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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특집] 축구 영역 정답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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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14 17:50:33

 

원문-https://football-tribe.com/korea/2019/11/14/%ec%88%98%eb%8a%a5-%ed%8a%b9%ec%a7%91-%ec%b6%95%ea%b5%ac-%ec%98%81%ec%97%ad-%ec%a0%95%eb%8b%b5-%ea%b3%b5%ea%b0%9c/

 

어제 올렸던 축구 영역 정답을 공개합니다. 양이 많아서 스크롤 압박 느끼시는 분들께서는 원본 글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세매에 만점자는 없네요. 다른 커뮤니티에도 올렸는데, 축구 커뮤니티에는 만점자가 없습니다만, 농구 커뮤니티에서 만점자가 나왔습니다.


1.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 선수다은퇴 이후에는 구단 역사상 최장기간인 35년 동안 회장직을 역임했다유소년 시절부터 포함하면 무려 69년 동안이나 레알 마드리드만을 위해 일했던 인물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무려 6번의 유러피언 컵과 16번의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이 인물은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이고축구 역사상 최고의 회장으로 평가받는다이 인물은 누구일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프란시스코 헨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정답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입니다베르나베우는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뛰었고 1943년부터 197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장직을 역임했습니다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무려 6번의 유러피언 컵과 16번의 라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베르나베우는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회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자 동시에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회장으로 뽑힙니다.

 

2. 다음 설명에 맞는 구단을 고르시오.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은 1955년부터 시작됐다당시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 PSV 아인트호벤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16개 구단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한 팀은 초청을 받았으나, FA의 반대 때문에 불참하게 됐다그렇다면 유러피언 컵에 불참한 잉글랜드 구단은 어디일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리버풀

첼시

 

정답은 첼시입니다첼시는 1955년 유러피언 컵에 초청받았지만잉글랜드 축구 협회인 FA의 반대로 불참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유러피언 컵에 초청받았으나, FA 반대로 불참할 뻔했습니다하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맷 버스비가 유러피언 컵 출전을 강행하면서 잉글랜드 구단들도 유러피언 컵에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3.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고르시오.

 

오늘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팀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뛰는 선수들을 바탕으로 팀을 꾸린다.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시절에는 자국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해 우승을 차지했던 팀들도 있었다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 국가 팀들이 자국 선수들을 서유럽 국가들로 보내지 못하게 했던 점도 있었으며지금처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아메리카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대거 진출하지 못했던 점도 있다.

 

그렇다면 역대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 구단 중 자국 선수들만을 가지고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팀은 어디일까.

 

레알 마드리드

SL 벤피카

셀틱

인터 밀란

 

정답은 인터 밀란입니다인터 밀란은 1963/1964시즌과 1964/1965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했습니다당시 인터 밀란의 선수단에는 스페인 선수인 루이스 수아레스와 브라질 선수인 자이르가 있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1965/1966시즌 유러피언 컵 때 스페인 선수들만을 가지고 우승했습니다벤피카는 1960/1961시즌과 1961/1962시즌 유러피언 컵 때 포르투갈 선수들만으로 팀을 꾸려 우승했습니다셀틱은 1966/1967시즌 유러피언 컵 때 스코틀랜드 선수들만을 가지고 우승했습니다.

 

4. 다음 설명에 맞는 구단을 고르시오.

 

빅 이어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만이 들어 올릴 수 있는 트로피다많은 구단과 선수가 이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한다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은 유러피언 컵이다빅 이어는 유러피언 컵 시절에도 유럽의 챔피언을 상징하는 트로피였다.

 

그러나 빅 이어가 처음부터 사용되지 않았다. 1956년에 유러피언 컵이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약 10년이 지나서야 빅 이어가 유러피언 컵의 우승 트로피로 자리 잡았다그렇다면 역사상 최초로 빅 이어를 들어 올린 구단은 어디일까.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리버풀

셀틱

 

정답은 셀틱입니다빅 이어는 1966/1967시즌부터 활용됐는데당시 우승팀인 셀틱이 최초의 빅 이어 주인공이 됐습니다.

 

5. 다음 설명에 맞는 구단을 고르시오.

