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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는 과연 퇴보했는가 : (하편) 사이즈와 국제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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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 13:46:25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180cm 초반의 작은 키로도 NBA 무대를 평정했던 가드 앨런 아이버슨의 유명한 명언인데요.. 그러나 사실 농구는 키 빨이 절대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농구만 봐도 허재와 서장훈도 못 간 NBA를 하승진이 221cm라는 압도적인 신장 하나로 진출해서 가비지 멤버로라도 두 시즌 간 활약한 이력도 있고.. 미국에서는 고교농구나 대학농구 스카우터들이 피지컬 좋은 원석을 발굴하고자 아프리카 오지까지도 탐험한다고 하는데요.. 실제 NBA 역사에 남을 센터였던 하킴 올라주원도 원래 모국 나이지리아에서 동네축구나 하던 청년이었다고 하는데 휴스턴 대학교의 감독이 키가 2미터가 훌쩍 넘고 운동신경도 좋은 청년이 아프리카에서 동네축구 골키퍼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미국으로 데려온 케이스라고 하는군요..

 

흔히 NBA나 유럽농구에서 포지션 별 표준신장은 천차만별이기는 한데 평균적으로 가장 작은 포지션인 포인트가드가 185~190cm로 시작해서 로포스트로 올라갈 수록 5cm 정도씩 커지는 편이죠. 반면에 한국농구는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190cm만 넘으면 빅맨을 시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신장이라는 측면에서는 국제농구에서 상당한 열세에 있었는데요.. 실제 180cm의 '캥거루 슈터' 조성원이 슈팅가드는 물론 스몰포워드까지 보기도 했었고, 또 문경은 현 SK 감독도 현역 시절 스몰포워드로서 프로필 신장은 190cm지만 실제로는 2~3cm 작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 시대 상에서 188cm의 신장에도 한국농구 기준으로 엄청난 운동신경을 갖춘 '가드'였던 허재의 위력은 무시무시할 수 밖에 없었고, 205cm의 한기범도 당시로서 센세이션한 신체조건이었는데 207cm에 빅맨으로서의 기량마저 한기범보다 두 수는 위였던 서장훈은 그야말로 골밑의 지배자가 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2000년대 들면서, 특히 200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한국농구도 장신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전 포지션이 과거에 비해 5cm 가량 늘어났다고 보면 되죠. 이제는 포인트가드 포지션에도 박찬희, 김선형, 이대성등 180cm 후반에서 190cm에 이르는 선수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순수가드라고 보기는 애매해도 최준용처럼 가드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2m짜리 선수까지 등장하는 상황에 있죠. 기존의 표준신장이던 180cm 초반의 가드들은 이런 장신가드들과의 수비매치업에서 열세일 수 밖에 없어 지역방어나 스위치 등 수비전술로 어느정도 보조를 해주어야 되는 상황.. 스몰포워드 포지션 역시도 이제는 190cm 중반이 기본이고 송교창처럼 2m에 이르는 스몰포워드 자원들도 등장하고 있죠. 사실 3번 포지션에서 2m면 NBA나 유럽 기준으로도 크게 밀리는 신장은 아니죠..

 

다만 빅맨 포지션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1~3번 앞선의 포지션보다는 평균신장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고 있는데요.. 간혹 210cm에 달하는 선수가 아마추어 농구에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기량이 도저히 프로농구에서 뛸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 아예 하승진처럼 220cm가 넘는 압도적인 수준이라면 써먹겠는데 그 정도는 또 아니니까.. 지금 KBL의 대표 국내빅맨들 신장이 오세근 200cm, 이승현 197cm, 김종규 207cm, 이종현 203cm, 김준일 202cm, 강상재 200cm, 또 귀화선수 라건아도 200cm 수준으로 이제는 스몰포워드 선수들과도 크게 차이가 안나는 수준이 되었죠.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신장은 전 포지션에 있어서, 또 공수양면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요.. 예를 들어 205cm의 빅맨과 195cm의 빅맨이 골밑에서 맞붙었을 때 전자는 자리만 잘 잡으면 쉽게 한 골 넣을 수가 있는데 후자는 자리를 잡아도 블락 당할까봐 피벗하고 펌프페이크하고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를 춰서 틈을 만들어 골을 넣어야 되죠.. 아니면 힘이 압도적이라 상대를 밀어낼 수 있던지.. KBL의 언더사이즈 빅맨 용병들이 10cm 씩 차이나는 국내빅맨들과도 싸울 수 있는 것이 인종적 특성 상 선천적인 힘 차이가 크니까 신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게 아니면 사실 신장이 절대적이죠.. 타 포지션에 있어서도 바깥에서 하는 선수들은 스피드 등의 다른 요소로 공격은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수비에서 극복하기 힘든 경우가 많죠.. 공격도 사이즈 차이가 나면 그 만큼 슈팅을 쏠 때 블락위험 등이 커지게 되니 영향이 적지 않고..

