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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토티의 레알 거절, 교도소 방문, 수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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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0 23:07:22

 

 프란체스코 토티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의 커리어와 팬들의 찬사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자서전 일부 내용-

 

2005년, 나는 아직 29살이 되지 않았고, 로마가 내게 가장 많은 돈을 준 시기였다. 연봉 €5.8m와 초상권이 전부 내 것이었다. 내 계약은 2006년까지 1년 더 남았었는데, 로마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나의 이적료로 상당한 금액을 요구할 수 있었고, 로마가 나를 팔려고 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구단주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2001년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그가 데이비드 베컴과 마이클 오언을 영입하면서 풍부해진 그의 갈락티코 컬렉션을 계속 채우기 위해 나의 이름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레알 마드리드는 내게 연봉 €12m를 제의했고, 개인과 구단의 혼합 초상권을 제공했다.

 

수치가 올라갈수록 백분율을 떨어졌지만, 첫 번째 추정치에 따르면 내 급여보다 훨씬 많은 €15m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분명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 제의는 처음에 나의 이적을 위해 로마에 제안된 이적료 €60m가 수반되었다. 처음에는 레알이 문제 없이 €70m까지 올릴 수 있다고 들었다.

 

 

프란체스코, 네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니? 당신은 "정상적인" 스타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큰 이적, 슈퍼스타 팀의 연승, 세계적인 명성, 엄청난 부.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는 루이스 피구를 판매하고 있었고, 플로렌티노 페레즈가 나에게 약속한 등번호 10번을 받을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스타, 그들의 10번 선수, 그들의 예상된 주장. 당신의 커리어가 이렇게 끝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팀을 떠나기 전에 로마에게 충분히 보답했는가? 물론, 스쿠테토를 들어올렸고, 흔치않은 업적이다. 하지만, 데뷔한 날부터 당신이 헤엄쳐온 사랑의 강, 당신을 응원하고 지켜주는 애정, 신뢰나 믿음이 아닌 자신 안에 있는 믿음은 그들이 그들의 최후를 알 수 있게 하는가? 

 

이제 막 끝난 시즌은 가장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곧 일어날 듯한 새로운 프로젝트도 없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가? 일요일 저녁에 베르나베우 경기장에 가기 전에 누군가 로마가 더비에서 졌다고 말하거나 로마가 리그 하위권으로 떨어졌다고 말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로커를 쳐서 움푹 들어가게 만들고, 아픈 주먹을 주무르고 놀란 동료들에게 어색한 스페인어로 뭐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그 곳에서 2000km 떨어진 곳에서 쟐로로씨의 구조를 준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는 로마, 로마이고 그리고 내가 한 남자로서, 축구 선수로서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기준점이었다. 영원한 나의 가족. 나의 아내인 일라리가 우리 아들 크리스티안을 임신하고 있었기에 태어난 한 사람, 우리의 훈련장인 트리고리아는 평범한 스포츠 단지가 아니라 내가 챔피언이 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개체이다. 

 

나는 마시지사들과 킷 맨들에 이야기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내 사물함 앞에 수건이 깔끔하게 접혀져 있고, 훈련하기에 완벽한 상태의 경기장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월급을 받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나를 믿어라. 그들은 토티를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에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떠난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배신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한 이야기다. 두 번째 줄에 앉은 그 젊은이는 매우 동요하고 있다. 관리인의 연설을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약간의 노력을 기울였다. 

 

잊어 버려라. 그는 그 의자에서 조바심을 내며 튀어오르고 있고, 그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맞다, 사진이다. 레비비아 홀 구석에 늘 하던 무대가 세워졌고, 칼세토 대회 시상식이 끝나면 원하는 사람과 사진을 찍으러 가겠다. 그것이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봐, 내가 먼저야." 그가 흥분한 얼굴로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이야기를 끝내고 그를 다시 바라보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흥분하여 펄쩍펄쩍 뛰고 있다. 그는 기껏해야 20살이나 22살일 것이고, 다른 수감자들보다 옷을 더 잘 차려 입었다. 

 

"제가 먼저 사진을 찍겠습니다." 라고 반복하며 말하고, 이번에는 마치 내가 알아야 할 조직적인 문제를 전달하는 것처럼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나를 쳐다본다. 시상을 하고 악수를 하며 팬들의 눈빛 같으면서도 좀 더 강렬한 눈빛을 주고 받는다. 내가 레비비아에 처음 간 것도 아니고 레지나 코엘리에도 가봤다. 감동적인 경험들이었다. 밖에서 보는 감옥은 무슨 의미인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 나, 나 먼저."

