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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바죠 '축구는 나에게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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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13 22:11:33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테니스 공을 가지고 놀곤 했고, 너무 많은 창문들을 부수곤 했다... 오늘날 아이들이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어디에서나, 정확히 말하자면 거리에서 축구를 하는 즐거움이다.'


'축구 선수의 경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왜냐하면 그 자세를 가지면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미 인생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팬들의 애정을 신발에 담아서 경험했다. 언젠간 우상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서포터들에게 그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고자 축구를 했다.'


'비첸차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나에게 꿈이었다. 나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피오렌티나에 도착했고, 2년 동안 뛰지 못했고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다. 그 부상은 악몽이었다. 첫 무릎 수술을 하고 다음 날에, 나는 어머니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때, 나를 기다려준 팬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피오렌티나 팬들과 깊은 유대감이 생겼고 비올라와 함께 남으려고 애를 썼지만, 나를 위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이 더 확실하게 하기를 바랬었다.'


-1990년 바죠가 유벤투스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피오렌티나 거리에는 폭동이 일어났다-


3일 동안 혼란이 있었고, 비올라 팬들은 나의 유벤투스 이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는 이 모든 일에 원인에 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항상 진실을 말해왔지만, 그런 일은 20년 후에 받아들여졌다.


-바죠는 1993년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 당시에 웅장한 밀란이 있었고 유벤투스는 세리에 A에 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로지 팀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그 일들은 전혀 예상히지 못했다.'

 

'나는 95/96 시즌에 밀란에서 스쿠테토를 들어올렸고, 많은 훌륭한 챔피언들과 경기를 가졌다. 볼로냐 이적은 나에게 중요한 단계였다. 왜냐하면 나는 밀란에서 꾸준히 뛰지 못했고, 1998년 월드컵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볼로냐로 이적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볼로냐에서 환상적인 도시를 발견했고, 경기에 출전했고, 그것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1월 전부터 인테르는 이미 나를 영입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인테르의 유니폼을 입게 되는 것은 정말로 기뻤지만, 시즌 중반에 볼로냐를 배신하고 떠날 수 없었다.'

 

'브레시아와 함께, 나는 3개월간의 훈련을 혼자서 했고 집에서 가까운 구단을 찾고 있었다. 비첸차가 전화해주길 바랬는데 잘 안 된 것 같았다... 어느날 밤, 전화벨이 울렸고 카를로 마조네는 나에게 브레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 곳에서 동화가 탄생했다. 마조네는 갈등에 관심이 없었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고 내가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때, 그들은 항의했다. 그래서 그 상황들은 감독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일이 잘못되기 전에, 나는 아리고 사키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페널티킥에서 공을 골대 위로 날린 적이 없었다. 마지막 스팟 킥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최후의 일격(coup de grace)이었다. 잠들기 전에 여러번, 그 순간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나타난다.'

 

'어렸을 때, 나는 이탈리아와 브라질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경기를 가지는 것을 꿈꿨다. 내가 꿈꾸지 않은 유일한 것은 내가 페널티킥을 놓치는 것으로 경기가 끝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1994년 대회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했을 것이다. 2002년에 희망을 가졌지만 나는 집에 남게 되었다. 아마 내가 거만해 보일지도 모르고, 비록 몇몇 사람들이 내 체력에 의심을 품었더라도, 나는 월드컵 명단에 소집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 곳에 있을 자격이 있었고 축구는 나에게 빚을 졌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내가 스포츠에서 떠난 것 같다.'

 

https://www.football-italia.net/145178/baggio-football-owed-i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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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0-13 14:48:04

나는,,, 빚쟁이랍니다으아아어하~

2019-10-13 14:54:09

쿠 데 그라 ㄷㄷㄷ

2019-10-13 14:56:11

핀 벨러가 생각나네요

Updated at 2019-10-13 17:23:52

그 PK를 넣었다면 바죠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Updated at 2019-10-13 16:20:04

만약이라는건 없지만 98월드컵 4강을 진출했다면 지금의 지단은 없었고 PK도 넣었고 명예회복을 이룬 해피엔딩이 아니었을지

Updated at 2019-10-13 17:52:25

거기에 프랑스 탈락의 나비효과로 98대회를 브라질이 우승, 02년 월드컵까지 먹으면서 월드컵 역사 최초의 쓰리핏 달성을 한 호나우두가 지금 펠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을수도 ㄷㄷㄷ<br />

2019-10-13 17:44:43

월드컵 쓰리핏은 모든 스포츠 통틀어 가장 어려울듯.. ㄷㄷ

Updated at 2019-10-13 20:39:15

사실 호돈은 94는 뽑히긴 했지만 한경기도 못 뛰었으니 저렇게 되더라도 사실상 더블로 봐야하는게 맞긴 하죠;; 물론 더블도 어마어마한게 38 이탈리아, 62 브라질만 달성했던 기록이었으니

Updated at 2019-10-13 20:29:01

만약이지만 호돈이 전성기 기량 유지한채 월드컵 쓰리핏 했다면 그냥 원탑 아닐까요ㄷㄷ
애초에 3회연속 월드컵 참가 자체로도 어려운 난이도인데..
축구라는 종목 특성상 혼자 암만 잘해봐야 동료들이 적절하게 터져주지 않으면 월드컵 본선 참가조차 쉽지않죠.
당연히 본인의 폼 역시 12년동안 최소 인클정도의 폼은 유지했어야 하는거고요.
일정수준 이상의 국적을 타고남+개인의 능력+철강왕+우수한 동료 및 적재적소의 활약, 여기에 천운이 다시 더해져야 가능할 수준이라고 봐서.. 그야말로 축신 그자체 아닐지ㄷㄷ

2019-10-13 22:02:20

2001/2002 시즌 엄청난 기세로 득점을 올리다가 큰 부상으로 시즌 절반 이상을 날려먹고, 마지막에 복귀해서 다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시준 막판 피오렌티나 전 터닝골이 생각나네요.

당시 월드컵 발탁을 기대했었는데 고집쟁이 트랍이 결국 선발하지 않았죠. 바죠가 있었다면 한국의 4강 신화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2019-10-14 01:57:25

그 시즌이 진짜 아쉽죠. 부상전까지 거의 경기당 1골씩 넣었던걸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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