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조금 전에 방에서 바퀴벌레를 봤어요
저는 배가 고파서 베이컨빵을 먹고 자려고 침대에서 베이컨 빵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타다닥 타다닥 튀기는 듯한 소리가 나더군요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바퀴벌레가 제 방에서 어두운 거실로 나가려고 문틈을 비비고 있었어요
갑자기 맛있게 먹고 있던 베이컨 빵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ㅠ
바퀴를 오랜만에 보다보니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어떡하지..어떡하지..하면서 그대로 제 방에서 나가주기만을 바랬어요
그런데 바퀴벌레는 무지 뚠뚠해서 문틈사이로 나가지를 못하더군요
움직임도 둔한 걸 보니 잡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퀴를 잡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마땅한 게 없더군요
때려잡으면 잡고서 버릴 때 제가 바퀴를 만져야하는데 휴지로 싸서 만지는 것 조차도 무지 싫었어요
그렇게 제가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 바퀴가 제 방 서랍 밑으로 들어갔어요
졸리기도해서 그냥 신경 껐는데 갑자기 타다닥 튀기는 소리가 다시 들렸어요
봤더니 바퀴가 선풍기 바람에 날려서인지 뒤집힌채로 아둥바둥대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순간 바퀴를 손을 대지 않고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서랍에서 박스테이프를 꺼내서 바퀴에게 독방을 만들어주고 작은 시집으로 덮었어요
그렇게 하고나니 제 방 한 가운데라서 제가 다니다가 감옥을 스스로 부수게 될 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냉장고에서 비비큐 전단지를 하나 빼와서 박스테이프 아래로 싹 깔아줬어요
그리고 마법의 양탄자처럼 제가 손으로 끌어서 침대 밑으로 옮겨뒀어요
바퀴는 생명력이 강하니 되도록 오래 둘 생각인데요 바퀴 입장에서는 어쩌면 사람을 잘못만난 건 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에 고통 없이 죽이는 편이 사람 손은 더러워도 편해졌을 수 있지만요 저는 제 손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고통까지 안겨준 셈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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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바퀴벌레에겐 통각이 없으니 인간이 아무리 괴롭혀도 바퀴벌레에게 고통을 안겨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구속당했을 때 본능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긴 하겠지만, 바퀴벌레가 복잡한 감정을 느낄 것 같진 않으니 죽음의 공포나 절망 같은 정신적 고통은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바퀴벌레는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바퀴벌레를 감금하여 손을 더럽히는 불쾌한 경험을 피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충분히 허용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