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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마카이,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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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4-07 19:55:36

2000년대 중반, 바이에른 뮌헨의 간판공격수로서 명성을 떨쳤던 '팬텀' 로이 마카이.. 이 인물은 1975년생으로서 네덜란드 비테세 아른하임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간판공격수로서 활약하며 1996년도에 첫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루는 등 일찍이 주목받아온 선수였습니다. 그 결과 1997년에 스페인 1부리그 CD 테네리페에 600만유로의 이적료에 진출하게 되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고 더구나 테네리페 규모의 팀에게는 상당한 투자였죠.

두 시즌 간 활약한 뒤 1999년에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상위무대에서의 커리어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죠. 당시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의 지휘 아래 브라질의 '슈퍼 플레이메이커' 자우미냐가 이끌던 이 팀은 적극적인 투자와 매력적인 축구로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CF와 함께 스페인의 4강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었는데 마카이는 이적 첫 해 4-3-3 포메이션에서 측면공격수와 중앙공격수를 병행하며 22골을 기록, 1999/00시즌 팀의 리그우승에 크게 공헌했죠.

이듬 해에는 '골잡이' 디에고 트리스탄이 새로이 합류해 계속해서 중앙과 측면을 병행하는 상황 속에서도 2000/01시즌에 16골, 2001/02시즌에도 12골을 기록해 트리스탄 뿐만 아니라 자우미냐의 뒤를 물려받은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또 좌측면에서 돌파능력이 좋았던 프란 등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죠. 개인적으로 윙포워드 시절 마카이의 활약상을 실제 보지는 못했었습니다만.. 당시 축구트랜드에 측면에서 활약하면서 꾸준히 10골 이상을 기록한 것은 분명 범상찮은 기록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다가 이 선수가 제대로 이름을 알린 것이 바로 2002/03시즌의 활약이었습니다. 당시 한창 전성기를 보낼 나이였던 트리스탄이 부상 등으로 큰 부침을 겪는 사이 마카이가 전방 원톱공격수로 출전하는 비중이 늘어나며 원래 대단했던 득점력이 제대로 만개한 것..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이었습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 AC 밀란, 데포르티보가 한 조를 이룬 '죽음의 조'가 16강전도 아니고 (당시에는 16강전도 조별예선 방식) 32강전에서 구성되어 큰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여론으로는 그래도 바이에른 뮌헨이 한 자리를 하고 밀란과 데포르티보가 한 자리를 두고 다툴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죠.

 

그런데 첫 경기였던 뮌헨 원정에서 마카이는 해트트릭을 기록, 바이언을 격침시킵니다. 전반전에만 두 골을 기습한 뒤 후반 들어 동점을 허용했지만 후반 막바지 결승골을 성공시켜 해트트릭을 완성했죠. 뒤이어서도 꾸준한 득점포를 가동했고 뮌헨을 홈으로 불러들인 경기와 밀란 원정경기에서도 결승골을 기록, 32강 조별에선에서만 7골을 몰아넣어 팀이 '죽음의 조'를 통과하는데 일등공신이 됩니다. 당시 조 최약체로 손꼽히던 프랑스의 랑스가 밀란과 데포르티보를 한 차례씩 격파하며 양 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었는데 다만 데포르티보와 밀란이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두 경기를 모두 잡아낸 반면, 랑스는 실질적 '1승 제물'이 된 뮌헨과의 두 경기에서 모두 무승부에 그친 것이 향방을 갈랐죠.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데포르티보의 마카이에게 4골, AC 밀란의 필리포 인자기에게 3골을 내어주며 그야말로 혼비백산했었습니다.

