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의 방식 - 「이탈리아인은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다.」
무리뉴의 방식
by.카타노 미치오
「이탈리아인은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다.」
걸어온 싸움은 절대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뉴가 이탈리아 매스컴 앞에서 보여 준 언변과 행동, 그리고 그 결과로 일어난 논쟁과 말싸움은 그야말로 그동안 세리아에선 보지 못한 스팩터클 그 자체였다고 할수있다. 무리뉴는 포르투 시절부터 공격적인 발언으로 매스컴을 들썩이게 해 왔다.
그는 논쟁이나 적대 관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매스컴 보도가 가져오는 마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적과 아군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발언이 매주 매스컴들이 문제 삼는 정도였다면 물의를 일으키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TV 반대편에서 사건의 귀추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통쾌하거나 혹은 짜증이 나는 구경거리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멋진 스팩터클이었다.
첫 “설전”이 발발 한 것은 아직 프레 시즌이었던 8월 초였다. 그 상대는 유벤투스의 감독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라니에리가 8월 3일에 독일에서 열린 함부르크SV와의 친선 시합에서 0-3의 패배를 맞본 후 기자회견에서 입에 담은 다음과 같은 코멘트였다.
지난 시즌을 3위로 마친 유벤투스는 세리에A 개막까지 아직 보름이나 남은 8월 13일에 CL 예선이라는 중요한 시합을 앞둔 입장이었다.
지난 시즌을 3위로 마친 유벤투스는 세리에A 개막까지 아직 보름이나 남은 8월 13일에 CL 예선이라는 중요한 시합을 앞둔 입장이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왔지 말싸움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인테르의 축구를 조금이라도 향상시키는 것이 저의 일이며, 타인이 하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한 말은 확실히 옳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한 욕구 수준이 대단히 높고,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제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언제나 승리라는 결과를 필요로 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타이틀을 따낸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그는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승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곧 70살이 되는데도 슈퍼 컵 같은 조그마한 컵 하나 밖에 손에 넣지 못한 것은 그런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는 중요한 타이틀을 한 번도 따낸 적이 없습니다. 멘탈리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기에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무리뉴의 첫 “싸움 상대”가 라니에리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사정이 있다.
첫 번째느 2명의 은원 관계이다.
그 후임으로 UEFA 컵과 CL를 연패하며 “스페셜 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첼시로 넘어 와서 첫 해에
무리뉴는 첼시 시절에 몇 번, 전임자 라니에리에 관해서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 그에 대해서 라니에리가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음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또 하나의 사정은 라니에리가 감독을 맡은 유벤투스가 인테르에게 가장 원한이 깊은 “적”이라는 사실이다.
인테르와의 라이벌 관계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같은 도시에 본거지를 둔 밀란이 더 강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일단 유벤투스 서포터 사이에서 인테르에 대한 적의가 높아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배경에 있는 것이 2006년 여름에 일어난 “칼치오폴리”이다. 이 스캔들의 “주범격”이었던 유벤투스는 직전의 2시즌 (04-05, 05-06)의 스쿠데토를 박탈당했고, 세리에B로 강등이라는 엄중한 처분을 받아서 주력 선수를 대량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스캔들의 상처 없이 빠져나온 인테르가 유벤투스로가 박탈당한 05-06시즌의 스쿠데토를 순위가 올라가면서 손에 넣은 것만이 아니라 스트라이커 이브라히모비치를 빼가며 지금까지 유벤투스의 천하였던 세리에A의 패권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그 이래로 인테르는 유벤투스와 그 서포터에게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물론 인테르에 있어서도 유벤투스는 과거 불운했던 시절 고비마다 쓴잔을 마시게 했던 숙적이다.
그런 이유로 이탈리아에 오자마자 무리뉴가 매스컴을 통해서 높은 프라이드와 논객의 면모를 인상에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주변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싸움 상대”로 라니에르와 유벤투스는 절호의 상대였다.
잉글랜드에서도 라이벌 팀의 감독과 일이 있을 때마다 설전을 계속하며, 갈채와 반감을 비슷할 정도로 끌어 모았던 무리뉴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화를 일으킬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 해도 아직 56살인 라니에리를 70살의 노인이라고 부르며「그런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으니 이기지 못하는 거다.」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살짝 공격해온 상대를 있는 힘껏 두들기는 것과 같은 대단히 어른스럽지 못한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서 인테리스타들과 팬들은 속이 후련해하기도하고 웃으면서 통쾌했을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유벤티노(유벤투스 서포터)를 결정적으로 적으로 돌리고, 더욱이 중립적인 방관자들의 일부에게 적지 않은 반감을 산 것도 틀림없다.