 

이 구단은 유러피언 컵에서 2연패(連霸)에 성공한 팀 중 하나다그러나 역대 유러피언 컵과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팀 중 유일하게 빅 이어가 없는 구단이기도 하다이 구단은 어디일까.

 

인터 밀란

노팅엄 포레스트

SL 벤피카

바이에른 뮌헨

 

정답은 SL 벤피카입니다벤피카의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은 1961/1962시즌입니다이때 유러피언 컵은 지금처럼 빅 이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벤피카를 제외한 다른 구단들은 빅 이어를 사용할 때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6.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감독과 선수로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선수 시절 카이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 인물은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세기의 라이벌로 평가받았다여기에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도 두 차례 수상했다독일 축구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끈 이 인물은 누구인가.

 

게르트 뮐러

파울 브라이트너

울리 슈틸리케

프란츠 베켄바워

 

정답은 프란츠 베켄바워입니다베켄바워는 선수 시절 카이저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그리고 1970년대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선수인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세기의 라이벌이라고 평가받았습니다그리고 1972년과 1976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습니다.

 

베켄바워가 있는 동안 서독 대표팀은 1974년 월드컵과 UEFA 유로 1972에 우승했습니다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은 3번의 유러피언 컵 우승과 4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7. 다음 설명에 맞는 사건을 고르시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맞붙었다이 경기 전만 해도 브라질은 역사상 첫 번째 월드컵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토너먼트가 아닌 최종 리그 형태로 경기를 치렀고 승점이 높은 팀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우루과이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브라질은 승점 4점으로 조 1위였다우루과이의 승점은 3점이었다브라질이 무승부만 기록해도 우승할 수 있었던 상황.

 

그러나 브라질은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에 1:2로 패했다우루과이는 브라질을 제치고 승점 5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리자 2명이 심장 마비로, 2명이 권총 자살로 사망했다또한브라질은 결승전 때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었는데해당 경기 이후 지금의 노란색과 파란색 유니폼으로 바꿨다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순간 중 하나로 뽑히는 이 사건은 무엇일까.

 

미네이랑의 비극

헤이젤 참사

뮌헨 참사

마라카낭의 비극

 

정답은 마라카낭의 비극입니다이 사건은 브라질의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축구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뽑힙니다미네이랑의 비극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브라질이 독일 대표팀에 당했던 사건입니다헤이젤 참사는 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브라질 대표팀과 무관합니다뮌헨 참사는 1958년 비행기가 추락한 사건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대거 사망한 사건입니다.

 

8.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모두 고르시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인 빅 이어는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다많은 선수가 빅 이어를 들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새로운 팀으로 이적하는가 하면라이벌 팀으로 이적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그러나 그렇게 해서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처럼 명예로운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일까. 1968/1969시즌부터 도입된 규칙에 따르면빅 이어를 영구 소장하기 위해서는 대회 3연패를 차지하거나통산 5회 우승을 달성해야 한다해당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우승팀은 축소 복제품을 받고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10개월 동안만 진품을 소유한 뒤 반납해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이후에 빅 이어 영구 소장 규칙이 폐지됐다진품은 UEFA가 보유하고 우승팀에는 팀 이름이 새겨진 100% 크기 복제품을 수여한다그렇다면 현재 진품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하는 구단은 어디일까.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바이에른 뮌헨

AFC 아약스

 

정답은 모두 정답입니다레알 마드리드는 1956년부터 1960년까지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했으며, 1965/1966시즌에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그리고 1997/1998시즌과 1999/2000시즌, 2001/2002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하며 빅 이어 영구 소장 자격을 얻었습니다.

 

AC 밀란은 1962/1963시즌과 1968/1969시즌, 1988/1989시즌, 1989/1990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1993/1994시즌과 2002/2003시즌, 2006/2007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빅 이어 영구 소장 자격을 달성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유러피언 컵 3연패에 성공했습니다그리고 2000/2001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빅 이어 영구 소장 자격을 확보했습니다.

 

AFC 아약스는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유러피언 컵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그리고 1994/1995시즌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빅 이어 영구 소장 자격을 얻었습니다.

 

9.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1936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그리고 195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축구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년 후에는 1군에 승격해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6살이었다.

