장훈은 문태영과도 동선이 겹쳤고, 또 노장이 된 오예데지도 느릴 때로 느려져 서장훈과 전혀 시너지가 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오히려 서로 마이너스가 되었고, 결국 오예데지를 퇴출하고 헤인즈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서장훈의 비중 역시도 점점 줄어들었죠.

결국 한 시즌 만에 LG를 떠나 전창진 감독이 이끌던 kt와 계약해서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kt가 국내빅맨에 목말랐던 팀이기도 하고, 또 신인센터 장재석의 멘토 역할 등을 기대하고 계약했지만 30대 후반의 서장훈은 더 이상 큰 위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죠.. 당시 kt는 시즌 중에 이미 팀 성적을 거의 포기한 모양새가 되어 서장훈에게 출전기회는 제법 주어졌고 덕분에 마지막에 어느정도 괜찮은 기록을 세우기는 했습니다만.. 결국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결정짓게 되고 구단에서 시즌 마지막 홈 경기를 이용해 나름 성의있는 은퇴식을 치루어주기도 했죠.

아무튼 국내농구사에 남을 농구선수를 딱 2명만 꼽으라면 아주 많은 이들이 허재와 서장훈을 꼽을겁니다.. 물론 더 아재들은 이충희, 신동파 이런 인물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또 KBL에서 이룬 업적도 단순 기록으로만 보더라도 대적할만한 자가 없죠. 또 그 것이 용병들과 직접적으로 맞부딫히는 자리에서 기록한 것이라 그 가치는 더욱 크고.. 전성기 야오밍의 중국을 격파하고 얻어낸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죠.

이후 농구지도자나 행정가가 아닌 방송인, 예능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히 성공한 방송인이 되어 농구 쪽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데요.. 사실 애초에 집안 자체가 잘 사는데다 본인도 선수시절 워낙 많은 돈을 벌었고 재테크까지 성공해 건물주로서도 때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등 돈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을만한 인물입니다만.. 아무튼 방송일을 상당히 즐기는 듯 해서 앞으로 농구계로 복귀할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 쯤은 서장훈이 농구계로 복귀하길 기원하는 농구팬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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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19-11-14 15:38:16

중간에 서장훈이 아니라 주성타에 맞은걸로 수정을 해야..

글은 잘 읽었습니다~

Updated at 2019-11-14 15:42:16

방송인으로 자리잡을 때만 해도

결국 내가 돌아갈가야 할 곳은 농구계..같은 뉘앙스의 발언을 했었는데

지금은 방송계에 너무 자리를 잡아서...잘 모르겠네요

 

KBL 넘버원 레전드가 농구계에 있지 않은 건 농구계로선 아쉬운 일이지만

사실 농구계에 환멸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고생도 많이 해서...

OP
2019-11-14 16:32:20

또 농구계를 떠난 세월이 길어질수록 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서.. 방송활동이 원채 바쁘니 농구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하기도 힘들었을거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쉽지 않아보이네요..

2019-11-14 20:25:02

서장훈이 의외로 머리가 굉장히 좋고 성골 농덕이라 앵간한 느바 매니아 회원들보다 최신 농구 흐름 잘 알거예요.

2019-11-15 04:17:03

파이널 객원해설 할때 보면 느바는 꾸준히 보는게 느껴지죠

제 생각은 농구는 꾸준히 보는데 불러주는 팀이 없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2019-11-14 15:50:08

이창수 박상관 용서한것만으로도 농구계에 큰 공헌한 격이죠

Updated at 2019-11-14 15:50:51

 TG삼보(현 DB)와의 경기 중 서장훈에게 뒷목을 가격당해 또 한 번 목에 큰 부상을 입은 것.. <-김주성

 

한국 들어와서 처음 농구봤을때가 98년인데 그때 부산이라서 기아 응원했지만 서장훈 때문에 sk나이츠도 응원헀던 기억 나네요

OP
2019-11-14 16:31:36

오타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2019-11-14 16:54:54

외국인 선수 도입의 피해자로도 보임

외국인선수 없었으면 무난하게 리그탑 찍었을 텐데...


2019-11-14 17:21:11

농구도 나름 햇나보군요ㄷㄷ

2019-11-14 17:24:32

다방면으로 ㄷㄷ하게 아시네요

2019-11-14 17:58:54

 서장훈 - 재키존스 진짜 너무 싫었네요. 너무 잘해서..

2019-11-14 19:50:50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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