 

일부 경비원들이 친철하면서도 단호하게 저를 향한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포토존을 향한 일반적인 움직임은 먼저 내 '친구'가 한 발짝 내디뎠다. 이제 나는 궁금하다. 먼저 사진을 찍든, 10번째에 찍든, 100번째에 찍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이미 모두에게 마지막 포즈를 취할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걸으며, 거만하지 않고 뚝심 있게 여기저기 뛰어들어 줄을 서고 있다. 그리고 멋진 것은 그가 그 행동을 허락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위협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날씬하고, 말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를 존경심과 즐거움으로 대했다. 그는 여전히 상대방을 훈련시키는 권투 선수처럼 펄쩍펄쩍 뛰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약 3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우리 사이에는 또 다른 두 명의 수감자가 있었지만, 그는 "나 여기 있어, 나" 라고 말한다. 그는 약간 이빨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자, 수감자들은 그가 지나가도록 비켜준다. 그는 누구지? 보스인가? 너무 어린데?

 

나는 거짓된 거친 어조로 "이리와, 진정해" 라고 말하며 나의 옆으로 그를 불렀고, 그는 나의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제 허리에 팔을 감고, 내가 그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하나, 둘, 셋, 찰칵,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모두가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나를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팬들의 밝은 눈을 가졌고, 그의 기쁨은 전염성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웃기 때문이다. 그가 막 가려고 할 때, 나는 팔을 뻗어 그를 막았다. 너무 궁금하다. 나는 알아야 한다. 먼저 사진을 찍은 이유에 대해서.

 

"주장, 저는 일주일 전에 출소해서 형기를 마쳤어야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언제 주장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절대, 내가 백년을 살더라도....' 그래서 저는 교도소장에게 오늘까지 머물겠다고 간청했어요. 하지만, 규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농담을 했죠. '이봐, 날 내보낸다면, 난 당장 여기로 돌아올 수 있는 바보같은 행동을 할 거야, 그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지 않지.' 그러자 그가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나가고 싶네요. 제 딸은 저를 3년동안 기다려 왔어요."

 

나는 그 소녀의 인내심이 일주일 더 지속되었기를 바란다. 특히 그 남자가 그녀에게 그의 곡예에 대해 말했다면 말이다. 그냥 사진 한 장만 찍으려고 7일 동안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수줍음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모든 한계를 넘어서 나를 아첨하는 애정 표현 앞에서는 당혹스럽다. 그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팀과 함께 경기장에 갈 때, 공항, 호텔로 걸어갈 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온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에게 구멍을 파고 사라지고 싶다. 나는 더 이상 경기를 뛰지 않는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25년 동안 나에게 한 것처럼 그들에게 다가가 사랑의 샤워를 시켜줘라. 

 

사실 첫날부터 항상 이랬다. 로마인과 로마니스타, 나는 그들의 가족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모든 팬들이 나를 그들의 자식들의 성찬식에 초대하고 싶어한다. 아마 이것이 다른 선수들과의 진짜 차이점일 것이다. 팀 내에서 가장 재능있는 축구 선수는 아이돌, 롤모델, 포스터 보이다.

 

아름다운 것들이지만,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난 그 이상의 존재다. 아들이자 형제. 멋진 일이지만,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돌은 지나가고 포스터는 찢어진다. 하지만, 아들과 형제들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적어도 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감정은 정말 특별하고 널리 퍼져 있어서, 나를 많은 사람들에게 로마니타의 상진인 "Romanness"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큰 영광이다. 하지만, 나도 그걸 바라진 않았다.

 

로마는 어머니이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여기 질문이 있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런 미치고 절대적이고 지나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21/oct/10/francesco-totti-i-wouldnt-go-to-real-madrid-because-it-wasnt-my-story-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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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10-10 23:11:38

나의 이야기는 로마...크...

2021-10-10 23:14:34

할말하않

2021-10-10 23:17:26

철없던시절도 잇엇고 그걸로 아직도 욕하는사람들도 많지만
그사람들도 토티의 낭만과 충성심은 깔수없음...

Updated at 2021-10-10 23:19:13

진짜 그립네요 팬질하던 단 한명의 선수

2021-10-10 23:24:04

진짜 낭만적이네

2021-10-10 23:43:52

아니 진짜 뭔 축구선수가 이렇게 멋있는지
팀 로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선수 토티는 간지가 폭발하는 걸 넘어서 간지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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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1 00:01:33

역시 이것이 세랴의 감성

2021-10-11 00:09:58

국대 은퇴 인터뷰도 ㅠㅠ

2021-10-11 00:39:00

군생활도 아니고 토티랑 사진찍으려고 교도소에서 1주일을 더 있냐 ㅋㅋㅋ

2021-10-11 00:46:20

나는 더 이상 경기를 뛰지 않는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2021-10-11 00:48:02

ㅜㅜ

2021-10-11 00:50:01

레알 팬으로서 갈락티코에 합류했던 토티는 어땠을까 생각해봤는데, 자서전에 나온 내용을 보니 상상조차 어렵군요

2021-10-11 01:00:06

그립습니다...

2021-10-11 01:10:04

판테온에 토티 자리는 있다고 한게 이해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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