 

초대 발롱도르 수상자인 스탠리 매튜스는 이 선수를 성난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 같다라고 극찬했다토미 도처티는 조지 베스트와 펠레디에고 마라도나 모두 훌륭했지만그중에서도 이 선수가 최고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선수는 비행기 추락 사고인 뮌헨 참사로 다리와 갈비뼈를 비롯해 심각한 골절상을 입었고 신장이 손상됐다결국만 21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그렇다면 이 인물은 누구일까.

 

조지 베스트

보비 찰턴

데니스 로

던컨 에드워즈

 

정답은 던컨 에드워즈입니다에드워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맷 버스비의 아이들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1957년에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빌리 라이트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 후보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에드워즈의 뛰어난 재능을 놓고 초대 발롱도르 수상자인 스탠리 매튜스가 극찬했고토미 도처티는 조지 베스트와 펠레디에고 마라도나 모두 훌륭했지만그중에서도 에드워즈가 최고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958년 뮌헨 참사로 에드워즈는 심각한 다리와 갈비뼈를 비롯해 심각한 골절상을 입었고 신장이 손상됐습니다결국만 21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에드워즈의 죽음 이후 맨유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0.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헝가리의 벨라 쿠트만 감독은 1959년 포르투갈의 명문 구단인 SL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았다이후 벤피카는 1960/1961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격파하고 우승했다이듬해 레알 마드리드까지 꺾으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뛰어난 성과를 내자 구트만은 구단 경영진에 급료 인상을 요구했다그러나 구단이 이를 거절하자 구트만은 앞으로 ( )년 동안 벤피카는 유럽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테다라며 구단을 저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구트만이 떠난 이후 벤피카는 지금까지도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그렇다면 구트만이 말했던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100

80

70

50

 

정답은 100년입니다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았던 벨라 구트만 감독은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차지하자 구단에 급료 인상을 요구했습니다하지만 벤피카의 경영진은 구트만 감독의 요청을 거절했고 이에 분노한 구트만 감독은 앞으로 100년 동안 벤피카는 유럽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할 테다라며 구단을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벤피카는 그 이후 정말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고르시오.

 

프랑스 축구의 영웅인 지네딘 지단은 1972년 6월 23일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지단은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으며발롱도르와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을 정도로 성공적인 선수 경력을 보냈다.

 

그렇다면 선수 시절 지단이 뛰지 않았던 팀은 어디일까.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AS 

지롱댕 드 보르도

레알 마드리드

 

정답은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입니다지네딘 지단은 마르세유 태생에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의 팬이지만이 팀에서 뛴 적은 없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이후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로부터 감독직을 제안받기도 했지만지단은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시작으로 감독 경력을 쌓았습니다.

 

12. 다음 설명에 맞는 곡을 고르시오.

 

축구 팬들이라면 태어나서 한 번쯤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주제곡을 들어봤을 테다챔피언스 리그 경기 오프닝이나하프 타임 때그리고 매 경기 직전에 등장하는 이 노래는 1992년 UEFA가 작곡가 토니 브리튼에게 공식 주제곡을 의뢰해서 탄생했다.

 

‘Ligue Des Champions’이라고도 불리는 이 주제곡은 프랑스어와 독일어영어 등의 가사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그리고 성 마르틴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연주로 완성된 웅장하면서도 근엄한 노래다많은 선수가 이 노래를 들으며 남다른 각오를 다졌고많은 팬이 이 노래로 하나가 됐다.

 

그런데 작곡가인 토니 브리튼은 이 곡을 한 클래식 음악으로 편곡했을 뿐이다그렇다면 챔스 주제곡의 원곡은 무엇일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Symphony No.01, K16-01’

조지 프레드릭 헨델 ‘Zadok The Priest, Hwv 258’

루트비히 판 베토벤 ‘Symphony No.1 In C major, op.21’

프레데리크 쇼팽 ‘Nocturne No.20 - Op.P1 No.16-In C#m (BI 49)’

 

정답은 조지 프레드릭 헨델 ‘Zadok The Priest, Hwv 258’입니다토니 브리튼은 이 노래를 편곡하여 챔피언스 리그 주제곡을 만들었습니다.

 

13. 다음 설명에 맞는 사건을 고르시오.

