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유게시판
  일정    순위 

닌텐도 게임사업의 역사 (1)

 
2
  313
Updated at 2019-06-16 16:34:34

원래 닌텐도가 화투 만드는 일을 주력으로 130여년 전에 설립된 회사죠.. 그러다가 게임산업에 손대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후반부터인데 흔히 닌텐도 게임사업의 기원이 패미컴으로 알려진 경우도 많지만 사실 70년대 후반에 이미 TV에 연결해서 즐기는 컬러 TV 게임이라는 물건을 만들어 판매했고 1980년에는 게임워치라는 휴대용게임기를 크게 히트시킨 전력도 있죠.. 다만 이 게임기들은 게임기 하나에 게임 하나가 내장된 방식이라 새로운 게임을 하려면 해당게임이 내장된 게임기를 새로 사야되는 방식이었죠..

 

또 당시에는 아케이드 게임 관련해서도 사업을 했었는데 이 즈음에 미국에 레이더 스코프라는 아케이드 게임기기를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수출했다가 악성재고가 엄청나게 남아 회사가 큰 위기에 빠졌는데 이 때 등장한 영웅이 미야모토 시게루.. 원래 아버지 인맥 빨로 낙하산 입사한 직원이었는데 미야모토 시게루가 동키콩이라는 게임을 똑딱 만들어내서 레이더 스코프용 기기에 교체투입했고 이 동키콩이 미국에서 초대박이 터지면서 숨통이 트였죠.. 그리고 이 낙하산 출신의 직원은 뒤이어 슈퍼마리오, 젤다의 전설 등을 만들어내게 되죠..

 

이후 1983년에 들어서 패밀리 컴퓨터, 소위 패미컴이라는 게임기를 만들어 일본 뿐만 아니라 아타리쇼크 이후 게임업계가 크게 침체되었던 미국에서까지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데 여기서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가 개발한 슈퍼마리오가 엄청난 역할을 했죠.. 원래 마리오라는 캐릭터는 앞서 언급한 동키콩 시리즈에 나오는 악역이었는데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제작한 슈퍼마리오가 공전의 히트를 넘어서 게임이라는 컨텐츠의 대명사 격이 되어버리면서 주객전도가 되거말았죠.. 이후 닌텐도 측에서 젤다의 전설과 같은 명작들을 추가로 만들어내고 또 팩맨, 갤러그 등 잘나가던 아케이드 게임들, 또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록맨 등 서드파티 작품들이 합류하며 패미컴은 당시의 비디오게임계를 완벽하게 점령했죠..

 

뒤이어 1989년에는 휴대용게임기 게임보이를 발매하는데 사실 휴대용게임기 자체는 앞서 언급한 게임워치가 이미 있었지만 게임보이는 당대 휴대용으로서는 저렴한 가격과 가격대비 나쁘지 않은 성능, 튼튼한 내구성과 오래가는 배터리 효율, 우수한 게임라인업까지 가미되어 이 역시 엄청난 흥행을 했죠.. 당시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게임보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린아이들도 마음놓고 즐길 수 있도록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없이 튼튼하면서 배터리도 오래 가면서도 가격은 1만엔 미만으로 발매하라고 지시해서 개발진에서 그야말로 피똥을 쌌다고 하는데 아무튼 어떻게든 맞추어냈고 결국 이런 사항들이 엄청난 세일즈포인트가 되었죠..

 