무엇보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이정도로 명확하게 적의를 드러내며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은 일본이나 잉글랜드에서도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도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자신은 승리의 멘탈리티를 갖춘 위대한 감독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남겨온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은 무리뉴가 종종 잎에 담아온 버릇과도 같은 말이다.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아이덴티티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일견 불손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행동의 배후에 자신의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강렬한 프라이드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큰소리를 치는 것도, 동업자의 험담을 하는 것도 이탈리아에서는 대단히 미움 받는 행위라는 점에 있다. 디프로마시(외교술)가 어른의 몸가짐이라 생각하는 것이 이 나라의 불문율이며, 라이벌 팀의 감독 사이에도 매스컴 앞에서는 사이좋게 서로를 칭찬하는 것이 룰이다. 무리뉴는 그런 습관에 곧바로 돌을 던져 넣으며 파문을 일으켰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즌이 개막하고 계속해서 일어난 격한 설전을 보면 라니에리와의 에피소드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우리들은 곧 알게될수 있었다.
네셔널리즘적인 반감에는 응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설전이 일어난 것이 9월 13일 제 2라운드 카타니아 전 후의 일이다
전반 42분에 선제골을 먹고 곧바로 동점으로 따라붙어 2-1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둔 이 시합에서 인테르는 전반 45분에 문타리가 거친 플레이로 레드 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했고, 후반을 계속 10명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문타리의 퇴장은 패스를 받아서 드리블하려는 순간에 뒤에서 부딪쳐온 카타니아의 MF 테데스코에게 유니폼이 잡혀서, 그것을 빼내려고 오른 손을 후방으로 크게 휘두른 것이 상대 얼굴 쪽에 맞은 것이다. 얼굴을 맞은 상황이 된 테데스코는 기회를 살려서 일부러 크게 튀어 올라 얼굴을 감싸 쥐고 피치에 쓰러졌다. 그것을 본 주심이 문타리에게 레드 카드를 주었다.
시합 후, TV 인터뷰 룸에 모습을 드러낸 무리뉴는 기자의 질문을 받기 전에 단숨에 대단한 기세로 내뱉었다.
「문타리의 퇴장에 대해서 한마디 해 두고 싶습니다. 이 시합에 대비해서 카타니아의 시합을 몇 경기 DVD로 보면서, 테데스코가 어떤 타입의 선수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에서 말하는 페어 플레이 정신이 결여 된 선수입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우리들이 말하는 지능적인 선수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는 우리들의 문화 안에서 지능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반대로 설리는 지금까지 악평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했죠. 만약 이게 사네티나 캄비아소와 같이 슈퍼 클린한 선수였다면 옐로 카드도 안 나왔을 겁니다.
그 장면을 봤을 때 테데스코가 죽은 게 아닌가 싶었기에 후반에 피치에 돌아온 걸 보고 놀랐어요. 시합에 관해서 말하자면 후반은 10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번째 골을 넣고도 더욱 추가점을 올릴 찬스를 몇 번이고 만들 수 있었습니다. 카타니아는 그들의 경기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을 보자면 3, 4, 5대 1의 스코어가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아는 것처럼 이날 카타니아 전의 결승점은 상대의 자책골이었다. 그리고 인테르가 추가점을 올릴 찬스를 만든 것은 시합 시간 5분을 남기고 카타니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으로 전환 한 틈을 찌른 것이었다.
무리뉴의 이런 자기 팀을 편드는 코멘트가 10명이 되어 힘든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주도권을 놓지 않고 리드를 지켜내어 승리를 거둔 선수들을 칭찬하여,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목적으로 나온 것임은 명백하다. 하지만 선전하면서도 패배한 카타니아 쪽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임도 분명했다.
무리뉴에게 매스컴과의 인터뷰는 팀이나 서포터와 같은 “내부”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장소이고, 그 코멘트에 대해서 대전 상대를 시작으로 하는 “외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카타니아 전이 있기 전에는 「카타니아는 까다로운 팀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평소처럼 싸운다면 이길 수 있는 상대입니다.」라고 코멘트 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상대에게 강한 반발을 사는 경우가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이번 무리뉴의 코멘트에 “과민반응”한 것은 카타니아의 제너럴 디렉터, 피에트로 로 모나코였다.