 

이 사건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뽑힌다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AC 밀란을 상대로 1:4로 졌다데포르티보가 4강에 진출하려면 홈에서 3:0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밀란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등과 함께 가장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던 팀으로 데포르티보가 이들을 꺾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데포르티보는 밀란을 상대로 전반전에 3골을후반전에 1골을 넣으며 4:0으로 승리했다그리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그렇다면 이 사건은 무엇일까.

 

안필드의 기적

캄프 누의 기적

이스탄불의 기적

리아소르의 기적

 

정답은 리아소르의 기적입니다안필드의 기적은 리버풀의 홈 안필드에서 2016년과 2019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캄프 누의 기적은 바르셀로나의 홈 캄프 누에서 1999년과 2016년에 일어났습니다이스탄불의 기적은 2005년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일어났습니다.

 

14.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축구 선수들 역시 사람이기에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이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의 전설인 사비 에르난데스도 마찬가지이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 )/를 해서 이 분야에 전문적 지식까지 가지고 있다그렇다면 빈칸에 들어갈 정답은 무엇일까.

 

양계장

버섯채취

요리

사냥

 

정답은 버섯채취입니다사비 에르난데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녀 버섯 채취를 했으며버섯 채취에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5.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발롱도르는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본래 발롱도르는 유럽 국적의 선수로만 한정된 상이었다이 때문에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남아메리카 선수들은 발롱도르를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선수의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나라 출신 선수들이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비유럽인 출신 선수는 누구일까.

 

호나우두

히바우두

조지 웨아

호나우지뉴

 

정답은 조지 웨아입니다아프리카 라이베리아 태생인 웨아는 1995년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비유럽인 축구 선수가 됐습니다.

 

16.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발롱도르 역사상 최초로 3회 연속 수상에 성공했다등 번호 10번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며뛰어난 골 결정력과 경기 조율 능력을 갖췄다그러나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다.

 

지네딘 지단

미셸 플라티니

리오넬 메시

호나우지뉴

 

정답은 미셸 플라티니입니다프랑스와 유벤투스의 전설인 플라티니는 등 번호 10번을 대표하는 선수였으며미드필더임에도 뛰어난 골 결정력과 경기 조율 능력을 갖췄습니다플라티니는 발롱도르 역사상 최초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회 연속 수상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플라티니도 월드컵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프랑스는 1982년과 1986년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결승전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17.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축구 황제’ 펠레는 월드컵에서 통산 3번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그러나 오늘날 펠레를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라고 평가할 때 많은 사람이 그가 유럽에서 뛰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실제로 펠레는 선수 경력 대부분을 브라질 프로팀인 산투스에서 보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펠레는 선수 시절 다수의 유럽 명문 구단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그중에는 레알 마드리드도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펠레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1959년에 펠레와 처음으로 접촉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펠레를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완벽한 대체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펠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을 거절했다펠레는 자서전에서 유럽 리그 진출을 거절한 이유로 어머니가 만든 ( )/를 좋아했고 브라질에서 편안했고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또한자신과 부모님의 집이 몇 미터에 불과했던 점과 항상 25도를 유지했던 기온그리고 바닷가를 좋아했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침대

레몬 에이드

쌀과 콩 요리

오렌지 주스

 

정답은 쌀과 콩 요리입니다펠레는 자서전을 통해 본인이 유럽 리그 진출을 거절했던 이유를 들었는데어머니가 만든 쌀과 콩 요리를 좋아했고 브라질에서 편안했고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또한자신과 부모님의 집이 몇 미터에 불과했던 점과 항상 25도를 유지했던 기온그리고 바닷가를 좋아했었다는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18.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선수는 1916년 당시 독일 영토였던 카토비츠에서 태어났다양친 모두 독일인이었다그러나 1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는 서부전선에서 전사했고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카토비츠는 폴란드 영토로 편입됐다이에 이 선수의 가정은 폴란드로 귀화했다.

