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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Loser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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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0:32:18

저도 밑의 글처럼 거리낄 것 없이 제 나름대로 원테이크로 가보겠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의 기준에서는 이미 루저입니다.

40대가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장 나부랭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내에서 부서가 여러가지 풍파를 겪은 후에 쪼그라들어서 막내 신세를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지원 부서라서 평가 받을 때마다 고과도 별로고, 고백하자면 나이 먹고 경력직으로 들어온거니 순혈주의 강조하는 회사 조직의 특성상 미국 유학가서 근사한 박사 따온 것도 없고 화제가 되는 업계의 셀럽같이 광팔아 먹을 수 있는 성과도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직책과 역할을 줄 가능성은 이 조직에서 아예 없는거나 마찬가지죠.

 

아는 형과 대화할 때마다 그러시더라고요. 

아는 형 : 너 나이대에 다른 친구들은 포지션이 어떻냐

그냥 : 보통 차장? 빠르면 부장? 은 되는 것 같은데요

아는 형 : 넌 그런거 보면 느끼는거 없냐.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분한 마음 같은거 안들어?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어차피 임원 같은거 되는거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실무진에서만 대충 구를 수 있는 것만해도 족하다. 라고.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점점 도태남의 길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좀더 어린 나이에 잘나가는 인원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저같이 스타트라인에 다시 서서 이제 막 힘내려고 나름 잘해보려 하는 경우에는 기대도 안하고 때되면 못견뎌서 결국 조용히 나가주기를 기다리는 눈치인거죠.

 

그래서 먼저 탈출할 비상구를 찾아 영화 쇼생크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이 밤새 감방 안에서 연석 부위를 찾아 탈출 루트를 파내듯이 이직시장을 기웃대는겁니다. 평일 밤 9시 이후에 퇴근해도 자정 이후에도 헤드헌터들이 보내주는(과연 생각없이 뿌리는 포지션 제안 떡밥을 절실한 마음으로 내가 생각없이 집어 물었든, 정말 그네들이 생각하는 '능력있는 인재'라고 평가해서 제안하는지 모르지만) 메일을 읽고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는 몇번이고 처음부터 갈아엎고 수정하면서 또 기한에 맞춰서 제 경력기술서 워드파일을 첨부해서 회신을 줍니다.....그리고 대부분은 서류 광탈이라는 결과를 손에 쥘 뿐이지만요. [대퇴사시대, 대이직시대에 당신이 해야할 전략은?] 이라는 파일을 보면서 마음 잡고 전략을 짜보기도 하지만, 끽해봐야 블라인드에서 loser라고 규정한 월급 400따리 안에서 내 경력 다 인정받고 얼마나 더 나아지겠어? 하는 허무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돌아와버리죠.

("왜 그런 스펙으로 여기에 있는거에요?" 라는 말은 일상으로 흔하게 들어서 이골이 났습니다. 주변에서 뭐라하든 현실은 냉정하게 생각해서 도전할 공간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 그런 자존심은 버린지가 오래입니다.) 

 

나이는 상관이 없습니다. 의지와 죽을만큼 자기 노력만 있으면 충분해요! 라고 동기부여 전문가들이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에서 떠들어대는걸 지나가면서 봅니다. 하지만 전 속으로 외치죠. 야, 똑같이 그런 생각해서 모두다 똑같이 죽을만큼 노력하면 내 순위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더라. 요샌 다 똑똑하고 잘난놈들 천지인데 똑똑한 놈들이 경쟁에서 나같은 놈들 제끼는건 메시가 드리볼쳐서 수비 2-3명 제끼는것처럼 너무 간단해. 라고요. 밑에서 글쓰신 분이 말씀한 것처럼 생존 그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태인 것에 대해 뒤늦은 나이에 뚜의 세계에 가든 선을 보든 소개팅을 하게 되든 저는 '2등급 미만 품종'의 딱지로 이성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 나이에 전문직도 못따고, 회사에서는 낮은 직급에, 사람은 좀 좋은거 같은데 겉으로 봤을 때 패기도 없고 일에 찌들어 가는 일반적인 도태남의 모습은 어떻게 숨길 수 없으니까요(게다가 어린 걸그룹 멤버들 보면서 힘을 쥐어 짜내서 하루를 버티는걸 알면 기겁하고 도망갈 것이 뻔할테니 그건 죽을만큼 싫어서 일반인 코스프레를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아주 운이 좋아서 나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어느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서 만의 하나의 확률로 자식을 낳게 되더라도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라는 질문에 내가 낳은 자식이 당당하게 말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지. 그런 생각만 하면 결혼이라는걸 해도 나는 내가 낳은 자식에게도 다른 잘난 부자 아빠들이 심어주는 자신감 넘치는 미래가 아니라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더라도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처럼 항상 반성문을 마음 속으로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게 되니까요.