 

그러나 16강전에서는 조별예선 6경기 중 5경기에 나서 2골을 추가하는데 그쳤고 팀은 간발의 차로 8강전에 진출하는데는 실패했죠.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나머지 삼자간 승점동률 속 골득실로 8강진출팀이 가려졌었는데 데포르티보로서는 유벤투스와의 델레 알피 결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이고르 투도르에게 결승골을 허용한 것이 아주 뼈아팠죠. 또 당시 AC 밀란도 8강전에서 아약스에게 덜미를 잡힐 뻔 했다가 후반 추가시간 욘 달 토마손의 극적인 결승포로 기사회생해서 우승까지 차지했었는데 당시 결승전에서 맞붙은 두 이탈리아 팀들에게는 그런 극적인 사연들이 있었죠..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셌습니다만.. 아무튼 마카이는 2002/03시즌 챔피언스리그 9골, 또 프리메라리가에서는 무려 29골을 폭발시켜 득점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되죠. 그리고 시즌 후 이적하게 되는 바이에른 뮌헨이 마카이에게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2002년 하반기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간판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가 30줄을 넘어선데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더 젋고 다재다능한 공격수를 찾기 시작하는데 최초에 후보로 오른 것이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와 마카이였습니다. 그 중에서 자신들을 폭격한 마카이를 최종후보로 낙점, 일찍이 본격적인 영입전에 나서게 되죠.

 

최초 데포르티보의 요구액은 2,500만유로 선.. 그러나 당시 '한 명의 선수에게 2,000만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사용하지 않는' 구단 내부의 규칙이 있었고 이 상한선을 지키고자 장기간의 협상을 이어간 끝에 근성으로 2,000만유로 아래까지 절충하는데 성공했죠. 게다가 최종합의 직전 세부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마카이가 본인이 뮌헨에서 받기로 한 연봉의 일부를 포기해 상황을 정리.. 최종적으로 1,875만유로라는 이적료에 합의가 되었는데 당시 '스페인의 로티토' 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협상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던 데포르티보의 아우구스투 렌도이로 구단주가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바이언 측에서 엄청난 근성을 발휘해 끝내 2003년 여름 마카이를 영입하는데 성공했죠.

 

그렇게 뮌헨에 입성한 마카이의 등번호는 10번.. 여기에도 이야기거리가 있습니다. 원래 바이언의 계획은 다이슬러에게 등번호 10번을 물려주고 마카이에게는 9번을 부여하려고 했는데 1년 전 다이슬러가 '임시번호' 격으로 받았던 26번 셔츠가 워낙 잘 팔리는 바람에, 또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선수 본인의 부담도 줄여줄 겸 26번을 고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존의 9번 에우베르는 마카이의 이적이 확정되었을 때까지도 바이언 소속이었죠. 그래서 마카이가 바이언의 10번이 되고 그 직후 에우베르가 올림피크 리옹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당시 마카이와 에우베르의 공존론도 나왔었지만 클라우디오 피사로, 로케 산타 크루스, 알렉산더 치클러도 있었기 때문에 투톱을 운용하던 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굳이 에우베르까지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고 그렇게 직전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한 에우베르는 마카이에 밀려 팀을 떠나게 되었죠..

 

그리고 바이언에서의 첫 시즌인 2003/04시즌 마카이의 활약은 만족스럽다고 할만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23골을 기록했는데 다만 베르더 브레멘의 아일톤이 29골을 폭발시켜 득점 2위.. 또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번에는 32강 조별에선에서 리옹, 셀틱, 안더레흐트까지 지난 시즌보다 훨씬 수월한 조에 배치되었음에도 팀이 6경기에서 6골을 넣는 빈공에 그쳤는데 그 중에서 마카이가 5골을 기록해 팀이 1년 전의 악몽을 재현하는 것을 막아섰죠. 또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전에서도 1차전 홈경기에서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으나 경기 막판 올리버 칸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동점골을 허용.. 또 2차전 베르나베우 원정에서는 신예수비수 알바로 메히야에게 꽁꽁 묶인데다 결정적 일대일 찬스마저 놓치는 등 부진하며 결국 팀의 패퇴를 막지 못했죠.. 그래도 마카이가 없었으면 32강 조별예선에서 탈락할 뻔 했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분명히 역할을 해주었죠.