 

그리고 이러한 국내농구의 장신화 추세를 국제경쟁력과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사실 옛날에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양궁농구로 제법 통했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습니다만..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강호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92점을 폭발시키며 12점차 패배로 나름 선전하는 등의 모습은 있었지만 결국 5전 전패..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도 조별에선 5전 전패에 이은 순위결정전까지 총 7전 전패.. 당시 선수로 뛰었던 문경은 현 SK 감독은 순위결정전 중 앙골라를 상대로는 경기 전 연습할 때 레이업도 제대로 못올리길래 얘네는 당연히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 피지컬 차이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더라고 회고하기도 했었죠.. 또 농구월드컵도 1990년부터 1994년과 1998년, 그리고 2014년과 2018년 대회에서 총 5승 23패의 전적을 기록했고 5승도 모두 순위결정전에서 약체 급인 아프리카의 이집트, 코트디부아르 등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었으니.. 사실 국제경쟁력 측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계가 명확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죠.

 

그나마 예전에는 그냥 상대 장신선수들 상대로 수비부터가 안되서 그냥 속절없이 당했다면 근래에는 어느정도 사이즈 매칭은 되는데 기본기 차이가 많이 나서 뭔가 스무스하게 밀린다는 느낌인데요.. 실제 최근 농구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 강호들과 맞붙은 경기를 본다면 상대는 망설임없이 3점 올리고 얼리오펜스 간결하게 하고 하는데 우리는 3점쏘기 전에 한 번 망설이고, 공격은 일단 가드 한 번 꼭 거쳐서 하고.. 기본적인 기량도 기량이지만 여기에 전술이라던지 또 더 깊이 파고들면 우리농구가 뿌리부터 심어져 있는 마인드 자체가 국제농구의 정세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죠. 이런 것은 하루이틀 만에 될 것이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뿌리부터 고쳐나가야 되는데 더구나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는 한 끼 식사에 불과하던 일본농구가 근래들어 대대적인 개혁으로 10년 후를 바라보며 무섭게 달려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농구로서는 더욱 큰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죠.

 

사실 이전의 국제대회 실적에 대한 추억은 진짜 세계무대보다는 아시아 무대와 관련된 것일텐데요.. 실제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안게임 등에서 중국과 한국이 다 해먹다시피 했고 중국이 넘버원, 한국이 넘버투와 같은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죠. 아시안게임 외에도 아시아권의 각종 국가대표 농구대회에서 중국과 한국이 서로서로 해먹는 그림이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 들어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1라운드에서 이란과 요르단에 연달아 덜미를 잡힌데 이어 8강전에서 결국 중국에 패퇴, 48년 만의 노메달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되죠. 당시 김승현, 방성윤, 김주성, 서장훈 등 한국농구 역사에 남을만한 구성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스쿼드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는데요.. 이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다시금 3개 대회 연속으로 메달을 획득하며 꾸준한 성과는 있지만 확실히 예전의 확실한 넘버투로서의 위상은 없어진지 제법 되었죠.

 

다만 이 것은 아시아농구.. 특히 중동의 발전세가 2000년대 이후로 이어지면서 어느정도 상향평준화가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특히 중동지역의 경우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피지컬은 유럽급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기량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는 우리로서도 상당한 난적이 되었죠. 더구나 오일머니로 미국 출신의 귀화선수를 여럿 확보해 전력을 강화하기도 했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 중동농구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었는데 다만 FIBA에서 만 15세 이후에 해당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선수는 한 명 만을 로스터에 올릴 수 있다는 귀화선수 규정을 신설하면서 중동발 모래바람이 다소 사그라들기는 했죠.

 

그럼에도 피지컬 자체가 동아시아와 다르기 때문에 한국, 중국 등의 발목을 꾸준히 잡아오고 있고 이란은 전통적으로 귀화선수는 운영하지 않았지만 아예 중국마저 위협하는 아시아 농구 최강자의 대열까지 올라섰죠.. 1985년생인 하다디가 은퇴하면 그 기세가 어느정도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신가드 베남 야크찰리, 포워드 모하메드 잠시디, NCAA 1부리그 출신의 아슬란 카제미 등 여전히 전성기의 나이를 보내면서 우리의 대표 선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핵심자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지속해서 난적으로 남을 상대라고 볼 수 있고.. 뿐만 아니라 농구가 국기로 항상 아시아의 다크호스로서 힘을 써왔던 필리핀, 또 NBA 로터리 하치무라 루이를 배출하는 등 발전세가 너무나도 위협적인 일본 등 농구의 세계화 속에 아시아 농구 역시도 꾸준히 상향평준화 되는 추세라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전망도 썩 밝다고만은 볼 수 없죠.. 그러나 아시아에서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원인이 한국농구의 퇴보 때문이라고 하기도 힘들다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도 아시아권을 상대로 한 우리의 경기력 자체는 근래에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도 사실인데요..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도 결승전에서 하다디를 우리 빅맨들이 돌아가며 어떻게든 막아내면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고.. 2017~18년도에는 아시안컵과 월드컵 예선 등에서 상당히 유기적인 공격전개로 3점슛이 불을 뿜으며 KOR든스테이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죠.. 유럽리거가 다수 포진한 뉴질랜드를 원정경기에서 잡기도 했었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제는 1990년대 중국과 아시아농구를 양분하던 시절의 지위는 더 이상 누리기 힘들겠지만 여전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강팀 중 하나로서는 계속해서 위치를 이어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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