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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랴 인을 위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2 - 파괴된 문화유산의 재건과 세계유산 되기(폴란드, 보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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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23 00:52:23

이번에는 파괴된 문화유산을 다시 만드는 것을 세계유산의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원래는 광복절 기념으로 어두운 역사의 문화유산: 아우슈비츠 수용소, 히로시마 원폭돔, 군함도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타이밍을 놓쳐서 다음에 쓸게요.

 

 

1. 논란이 된 폴란드 바르샤바 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레반도프스키의 나라, 폴란드 정부에서는 1978년에 유네스코에 수도 바르샤바 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합니다. 그런데 이때 논란이 벌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85% 이상이 파괴되어 재건된 도심 역사지구를 과연 진정한(authentic) 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느냐가 논란의 핵심이었습니다. 밑에서 다루겠지만 여기에서 ‘재건(reconstruction)’이라는 단어가 좀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도심 역사지구가 전쟁 중에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르샤바 내에 있던 25,489채의 건물 중에서 겨우 1,223채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전쟁의 상흔을 가진 건물이 참 많습니다..

 

1-1. 진정성, 그리고 재건의 애매함

 

바르샤바의 논란을 이해하려면 세계유산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있어야 하는데, 이 OUV를 뒷받침해주는 2가지 하위 개념으로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이 있습니다. 완전성에 대한 이야기는 리버풀을 포함한 유럽 주요 역사도시에 대한 글에서 다룰 기회가 있어서, 여기에서는 진정성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진정성이란, 문화적 가치가 진짜로 신뢰할 수 있게 형태, 디자인, 재료, 용도, 기능, 전통, 기법, 관리체계, 위치, 배경, 언어, 정신, 감각 등의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성을 판단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출처가 있어야 합니다.

 

진정성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문화유산 보존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1964년 베니스 헌장(기념물과 유적의 보존 복원을 위한 국제 헌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진정성과 관련하여, 베니스 헌장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재건(reconstruction)’에 관한 부분입니다. 헌장은 기존의 구조를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고고학 유적지의 재건은 특별히 배제할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 대개 고고학 유적지는 이미 상당한 훼손과 파괴를 겪은 상태인데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출처가 제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제 10조는 “전통 기법이 부적절하다고 판명될 경우 기념물의 보강은 현대 기법을 이용해도 되지만 자료와 경험으로 반드시 증명된 것이어야 한다.”

 

(어렵죠? 다소 개념들이 헷갈릴 수 있는데, 특정 시기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제거하거나 보충하는 것을 복원(restoration), 일부 형태, 기능이나 용도의 저하를 보완하는 것을 개선(rehabilitation)이라면, 재건(reconstruction)은 특정 시기의 모습이나 현상을 ‘모사’하기 위해서 신축하여 재현하는 일련의 행위를 뜻하니 사실 차이가 크긴 합니다)

 

이해를 돕고자 국내의 예를 가져오겠습니다.

 

 

경주의 황룡사지 9층 목탑 모형입니다. 제대로 된 기록도 완벽하지 않고 건축 구조나 기법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많지 않은 상태에서, 다소 무리해서 재건을 추진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정부나 각종 미디어에서는 ‘복원’이라고 칭하는데,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진정성이 빠지고 관광자원 개발을 위한 ‘재건’에 가까워서 아직까지도 논란이 첨예합니다.

 

 

물론, 예술사학자나 문화학자, 보존학자들은 엄격한 재료 기준을 적용해서 진정성을 판단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있습니다.

 

 

1-2. 전후 바르샤바 역사지구의 재건

 

폴란드 정부는 전후 1949-1956년 7년에 걸쳐서 완전히 파괴된 도시의 재건을 계획합니다. 정부는 최대한 남아 있는 건축물 잔재와 기록물을 찾아내는데 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살았던 주거 건물입니다. 왕궁이나 성당 같은 기념비적인 건물은 기록이 꽤 남아 있는데 비해서, 일반 주택에 대해서는 사실상 도면이나 기록들이 거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재건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정치 등등에 의해서 자의적인 해석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일부 학자들은 개별 주택들을 19세기에 세워진 안뜰이 있는 중세식 건물로 재건하지 않고 최대한 공공 공간을 늘려서 근대 도시 형태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별 주택들에 역사성과는 거리가 먼 중앙 난방 시스템과 현대식 배관도 들어갑니다. 물론 이것은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나쁘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원래의 재료나 진정성과는 상반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1-3. 바르샤바 역사지구, 예외로 인정받다

 