 

뒤이어 2004/05시즌에도 분데스리가에서 22골, 챔피언스리그에서 7골을 폭발시켜 역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다만 분데스리가에서는 마렉 민탈이라는 선수가 뜬금없이 24골을 폭발시켜 득점왕을 차지하는 바람에 또 다시 득점 2위.. 또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스널과의 16강 2차전과 첼시와의 8강 1차전에서 부상으로 결장했고 2차전도 제 컨디션이 아닐 때 무리하게 출전해 결국 토너먼트에서 득점을 추가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죠.

 

그리고 이 시기 바이언의 공격은 발락과 마카이 쌍두마차에 집중되었습니다. 영향력 자체는 이선부터 최전방까지 폭넓게 활동하던 발락이 컸고, 마카이는 박스 안쪽에서 전형적인 '포쳐'로서 역할을 담당했죠. 마카이의 별명인 '팬텀'은 어디선가 갑자기 유령처럼 나타나 골을 집어넣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 만큼 순간적으로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이 뛰어났고 또 문전 앞에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동작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정확하고 빨랐습니다. 여기에 투톱 파트너를 주로 이루었던 피사로는 자기 득점도 10골 이상 보면서도 동료공격자를 받혀주는데도 능했고, 이 외에도 제 호베르투, 세바스찬 다이슬러,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의 지원사격에 우측풀백 윌리 사뇰까지 날카로운 오버래핑과 명품크로스로 명성을 떨치던 시기였죠. 그러나 이 것으로 독일 국내무대를 정복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세계 정상급 무대라는 벽을 뜷기에는 다소 무뎠다는 점이 아쉬웠죠.


또 마카이는 실력에 비해 유독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는 선수로 꼽히곤 했었는데요.. 그럴만도 했던 것이 마카이가 한창 활약할 시기 네덜란드 대표팀의 최전방에는 데니스 베르캄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루드 반 니스텔로이,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피에르 반 호이동크 등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여럿 있었죠. 마카이는 스페인에서의 활약으로 유로 2000 엔트리에 들었지만 당시 베르캄프와 클루이베르트가 주전으로 나섰기에 교체로만 두 경기 출전.. 이후 베르캄프가 국가대표를 은퇴했지만 반 니스텔로이가 등장한데다 2002년 월드컵은 아예 네덜란드가 본선진출에 실패.. 유로 2004 즈음에는 클루이베르트가 이른 시기에 저물었지만 대신 라파엘 반 데 바르트가 등장해 반 니스텔로이를 받혀주는 역할을 맡으면서 마찬가지로 백업역할을 맡는데 그쳤고 그래도 2005년까지는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되었지만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의 세대교체 바람 속에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를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죠.. 결국 통산 국가대표 경력은 43경기 6골.. 유로 무대는 백업으로라도 2000년과 2004년 두 차례 밟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죠..

 

뒤이어 2005/06시즌과 2006/07시즌에도 분데스리가에서 17골과 16골로 팀 내 탑스코어러로서 활약했고 특히 마지막 시즌에는 발락의 이탈이라는 큰 공백이 발생했음에도 득점력을 보여주었지만 그 위력이 점점 반감되는 느낌이 있었고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죠.. 2006/07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는 경기시작 11초 만에 골을 기록해 역사를 쓰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바이언 측에서는 4년 전 에우베르를 마카이로 대체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루카 토니를 새로운 간판공격수로 점찍고 결국 2007년 여름 영입을 성사시킨데다 미로슬라프 클로제까지 합류하면서 자리를 잃은 마카이는 2006/07시즌을 끝으로 500만유로의 이적료에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하며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준비하게 되죠.