 

이후 어른이 되어 축구 선수가 된 이 선수는 폴란드 대표팀에 승선했다그리고 193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혼자서 4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이 선수는 다시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다나치 정권은 폴란드인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는 행위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이 선수는 폴란드의 공산 정권에 의해 배신자로 몰렸고고향에서 추방됐다그렇다면 이 선수는 누구일까.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

즈비그니예프 보니에크

그제그로슈 라토

비톨트 벤트코브스키

 

정답은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입니다빌리모프스키는 1916년 당시 독일 영토였던 카토비츠에서 태어났습니다양친 모두 독일인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가 서부전선에서 전사했습니다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카토비츠는 폴란드 영토로 편입됐는데빌리모프스키의 가정은 폴란드로 귀화했습니다.

 

이후 어른이 된 빌리모프스키는 폴란드 대표팀에 승선했습니다그리고 193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혼자서 4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빌리모프스키는 다시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나치 정권은 폴란드인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는 행위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빌리모프스키는 폴란드의 공산 정권에 의해 배신자로 몰렸고고향에서 추방됐습니다결국, 1997년 고향 카토비츠가 아닌 독일 카를스루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스페인 대표팀은 ( 유니폼을 입고 치렀던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기억을 가진 적이 없다맨 처음에는 그저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던 이 ( 유니폼은 어느덧 불운의 상징이자 ‘( )유니폼의 저주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났던 스페인 대표팀은 (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이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 유니폼의 저주가 시작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나이지리아파라과이불가리아와 같은 조에 배정됐다조 추첨 당시만 해도 스페인이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서 ( 유니폼을 입은 스페인은 2:1로 앞섰지만골키퍼인 안도니 수비사레타가 자책골을 넣으며 동점을 허용했다결국나이지리아에 역전 골을 내주며 2:3으로 졌다설상가상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겪었다.

 

유로 2004 때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이 경기에서 0:1로 진 스페인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그러나 1:5로 역전패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경험했다그렇다면 빈칸에 들어갈 정답은 무엇인가.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흰색

 

정답은 흰색입니다스페인 대표팀은 유독 흰색 유니폼을 입으면 메이저 대회에서 부진하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흰색 유니폼의 저주라고도 불릴 정도.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났던 스페인 대표팀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습니다이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흰색유니폼의 저주가 시작됐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나이지리아파라과이불가리아와 같은 조에 배정됐습니다조 추첨 당시만 해도 스페인이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은 스페인은 2:1로 앞섰지만골키퍼인 안도니 수비사레타가 자책골을 넣으며 동점을 허용했습니다결국나이지리아에 역전 골을 내주며 2:3으로 졌습니다설상가상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겪었습니다.

 

유로 2004 때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흰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는데, 0:1로 졌습니다스페인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흰색 유니폼을 입고 나왔지만, 1:5로 역전패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20.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최권을 따는 데 성공했다이탈리아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무솔리니는 이 대회 우승을 위해 원래 아르헨티나 선수였던 루이스 몬티와 엔리케 과이타라이문도 오르시 등을 이탈리아로 귀화시켰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 )’이라며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고 했다그렇다면 빈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전원 죽음

전원 강제 노동

전원 은퇴

전원 유배

 

정답은 전원 죽음입니다베니토 무솔리니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최권을 따는 데 성공했는데월드컵을 통해 이탈리아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무솔리니는 이 대회 우승을 위해 원래 아르헨티나 선수였던 루이스 몬티와 엔리케 과이타라이문도 오르시 등을 이탈리아로 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전원 죽음이라며 반드시 월드컵에서 우승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이탈리아 대표팀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했지만이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대회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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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19-11-14 17:56:57

4 6 7 8 9 13 14 15 16 이정도밖에 모르겠네요.
아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선수도 나오고 무지 어렵네요 ㄷㄷ

2019-11-14 18:35:00

C는 되려나 ㄷㄷ

2019-11-14 19:01:16

확실히 알고 푼 문제는 5개도 안되는듯 ... ㄷㄷ

2019-11-14 19:56:47

6개 틀렸네요 ㅠㅠ
몇등급인가요?

Updated at 2019-11-14 21:20:36

좋은 문제들이네요

2019-11-15 07:41:10

3번까지 읽어보고 포기했네요 재수할라고 눈감고 찍고있습니다. 오늘은 3번이 땡기는날이네오

2019-11-17 07:02:16

폴란드 선수 문제 같은건 찍었는데 맞췄네요
16개나 맞췃다니 뿌듯해서 치킨이라도 시켜야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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