다만, 베니스 헌장에서 말하는 재건은 주로 고고학 유적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바르샤바 역사지구와 같은 도시의 재건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부분이 컸습니다. 어쨌거나 역사지구의 재건도 개개 건물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정보 출처도 부족하였고, 무려 85% 이상이나 다시 만들어졌다는 측면에서 진정성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한 전문가는 진정성이란 상대적인 것이고, 바르샤바 시의 부활과 관련된 예외적인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예술보다는 역사에 다소 방점이 찍힌 말이긴 합니다. 이 전문가는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6가지 기준 중에서 6번 “어떤 사건이나 인물, 생각이나 믿음과 아주 중요하게 연관되어 탁월한 역사적 중요성이나 의미를 보여줌(소위 연관적 가치: associative value)” 이 하나만으로도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처음에 유네스코는 이러한 주장에 큰 우려를 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6번 기준은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민족주의나 파시즘 같은 것들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년간의 논쟁 끝에, 1980년에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결국 6번 기준 하나만 가지고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상당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제 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의도적으로 파괴된  도시의 종합적이고 성공적인 재건이며 예외적인 사례이다.”

 

다만, 유네스코는 바르샤바의 등재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얼마든지 다른 나라 도시에서도 이렇게 ‘재건’된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의 조치를 취합니다. “6번 연관적 가치 기준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고려되거나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2008년, 유네스코는 2번 기준을 바르샤바 역사지구에 추가해서 혹시라도 바르샤바가 나쁜 선례가 될 가능성을 제거해버립니다. 추가된 2번 기준은 복원과 재건 사이에서의 바르샤바 시의 노력과,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진정성을 포함한 보존 학계의 논의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역사도시 전체 규모로 진행된 종합적 보존 활동의 시작은 독특한 유럽의 경험이며, 동시에 보존 원칙과 실행의 검증에 크게 기여하였다”

 

바르샤바 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재건과 진정성의 개념이 계속해서 진화하는 것을 촉발하고 보존 학계의 엄청난 논의를 불러일으킨 매우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의 오래된 다리

 

재건과 관련된 세계유산 등재 논란은 바르샤바에서 끝난 줄 모두가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논란이 찾아옵니다. 이번엔 에딘 제코의 나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입니다.

 


모스타르(Mostar)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위에 놓인 이 다리는 오토만 제국의 위대한 건축가인 코자 미마르 시난의 제자 미마르 하류딘이 1566년에 설계한 수작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이 다리 위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시민들이 약속하여 만나고 연인들이 첫 키스를 하고 여러 용자들이 다리 위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객기를 경쟁하듯이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렇게 다리 위에서 다이빙 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리 위에서는 아니지만 다리를 배경으로 키스하는 연인이네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은 모스타르의 오랜 상징이었던 다리와 오토만 제국, 중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유고 연방의 여러 층위가 쌓인 역사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맙니다.

 

 

보스니아 내전이 데이턴 평화협정 체결로 끝나고 파괴된 다리와 역사지구의 재건을 위해서 유네스코와 세계은행이 힘을 합칩니다. 1994년에 유네스코는 다리를 재건하자고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호소하고, 4년 뒤에는 세계은행과 함께 재차 호소하여 이탈리아,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터키 등으로부터 재정과 기술 지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국제 재건 전문가 팀을 조직하여 11년에 걸쳐서 방대한 기록물을 연구하여 재건을 완료합니다. 특히, 예전에 다리를 건설하였을 때 사용한 전통 기법을 활용하는 한편, 원래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나온 채석장에서 돌을 갖고 와서 짓는 노력을 선보입니다.

 

 

 

성공적인 재건을 끝내면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는 재건된 다리를 포함하여 모스타르 역사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합니다. 유네스코는 이미 1999년, 2000년, 2003년 3차례에 걸쳐서 모스타르 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를 반려(defer)합니다. 기준도 불명확하고 무엇보다 바르샤바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재건된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더욱 신중을 기하였습니다.