 

이후 네덜란드 무대에서 2010년까지 세 시즌을 더 보내며 나름대로 팀의 주포로서 활약하다 35세의 나이로 은퇴, 이후 페예노르트의 스카우터부터 유소년팀 코치, 유소년팀 감독, 또 2군 코치와 감독까지 전형적인 지도자로서의 코스를 걷다가 지난 2019년 10월 물러난 뒤 현재로서는 소속이 없는 것으로 근황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아무튼 '팬텀' 이라는 자신의 별명답게 커리어 내내 소리소문없이 강한 모습을 보여준 공격수였다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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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4-07 16:03:42

소준일 한준희 축구축구 데포르티보편에서 한번 언급하던데, 베르캄프, 반니, 클루이베르트 다음으로 올 수 있는 당대 네덜란드 스트라이커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OP
2020-04-07 17:44:21

보통 마카이, 하셀바잉크, 반 호이동크가 한 세트로 묶이는데 아무래도 클럽커리어는 더 오랜 기간 빅리그에서 활약한 마카이와 하셀바잉크가 한 수 앞섰다고 볼 수 있고 근데 국대기록은 또 반 호이동크 쪽이 더 좋았죠..

2020-04-07 16:05:29

전에 누군가가 마카이한테 골문 앞에서 공 잡고 슛 때리기 직전에 어떤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마카이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때린다고 했던 게 기억나네요. 제 기억이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OP
Updated at 2020-04-07 17:42:11

저도 당시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만큼 본능적인 감각이 남달랐었다고 볼 수 있겠죠..

2020-04-07 16:06:06

저 뮌헨과의 해트트릭한 경기 보면 발레론도 ㄷㄷㄷ하더군요

OP
2020-04-07 17:46:40

스페인의 지단이라는 이야기까지 듣던 선수인데 부상도 있고 해서 다소 빨리 저문감이 있었죠..

2020-04-07 16:06:20

아 반니, 클루이 컨디션 누웠네... 하셀바잉크도 누웠잖아ㅠㅠ 얜 또 뭐야 왜 이렇게 좋아 그러고 관심간 선숰ㅋㅋㅋ

2020-04-07 16:11:50

마카이 속도가 엄청 빨라서 ㅋㅋㅋ 하긴 하셀바잉크도 빨랐군요

2020-04-07 16:11:16

중간에 잠시 언급된 마렉 민탈이 아마도 미드필더였을텐데 뭔 미드필더가 득점왕을 해먹나 하고 충격받은 기억이 나네요.

OP
2020-04-07 17:48:41

소싯적에는 보급형 발락이라고 불리던 선수였죠.. 이선침투하고 골결정력이 기가 막혀서 이선 중앙에서 딱 골 넣는데 최적화 되어있던 선수인데 당시 뉘른베르크가 전술도 민탈에게 득점기회가 몰빵될 수 있도록 투톱에 측면까지 넓은 활동반경을 가져갈 수 있는 선수들을 배치했었죠..

2020-04-07 16:11:23

에프엠 본좌라인

Updated at 2020-04-07 23:37:23

0304 레알 16강전에서 카를로스의 프리킥을 칸이 알까기한 건 치명적인 실수였죠 ㄷㄷ

나이가 나이인지라 저 즈음부터 칸 노쇠화 이야기 나오기 시작해서 루디 푈러 후임으로 클린스만이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하고 결국 월드컵 주전을 내줬는데 밀린 상대가 티모 힐데브란트같은 어린 선수가 아니라 동갑내기 레만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죠.(레만이 0506시즌에 플라미니-샌데로스-투레-윙보우에끼고 챔스 무실점 기록 이어가고 아스날 챔스 결승 보내는 결정적인 pk 선방하는 등 폼이 굉장히 좋았기도 했었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클린스만이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개방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어서 칸-레만 주전 교체가 가능했던 거 같네요.

OP
2020-04-07 17:50:40

당시 칸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공통된 여론이었고 그래도 칸의 이름값이 원채 대단했기에 감히 주전에서 내려올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었죠.. 당시 순수기량으로는 레만이 주전으로 낙점받은 것에 큰 이견의 여지가 없었죠..

