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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특집] 축구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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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14 17:50:50

원문 보기-https://football-tribe.com/korea/2019/11/13/%ec%88%98%eb%8a%a5-%ed%8a%b9%ec%a7%91-%ec%b6%95%ea%b5%ac-%ec%98%81%ec%97%ad/

 

스크롤 압박 느끼시거나, 글자 좀 크게 보고 싶으신 분들은 원문 링크 누르시는 거 추천합니다. 정답은 내일 18시 이후에 공개할 게요.

 

1.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 선수다. 은퇴 이후에는 구단 역사상 최장기간인 35년 동안 회장직을 역임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포함하면 무려 69년 동안이나 레알 마드리드만을 위해 일했던 인물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무려 6번의 유러피언 컵과 16번의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인물은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회장으로 평가받는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프란시스코 헨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2. 다음 설명에 맞는 구단을 고르시오.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은 195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 PSV 아인트호벤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16개 구단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한 팀은 초청을 받았으나, FA의 반대 때문에 불참하게 됐다. 그렇다면 유러피언 컵에 불참한 잉글랜드 구단은 어디일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리버풀

첼시

 

3.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고르시오. 

 

오늘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팀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뛰는 선수들을 바탕으로 팀을 꾸린다.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시절에는 자국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해 우승을 차지했던 팀들도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 국가 팀들이 자국 선수들을 서유럽 국가들로 보내지 못하게 했던 점도 있었으며, 지금처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아메리카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대거 진출하지 못했던 점도 있다.

 

그렇다면 역대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 구단 중 자국 선수들만을 가지고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팀은 어디일까.

 

레알 마드리드

SL 벤피카

셀틱

인터 밀란

 

4. 다음 설명에 맞는 구단을 고르시오.

 

빅 이어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만이 들어 올릴 수 있는 트로피다. 많은 구단과 선수가 이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은 유러피언 컵이다. 빅 이어는 유러피언 컵 시절에도 유럽의 챔피언을 상징하는 트로피였다.

 

그러나 빅 이어가 처음부터 사용되지 않았다. 1956년에 유러피언 컵이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약 10년이 지나서야 빅 이어가 유러피언 컵의 우승 트로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초로 빅 이어를 들어 올린 구단은 어디일까.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리버풀

셀틱

 

5. 다음 설명에 맞는 구단을 고르시오.

 

이 구단은 유러피언 컵에서 2연패(連霸)에 성공한 팀 중 하나다. 그러나 역대 유러피언 컵과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팀 중 유일하게 빅 이어가 없는 구단이기도 하다. 이 구단은 어디일까.

 

인터 밀란

노팅엄 포레스트

SL 벤피카

바이에른 뮌헨

 

6.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감독과 선수로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선수 시절 카이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인물은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세기의 라이벌로 평가받았다. 여기에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도 두 차례 수상했다. 독일 축구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끈 이 인물은 누구인가.

 

게르트 뮐러

파울 브라이트너

울리 슈틸리케

프란츠 베켄바워

 

7. 다음 설명에 맞는 사건을 고르시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맞붙었다. 이 경기 전만 해도 브라질은 역사상 첫 번째 월드컵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토너먼트가 아닌 최종 리그 형태로 경기를 치렀고 승점이 높은 팀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브라질은 승점 4점으로 조 1위였다. 우루과이의 승점은 3점이었다. 브라질이 무승부만 기록해도 우승할 수 있었던 상황.

 

그러나 브라질은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에 1:2로 패했다.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제치고 승점 5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리자 2명이 심장 마비로, 2명이 권총 자살로 사망했다. 또한, 브라질은 결승전 때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었는데, 해당 경기 이후 지금의 노란색과 파란색 유니폼으로 바꿨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순간 중 하나로 뽑히는 이 사건은 무엇일까.

