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할것같네요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가 아니고 진심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자대의 한 연구실에서
이제 막 임용이 되고 랩을 여신 정말 좋은 교수님과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 정말 착하면서도 잘 할것 같으셨고 랩 기초 쌓아나가며 배우는 것들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던 와중에도 제 앞날을 생각 안 할 수는 없는지라
다른 더 알아주는 학교 대학원 시험과 면접도 보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 합격을 하고 나서 천사같은 교수님 곁에 남을지 좋은 학교에서 비벼볼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간판차이라는 관념을 생각 안 했다면 거짓말일거고
특히 내가 들이키는 뽕이 아니라 같은 성과를 내도 더 인정받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단 측면에서의 간판차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고려한게 맞지만
결정적인 이유로는 더 좋은 여건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했고
살면서 대단한 도전 없이 싱겁게만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돌아가는게 좀 특이했는데
일단 입학한 후에 지도교수를 정하는 시스템은 알고 있었지만
일년에 교수당 한명의 학생만, 반드시 학기말에 선정, 랩돌이도 없음 등
비슷한 시스템의 학교나 타과들은 있어도 그정도로 빡빡하게 굴러가는건 좀 이상할 정도더라구요
어쨌든 저런 상황이라 멀쩡한 교수들은 웬만하면 봄학기에 티오가 다 차고
가을학기에는 빌런들, 비인기 분야..에 뭐 여름에 졸업 많이 시킨 분 조금?
이정도만 남아서.. 지도교수는 2학기째에 정하는 것으로 하고 첫학기를 넘겼습니다
그러고 이번이 두번째 학기였는데
1년동안 열심히 밭갈이한 교수님은 끝까지 간을 보시다 결국 다른 학생을 고르고
다른 두어개 랩에서도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실 타대생이라면 이정도는 기본이고 훨씬 열린 마음으로 몇 배는 많은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다녔어야 하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일년동안 좁은 기숙사 방에서 많은 고민을 해 봤는데
저는 이 학교의 학위가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재미있고 하고싶어하는 것을 더 잘 해보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저를 자꾸 찔렀습니다.
이전 연구실에서 하던 것들도 너무 재미있었고
또 그보다 전에 있던 곳이 생각도 나더라구요
그보다 전에 있던 곳에서는 교수님도 착하시고 다른 사람들도 좋았고 하다못해 간판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는데
첫 면담에서 석박만 받겠다는 교수님을 두고 제가 석사가 하고싶다고 우겨서 내주신 석사 티오를 걷어차고 나온 것
그대로 쭉 갔으면 이제 졸업학기일 그곳을 나온게 돌이켜보면
그 연구실에서 하는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있을것 같아서였고
자대 연구실에서는 정말 재미있었다는게 종종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여기서 서너 교수님한테 거절을 당하고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갖고 마음의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결국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다른 학교 간다니까 붙잡지도 못하고 아쉬워만 하시던 천사같은 교수님한테..
오늘 찾아가서 이런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왔는데
반색하며 좋아하려다가도 어떻게 거기서 대강 끝내고 올 수는 없냐, 마음이 확실한거냐며 걱정부터 앞서시더니
저는 당연히 다음 학기 입시가 끝이 났으니 올해는 인턴급으로 일 하고 내년 입학 생각하고 말씀드린건데
학과장님한테 가을학기 추가모집을 물어보겠다며 당장 전화를 하시더라구요
지금 입학 안 한다고 일 안 할것도 아니고
일손도 없어서 그냥 학생이라면 아무나 받을거면서 내가 늦게 졸업해야 교수님이 좋은건데
그렇게 빨리 졸업시키려고 하면 저런 장사는 뭐가 남나 싶으면서
잘 돌아온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친구 하나는 너같은놈은 xx대 자퇴하고 ㅇㅇ대 간다고 네이트판에 글쓰고 욕을 사발로 들이마셔야 정신차린다 그런 얘기도 하는데
저는 뭐 아쉽고 그렇지는 않네요
제가 이곳에서 일년간 얻은 것이 학자금대출과 불안과 불면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를 갉아먹기만 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제가 더 즐거웠던 때로 돌아가는것 같아
후련하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집니다.
당연히 앞으로 힘든 일들이 도처에 많겠지만
그래도 제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고른 것이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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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교수님이시네요. 하시는 일 잘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