시합 다음날, 시칠리아 지역의 로컬 TV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무리뉴가 한 일련의 발언에 대해서 이렇게 코멘트 했다.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은 대전 상대에 대해서도, 그 감독에 대해서도, 그를 받아들인 국가에 대해서도 존중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녀석들은 곤봉으로 이를 부러뜨려 버려야해요. 무리뉴는 말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들 이탈리아인은 말에 농락당하는 국민이 아닙니다.」
로 모나코는 이탈리아 국내에서 10손가락 안에 꼽히는 클럽 디렉터이다. 세리에C(3~4부 리그)에 속해있는 남 이탈리아의 클럽을 감독으로 전전하는 변변찮은 커리어를 보낸 후, 뛰어난 선수 발굴 능력을 살려서 스카우터, 그리고 스포츠 디렉터(보강 책임자)로 전직하여, 카타니아를 세리에C에서 세리에A까지 끌어올리는 결과를 남겼다.
제한 된 예산으로 무명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면서, 약소 팀을 세리에A에서 싸울 수 있는 레벨까지 강화시킨 그 수완은 “업계”에서는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참고로 도쿄 베르디에서 뛰고 있었던 모리모토 타카유키를 지켜보고 데려간 것도 그이다.
이탈리아 프로 축구계의 저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리에C에서 혼자 힘으로 일어 선 로 모나코에게 지금 세리에A라는 큰 무대에서 싸우는 카타니아가 자신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이며, 자랑스러운 대상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들인 나라에 대해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이탈리아인은 말에 농락당하지 않는다.」라고 한 “말 끝”을 보면 그가 (그리고 칼치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이탈리아라는 국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축구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네셔널리즘적인 긍지, 그리고 그와 반대로 외국인 감독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고 있다.
무리뉴라고 하는 “어린 주제에 건방진 외국인”에게 자신의 긍지인 카타니아를 얕보는 말을 들어서, 화를 참을 수 없는 마음은 이해 할만하다. 이런 순박하고 단순한 네셔널리즘적인 감정은 이탈리아인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품고 있는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배척주의나 외국인 차별로 이어질 위험한 측면을 심층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또한 진실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로 모나코의 「곤봉으로 이를 부러뜨려야 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런 너무나도 큰 소란을 일으킬만한 언동이 순식간에 미디어를 떠돌며 적지 않은 비판을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연 무리뉴는 여기에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메스컴의 구경꾼스러운 흥미는 더없이 높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CL 파나시나이코스 전을 맞아 간 원정지 아테네에서 무리뉴가 꺼낸 반박은 그 시기에 어긋나는 방약무인한 것이었다.
「모나코? 그게 누구죠? 저는 티벳의 모나코(이탈리아어로 “승려”를 말함)나 모나코 공국이나 바바리아의 모나코(이탈리아어로 뮌헨을 말함)나 모나코GP라면 아는데 그 이외의 모나코는 모릅니다. 만약 그 모나코라는 사람이 저를 끌어들여서 유명해지고 싶다면 제게 돈을 줘야할 겁니다. 아주 많은 돈을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로 모나코의 발언 배후에 있는 네셔널리즘적인 반감을 민감하게 알아차렸는지 숙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탈리아 축구가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 감독으로서도 그리고 인간으로서도 결코. 이탈리아에서 조금이라도 더 길게 머물며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철학과 함께 이탈리아에 와서 저의 철학과 함께 떠날 것입니다. 저는 모든 시합에서 이기기위해서 싸웁니다. 팀을 향상시켜 승리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승패라는 결과만으로 판단하겠다는 멍청한 짓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신경써주셨으면 하는 것은 제 팀은 몇 개의 타이틀을 반드시 따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슈퍼 컵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타이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리뉴에게 무시당한 것만이 아니라 (로 모나코가 아닌) 모나코라고 불려 기분이 상한 로 모나코는 그 다음날 카타니아의 공식 사이트에 성명문을 발표했다.
「세뇨르 무리뉴, 분명한 것은 당신은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꼬리를 말고 당신 나라로 돌아가십시오. 몇 개월 후에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어쨌든 당신이 사라졌다 해도 이탈리아 축구에 별다른 손실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무리뉴의 일격에 의해서 이미 “승패”의 결착이 난 후이기에 무슨 말을 해도 패배자의 넋두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
무리뉴는 로 모나코와의 설전이 겨우 가라앉은 9월 20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가 취재한 독점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으키는 설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타인을 도발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도발 당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만약 도발 당했다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세상의 주의와 관심을 모으는 존재라는 것, 저를 끌어들이면 화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 모나코가 좋은 예죠. CNN에 무료로 출연했으니까요. 판타스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결코 피하지 않는 “플레이 원칙”은 무리뉴에게는 일종의 처세술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져 있듯, 그의 감독 커리어는 문자 그대로 밑바닥부터 올라온 것이다. 프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나 유소년기부터 축구 세계의 공기를 마시며 자랐다고는 해도, 프로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0. 10대부터 이미 감독의 길을 지망하여 대학에서 스포츠 과학을 배운 후, 영국으로 건너가서 스코틀랜드 협회의 코치 라이센스를 획득, 모국으로 돌아와 고향의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유스 코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후 에스트레야 다 아마도라의 조감독으로 옮겼고, 92-93시즌에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영국인 감독 바비 롭슨의 통역 겸 어시스턴트 코치가 될 찬스를 얻은 것이 커리어의 큰 전환점이었다.