 

미네이랑의 비극

헤이젤 참사

뮌헨 참사

마라카낭의 비극

 

8.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모두 고르시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인 빅 이어는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다. 많은 선수가 빅 이어를 들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새로운 팀으로 이적하는가 하면, 라이벌 팀으로 이적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처럼 명예로운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일까. 1968/1969시즌부터 도입된 규칙에 따르면,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하기 위해서는 대회 3연패를 차지하거나, 통산 5회 우승을 달성해야 한다. 해당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우승팀은 축소 복제품을 받고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10개월 동안만 진품을 소유한 뒤 반납해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이후에 빅 이어 영구 소장 규칙이 폐지됐다. 진품은 UEFA가 보유하고 우승팀에는 팀 이름이 새겨진 100% 크기 복제품을 수여한다. 그렇다면 현재 진품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하는 구단은 어디일까.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바이에른 뮌헨

AFC 아약스

 

9.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1936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5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축구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년 후에는 1군에 승격해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6살이었다.

 

초대 발롱도르 수상자인 스탠리 매튜스는 이 선수를 성난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 같다라고 극찬했다. 토미 도처티는 조지 베스트와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모두 훌륭했지만, 그중에서도 이 선수가 최고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선수는 비행기 추락 사고인 뮌헨 참사로 다리와 갈비뼈를 비롯해 심각한 골절상을 입었고 신장이 손상됐다. 결국, 21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이 인물은 누구일까.

 

조지 베스트

보비 찰턴

데니스 로

던컨 에드워즈

 

10.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헝가리의 벨라 쿠트만 감독은 1959년 포르투갈의 명문 구단인 SL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벤피카는 1960/1961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격파하고 우승했다. 이듬해 레알 마드리드까지 꺾으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뛰어난 성과를 내자 구트만은 구단 경영진에 급료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구단이 이를 거절하자 구트만은 앞으로 ()년 동안 벤피카는 유럽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테타라며 구단을 저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구트만이 떠난 이후 벤피카는 지금까지도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트만이 말했던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100

80

70

50

 

11.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고르시오.

 

프랑스 축구의 영웅인 지네딘 지단은 1972623일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지단은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발롱도르와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을 정도로 성공적인 선수 경력을 보냈다.

 

그렇다면 선수 시절 지단이 뛰지 않았던 팀은 어디일까.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AS

지롱댕 드 보르도

레알 마드리드

 

12. 다음 설명에 맞는 곡을 고르시오.

 

축구 팬들이라면 태어나서 한 번쯤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주제곡을 들어봤을 테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 오프닝이나, 하프 타임 때, 그리고 매 경기 직전에 등장하는 이 노래는 1992UEFA가 작곡가 토니 브리튼에게 공식 주제곡을 의뢰해서 탄생했다.

 

‘Ligue Des Champions’이라고도 불리는 이 주제곡은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 등의 가사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그리고 성 마르틴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연주로 완성된 웅장하면서도 근엄한 노래다. 많은 선수가 이 노래를 들으며 남다른 각오를 다졌고, 많은 팬이 이 노래로 하나가 됐다.

 

그런데 작곡가인 토니 브리튼은 이 곡을 한 클래식 음악으로 편곡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챔스 주제곡의 원곡은 무엇일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Symphony No.01, K16-01’

조지 프레드릭 헨델 ‘Zadok The Priest, Hwv 258’

루트비히 판 베토벤 ‘Symphony No.1 In C major, op.21’

프레데리크 쇼팽 ‘Nocturne No.20 - Op.P1 No.16-In C#m (BI 49)’

 

13. 다음 설명에 맞는 사건을 고르시오.

 

이 사건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뽑힌다. 챔피언스 리그 81차전에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AC 밀란을 상대로 1:4로 졌다. 데포르티보가 4강에 진출하려면 홈에서 3:0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밀란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등과 함께 가장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던 팀으로 데포르티보가 이들을 꺾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데포르티보는 밀란을 상대로 전반전에 3골을, 후반전에 1골을 넣으며 4: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무엇일까.

 

안필드의 기적

캄프 누의 기적

이스탄불의 기적

리아소르의 기적

 

14.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축구 선수들 역시 사람이기에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의 전설인 사비 에르난데스도 마찬가지. 이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를 해서 이 분야에 전문적 지식까지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빈칸에 들어갈 정답은 무엇일까.