 

200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는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는 구역을 다리와 다리 주변으로 대폭 축소해서 다시 신청합니다. 유네스코에서는 비록 재건된 건물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새로운 재료들이 많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바르샤바의 논란 이후 진화된 진정성과 보존 논의를 반영하여 깊이 있고 자세한 분석과 기록물의 의존, 재건된 형태와 기법들을 인정해줍니다. 여기에서 진정성과 관련하여 바르샤바 때보다 조금은 바뀐 유네스코의 태도가 엿보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유네스코가 등재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근거는 다시 한 번 6번 ‘연관된 가치’였습니다. 바르샤바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스타르의 교량은 교량 양쪽에 서로 떨어져 있는 크로아티아계 천주교인 주거지역, 보스니아계 무슬림 주거지역, 세르비아계 정교회인 주거지역 등을 연결하고 전후 다른 문화집단 간의 희망과 화해, 그리고 평화를 위한 인류의 끊이지 않은 노력과 국제 협력을 보여주는 국가적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은 사실 내전 이전부터 여러 민족과 종교와 문화가 뒤섞인 발칸 반도에서 역사적으로 유구하게 존재하였던 것의 ‘부활(renaissance)’이라고 인정합니다. 따라서 다리와 다리 주변 건물의 재건은 ‘배경’ 역할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리가 가진 무형적이고 역사적인 가치의 ‘회복’으로 표현합니다.

 

 

바르샤바와 모스타르의 세계유산 등재 사례는 우리에게 과연 ‘기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기억이 다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관광 자원 개발 때문에 다소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문화유산의 재건에 대해서, 최대한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있어 소중한 기억이라는 것을 과연 진정성으로만 재단할 수 있는가라는 난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재건된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의 (대부분 전쟁 파괴와 테러에서 비롯된) 재건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가슴 아픈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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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8-23 00:41:37

추천을 안할수가 없는 퀄리티 ㄷㄷ

OP
2020-08-23 01:05:03

헤헤 감사합니다

2020-08-23 00:54:35

읽다 보니 저렇게까지 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 싶어하는 유인은 무엇일까? 싶기도 하네요. 단순히 관광객 증가만은 아닐 것 같은데..

OP
Updated at 2020-08-23 01:03:51

좀 복잡합니다.. 국가 -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국가 위상 제고, 세계유산 등재를 통한 국가 정체성(identity) 구축 - 아 우리 겁나 위대한 대단한 국가 민족 아니냐! 등이 있는 편이고, 지방정부랑 주민들은 아무래도 관광화를 통한 경제 효과가 가장 크지만 동시에 중앙정부의 지원을 더 많이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게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계유산이 되면 보다 훨씬 까다로운 관리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물론 이것 때문에 세계유산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은데, 보통은 관광 쪽 이해당사자들 파워가 더 세서 지방정부도 그쪽으로 많이 기웁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이면 아무래도 역량이 부족하니까 유네스코나 세계은행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2020-08-23 01:07:11

입장료 증가 ㄷㄷ

1
Updated at 2020-08-23 01:04:01

크로아티아 갔다가 이틀정도 모스타르에 들렸는데 개인적으로 모스타르가 더 좋았어요. 90년대에 전쟁했다는 건 들었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OP
1
2020-08-23 01:04:19

어우 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인데 정말 부럽네요 ㅎㅎ ㅜ

2020-08-23 01:13:06

개인적으로 바르샤바 정도면 굉장히 훌륭하게 복원됐다 생각합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은 옛 모습을 거의 잃었고 드레스덴이나 동베를린은 동독정부가 개판으로 복원해서 오늘날까지 골치썩고 있죠. 러시아 수중에 넘어간 칼리닌그라드나 비보르크는 아예 소련의 망령만 떠도는 폐허가 되버렸고요.

OP
2020-08-23 01:20:38

어디까지나 세계유산 내에서 좀 떨어진다 정도이지 언급하신 곳들과는 당연히 비교가 안 됩니다 ㅋㅋ 언급하신 곳들은 뭐 전문가들 기준으로는 페이크와 키치와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재건으로 볼 듯..

1
2020-08-23 11:51:04

학교에서는 두브로니크 사례로 배웠었는데 바르샤바도 비슷한 사례였네요.

OP
Updated at 2020-08-23 12:15:34

오 전공자이신가요? ㅎㅎ
두브로브니크는 내전으로 파괴되기 전에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었고 (등재 과정에서 진정성 논란이 전혀 없었죠) 파괴 규모도 바르샤바처럼 치명적이었던 것은 아니어서 내전 후 활동도 재건보다는 복원 및 개선에 집중을 한 사례라, 그래도 굳이 빗대자면 바르샤바보다는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굴이나 시리아에 있는 세계유산과 더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2020-08-23 12:22:01

보존 전공은 아니고 건축보존이 선택과목중에 있어 들었습니다

보존문화재들 보존 과정이 그려진 삽화들이 이뻐서 기억에 남네요 ㅋㅋㅋ

2020-08-23 18:16:18

 기대되는 시리즈네요 ㅎㅎ 다음편이 기다려 집니다

지식을 남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때 진정으로 이해하는 거라고 누가 그러던데 

토마손님의 지식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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