2020-04-07 16:18:39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했던 공격수

마카이랑 발락 뮌헨 시절은 정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ㅜㅜ 더 대단한 평가를 받을만한 재능들이었는데...

Updated at 2020-04-07 16:40:45

진짜 오랜만에 언급되는 팬텀좌 ㄷㄷ

2020-04-07 16:39:22

레반돕이랑 비슷했음

2020-04-07 16:44:45

쌈무님 가능하시믄 발라코프 이야기도 가능하실지...?? 이선수 먼가가 동시대 제이슨 매카티어랑 비슷한 궤를 걸은거같아서 기억저편에 있거든요..추억소환 가능할지요 ㅎㅎㅎ

OP
2020-04-07 17:51:49

제가 흘렙 시대는 기억하지만 발라코프 시대는 겪어보지 못해서..

2020-04-07 16:49:43

말년에 고국 복귀해서 밀레니엄 특급이랑 한솥밥 먹은 것도 기억나네요 리그 폭격할 줄 알았는데 그저 그래서 좀 의외였다는..

Updated at 2020-04-07 17:04:34

마카이 하면 0203 유벤투스 데포르티보 경기가 굉장히 기억에남네요

유럽축구를 처음으로 밤새서본 경기이고 마카이가 되게 멋진 중거리슛으로 넣었던걸로기억

그리고 투도르 결승골도 굉장했구요

2020-04-07 17:19:21

크 어릴때 스타스포츠였나 중국어 중계로 유럽축구 보던거 생각나네요ㅋ

2020-04-07 17:25:27

위닝하면 네덜란드 공격수 5명 전부 80대 넘어서 깜놀했었는데 ㅎㅎㅎㅎ

 

2020-04-07 17:29:06

얼마전 하셀바잉크 글 보면서 바로 마카이 떠오르던ㅎㅎ 정말 당시 네덜란드의 공격수 풀은 ㅎㄷㄷ했네요

2020-04-07 17:49:57

 마카이 영입을 떠나서 뮌헨이 에우베르를 판 것은 결과론적이지만 시기적절하기도 했지요. 리옹에서 아주 못했다까진 아니지만 에이징 커브가 확 온 상태였고 결국 딱 한 시즌 뛰다가 묀헨글라드바흐로 가고 거기선 아예 못 뛰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은퇴하게 되었으니

Updated at 2020-04-07 18:12:48

슛을 막까는 성님

그땐 축구 잘 몰라서 뮌헨인데 공격수 네임벨류가 좀 약하다 라는 생각이

2020-04-07 18:17:40

로이 마카이 이름만 들어봤는데 이렇게 옆에서 썰풀어주듯 알려주시니까 너무 좋네요 매번 추천박고있습니다ㅎㅎ

Updated at 2020-04-07 18:21:54

정보도 정보지만 기억력이 참 부럽습니다

저도 어릴 때지만 저 시기부터 축구를 막 보기 시작해서 누가 누군지는 알아도

정작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서 어떤 선수였는지 찾아보고 그러거든요

이렇게 칼럼 비슷하게 글까지 쓸 수 있는 능력이라니..

2020-04-07 19:21:35

스페인 경제위기오면서 데포르티보가 몰락(갈리시아 지방 전체가 폭망 ㅜ)한거 너무 아쉽습니다. 전처럼 소시에다드, 데포르같은 팀들이 우승하는 리그를 다시 볼수있을지ㅜㅜ

2020-04-07 20:25:53

해외 팬트윗,포럼 같은곳도 그렇고 네덜란드팬들이 왜 많은지 절로 이해가 가네요

2020-04-07 21:54:02

로이 마카이를 보며 정말 축구 잘하는 선수가 많구나 배웠고, 바이에른 뮌헨이란 클럽을 선망했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0-04-08 00:41:00

마카이가 현세대 선수였다면 국대 붙박이 주전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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