 

많은 분들이 징징징징 또 시작이구나 이 걸그룹 덕후 아조씨. 이럴 것입니다. 비아냥대는 댓글 악플 다 감수하고 글을 씁니다. 근데 이렇게라도 어떻게 말을 하지 않으면, 뭐라도 풀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요. 일상 생활에서 감춰온 괴로움과 침울함은 그 어디에도 풀 수 없다는게 제 현실이라서요. 친구들 지인들 형님들 누나들 다 있지만, 대부분은 "야 그냥 니가 힘내서 잘하면 되잖아. 잘할 수 있는거 아냐?" 라는 답변만 듣게 되어서요. 가련한 공무원 회원님의 고통받는 일대기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마음을 아프게 되는 이유는, 그 분도 매일 분투하지만 어딘가에 필요한 대나무 숲이 여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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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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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0:35:07

띠바... 추천 백만한번 누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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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0:36:39

형님ㄷㄷㄷㄷ

2023-03-15 20:39:47

횐님께서 겪으시는 상황에서 어떤 말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위로가 되시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멋있게 살고 계신다고.. 그저 그런 말씀밖에 드릴 수 없네요

Updated at 2023-03-15 20:42:45

 저랑 나이 비슷하신듯. 각자가 처한 어려움의 종류는 다르지만 고민의 주제는 똑같습니다. 생존이라는거 ㅠㅠ 

2023-03-15 20:42:14

형님 항상 화이팅입니다ㅠㅠ

2023-03-15 2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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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응원합니다. 

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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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0:56:18

진짜 힘을 내고 용기를 받아야 사람은 하수영인데....볼때마다 눈물이 나네요 참....

2023-03-15 20:57:14

마.. 그거시 '아이돌'의 숙명이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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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0:44:30

그 아는 형과 손절하시고요 인생에 있어서 남들보다 잘. 아닌 남들만큼만. 이라는 부담감 내려 놓으시고 하고 싶으신 거 눈치 보지 말고 하셨으면 합니다.

2023-03-15 20:45:54

백만 두 번 누릅니다 형님. 시시각각 사내 동기 선후배부터 다른 회사 인간들까지 무한 경쟁해야 하는 업계에 있습니다. 하루하루 비교하고 나아져야지 다짐하고 애써봐도, 이미 필드에서의 제 평판은 정해진 것이더군요. 너무 견고하게 짜여서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요. 어느새부턴가 죽고 싶다란 혼잣말을 입에서 떨치지 못합니다. 그런 주제에 꼴에 가정은 꾸려서 포기는 꿈도 못 꾸고요. 이런 못난 제 응원이라도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
2023-03-15 20:46:22

저도 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네요.
커리어 초기에 최악의 팀과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심신이 바닥 뚫고 들어가 1년 정도 방황하다 다시 시작했는데
진급이 정체되어 제 또래들 다 1조수인데 전 아직 2조수입니다. 많이 밀렸죠. 이제 슬슬 입봉하는 또래들도 나오고 있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큰 위안은 전 스스로 슬로우스타터로 생각하고 있고, 아직 일하는 게 재밌고, 늦은 진급 덕에 더 발전된 역량으로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 때문인 것 같네요.
가끔 아 나란 사람 자체가 정체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래도 빠르게 올라가 체하는 것보단 낫다는 것으로 자위합니다. 나중에 겪을 시련을 미리 겪으며 내성을 키웠다고도 생각하고요.
긍정의 근본은 아직 빈약하지만, 충만하게 만드는 과정을 재밌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미없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2023-03-15 20:51:45

제 이야기 같아서 서글프네요.. 그래도 살아갑시다

2023-03-15 20:53:31

저랑 또래라서 더 응원하게 되네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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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0:53:44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건 아니지만 월급 400대면 결코 적은돈은 아닌데...
물론 더 많이 노력하셨겠지만 지금
월급도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는걸...

나도 죽을만큼 노력하고 남들도 죽을만큼 노력하면 똑같더라...
맞는 말이죠 남들도 죽을만큼 노력한다는 가정이라면요
보통 그렇지 않더라구요. 결국 차이는 생긴다...

화이팅합시다
2023-03-15 20:55:52

형님 화이팅입니다!!!

1
2023-03-15 21:02:28

형님 힘내세요. 혹시 부산 오실 일 있으시면 제가 꼭 한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Updated at 2023-03-15 21:08:36

햇살이 기분좋게 느껴지는날이 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런날을 기다리고 있네요
 

 

그리고 또한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네요

 

우리 존재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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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21:15:18

후… 함께 힘냅시다 ㅠㅠ

2023-03-15 22:07:56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23-03-16 10:38:15

경력 이직 서탈 10번 되니 허허 했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한 거 같아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다행히 번아웃 조금씩 나아져서 걍 현직장에 좀 해볼까 마인드 생기고 있습니다.

2023-03-22 11:07:44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내 일이 아닐거라고 외면하고 있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싱글남의 상황이라면

누구나 맞닥드릴 수 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그저 힘내라, 좋은 날이 올거다 라고 위로하는 말은

크게 도움이 되시지 않을거 같고...

읽고나니 그저 저 또한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글이네요...

사는게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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