이듬 해인 1990년에는 슈퍼패미컴을 발매하는데 확실한 성능업과 더불어 패미컴으로 쌓아올린 명성이 워낙 컸기 때문에 순탄하게 흥행했죠.. 여전히 패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라인업도 화려했고.. 다만 이 세대에서는 미국에서는 오히려 세가의 메가드라이브가 더 흥행하였는데 메가드라이브의 성능이 더 우수해 당대 기준으로 더 스피디하고 시원시원하고 호쾌한 연출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사람들의 취향에는 슈퍼패미컴보다 메가드라이브가 더 잘 맞았던 것이죠.. 그러나 슈퍼패미컴이 미국에서 메가드라이브에 크게 밀린 것도 아니었고, 또 당시에는 시장규모가 미국과 맞먹던 일본에서는 메가드라이브를 크게 따돌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세대의 패권도 슈퍼패미컴이 가져갔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이 다음세대에서 여러 오판으로 공들여 쌓은 탑에 큰 균열이 발생하는데 우선은 버추얼 보이라는 물건.. 1995년에 발매한 게임기인데 지금 VR의 선조 격인 가상현실체험 콘셉트의 게임기였죠.. 그러나 워낙 시대를 앞서간 발상이기도 했거니와 수백수천수억개의 단점을 지닌 괴랄한 물건이어서.. 대체 어떤 물건인지 궁금하시다면 유튜브에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닌텐도 빨도 통하지 않아 완벽하게 실패했고 그 여파로 닌텐도의 핵심인물 중 하나였던 요코다 군페이가 책임지고 회사를 떠났죠.. 이 사람은 게임보이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닌텐도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 사람인데도 이렇게 되었을 정도로 버추얼 보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물건이었죠..

 

다만 버추얼 보이는 어차피 닌텐도 입장에서 주력이 아니었기에 회사를 휘청이게 할 수준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보다는 소니와의 트러블, 뒤이은 시대착오적 오판이 문제였죠. 원래 닌텐도와 소니는 슈퍼패미컴에 소니의 사운드칩이 공급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은 뒤에 소니의 직원 쿠타라키 켄의 끈질긴 설득으로 슈퍼패미컴에 시디드라이브를 장착하여 시디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부속기기를 소니가 개발하는데 합의를 보았고, 순탄하게 추진되던 중 닌텐도가 갑자기 뒷통수를 치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필립스와의 합작을 선언하게 되죠.

 

현재 그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원래 닌텐도는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게임팩의 생산을 서드파티의 게임들까지 모두 자신들이 엄격하게 통제하였는데 발매 자체를 닌텐도의 허가를 받아야 했음은 물론이고 초도수량도 닌텐도가 정해준대로만 찍을 수 있었고 만약 잘 팔려서 품절이 속출하면 추가물량을 찍는데 수 주가 걸려서 골든타임을 놓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죠.. 게다가 생산 자체도 닌텐도가 지정한 공장에서만 가능.. 이걸로 갑질도 엄청 하고 부가수익도 짭짤했는데 소니가 낄 경우 CD매체에 대한 주도권을 소니에 빼앗길 것을 염려했다는 것..

 

그러나 닌텐도가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는데 바로 소니가 직접 게임기를 개발하는 것이었죠. 사실 소니 측도 뒷통수를 맞고서는 '분하지만 물러나자' 라는 분위기였는데 앞서 언급한 소니의 쿠타라키 켄 만큼은 게임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고, 사장 앞에서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은 끝에 결국 자체적인 게임기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게 되고 그렇게 플레이스테이션 개발이 본격적으로 착수되었죠.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닌텐도는 '세가도 아니고 소니가 게임기를 만들어서 어쩌겠다는거야'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이 다음은 좀있다가 쓰겠습니다..

6
Comments
2019-06-16 15:36:50

원더스완을 좋아했어서 요코 군페이가 기억나네여.. 

OP
2019-06-16 15:52:30

원더스완이 게임기 자체는 제법 잘 만들었고 서드파티로 나름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도 유치하고 했는데 아무래도 닌텐도와 반다이의 게임개발력 차이가..

2019-06-16 15:58:46

차이가.. 좀 나죠.. 실제로 제가 원더스완 - 원더스완 컬러 - 스완크리스탈까지 해서 다 사서 오랫동안 플레이했는데.. 이건 사람이 할 게임기가 못됩니다.. 눈빠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psp 사고나서는 쳐다보지도 않았음..

2019-06-16 15:45:28

나중에 소니도 '세가도 아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를 만들어서 어쩌겠다는거야'같은 생각을 했겠죠..ㅎㅎ

OP
2019-06-16 15:52:40

그 즈음에 세가는 이미..

2019-06-16 16:51:18

메가드라이브가 슈패보다 성능이 좋다고 보긴 힘들죠. 장단이 있지만 슈패가 장점이 좀 더 많다고 생각하고... 북미에서의 성공요인은 빠른 출시 + 마케팅 + 소닉이라고 봐야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