롭슨의 신뢰를 얻은 무리뉴는 이어서 포르투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도 그의 한쪽 팔로 일했으나 롭슨이 네덜란드의 PSV로 떠났을 때에는 그대로 바르셀로나에 남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다음 감독인 루이스 반 할 아래에서 조감독이 되어 하부 리그에서 뛰는 바르셀로나B 지휘를 맡는 형식으로 경험을 축적했다.
2000년에 벤피카에서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우니온 레이리아를 거쳐서 포르투, 첼시와 영광의 계단을 뛰어 올라간 석세스 스토리는 축구 팬 사이에서는 이미 넓게 알려진 일이다.
그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한 표현이나 사교 수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언뜻 보기에 오만하게 비칠 정도의 태도는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0에서 커리어를 쌓아 올린 과정에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존경을 따내기 위한 무기로 갈고 닦은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도 변경에 위치한 소국이며 축구적인 지위도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어느 곳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 나라에서 온 프로 선수 경력도 없는 젊은 감독을 주변에서 가볍게 보는 일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지금도 “엘 마라독토르”(통역)가 그의 별명이다. 커리어 초기에는 그런 편견과의 싸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무리뉴의 위대함이나 거만함은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는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메리트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불안과 공포도 보이지 않고, 흔들리는 일도 없이 강한 태도를 계속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가제타』의 인터뷰에서 그가 입에 담은 한 마디는 자신의 일에 대한 그의 깊은 확신이 농축되어있다.
「저는 제 자신이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이상 가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우수한 감독은 없다는 깊은 확신을 계속 가지고 있기 위해서는 그런 확신을 뒷받침하는 일의 프로세스, 그리고 결과를 쌓아가는 것이 불가결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확신이 흔들리지 않을 만한 업적을 매일 쌓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재능과 노력과 열정이 필요할까. 체계적으로 쌓아 올려온 트레이닝 철학도, 탁월한 팀 매니지먼트 수법도, 매스컴 앞에서의 거만하고 불손한 태도도, 모두 그 확신을 뒷받침하는 목적에 수렴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저는 무리뉴의 아래에서 세계 제일의 조감독이 되고 싶고, 되어야만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도 이렇게 여러분의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경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리뉴에게서 또 무언가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을 끌어내서 소재로 삼으려고 생각했던 매스컴 입장에서는 이건 제대로 한 방 맞은 것과 같은 일이었다.시합 후에 각 스타디움의 프레스 룸과 중계를 연결해서 각 감독에게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의 사회자는 다른 팀의 감독에게
「무리뉴가 바레시를 인터뷰에 내보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져서 논쟁을 일으키려고 했다.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한 것이 유벤투스의 라니에리였다.
「논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리뉴의 기분도 이해합니다. 시합 후에 여기에 나와서 1시간이나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괴로우니까요. 순서를 기다려서 항상 같은 질문에 대답하고, 또 다른 방송국과 똑같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TV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미디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TV를 시청하는 서포터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날 대전 상대인 레체를 이끈 마리오 베레타도 라니에리와 같은 의견이었다.
확실한 것은 무리뉴의 대역으로 등장한 바레시의 코멘트에는 거의 아무도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날 매스컴을 지배한 것은 무리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낙담과 분노뿐이었다.하지만 “주역 부재”의 기간은 겨우 2주에 불과했다.
「축구 역사상 최대의 감독 중 한 명인 알렉스 퍼거슨 경도 인터뷰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때에 존중이 결여되었다거나 그런 식의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습니까? 저는 1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커리어 속에서 총 21번, 저의 스탭을 인터뷰에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존중이 빠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리뉴는 매스컴이나 라니에리에 대해서만 뿜어져 나온 것이 아니었다.
기자 중 한 명이 주저하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그러면 당신은 이탈리아를 선택한 것을 후회합니까?」
무리뉴의 대답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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