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만 잘못 인용되는 명언들
1. "악법도 법이다"
<변론>의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소크라테스가 사회적 규율, 정의, 양심에 대해서 하는 소리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서 해석이 분분하긴 합니다만, 중요한 건 준법주의로 읽힐 수 있는 소리를 하는 <크리톤>에서도 정의롭지 못한 법을 그것이 단지 법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다는 것. <파이돈>에 따르면 독배 받으면서 한 말은 신에게 치킨 한마리 제물로 바치라는 부탁.
로마 격언 중에 "Dura Lex Sed Lex"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가 있는데 이건 소크라테스랑은 별로 관련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한때 플라톤이 출처라며 돌아다녔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맞는 이유는 플라톤의 <국가>에 비슷한 말이 나오기 때문이고 틀린 이유는 원문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의미로 인용되기 때문. 엘리트주의자 플라톤이 대중이 정치 참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말 했을리가. 실제론 잘난 용들이 나서서 통치하지 않으면 용이 개가붕의 지배를 받는 모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거란 소리에 가까움.
3.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의 명언으로도 나오는데 출처는 불명확한 것 같습니다.
영어권 애들은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를 처칠의 격언으로 알고 있고, 실제로 자주 인용합니다만, 영국의 미국의 한 처칠 연구가에 의하면 처칠은 그런 말을 한 적기록이 없다고 하네요. 선동적인 수사와 개소리를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처칠인 만큼 실제로 이런 말 했어도 놀랍지는 않지만...
의미가 비슷한 격언 중 출처가 확실한 건 스페인 태생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저서 The Life of Reason에 나오는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과거를 잊은 자들은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는 의미. 베리에이션이 여러 개 있습니다만 저게 원문 (산타야나는 스페인 태생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했고 저술도 영어로 함). 이것 역시 처칠의 명언으로 잘못 인용되기도 하는 듯.
4. "모든 국가에서 사람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예전에 선거철 되면 자주 보이던 명언. 한국에선 알렉시스 토크빌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었고, 미국에도 토크빌이나 링컨의 명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반계몽주의자이며 군주제 신봉자였던 조제프 드 메이트르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편지에서 발견되는 문구라고 합니다. 원문은 "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érite."
민주주의와는 한참 떨어진 사람의 말이 투표 독려용 문구가 된 건 2번 플라톤 경우와 비슷한듯.
5.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흔히 볼테르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정확히는 볼테르의 전기 The Life of Voltaire (1896)와 The Friends of Voltaire (1906)를 집필한 Evelyn Beatrice Hall이 볼테르의 사상을 설명하며 사용한 표현인데, 원문에 따옴표를 쓰는 바람에 볼테르를 직접인용 한 것으로 보여서 볼테르의 명언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케이스. 홀의 책에는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라고 나옴.
프랑스 애들도 볼테르의 명언으로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찾아보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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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겠다."도 루터가 했던 말이라는 썰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