 

양계장

버섯채취

요리

사냥

 

15.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발롱도르는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본래 발롱도르는 유럽 국적의 선수로만 한정된 상이었다. 이 때문에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남아메리카 선수들은 발롱도르를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선수의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나라 출신 선수들이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비유럽인 출신 선수는 누구일까.

 

호나우두

히바우두

조지 웨아

호나우지뉴

 

16.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인물은 발롱도르 역사상 최초로 3회 연속 수상에 성공했다. 등 번호 10번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며, 뛰어난 골 결정력과 경기 조율 능력을 갖췄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다.

 

지네딘 지단

미셸 플라티니

리오넬 메시

호나우지뉴

 

17.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축구 황제펠레는 월드컵에서 통산 3번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그러나 오늘날 펠레를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라고 평가할 때 많은 사람이 그가 유럽에서 뛰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펠레는 선수 경력 대부분을 브라질 프로팀인 산투스에서 보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펠레는 선수 시절 다수의 유럽 명문 구단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그중에는 레알 마드리드도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펠레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1959년에 펠레와 처음으로 접촉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펠레를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완벽한 대체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펠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을 거절했다. 펠레는 자서전에서 유럽 리그 진출을 거절한 이유로 어머니가 만든 ()/를 좋아했고 브라질에서 편안했고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과 부모님의 집이 몇 미터에 불과했던 점과 항상 25도를 유지했던 기온, 그리고 바닷가를 좋아했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침대

레몬 에이드

쌀과 콩 요리

오렌지 주스

 

18. 다음 설명에 맞는 인물을 고르시오.

 

이 선수는 1916년 당시 독일 영토였던 카토비츠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때 아버지는 서부전선에서 전사했고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카토비츠는 폴란드 영토로 편입됐다. 이에 이 선수의 가정은 폴란드로 귀화했다.

 

이후 어른이 되어 축구 선수가 된 이 선수는 폴란드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리고 193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혼자서 4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이 선수는 다시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다. 나치 정권은 폴란드인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는 행위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이 선수는 폴란드의 공산 정권에 의해 배신자로 몰렸고, 고향에서 추방됐다. 그렇다면 이 선수는 누구일까.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

즈비그니예프 보니에크

그제그로슈 라토

비톨트 벤트코브스키

 

19. 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스페인 대표팀은 () 유니폼을 입고 치렀던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기억을 가진 적이 없다. 맨 처음에는 그저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던 이 () 유니폼은 어느덧 불운의 상징이자 ‘()유니폼의 저주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났던 스페인 대표팀은 ()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 유니폼의 저주가 시작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나이지리아, 파라과이, 불가리아와 같은 조에 배정됐다. 조 추첨 당시만 해도 스페인이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서 () 유니폼을 입은 스페인은 2:1로 앞섰지만, 골키퍼인 안도니 수비사레타가 자책골을 넣으며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나이지리아에 역전 골을 내주며 2:3으로 졌다. 설상가상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겪었다.

 

유로 2004 때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 경기에서 0:1로 진 스페인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그러나 1:5로 역전패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빈칸에 들어갈 정답은 무엇인가.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흰색

 

20.다음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고르시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최권을 따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했었던 무솔리니는 이 대회 우승을 위해 원래 아르헨티나 선수였던 루이스 몬티와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등을 이탈리아로 귀화시켰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이라며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빈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전원 죽음

전원 강제 노동

전원 은퇴

전원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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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1-13 09:42:05

와 이거 어려운데요..

2019-11-13 09:50:58

43313444411242323342

몇점인가요?
찍은것도 몇개 있네요

2019-11-13 10:41:30

와 겁나 어렵네요ㅋㅋㅋㅋ

2019-11-13 10:51:30

19번은 흰색 이건 알겠네요

2019-11-13 11:37:56

41112444412341322141 엄청 어렵네요.

2019-11-14 07:02:51

42413
44141
12423
23141

챔스 주제가가 원래 있는 곡을 따온거였군요
많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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